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후폭풍' 풀리지 않는 의혹 4

'게이트 키' 박지만이 쥐고 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윤회 문건파동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1일 개시한 검찰 수사는 불과 2주 만에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박관천 경정 쪽으로 칼끝이 모이고 있다. '십상시 회동'과 '박지만 미행설'은 모두 신빙성 없는 허위사실로 매듭지은 모양이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찌라시'로 치부하기에는 께름칙한 '거짓말'이 너무 많아서다.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은 이번 파문의 쟁점 4가지를 차례로 짚어봤다.

박근혜정부의 비선 실세로 알려진 정윤회씨와 관련한 의혹은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세계일보>가 보도한 '동향보고서'의 내용대로 정씨가 '십상시'의 좌장으로 정부 인사 등 국정에 개입했는지 여부. 둘째,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그룹 회장을 실제로 미행했는지 여부. 셋째, 부인이었던 최순실씨와 박 대통령, 그리고 정씨와의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지 여부다.

검찰 수사 경과를 지켜보면 이 가운데 국정개입 의혹과 미행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입장이 정리되고 있다. '십상시 회동'과 '박지만 미행설'은 모두 문건의 출처가 박관천 경정(전 청와대 행정관)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검찰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베테랑 수사관'이었던 박 경정은 왜 있지도 않은 사실을 꾸며내 박 회장에게 흘린 것일까.

①박관천은 왜
문건 만들었나

상대적으로 실체가 불분명한 '박지만 동향문건'부터 살펴보자. 검찰은 박 경정이 '박지만 미행설'과 관련한 별도의 문건을 작성한 뒤 박 회장의 측근인 전모씨를 거쳐 박 회장에게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박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시사저널>에 보도된 "미행 당사자로부터 자필진술서를 받아냈다"는 의혹은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로부터 미행당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박 회장이 미행을 의심하게 된 근거로 박 경정이 작성한 문건을 꼽았다.

박 경정은 청와대 행정관 재직 당시 고위공무원에 대한 암행 감찰이나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에 대한 관리 업무를 담당했다. 박 회장의 비서 역할을 했던 전씨와도 종종 왕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박 경정이 박 회장 주변 동향을 체크하는 과정에서 미행설과 관련한 첩보를 입수해 이를 전씨를 통해 확인했을 가능성이 있다.

십상시 회동·박지만미행설 작성 의도는?
김기춘 보고 받고 입장 돌변…누구 입김?

그러나 검찰은 "문건의 신빙성에 의문이 든다"며 "박 경정이 의도적으로 박 회장에게 미행설을 흘린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의 판단대로 박 경정이 미확인된 미행설을 유포했다면 이는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었을 확률이 높다.

전씨는 박근혜정부 출범 후 조응천 당시 청와대 공직기관비서관의 추천으로 청와대 행정관에 발탁될 뻔 했다. 그러나 안 비서관의 반대에 막혀 '특채'가 좌절된 경험이 있다. 전씨가 3인방에 대해 '유감'을 갖고 있는 것을 염두에 뒀다면 정보가 흘러나가는 '게이트'로 전씨가 활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검찰이 정윤회 동향문건의 제보자로 특정한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도 문고리 권력의 인사 개입을 암시한 바 있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박 경정에 대해 "안 비서관이 (올 2월) 자기를 청와대에서 쫓아냈다고 생각해 앙금이 깊더라"고 말했다.

박 경정은 지난 1월 정윤회 동향문건을 작성해 조 비서관에게 보고한 뒤 불과 1달 만에 일선경찰서 정보과장으로 좌천됐다. 관련 배경을 놓고 정씨에 대한 뒷조사를 벌이다 문고리 권력에 찍혔다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진다.


문건 내용을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직보한 조 비서관도 지난 4월 경질됐다. 보고서 제목은 '靑(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었다. 제목의 앞마디가 의미심장했다.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이라는 도입은 김 실장을 겨냥한 문구로 풀이됐다. 거칠게 정리하면 김 실장에게 "문고리 권력을 걸러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②김기춘은 왜
사태 방관했나

지난 18일 박 경정은 체포 직전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에 대한 충성일지 모르겠지만, 충성은 하는 사람뿐 아니라 받는 사람도 알아야 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회의감이 들고…"라며 "(문건이) 어떤 경위로 작성됐고 뭐가 문제인지. 언젠가는 내가 말할 날이 있을 거다. 그런 거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얘기하면 국민들이 놀랄 거야"라고 폭로전을 예고했다.

또 박 경정은 "조 비서관이 민감한 일들을 다 시켰다"는 말로 상부의 지시가 있었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그럼에도 박 경정의 행위 동기는 의문투성이다. 반출된 문건을 복사한 한모 경위와 언론에 유포한 최모 경위(사망) 모두 경찰 내 손꼽히는 엘리트다. 이들이 위법 소지가 있는 문건 유출을 감행한 이유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자타공인 현 정부의 실력자는 김 실장이다. 그러나 김 실장은 정윤회·박지만 동향문건 사태 전후로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존재감도 미미하다. 김 실장의 당시 행적을 되짚어보자.

지난 8일 <동아일보>는 정윤회 동향문건 작성을 김 실장이 조 비서관에게 지시한 것으로 보도했다. 김 실장은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기사를 쓴 <동아일보>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김 실장으로부터) 누구에게도 지시한 사실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브리핑했다.

그렇지만 조 비서관은 검찰조사에서 "김 실장 혹은 홍경식 당시 민정수석 중 누군가가 내게 업무지시를 내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 대변인은 "김 실장이 (조 비서관으로부터) 구두보고를 받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는 전언도 있어 양측의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김 실장은 조 비서관의 보고가 '찌라시' 수준이어서 묵살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김 실장의 표현대로 찌라시를 작성한 박 경정은 청와대에서 밀려났다. 문건이 유출되자 조 비서관은 물론 홍 수석까지 교체됐다. 말단 행정관도 여럿 바뀌었다. 그럼에도 최종 보고라인인 김 실장은 건재했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김 실장이 자신의 교체설과 관련한 첩보 수집을 지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문고리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공작'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김 실장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어떤 이유인지 문건을 작성한 세력을 잘라냈다.

③세계일보는 왜
박지만 찾아갔나

이와 관련해 두 가지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첫째, 보고 내용이 충분치 못해 VIP(대통령)의 마음을 돌리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가능성. 둘째, '특정한 의도'를 갖고 조 비서관 등을 '고의'로 내보냈을 가능성이다.

<세계일보>는 지난 4월초 전직 청와대 행정관들의 비위사실을 보도했다. 청와대는 이즘 민정수석실의 감찰보고서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세계일보>가 정윤회·박지만 동향문건을 입수한 시기도 4월 전후로 알려졌다. 그런데 얼마 후 세월호 참사가 터졌고 <세계일보>는 후속보도를 유예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세계일보>는 보고서에 등장하는 박 회장을 직접 대면했다. 지난 17일 <세계일보>는 "5월12일 박 회장을 만나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 등과 관련한 청와대 문건을 전달했고, 약 1주일 뒤 문건 처리 경위를 문의하자 '문건은 정호성 비서관에게 줬고, 이는 김기춘 실장에게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세계일보>가 왜 정씨는 놔두고 박 회장에게만 문건을 공개했느냐다. 정씨와 달리 박 회장과 관련한 내용은 기사화하지 않은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문고리 권력을 쳐내기 위해 '누군가'가 박 회장을 음지밖으로 끌어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이 '누군가'는 숨진 최 경위가 아니다. 최 경위는 유서에서 "경찰 생활을 하며 많은 경험을 했지만 이번처럼 힘없는 조직임을 통감한 적이 없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세계일보> 문건 입수 경위 미궁
청와대 노골적인 '정윤회 감싸기'

박 회장은 최근 검찰조사에서 "정씨와의 권력암투설은 사실이 아니며, 문건을 직접 청와대나 국정원에 전달한 바 없다"고 못박았다. 이에 대해 조 비서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청와대에서 나온 후) 문건 유출 사실을 접했고 이를 고민 끝에 박 회장에게 알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 비서관은 "김 실장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박 회장에게 문건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이때가 5월 중순~말이다.

아무 조치가 없자 조 비서관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근무하고 있던 오모 행정관에게 사진으로 찍은 문건 100여장을 건넸다. 6월 초 오 행정관은 정 비서관에게 달려가 유출된 문건 사진을 제보했다. 이는 청와대도 직접 시인한 부분이다.

다른 사실은 제쳐두고 정 비서관이 상당한 '실세'라는 것에는 이론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의 친족과 관련한 민감한 비위 내용을 정 비서관에게 먼저 알린 것이다. 조 비서관은 얼마 후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문건을 보낸) 의도가 뭐냐'는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관련 사실을 제보한 오 행정관은 대기발령 조치됐다. 나아가 청와대는 조 비서관을 주축으로 한 '7인 모임'의 일원으로 오 행정관을 특정했다.


④청와대는 왜
정윤회 지켰나

청와대는 이번 문건파동이 불거진 후 민간인인 정씨의 '주장'을 인용해 힘을 보탰다. 수사 가이드라인까지 검찰에 제시하며 사건을 '마사지'했다. 검찰에 출두한 정씨는 모든 국민이 보는 앞에서 "이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는지 다 밝혀질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다. 검찰은 정씨의 국정개입이 사실이 아니라고 대변했다.

그러나 정씨가 청와대와 특수한 관계에 있다는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비선인 RO조직의 실체를 부인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십상시 회동의 실체를 부인한 정씨의 모습은 묘한 지점에서 오버랩된다.

정씨는 최초 언론 인터뷰에서 "3인방과 연락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미행설이 불거진 후 이 비서관을 통해 '사실 확인'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씨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이 비서관은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급 인사에까지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나란히 검찰조사에서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정씨와 관련한 핵심 의혹 가운데 하나는 박 대통령과의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지 여부다. 반드시 십상시 회동이 아니어도 전화 한 통이면 국정에 개입하는 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정씨 입장에선 청와대 내부의 권력다툼이 자신에게까지 번진 것에 억울함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불장난'을 시작했는지 청와대는 알릴 필요가 있다. 경찰관 3명이 꾸민 자작극이라고 하기엔 변명이 너무 궁색하다.

지난 18일 <채널A>는 "박 경정이 지난 6월 정씨와 만나 당시 혼인관계에 있던 아내 최씨의 사생활 정보를 알려줬다"고 보도했다. 자리에서 박 경정은 십상시 회동의 제보자인 박 전 청장을 거론하며 "당신의 부인과 가깝게 지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정씨를 떠본 것으로 추측된다.

미심쩍은 것은 그 다음이다. 최씨와 박 전 청장의 사생활 관련 의혹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 결과 '사실 무근'으로 판명됐다"는 것이 후속 보도다. 민간인인 최씨의 사생활을 왜 청와대가 들여다봤던 것일까. 수수께끼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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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