연초정국 뇌관 '박관천 X파일' 실체

"박 경정 입이 바로 살생부"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박근혜정부를 흔들었던 정윤회 문건파동이 수사 동력을 상실했다. 검찰은 '박관천 1인 자작극'으로 사건을 봉합하는 모습이다. 파문의 핵심인 '권력암투'는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자 또 다른 의혹이 고개를 들었다. 박지만 EG회장의 '거짓말'이다.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박관천 경정은 "내가 입을 열면 국민들이 놀랄 것"이라며 폭로전을 예고했다. '최태민의 망령'을 부활시킨 '보이지 않는 손'을 박 경정은 알고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었던 2012년 12월24일. 국민의 관심은 '인사'에 쏠려있었다. 방송인으로 유명한 한 여권 관계자는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어디서 들었는지 "윤창중이 대변인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공보수석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첫 인선결과를 발표했다. 인수위 수석대변인에는 윤창중 당시 칼럼세상 대표가 임명됐다. 정치권에선 윤창중 대변인의 탄생을 예상치 못한 눈치였다. 윤 대변인은 다음해 청와대로 입성했다.

박지만은 왜
미행 부인했나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정윤회 문건파동이 전직 청와대 행정관인 박관천 경정의 '1인 자작극'으로 좁혀지고 있다. 지난 1일 개시한 검찰 수사는 속전속결로 마무리 중이다.

청와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검찰은 '십상시 회동'과 ‘박지만 미행설’ 모두 신빙성 없는 허위사실로 결론 냈다. 그러나 검찰 수사결과를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은 모습이다. 지난 12~13일까지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수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윤회 문건 유출 수사에 대해 '신뢰한다'는 의견은 28.2%에 그쳤다.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회장은 지난 23일 오후 비밀리에 검찰에 출두했다. 전날 <시사저널>은 미행설을 보도하게 된 경위에 대해 "박관천을 취재해서 나온 게 아니라 박지만의 '입'에서 미행 사건이 나왔다"고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박 회장은 앞선 조사에서 "(정윤회의 미행과 관련한) 진술서를 받았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박 경정이 작성한 문건을 통해 미행설을 접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건 후폭풍 뇌관 "건들면 터져"
'보이지 않는 손'도 알고 있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시중에 떠도는 '박관천 배후설'은 사실이 아니다. 박 경정이 <시사저널> 측에 문건 혹은 구두정보를 흘려 미행설이 보도된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박 회장이 먼저 사석에서 화를 내며 '미행 발언'을 했고, 취재 기자들은 박 회장의 측근으로부터 이 같은 첩보를 입수해 2월 무렵 취재에 들어갔다. 이들은 기사에서 "당시만 해도 박 경정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기자는 지난 3월께 익명의 관계자로부터 "언론이 박관천이라는 사람을 수소문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아울러 "박 회장과 측근 서너명이 지난해 말 서울 압구정에서 식사를 했다"는 얘기를 미행설과 함께 건네 들은 바 있다. 검찰 브리핑을 위주로 한 일간지 보도를 종합하면 박 경정의 문건 작성 시기는 3월 이후로 추정된다. 미행 보도의 시작이 박 경정이 아닌 것만은 여러 정황상 분명해 보인다.

믿을 수 없는
청와대 해명

당시 식사자리엔 여권의 '숨은 실세'로 지목된 이영수 KMDC 회장이 동석했던 것으로 한 관계자는 주장했다. 이 회장은 MB정부 탄생에 기여한 외곽조직 '국민성공실천연합'을 이끈 장본인이다. MB정부 출범 후에는 박영준 당시 지식경제부 차관과 함께 해외자원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박 회장과 이 회장의 인연은 18대 대선을 앞둔 2012년을 전후로 입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 같은 배경으로 박 회장과 가까운 사이인 이 회장이 미행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가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행설의 진위가 중요한 이유는 권력암투를 부인하고 있는 청와대의 해명을 그대로 믿을 수 없어서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수사결과도 의문투성이다. 청와대는 자체 감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른바 '7인 모임'을 특정해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몸통'으로 지목했다.


반면 조 전 비서관은 언론을 통해 "국정농단이 사실에 가깝다"는 취지로 대응 중이다. 조 전 비서관은 "청와대가 나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5월 유출된 문건을 취합해 박 회장에게 건네는 한편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근무하고 있던 오모 행정관에게 유출 사실을 제보했다. 그러나 '문고리 3인방' 가운데 한 명인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은 제보를 묵살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문건 유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최모 경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최 경위는 죽음을 앞두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회유가 있었음을 폭로했다. 최 경위는 유서에서 "너무 힘들어하지 마라. 민정비서관실에서 너에게 그런 제의가 들어오면 흔들리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동료 한모 경위를 위로했다.

최 경위는 생전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민정수석실이 한 경위에게 '혐의를 인정하면 불입건 처리해 주겠다'고 말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 경위는 청와대에서 반출된 문건을 복사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한 경위는 지난 16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민정수석실의 회유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현재 한 경위는 정신적 충격을 입어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 다문 박관천
"국민 놀랄 것"

몇몇 언론은 검찰 관계자의 설명을 인용해 "박 회장이 '조 전 비서관은 측근이 아니다'라고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박 경정도 마찬가지다. 박 경정은 관련한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개 행정관이었던 박 경정이 아무 이득 없이 거짓 보고서를 작성했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8일 박 경정은 체포 직전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에 대한 충성일지 모르겠지만, 충성은 하는 사람 뿐 아니라 받는 사람도 알아야 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회의감이 들고…"라며 "(문건이) 어떤 경위로 작성됐고 뭐가 문제인지. 언젠가는 내가 말할 날이 있을 거다. 그런 거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얘기하면 국민들이 놀랄 거야. 이 문건 가지고도 책 1권을 쓸 걸"이라고 폭로전을 예고했다.

또 박 경정은 "조 비서관이 민감한 일들을 다 시켰다"는 말로 상부의 지시가 있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조 전 비서관 역시 최근 조사에서 '윗선'의 지시가 있었음을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경정의 깜짝 발언을 놓고 법조계에선 여러 설이 분분하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거짓말인지, 윗선을 겨냥한 협상용 멘트인지 어느 하나 명확하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박 경정이 아직 공개되지 않은 'X-FILE'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윤회-박지만-조응천 폭로 주목
새 키맨 이영수 미행설 증언할까

실제로 박 경정은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의 주변을 집요하게 파고든 것으로 보인다. 같은날 <채널A>는 "박 경정이 지난 6월 정씨와 만나 당시 혼인관계에 있던 아내 최순실씨의 사생활 정보를 알려줬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박 경정은 십상시 회동의 제보자(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를 지목하며 "그가 당신 부인(최씨)과 가깝게 지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민간인'인 최씨와 관련한 의혹을 직접 조사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확인까지 해줬다. 민정수석실은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 관리를 담당업무로 삼는 부서다. 최씨 혹은 정씨가 민정수석실 관리 대상에 들어갔다는 증거인 셈이다.

박 경정은 청와대 행정관 재직 당시 고위공무원에 대한 암행 감찰이나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에 대한 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박 경정이 대검찰청 정보라인과도 안면이 있는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베테랑 수사관'으로 알려진 박 경정은 여러 전화를 사용하며 '고급 정보'를 '컨트롤'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다룬 고급정보 가운데는 정씨와 관련한 내용은 물론 박 회장 주변 동향과 관련한 첩보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일보>가 공개한 문건만 놓고 보면 '인사(천거·개입 혹은 청탁)'와 관련한 비위사실이 담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정부에서 누가 인사를 좌우하는가는 밝혀지지 않았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내용을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두에 언급한 윤 대변인과 관련한 풍문이 대표적이다.

당시 언론계 일각에선 윤 대변인의 발탁 배경을 놓고 박 회장과의 친분을 의심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씨는 트위터에 해당 소문을 옮겨 적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가 "착각했다"고 사과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이후엔 윤 대변인을 천거한 세력이 정씨를 기점으로 한 문고리 3인방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금껏 어디에서도 '공적라인'이 윤 대변인을 천거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차례로 권력기관을 장악하고 있을 당시 사정기관 관계자는 "청와대 밖에서도 박지만의 이름이 들렸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이름을 빌린 누군가가 기관 인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푸념이었다.

문고리 3인방도 마찬가지다.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사칭한 조모씨는 대기업에 인사 청탁을 하려다 적발됐다. 당사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청와대 밖에서도 '줄대기'가 끊이지 않았던 셈이다. 심지어 <세계일보> 문건에는 "정씨를 만나려면 7억원을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해당 의혹의 진위 여부는 '찌라시'란 이유로 가려지지 않았다.

찌라시 이유로
측근전횡 은폐


남은 수사기간 동안 검찰이 정씨와 박 회장 세력 간의 권력다툼을 밝힐 확률은 없다. 당장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의 '혐의'를 캐내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주말을 기점으로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이래저래 사건의 키는 구속된 박 경정이 쥐고 있는 게 사실이다. 보고서 제목(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과 여러 진술을 종합했을 때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개입 가능성까지 점쳐볼 수 있다.

그렇지만 박 경정이 섣불리 'X-FILE'을 꺼내들지는 미지수다. 자신을 둘러싼 여러 흐름이 좋지 못한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룸살롱 황제 이경백씨와의 '뒷거래' 의혹이 대표적이다. 진실을 바라는 많은 국민의 염원대로 박 경정이 스스로 잠근 '지퍼(=입)'를 열지 지켜볼 일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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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