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⑰ 불신과 하극상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사무라이

올해는 광복 69주년이 되는 해다. 내년이면 벌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영주가 다른 세력으로부터 살해당하면 영주만 죽는 것이 아니었다. 새로 집권한 세력들이 후환을 없앤다고 따르던 가신들도 같이 죽였다. 설사 재수가 좋아 살아남았다 해도 모든 재산과 영지는 빼앗기고 그 자신은 낭인으로 전락했으며, 그 식구들은 새로 권력을 잡은 자들의 하인이나 하녀로 살아가야 하는 비참한 인생이 되고 말았다.

사무라이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앞날이 창창하던 아들들은 머슴이나 전쟁터 짐꾼으로 싸움터에 나가 칼받이가 되어야 했고, 젊은 딸들은 새로운 지배자들의 하녀가 되거나 유곽에 나가 ‘게이샤’가 되어 웃음과 몸을 팔며 살아야 했다. 가신의 부인으로 품위를 지키며 살던 부인은, 하루아침에 종으로 전락하여 밭에 나가 막노동을 해야만 목숨을 부지하고 살 수 있는 그런 비참한 신세로 전락했다.

비참한 삶

낭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도 비참하지만, 가족들이 하루아침에 역적 집안으로 바뀌어 나락으로 떨어진 채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더욱 비참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면서, 마음속으로 재역전을 꿈꾸며 모진 삶을 애써 참으며 살아갔을 것이다. 이것이 당시 세력을 잃은 가신과 그 가족들의 참담한 모습이었다.

당시의 영주와 사무라이들은 언제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누가 언제 모반을 할지, 누구를 얼마나 믿어야 할지 모르는 긴장과 초조 속에서, 극도로 조심하며 하루하루의 삶을 연명해 갔다. 불신과 하극상 속에서 주군과 그 가신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정립되어 갔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초기 전국시대에, 영주가 영주로서의 힘을 유지하려면 지지 세력이 있어야 할 것이고, 하극상을 일으켜 새로운 강자가 되고 싶은 사무라이도 동조 세력이 있어야 반역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영주라고 해도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영주는 반대 세력들의 모반이 두려워 부하 사무라이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고, 나름대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사무라이들 역시 하극상을 계획하지 않더라도, 동조하고 협조하는 동료가 있어야 영지 내에서 입지를 보다 확고히 할 수 있는 입장이었을 것이므로 동료 사무라이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고 노력했다.

초기 일본의 전국시대 양상은 이랬다. 배반과 모반이 난무하던 초창기 전국시대가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면서 영주의 위치가 보다 확고해졌고, 영주와 사무라이들의 관계는 한층 더 상하관계로 확립되어 갔다.

무법천지의 전국시대에 유학이 널리 보급되고 학교가 대대적으로 증가하는데, 그 이유도 영주들이 영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가신들에게 정신 교육 강화 차원에서 유학을 장려하였기 때문이었다. 주종 사이에 관계가 확립되어 가는 반면, 가신과 가신 사이, 사무라이와 동료 사무라이들 사이의 관계는 약해졌다.

반대 세력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는 영주가 가신과 가신들의 사이가 두터워져 하나의 세력으로 커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주는 가신을 엄격히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가신과 가신 사이에 사적 동맹은 금지되었고, 영지의 자유로운 매매와 분할 상속이 금지되었으며, 가신과 가신 가족들 간의 결혼도 영주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영주가 영주로서 위치를 다져가면서, 영지 안에서 권한 또한 확립하여 나갔다. 특히 가신들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농지 할당과 세금 부과 등을 통하여, 그들을 통제하면서 보다 확고한 주종 관계를 확립하여 나갔다.

영주와 사무라이는 절대 주종 관계
권력투쟁 패하면 하루아침에 종으로 


영주는 가신들에게 보다 확실한 충성을 요구했고, 가신들은 그런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영지 안에서 보다 안정적인 위치를 유지하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모반이 두려운 영주는 불순한 가신은 물론, 충성심이 약한 가신들을 점차적으로 제거해 나갔다.

가신은 동료 가신들이 하루아침에 영주에게 불신을 받아 할복을 강요당하고, 그 가족들이 하인으로 전락해도, 항의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로 전락해갔다. 반대 세력의 출현을 용납하지 않는 절대 권위를 가진 영주에게 항의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이 잠재적 불순 세력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영주와 가신, 가신과 그 수하 사무라이들의 관계는 주종 관계로 보다 확고히 정립되어 갔고, 가신과 가신들 사이의 수평 관계는 소원해져 갔다. 그래서 영주와 가신은 단순한 주종 관계를 넘어 점점 맹종적인 복종 관계로 변해 갔고, 가신과 가신들 사이의 동료 의식은 약해져 갔다.

약해진 것 뿐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믿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다. 모반을 두려워하고, 불순 세력이 만들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영주 밑에서 가신의 행동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괜히 동료 가신에게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행동 한번 잘못했다가, 그 언행이 영주의 귀에 들어갔다가는 불순 세력으로 오해받아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처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목숨만 버린다면 그나마 오기를 가지고 바른말 한마디 할 수 있었겠지만, 오기를 참지 못하고 말한 그 말 한 마디 때문에 온 가족이 역적으로 몰락하는 곤경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들은 아버지와 같이 참형되어 가문은 대가 끊길 것이고, 부인과 딸은 하녀나 ‘게이샤’로 팔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사무라이 미덕으로 여기게 되는 것도 이러한 연유가 있는 것이다. 뜻하지 않은 언행으로 괜한 오해를 받았다가 자신의 목숨은 물론 가족들 목숨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가신들이 점점 더 영주에게 맹종을 하게 되면서, 가신과 가신들 사이의 신뢰와 동료 의식은 약해지고, 오직 영주를 통한 간접적인 동료 의식만이 가능해진 것이다.

영주로서 확고한 위치를 확립하고 싶어 하는 영주와, 그 영주의 가신으로서 인정을 받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 방법임을 인식하기 시작한 가신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하극상과 모반은 같은 영지 안에서 벌어지지만, 이웃한 영주끼리는 침략과 약탈이 계속되었다. 힘없는 영주는, 힘 있는 이웃 영주로부터 침략을 받아 영지를 빼앗기고 살해당하거나, 아니면 그 밑의 가신으로 충성을 맹세하면서 자신의 후계자를 볼모로 보내야 하는 수모를 당했다.

불신의 시대


작은 영지의 영주들은 보다 강한 영주들의 침략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하여 다른 영주들과 협약을 맺거나 정략결혼을 하는 등, 온갖 정략과 술수를 써 가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쳤다. 큰 영주는 그 나름대로 보다 큰 영지를 확보하여, 무법천지 속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하여 온갖 정략과 술수를 써 가며 이웃 영지를 침략했다.

이들은 적을 속이는 것도 실력이라고 생각하며, 비열한 정략과 술수를 쓰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음모는 전술이라고 여기고, 기만은 전략이라고 믿었다. 목숨을 걸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윤리 의식 따위는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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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