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⑫일본군의 양면성

잔인하던 일본군, 투항 후엔 '스스로 길거리 청소'

올해는 광복 69주년이 되는 해다. 내년이면 벌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그렇다! 설득하는 일본군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진실과 진심을 담아 설득했기에 바로 오키나와 주민들이 그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자결을 했던 것이다. 마음과 마음이, 진실과 진실이 통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 많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자결이 설명되지 않는다.

엽기적 자살

오늘날 기록에 남아 있는 당시 오키나와 주민들의 행동을 봐도 그들이 일본군에 설득되어 미군을 야수 같은 인간으로 철석같이 믿었다는 심증을 뒷받침해 준다. 애기를 안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죽은 어머니들의 행동이 그렇고, 손녀딸을 데리고 피신하다가 미군을 만나자 손녀를 보호하겠다고 죽창으로 미군들에게 무모하게 대들다 죽은 할아버지의 행동이 그렇다.

또 딸을 데리고 동굴로 피신한 어머니가 칼로 딸의 목을 쳐 죽이고 자결한 행동 등, 여러 극단적인 행동 등을 보면 당시의 오키나와 주민들은 일본군들에 확실히 설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믿을 만한 증거로 일본 교과서를 들 수 있다. 일본 문부성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교과서에 “오키나와 주민의 집단 자결에 일본군의 강제성은 없었다”라고 고쳤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자결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이…….

따라서 수천수만의 오키나와 주민들이 일본군의 설득을 받아들여, 미군이 상륙하기도 전에 스스로 죽었다는 것은 바로 설득한 일본군 자신들도 “미군에 포로로 잡히면 처절하게 죽는다”고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진심으로 믿었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오키나와에서 일본군들은 일본 정부의 선전처럼 ‘명예로운 죽음’을 택해 옥쇄한 것이 아니라, 1)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진 일본군들은 “미군은 사람의 인육을 먹는다”는 지도부의 거짓 책동에 세뇌되어 있었던 것 같고, 2) 미군의 엄청난 화력 앞에, 그리고 수천수만의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목격한 일본군은 이미 삶을 포기하고 죽음의 공포에 질려 있었으며, 3) 이왕 죽을 거 미군에 잡혀 처참하게 죽기 싫어, 4) 마음 약한 사람들부터 하나 둘씩 자살하자 군중심리를 이기지 못하고 단체로 자살한 것이라고 믿어진다.

앞서 미군에 점령당한 섬에서 있었던 옥쇄 소식과 ‘전진훈’도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영향을 준 것은 수많은 동료들이 죽어 가는 것을 보면서 이미 삶을 포기한 정신적 공황 상태와 거기에 더해진 군지도부의 거짓 세뇌인 것으로 믿어진다.

일본은 막강한 화력을 지닌 미군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습 작전 밖에 없다고 믿고 있었다. 한밤중에 여러 방향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기습을 하면 미군을 혼란에 빠뜨리면서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기습 작전은 일본군이 청·일전쟁 이래 구사하던 ‘전가의 보도’와 같은 전술이었다. 하와이의 진주만 공격도 이 같은 기습 작전의 일환이었다.

미군은 이미 많은 일본과의 전투를 통하여 이런 전술을 파악하고 오히려 한밤 중에 자는 척하면서 일본군이 기습 공격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듯 이미 드러난 작전을 구사하는 일본군의 전술은 마치 쳐 놓은 그물 속으로 헤엄쳐 드는 물고기와 같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일본군은 기습 작전을 펼 때마다 오히려 역습을 당하면서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자초했다. 그렇다고 열등한 화력으로 전면전을 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나마 미군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기습 작전밖에 없다며, 이미 드러난 작전을 계속 반복하며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석 달 조금 안 되게 계속된 전투에서 연전연패를 하면서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었고, 또 수천수만의 동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완전히 삶을 포기하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공황 상태에서 일본 정부의 거짓 교육은 솜 속으로 빨려드는 물기같이 젖어들었던 것이다.

연전연패 속에서도 묻지마 돌진
오키나와 자결과 필리핀 투항


세 번째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싸운 일본군들에게서는 옥쇄가 없었다는 점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싸운 일본군은 태평양전쟁에서 미군과 싸웠던 일본군과 달리, 전쟁에서 패했어도 자살이나 단체로 자결을 하지 않고 순순히 항복하고 포로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떠한 문건에서도 “중국 및 동남아시아 전선에서 전투했던 일본군들이 포로로 잡히는 치욕이 싫어 단체로 옥쇄했다”는 기록은 보지 못했다. 뒤에 얘기할 ‘30년을 나 홀로 투쟁한 일본군’의 내용을 미리 잠깐 살펴보면, 전쟁이 끝났는지도 모르고 30년 동안 필리핀 정글에 숨어 살던 ‘오노다 히로’와 그 일행은, 자기 부대가 패하자 처음에는 4명이 산속 밀림으로 피신을 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 중 1명이 나머지 3명의 반대를 무릅쓰고 투항한다. 이 투항한 1명이 만일 당시 필리핀에 있던 미군과 필리핀의 연합군들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다고 생각했었다면 결코 나머지 3명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림을 나와 투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노다 히로’의 직속상관이었던 ‘타니구치’ 소령 역시 ‘오노다 히로’를 찾을 당시 도쿄에서 책 판매상을 하고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역시 순순히 투항하여 포로가 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귀환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필리핀 전선을 지휘하던 사령관은 육군중장 ‘무토 아키라(武藤 章)’였다. 이 ‘무토 아키라’ 역시 항복을 하고 포로로 잡혀 있다가,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이송되어 전범으로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이상의 예로 보아 필리핀 전선에 있던 오노다 히로가 속했던 부대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속했던 부대가 연합군에 패한 후에도 옥쇄를 하지 않고, 투항하여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를 지낸 이광요 총리의 자서전(원제<The Singapore Story>)을 보면 ‘싱가포르를 점령하고 있을 땐 그렇게 난폭하고 잔인하던 일본군들이 일단 전세가 기울어 패색이 짙어지자 뜻밖에 쉽게 투항했고, 또 포로가 된 후로는 고분고분하였고, 수용소 생활도 질서 있게 하면서 스스로 나서서 길거리 청소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싱가포르에서 전쟁을 하던 부대는 제 7방면 군으로 사령관은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 征四郎)’였다.


30년 숨어살아

영국군을 상대했던 이 부대는 전세가 기울자 순순히 항복했으며, ‘이타가키 세이시로’를 비롯한 군 수뇌부 전원이 영국군에 붙잡혀 현지 감옥에 갇혔다가 전쟁이 끝난 후 일본으로 넘겨져 전범으로 재판을 받았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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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