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음모론 소문과 진실

"찌라시…" 청와대가 소문 더 키웠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윤회 문건파동이 변곡점을 맞았다. 비선 스캔들의 주인공인 정윤회씨는 지난 10일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발인이자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정씨는 "국정개입은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한 점 의심 없이 '비선실세' 의혹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정씨에게 불리한 온갖 정황은 ‘음모론’으로 확산 중이다. 정씨를 감싸고 있는 청와대 역시 '찌라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미스터리만 증폭되는 상황에서 음모론의 참과 거짓을 따져봤다. 어느 쪽이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태민 목사(이하 최태민)의 망령이 살아나고 있다. 이번 정부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가 파문의 중심에 서면서 상당수 국민은 최태민과 박근혜 대통령의 인연을 입에 올리고 있다. 최태민의 사위로 알려진 정씨는 자신의 장인처럼 "큰 영애(박 대통령)를 휘둘러 국정을 농단하려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최태민의 망령
청와대 덮쳤다

지난 2007년부터 최태민은 박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 후보)의 '약한 고리'로 언급돼왔다. 온갖 루머가 생성됐지만 사실로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도 최태민 관련 소문은 꾸준히 나돌았다. 이중 일부는 명백한 허위사실이었고, 일부는 검증되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박근혜정부 출범 전후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힘없는 시민'들은 법정에 섰다. 일부는 구속됐다.

박 대통령의 결혼설과 출산설은 음모론자들의 단골 레퍼토리로 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루머의 당사자는 최태민에서 정윤회로 바뀌었다. 지난 2012년 7월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한 월간지를 통해 박 대통령의 사생아 의혹을 제기했다가 사과했다. 문제의 월간지는 정정보도를 했다. 보도가 사실이 아니었다고 시인한 셈이다. 그러나 김 전 부소장은 허위사실 유포죄로 처벌받지 않았다. 인터뷰를 '한 번'만 했기 때문이다.

각종 설왕설래 확산 미스터리만 증폭
최태민 망령 부활…김재규와 판박이?


출산설을 퍼뜨렸다가 구속된 면면을 보면 대개 관련한 허위사실을 반복 게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음모론은 더욱 진화해서 "박근혜의 숨겨진 아들이 연예인 A씨이고 아버지는 최태민"이라는 형태로 유포됐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정씨까지 '불륜드라마'에 소환됐다.

지난 10월 서울중앙지법은 '박 대통령이 정씨 및 최태민과 불륜관계'라는 취지의 글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 탁모씨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대통령과 정씨가 불륜관계가 아니며 최태민과도 불륜관계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사생활과 관련한 여러 주장은 진정되지 않고 꾸준히 유통 중이다. 이른바 '7시간'과 관련한 소문 따위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은 관심의 대상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침묵을 고집한 사이 풀리지 않는 의혹은 사생활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정윤회'라는 이름이 정가를 넘어 일반 대중에게까지 공공연히 퍼지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정씨를 'VIP(대통령)의 측근'으로 보고 내사를 진행했다. 이번 파문의 핵심 역시 대통령의 사생활이 아니라 '정씨가 정말로 측근이 맞느냐'에 있다.

과거와 닮은 꼴
비선다툼 격화

생년월일, 출신지는 물론 세부 경력까지 베일에 싸인 정씨가 '막후 실세'로 주목받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그가 박 대통령과 지근거리에 있었던 최태민의 사위였다는 것이고, 둘째는 정씨가 박 대통령의 정치입문에 도움을 준 전직 비서실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 최태민이 유신정권 말기 청와대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은 단순 음모론으로 치부하기에 의문점이 많다.

박근혜정권의 '정윤회 문건 파동'과 유신정권의 '최태민 비위 스캔들'은 여러모로 닮아 있다.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작성한 '최태민에 대한 수사보고서'(2007년 공개)에는 최태민이 큰 영애를 등에 업고 청와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파악한 최태민의 비리 의혹은 40여 가지에 달했다. 김 부장은 최태민과 관련한 보고서를 만들어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그런데 최고 권력자는 이를 눈감았다고 전해진다. 김 부장은 박정희 살해사건 공판 과정에서 '최태민의 권력형 비리를 '각하'가 눈감은 게 10·26의 한 원인'이라는 취지로 항소이유를 적었다. 이와 관련 김 부장의 주장이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기만술'이라는 반론이 있다.


그런데 이번 문건파동을 살피면 당시 상황과 흐름이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정보부를 공직기강비서관실로 바꾸고, 최태민 대신 정씨의 이름을 집어넣으면 퍼즐이 맞춰진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 등을 문제 삼자 최고 권력자가 이를 묵살하고 옹호하는 그림이다.

신군부가 들어서자 최태민을 겨냥한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기업들로부터 모금을 했다는 등의 의혹은 대부분 사실로 확인되지 못했다. 박 대통령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퍼스트레이디가 된 후 견제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진술로 세간의 의혹을 일축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김 부장이 당시 차지철 경호실장과 권력암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충성경쟁을 벌였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권력'에서 배제된 공직기강비서관실이 VIP의 눈에 들기 위해 과장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청와대는 관련 보고서를 '찌라시'로 규정함으로써 정씨 측 입장에 힘을 실었다. 나아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문서 유출의 배후로 지목해 궁지로 몰아넣는 실정이다.

십상시는 없는데
양천모임은 있다?

외형적으로 이번 사건의 칼자루는 두 사람이 쥐고 있다. 정씨와 조 전 비서관이다. 한쪽은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전화를 넣어 고위공직자(조 전 비서관)에게 "전화 좀 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다른 한쪽은 대통령 측근이 연루된 고급정보를 다루다가 지금은 청와대와 각을 세운 사람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최근 자체 감찰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번 사건을 조 전 비서관의 '자작극'으로 잠정 결론 냈다. 문건 작성과 유출 과정에 조 전 비서관을 필두로 한 이른바 '7인회'가 개입했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선 '양천모임(조응천·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있었다'는 식의 또 다른 음모론이 비등하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복수 언론 인터뷰를 통해 7인회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청와대의 감찰결과를 사실로 가정하면 이번 문건파동은 '박지만 라인'인 조 전 비서관과 '문고리 3인방'인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의 인사 갈등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타당하다. 앞서 조 전 비서관은 박지만 EG회장의 최측근으로 지목된 전모씨를 청와대에 배치시키려다 정 비서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박지만 라인이 정 비서관의 '약한 고리'인 정씨를 건드려 보복을 꾀했다는 주장이다.

설…설…설… 김기춘 가담설
문고리 내분설 박지만 배후설

현재 검찰 수사는 정씨보다는 '양천'을 겨냥한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 주변 인물들에 대해 구속영장(이 가운데 최모 경위 사망)을 청구한 것이 상징적이다. 정씨는 기세등등했다. 고발인이자 피고발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한 정씨는 "이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 했고, 누가 춤을 췄는지 밝혀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조사를 받기도 전에 '나는 수사결과를 알고 있다'는 식으로 얘기한 것이다.

다수 언론은 정씨의 발언에 대해 "검찰 조사를 받으러 온 민간인이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라고 논평했다. 정씨를 본 사람들은 그가 상당한 실세라는 데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정씨는 박 대통령의 당선 직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감사전화를 받은 몇 안 되는 인물로 알려졌다. 때문에 청와대 입장에서도 박 대통령과 정씨가 가까운 사이라는 '팩트'만큼은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씨가 실제 국정에 개입했는지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청와대와 검찰은 한목소리로 십상시 회동이 없었다는 쪽으로 여론을 몰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일부 여권에선 '3인방 내분설'을 언급하고 있다. 정부가 출범한 뒤로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세 비서관이 서로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소 닭 보듯 한다"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이재만 총무비서관의 경우 정씨로부터 얼마 전까지 전화를 받았고, 그 통화내용을 청와대 내부로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심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박지만도 내상
김기춘은 침묵


올 초 <시사저널>은 "정씨가 박 회장에게 미행을 붙였다"고 보도하면서 권력암투설에 무게를 실었다. 당시 정씨는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뜻밖에도 음해의 배후로 박 회장을 거론했다. 청와대의 감찰 결과에도 "조 전 비서관이 박 회장에게 유출된 문건을 회수해야 한다고 직보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장 진위가 가려지진 않겠지만 '박지만 배후설'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라왔다. 키는 박 회장의 핫라인인 조 전 비서관이 쥐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지난 12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유출에 관여한) 오모 행정관에게 문건 작성 및 유출 전반에 걸쳐 조응천이 주도했다는 걸 서명·날인하라고 계속 강요했는데 정씨도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며 "7인회(얘기)는 그걸 뒷받침하기 위한 스트럭처다. (정씨가) 청와대 애들하고 대책을 만들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씨가 청와대와 공모해 사건을 무마하려한다는 의혹이다.

이 지점에서 외관상 '허수아비'였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가담설'이 음모론 형태로 대두 중이다. 홍경식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과 가까운 관계였던 김 실장은 보고를 고의누락하면서 사건을 확대시켰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청와대가 지난 6월께 문건 유출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앞서 박 회장 측은 여러 경로로 문건 유출 사실을 청와대에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비서실은 별다른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이들이 '가만히 있었던' 이유가 비선 스캔들의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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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