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발 에볼라 공포 소문과 진실

1명만 감염돼도 나라 풍비박산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에볼라바이러스에 대한 감염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에볼라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는 아프리카로 국내 의료진을 파견하기로 결정하면서 실체 없는 괴담까지 덧붙여진 모양이다. 치사율이 50%를 넘나드는 에볼라바이러스. 만약 국내 감염자가 생긴다면 박근혜정부는 지난 '광우병 정국'에 맞먹는 저항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유령이 떠돌고 있다. 에볼라바이러스(이하 에볼라)라는 유령은 한반도 전역에 전에 없던 공포를 확산 중이다. 지난 17일 박근혜 대통령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 참석해 "여러 나라로 확산되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 대응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 데 이어 보건 인력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보건 인력'은 민간차원의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을 포괄했다.

갑자기 파견

에볼라가 유행하고 있는 아프리카에 '정부 이름'으로 '의료 인력(민간 포함)'을 파견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파장을 불러왔다. 관련 보도 직후 여론의 반응은 극명히 엇갈렸다. 한국질병관리본부는 에볼라에 대해 "감염 시 22∼90%의 높은 치사율을 보이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라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에볼라는 1976년 아프리카 콩고에서 최초 확인됐다. 감염자는 602명, 사망자는 431명이었다. 생존율은 28.4%로 낮았다. 이후 1995년 콩고에서 또다시 에볼라가 창궐했다. 감염자는 315명, 사망자는 254명이었다. 생존율은 19.4%로 환자 10명 중 8명이 숨지는 '죽음의 병'이었다.

2000년대 들어 에볼라 감염 생존율은 꽤 증가했다. 2000년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발생한 에볼라는 425명을 감염시켰고, 이 중 224명이 숨졌다. 생존율은 47.3%였다. 2007년 우간다와 콩고에서 발생한 에볼라는 413명을 감염시켰고, 이 중 224명이 숨졌다. 생존율은 45.8%로 7년 전과 비교해 소폭 하향됐다.


이렇듯 에볼라 감염자의 생존 가능성은 일부 선입견과 달리 높아진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감염자 2명 중 1명은 여전히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2014년 현재(지난 14일 기준) WHO가 집계한 에볼라 환자(확진·추정·의심 모두 포함)는 모두 9216명, 이 가운데 사망자는 4555명이었다.

에볼라는 치료 백신이나 항바이러스제가 없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증상은 감기와 비슷하지만 수일 내에 고열, 두통, 근육통, 설사, 딸꾹질 등의 증상이 생기고, 심한 경우 눈과 입에서 출혈을 동반한다. 증상 발생 후 7∼10일 이내에 간부전, 신부전, 중추신경계 손상, 실명, 쇼크, 범발성 혈관 내 응고병증(DIC)에 빠져 다발성 장기부전 등에 의해 사망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에볼라는 자연 숙주(감염원)나 전파 경로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아 감염 예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쥐 또는 포유류가 숙주로 추정되고 있지만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은 아니다.

이처럼 정체 미상의 숙주로부터 인간이 에볼라에 감염된 사례는 아프리카에서만 보고되고 있다. WHO는 감염자의 혈액이나 분비물(침 혹은 땀 등), 정액 등에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한 전염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주로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 감염자가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감염자와 신체적 접촉이 있는 어느 누구든 에볼라에 감염될 수 있다. 단 공기 중 전파에 의한 감염 사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국질병관리본부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에볼라 환자 보호자(의료진 등)의 30%가 감염됐지만 가정생활 중 접촉한 사람 대부분이 감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덧붙였다.

WHO는 에볼라 유행 기간 동안 감염 위험이 가장 높은 후보군으로 의료진을 꼽았다. 환자가 썼던 린넨(환자복, 침구류 등)에 의해서도 에볼라는 감염될 수 있다. 이번 정부의 의료진 파견을 놓고 많은 국민이 우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이렇다. 아프리카로 파견된 의료진 A는 에볼라에 감염된 채 귀국한다. 그러나 우리 보건당국은 A의 감염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귀가 조치한다. 잠복해 있던 에볼라는 여러 증상과 함께 A의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된다.


에볼라의 잠복기는 최소 2일에서 최대 21일까지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우리 보건당국은 에볼라 유행지를 거쳐 입국한 사람 중 고열 등 이상증세를 보이는 의심 환자군을 특정 기간 격리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국내 의료진에게도 에볼라가 전파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로 남는다.

정부 아프리카에 국내 의료진 파견 결정
전염 우려 전 세계로 확산…위험한 선택?

정부는 지난 21일 외교부·복지부·국방부 국장급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의료진 파견을 최종 결정했다. 파견 예정일은 11월 말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민간 의사 10명, 군 의료인력 10명 등 20명 수준의 의료진을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문 장관은 "에볼라가 전 세계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적 투자"라며 '국제공조' 차원에서 파견을 미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에볼라 진료를 경험한 적 없는 우리 의료진이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으로 가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 차출 대상으로 우선 검토되고 있는 국립중앙의료원 소속 직원 4명이 지난 22일 한꺼번에 사표를 제출한 것은 국내 의료진 역시 에볼라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징후로 해석됐다.

이들은 지난 8일 시에라리온에서 입국한 생후 17개월의 남자아이를 치료해온 것으로 보도됐다. 입국 당시 아이는 38도가 넘는 고열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다행히 보건복지부는 이 아이에게서 에볼라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알렸다. 하지만 4명의 간호사는 의심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의료기관이자 에볼라 지정 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 9월29일부터 에볼라 TF팀(위원장 이종복 진료부원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에 에볼라 의심환자가 발생할 경우 환자 격리 및 진료를 떠맡는다. 의료진이 느끼는 공포가 상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22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사협회는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현행 D등급의 보호장비를 C등급으로 올리고 보호 장비 탈의교육 등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무작정 파견했다가는 국가적인 재앙에 직면할 것이란 우려였다.

목숨 건 진료

질병관리본부가 이달 발표한 에볼라 피해현황에는 "최근 감염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하고 있다"는 분석이 포함돼 있다. 라이베리아에선 2∼3주마다 감염자가 2배씩 늘고 있다.

1970년대 박 대통령의 아버지는 독일과 베트남으로 간호사와 군의관을 각각 파견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국익을 우선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웠다. 이번 아프리카 파견 결정에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건 일부 의료계의 지나친 선입견일까.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에볼라 백신' 상황은?

WHO가 내년 1월부터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백신 접종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파델라 차이브 WHO 대변인은 "내년 1월까지 백신 2만개를 생산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WHO 측은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성이 검증되면 내년 초부터 아프리카에 백신을 투입할 예정이다.

재 혈액 제재, 치료제, 백신 등 3개 분야에서 연구가 진행 중이다. 이날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제약사 존슨앤드존슨(J&J)과 영국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에볼라 백신 생산을 위한 협력을 논의 중이다. 아울러 유럽연합(EU)은 백신 개발 지원을 위해 2억유로(한화 약 2640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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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