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조준 사자방 정국 관전포인트

수족 놔두고 머리 바로 친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사자방(4대강 공사,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와 관련한 의혹이 연일 증폭되고 있다. 사자방 비리는 지난 MB정부의 핵뇌관으로 불리며, 전직 대통령이 연루된 초대형 게이트로 확대될 조짐이다. 무려 100조원의 혈세가 증발된 과정에서 당시 권력이 어디까지 개입했는지가 초미의 관심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연말 정국 승부수로 사자방 국정조사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새누리당 일각에서 사자방 국정조사에 찬성하는 기류가 감지된다는 사실이다. 각기 다른 셈법으로 MB를 정조준하고 있는 여야. 다가올 사자방 정국이 거대한 풍랑을 예고하고 있다.


사자방 비리와 관련한 사정기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최근 검찰은 이른바 방산비리 첩보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산비리 척결을 선언하면서 검찰은 사상 최대 규모의 합수단을 구성했다.

작정한 야당
느긋한 여당

지난 18일에는 4대강 공사에 대한 수사 착수 사실이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은 한진중공업 등 7개 건설사의 담합을 적발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사 의뢰를 받아 사건을 형사6부(부장검사 서봉규)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수사가 전 정권 실세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형사6부는 정의당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고발한 해외자원외교 부실 투자와 관련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확인했다. 광물자원공사와 한국가스공사, 한국석유공사 등 공기업 3곳은 나란히 수사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검찰은 MB정부의 핵뇌관으로 불리는 사자방 비리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벌이게 됐다. 올초부터 무성했던 MB 사정설이 한층 구체화된 모습이다. '형님'인 이상득 전 의원(이하 이상득)과 '오른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하 박영준) 등이 수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경우에 따라 이명박 전 대통령(이하 MB)에 대한 소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 상황이다.

'100조 증발' 4대강·자원·방산 수사 착수
여야 국조 초읽기…MB 대책마련 고심

새정치민주연합을 포함한 야권은 지난 5일부터 사자방 국정조사 성사를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정부의 예산안 편성을 비판하면서 사자방 비리로 사라진 100조원의 행방을 묻는다는 투트랙 전략이다.


야권은 이명박·박근혜정부를 동시에 겨냥한 사자방 국정조사로 정국 주도권을 되찾아 올 심산이다. 대선 후보를 지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비상대책위원은 "현 정권이 사자방 비리를 비호하려든다면 우리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비리 공범관계로 보고 규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위원 등 야권은 사자방 비리가 권력 개입 없이 일어날 수 없는 '권력형 비리'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여권이다. 한참 뜸을 들이더니 사자방 국정조사에 일부 찬성하는 의원들이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이다. 이 위원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작정한 듯 사자방 국정조사 문제를 "발전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선 "24조원의 천문학적 재원이 투입됐는데 우리 생태 환경과 관련해 어마어마한 문제가 있고 해서 과연 이 사업이 지금 어떤 단계에 있고 어떤 결과가 나와 있는지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일단 선을 그었다. 김 대표는 이 위원의 발언을 다 듣고 난 뒤 "오늘 발언 중 국정조사 관련 발언은 개인 의견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래도 부족했는지 "당론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현장에서 감지된 김 대표의 웃음에는 뼈가 있었다. 실제로 김 대표는 국정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못박지 않았다. 이 같은 기류는 '대통령의 복심'인 이정현 최고위원의 발언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이 위원은 사자방 국정조사에 찬성하면서 "있는 그대로 실상이 알려져야만 그다음에 무엇이 잘못됐는가를 찾아 시스템 개혁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지난해 7월 당시 감사원의 4대강 사업 감사결과 보고를 인용해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실명 브리핑했다. 친이계 의원들은 강력 반발했다. 정치권 안팎에서 MB에 대한 사정설이 나돌기 시작한 것은 이즈음이다.

사실 지난해부터 MB 주변을 겨냥한 수사는 계속 진행돼왔다. 대표적인 것은 원전비리 수사다. 이미 파이시티 사건 등으로 복역 중이던 박영준은 만기 출소를 하루 앞두고 원전비리 사건에 연루돼 항소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징역 1년2개월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다. 이밖에도 CJ·효성 등 '친MB기업'으로 낙인찍힌 재벌들은 1년 넘게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모든 수사에서 MB의 이름은 직접 언급되지 않았다. 친형 이상득이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된 것 외에는 정권 차원의 의혹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수사가 있긴 했지만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이와 관련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과 MB의 대선 전 밀약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MB의 안위를 박 대통령이 챙기기로 했다는 주장은 말 그대로 확인되지 않은 낭설이라는 반박이 여권에서 나왔다. 박 대통령과 MB는 결이 다른 권력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전·현직 두 대통령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생긴 앙금으로 서로 껄끄러운 관계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MB를 믿지 않는 박 대통령은 내각을 꾸릴 때도 친이계 인사들을 대거 배제했다.

지난해 기자와 만났던 청와대 지근의 관계자는 "박근혜정부가 가장 골머리를 썩는 부분이 바로 자원외교"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명박정부가 에너지사업을 한다며 해외로 돈을 퍼준 것을 박 대통령도 보고 받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VIP가 해외로 자주 나가는 것도 원전 폐처리와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워밍업
이제부터 본게임

그러나 당시 청와대는 수사를 주저했다고 전해진다. 보고체계를 일부 흐리는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전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후 세월호 참사가 터졌고, 박근혜정부에 대한 국정지지율은 하락했다. 정국을 반전시킬 카드로 MB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이 여권에서부터 검토됐다. 의혹이 하나둘 벗겨지면서 청와대도 마음을 바꿨다. 4대강 공사, 자원외교, 방위산업에 대한 수사를 동시에 착수하기로 한 것이다.

때문에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도 국정조사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모양새다. 정치적 파급력이 큰 MB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는 몰라도 최소 박영준에서 이상득까지는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말이 새어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출소한 박영준은 입을 열 경우 '여러 사람'이 다칠 수 있어 옭아놓는 편이 좋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외견상 사자방 국정조사의 칼끝은 MB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숨은 타깃이 있다. 바로 최경환 경제부총리다. 최 부총리는 지난 몇 달간 청와대의 외곽권력으로 급부상했다. '초이노믹스'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례적이다. 한 나라의 경제정책을 정의할 때 경제 관료의 이니셜을 딴 사례는 극히 드물다. 최 부총리가 인사에 개입하는 등 월권을 저질렀다는 주장도 있었다. 2인자를 두지 않는 박 대통령의 통치스타일과 배치된 장면이 여럿 목격됐다.

최 부총리는 이명박정부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명박정부에서 지식경제부는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총괄했다. 야권은 자원외교 비리 의혹에 연루된 MB, 이상득, 박영준, 윤상직 전 지식경제부 자원개발정책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최 부총리를 묶어 '5적'으로 명명했다. 최 부총리는 야권의 공세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정권의 칼 끝 어디로 향할까
이상득-박영준 판도라 열릴까

지난 4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최 부총리는 '국부 유출 책임자들이 박근혜정부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야당의 질문에 "개인이 책임질 일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1조9000여억원의 손실을 입은 캐나다 하베스트사 인수 관여 의혹에 대해서는 "인수 협상 당시 석유공사 사장에게 잘 판단하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반박했다.

11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도 최 부총리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노무현정부의 투자 실패를 트집 잡아 의원보다 높은 목소리로 답변하는 등 강공으로 맞섰다. 또 "당시 야당에서도 자원개발에 찬성했기 때문에 예산이 통과된 것 아니냐"며 "지나치게 정치공방으로 몰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MB가 사인한 자외원교 협약에 최 부총리가 3차례나 동행했다"며 공격의 고삐를 놓치지 않고 있다.

최 부총리에 대한 야권의 압박에 일부 여권은 쾌재를 부르는 눈치다. 여당 지도부의 소극적 대응은 사자방 쟁점화가 최 부총리의 독주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을 깔고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 19일 친박 대표주자인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과 회동하는 등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


최근 복수언론은 "지난 12일 MB가 경기도 하남시에서 이동관 전 홍보수석, 맹형규 전 정무수석 등 청와대 인사 15명과 모여 골프를 치고 식사를 함께 했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 MB는 사자방 국정조사에 관한 대응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특히 MB는 "나라 경제가 어려운데 자원외교를 정쟁으로 삼아 안타깝다"며 "(자원외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MB와 이 전 수석, 맹 전 수석 등은 연말 발간예정인 '이명박 회고록' 집필에 매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연이은 사자방 공세에 회고록으로 답하는 모양인 셈이다.

MB 자서전
GH 압박용?

이는 자신을 노리고 있는 야권은 물론 사실상 박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근혜정부의 권력 창출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MB는 자서전 카드로 청와대와의 협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MB는 자신의 생일이자 김윤옥 여사와의 결혼기념일 및 대통령 당선일인 다음달 19일 이른바 대선 공신들과 대규모 만찬을 벌일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전·현직 의원 및 정부관료, 지자치단체장들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가올 MB의 만찬은 총대 맬 사람을 지목하는 '최후의 만찬'이 될 것인지, 아니면 '승리의 만찬'이 될 것인지. 사자방 정국이 본격화되고 있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방산비리 잔혹사

방산비리 사건은 1980년대 들어 우후죽순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무기 도입 패턴이 해외구매 쪽으로 바뀌자 해외 군수업체를 중심으로 권력층 로비가 치열하게 전개됐다.

청와대와 국방부 고위직이 개입된 대표적인 방산 비리 사건은 율곡사업이다. 1994년 김영삼정부는 율곡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전두환, 노태우정권 당시 군 전력 현대화 사업인 율곡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국방부 장관 등은 국내 군수업체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받아 챙겼다. 청와대와 국방부 고위인사들이 개입한 권력형 비리사건이다 보니 실무 차원에서 제출된 무기 도입 방안은 정당한 이유와 설득 과정 없이 번번이 무시되고 뒤집혔다.

방산비리의 또다른 축은 로비스트다. 군 고위 인사와 국회의원 등이 로비스트를 통해 정보를 흘리고 그 대가로 뇌물이나 후원금 등을 제공받는 수법이다. 이양호 국방장관과의 염문설로 세간에 화제를 뿌렸던 린다김은 그 시절을 상징하는 로비스트다.

참여정부는 2006년 방산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방사청을 출범시켰다. 무기 구매와 군납 비리를 막고 민간 인력을 활용해 투명성과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도 방사청이 부패의 온상이 된 것은 '군피아' 때문이다. 방산업체에 취직한 예비역 장교들은 방사청에 근무하는 현역 후배 장교들과 검은 커넥션을 유지하면서 최근까지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 <석>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