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휘감은 '반기문 대권음모론' 막전막후

"대권 줄게 우리(?) 꼭두각시 해다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반기문 UN사무총장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세력이 있다?" 요즘 정치권에서 가장 핫한 인물은 누가 뭐래도 반기문 총장이다. 한 여론조사전문기관에서 장외주자인 반 총장을 포함해 여론조사를 실시해봤더니 반 총장이 단숨에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기 때문이다. 반 총장의 등장에 따라 대권지형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여야 모두 반 총장의 등장이 차기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계산해보느라 바쁜 모습이다. 반 총장의 깜짝 등장 이면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반기문 UN사무총장이 난데없이 정치권 이슈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한 여론조사전문기관에서 장외주자인 반 총장을 후보로 넣어 여론조사를 실시해봤더니 반 총장이 단숨에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지난 27일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도 반 총장의 거취 문제가 주요쟁점으로 논의됐을 정도다.

출마할까?
옹립할까?

이날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김성곤 의원은 윤병세 외교부장관에게 “반 총장이 차기 대선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데… (중략) 장관께서는 반 총장이 퇴임 이후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반 총장이 차기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자 이를 미리 견제하기 위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외교현안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질문이었지만 대다수 언론들은 이날 김 의원의 질문과 윤 장관의 답변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이처럼 국내 정치권과 언론들은 반 총장의 대선 출마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정작 반 총장은 차기 대권에 관심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기준 외통위 위원장이 해외 국정감사 도중 반 총장을 만나 차기 대권도전 여부를 물었더니 “몸을 정치 반, 외교 반에 걸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거부의사를 분명히 전달했다는 것이다.

반기문 대세론 띄우는 세력은 누구?
친박계 모여 노골적인 반기문 띄우기


사실 반 총장 영입설은 지난 이명박정부 시절에도 한 차례 불거진 적이 있으나 반 총장의 완곡한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반 총장이 대권 출마거부 의사를 분명히 전달한 만큼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반기문 대세론’은 정치권에서 더욱 확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달 29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직후 친박 주류 의원들이 세미나를 열고 반 총장 띄우기에 나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세미나의 주제는 ‘2017년 차기 대선 지지도 판세’였고 부제는 ‘반기문 사무총장 출마 가능성 등 여러 가지 변수를 중심으로’였다. 반 총장이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친박 주류 의원들이 반 총장의 출마 가능성을 놓고 공개 세미나까지 연 것이다. 내용은 노골적인 ‘반기문 띄우기’였다.

발제를 맡은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가 “여론조사를 보면 반 총장을 제외하면 사실 정권 연장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운을 띄우자 국회 외통위원장을 지낸 안홍준 의원은 “당내 인사로 정권 창출이 어렵다면 대안으로 반 총장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기문 열풍
언제까지?

정치권 인사들은 반 총장이 현재는 대선 불출마 입장이 확고하지만 대선이 치러지는 3년 뒤의 정치적 상황이나 국민 여론 등에 따라 결심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정치권과는 거리가 먼 반 총장이 갑자기 대세로 떠오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무서운 ‘대권 경쟁력’ 때문이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반 총장은 지역과 연령을 넘나들며 폭넓은 지지를 얻은 것이 눈에 띈다. 양극인 호남과 영남에서 모두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20대와 60대 지지율에서도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여야의 차기 대선 후보들이 특정 지역과 특정 세대 쏠림 현상을 보이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게다가 반 총장이 대선 캐스팅보드로 불리는 충청권 출신이라는 점도 큰 강점으로 꼽힌다. 최근 정치권에 불어 닥친 개헌론과 대입해보면 반 총장의 경쟁률은 더 높아진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혁신하기 위해 최근 정치권에선 이원집정부제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원집정부제는 외교와 국방 같은 외치의 경우는 대통령이, 나머지 내치는 국회에서 선출하는 총리가 담당한다는 게 핵심이다. 그렇게 된다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외교부장관 등을 거친 반 총장이 가장 적임자일 수 있다.

이미 전례도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쿠르트 발트하임은 1972년부터 10년 동안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뒤 1986년 본국으로 돌아가 대통령이 됐다. 오스트리아는 이원집정부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다.

물론 정치권 일각에선 반 총장의 높은 지지율이 거품일 뿐이라며 평가절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반 총장은 국제무대에서는 베테랑이고 훌륭한 분이지만 정치는 정치 나름대로의 싸움을 하는 방법이 있고 생존하는 방법이 있다”며 반 총장이 막상 정치권에 입문해 본격적인 검증을 받게 되면 안철수 의원의 사례처럼 반짝 인기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높은 인지도와 지역과 연령을 넘나드는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반 총장을 보며 여야 모두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 총장의 깜짝 등장과 관련해 정치권에선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에 반 총장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친박 교감설’이다. 아직 다음 대선이 3년 넘게 남아 있지만 친박(친박근혜) 진영에선 마땅한 차기주자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권 내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들은 모두 비박계(비박근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나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 정몽준 전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친박계는 여전히 새누리당 내 최대계파지만 마땅한 차기 대권주자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차기주자를 중심으로 뭉치고 있는 비박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래권력으로 힘이 쏠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핵심친박이 아닌 범친박 진영에선 벌써부터 계파 갈아타기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었다. 그러니 유력 차기 대권주자를 하루빨리 내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만약 친박진영이 와해되고 나면 박 대통령은 당에 대한 장악력을 상실하게 되고 이는 곧 조기 레임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친박계가 비박계를 견제하기 위해 반 총장을 차기 대선후보로 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특정 후보를 옹립하려했던 실제 사례도 이미 있었다.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는 친박계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김황식 전 총리를 대항마로 내세우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청와대와 친박계는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얼마 후 김 전 총리는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 친박계 인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당시 김 전 총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박근혜정부 성공을 위해서 소위 친박계 인사들이 저를 많이 돕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기도 했다.

이와 비슷하게 지금은 친박 진영이나 반 총장 모두 사전교감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양측의 교감이 오고가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친박 교감설
양측은 부인

새누리당에서는 친박계에 속하지 않은 인사들 사이에서도 반 총장 영입의 필요성이 언급되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40%를 넘어서는데 새누리당 대권주자들의 지지율은 좀처럼 10% 초반대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는 개인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뜻”이라며 “물론 본격적인 선거가 시작되고 경선을 통해 후보가 확정되고 나면 지지율이 크게 오르긴 하겠지만 (만약 반 총장이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준다면) 반기문이라는 확실한 카드를 두고 굳이 도박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 내에 전반적으로 반 총장의 옹립을 반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최근엔 전혀 새로운 주장도 제기된다. 반기문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쪽이 오히려 김무성 대표 쪽이라는 주장이다. 김 대표가 방중 기간 일반적인 이원집정부제가 아닌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언급했는데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는 총리의 권한이 대통령보다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원집정제 개헌하고 총리 노린다?
반기문에 가려지는 여권주자 존재감


따라서 김 대표가 대통령이 아닌 이원집정부제하에서의 강력한 총리를 원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누가 봐도 차기 대권 행보를 걷고 있는 김 대표가 여러 차례 대권에 불출마할 뜻을 밝힌 것도 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 영입 파동의 주인공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이와 관련해 “외교 대통령으로 반 총장을 영입하고 그밖에 고만고만한 당내 보스들이 총리, 부총리를 번갈아 하면 된다, 이런 생각을 할 가능성이 다분히 있다고 본다”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여당 내에서, 제가 정확히 알 수 없겠지만, 상당수 사람들이 이대로 가서는 다음번 선거에 단독적으로 대통령 당선이 불가능한 게 아니냐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반기문 대세론을 물밑에서 띄우는 것이 야권이라는 주장도 있다. 반기문 대세론을 띄움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좀처럼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있는 여권 대권주자들의 존재감을 더욱 약화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대권 의지 있나?
불출마 가능성도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반 총장은 정말로 대권에 대한 욕심이 없는 인물”이라며 “반기문 대세론만 띄워놓고 정작 반 총장이 대권에 출마하지 않으면 야권 주자들이 더 유리해진다”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 일각에서는 “반 총장은 노무현정권에서 외교부장관을 지낸 참여정부 인사인데 대권에 나서더라도 섣불리 새누리당 후보로 나오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반기문 대세론을 띄운다 해도 불리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물밑에서 반기문 대세론을 띄우고 있는 세력의 실체는 무엇일까? 장외주자인 반 총장은 현실정치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반 총장이 아무리 대권출마 가능성에 대해 손사래를 친다 하더라도 당분간 대한민국 정치권은 반 총장의 행보에 주목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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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