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카카오 vs 검찰 전면전 막후

'사찰 힘겨루기' 국민은 누구 편?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과 관련한 의혹이 사찰정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장외에선 인터넷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을 공식화한 검찰과 감청영장을 불응한 다음카카오 간에 힘겨루기가 진행 중이다. '내가 나눈 대화가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이른바 '카카오톡 엑소더스(탈출)' 현상으로 가시화됐다. 검찰과 다음카카오는 한 목소리로 "사찰은 있을 수 없다"고 항변 중이다. 그러나 이를 눈감고 믿기엔 수상한 구석이 너무 많다.

지난해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충격적인 감청 사실을 폭로했다. 세계 각국에 있는 민간인의 휴대전화나 이메일 등 통신내용은 미국 정부에 의해 무단 감청되고 있었다.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내 서버를 두고 있는 IT회사의 광범위한 정보들은 모두가 감청 대상이 됐다. 국가 권력은 임의로 세계 시민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정부가 당신의
사생활 엿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국가권력에 의한 불법 감청 의혹이 불거졌다. 의혹의 핵심은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카카오톡에 대한 실시간 검열 여부였다. 검열의 주체는 검찰과 국정원 등 이른바 권력기관으로 대변되는 정부였다.

지난달 18일 대검찰청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같은 공개된 인터넷 공간을 상시 모니터링(검열)하겠다고 밝혔다. "허위사실이 유포됐을 경우 수사에 착수하겠다"고도 했다. 같은달 25일 서울중앙지검은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팀'까지 구성했다.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과 관계된 의혹이 제기된 것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됐다.

검찰은 당시 모니터링 대상에 카카오톡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불과 5일 뒤인 30일 노동당 정진우 부대표는 검·경으로부터 카카오톡 대화를 수색당한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이후 사이버 실시간 검열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커지면서 카카오톡 사용자들의 탈퇴 행렬이 이어졌다.


카카오톡을 관리하는 다음카카오는 이달 1일 "어떤 서비스도 국가기관의 정당한 법 집행을 따라야 한다고 본다" 혹은 "검찰이 부르는데 안 갈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으로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다음카카오가 경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기관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메시지 내용을 분류해서 전달했다는 보도까지 이어졌다. 인터넷에선 '사이버 망명'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고, 카카오톡의 대안으로 부상한 독일 메신저 텔레그램 이용자 수는 1주일 사이 100만명이나 증가했다. 마침내 다음카카오가 입장을 바꿨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는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폭탄선언을 했다. 수사기관의 카카오톡 감청영장에 불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문제가 됐던 대화내용 서버 저장 기간도 최대 3일로 축소해 정보유출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대외적으로 다음카카오는 지난 7일부터 수사기관의 감청영장 추가 집행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의 기자회견은 IT업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거대한 파장을 불렀다. 몇몇 언론은 "초법적 발상으로 사법기관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라며 공격했다. 검찰도 발끈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법치국가에서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며 다음카카오를 비난했다.

그럼에도 다음카카오는 입장을 번복하지 않았다. 지난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국정감사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한 이 대표는 수사기관의 감청영장에 불응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이 대표는 "실시간으로 (대화내용을)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는 실시간 감청설비가 필요한데 저희는 그런 설비가 없고, 그런 설비를 갖출 의향도 없다"며 "실시간 감청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또 '감청영장 집행에 불응하겠다는 말이냐'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선 "감청영장이 들어왔을 때 1주일 단위로 대화를 모아 제공했던 방식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과거에는 감청영장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영장의 효력이 발생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를 했지만 (지금은) 그와 같은 방식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어 (협조가) 어렵게 됐다"고 답했다.

'대통령 7시간' 도화선…국가권력 감청 의혹
카카오 영장불응 선언…사법기관 압박 임박
정권의 호위무사 개인정보 노린다


덧붙여 이 대표는 감청의 근거가 되는 통신비밀보호법의 허점을 지적한 뒤 "법률을 엄격히 해석하면 감청장치를 서버에 부착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방식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이날 증언을 종합한 내용은 ▲다음카카오는 현재 설비만으로 카카오톡을 감청할 수 없고 ▲앞으로도 감청에 필요한 장비를 설치할 계획이 없으며 ▲실시간 감청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므로 ▲감청영장 집행에 협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발언은 수사당국과 힘겨루기를 하더라도 법적 문제는 없다는 자신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감청을 통해 수집하고자 하는 정보는 미래의 통신내용이지만 영장집행 과정에서 수사기관이 쥐게 되는 정보는 송·수신이 완료된 과거의 대화내용이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법률상 감청은 타인의 대화(통신)를 엿듣거나 엿보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법원은 감청할 수 있는 대상을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통신'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선통화나 공개회담과 같은 '목소리'가 들어간 대화가 주된 감청의 대상이다.

위기의 카카오
검과 힘겨루기

그러나 카카오톡은 실시간 대화(메시지)가 오가지만 이걸 엿보는 일이 쉽지 않다. 다음카카오는 실시간 감청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다음카카오는 수사기관이 영장을 들고 오면 서버에 저장된 대화내용을 모아놨다가 며칠 뒤 전달하는 방법으로 협조했다.

그런데 엄밀한 의미에서 송수신이 완료된 대화는 '실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감청이 아닌 압수수색의 대상이다. 압수수색영장은 감청영장보다 발부 조건이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다음카카오는 그동안 수사기관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협력했지만 지금부터는 '잘못된 관행'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그렇다면 다음카카오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수사기관과 공조했던 것일까. 가령 수사기관의 내사망에 오른 A씨가 있다고 해보자. 수사기관은 A씨가 범죄를 벌였다고(혹은 벌일 것이라고) 의심한 시기에 관한 통신내용을 다음카카오에 요청한다. 그 시기는 사건에 따라 미래가 될 수도 있다(예를 들면 내란음모).

요청을 받은 다음카카오는 특정된 시기 A씨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내용(송·수신 일체) 및 대화를 나눈 상대방 아이디와 전화번호 등을 수사기관에 제출한다. 여기서 문제는 범죄와 무관한 사람들의 아이디 및 전화번호까지 무차별적으로 수사기관에 제공된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문제는 다음카카오의 주장대로 실시간 감청은 불가능하지만 실시간에 근접한 감청은 지금껏 해왔고 앞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에 있다. 만약 법원이 '앞으로 한 달간 A씨가 나눈 대화를 증거로 제출하라'는 영장을 발부하면 다음카카오는 같은 기간 A씨의 대화내용을 수사기관에 제출할 수 있다.

 이는 수사기관 입장에서 채집된 대화내용을 며칠 뒤 확인할 뿐이지 실시간으로 감청했을 때와 효과가 다르지 않다. 더구나 감청영장은 피의자뿐 아니라 가족 등 주변인까지도 적용이 가능한 편의성이 있다.

국내 '포렌식' 권위자이자 IT전문가인 김인성 전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자신의 SNS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실시간에 가까운 감청이 가능하다"고 확인했다. 김 전 교수는 지난 2012년 9월 국정원이 발부받은 국가보안법 피의자 홍모씨에 대한 '통신제한조치 집행조서'를 근거로 제시하며 "국정원이 2012년 8월18일부터 9월17일까지 한 달간 홍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감청했다"고 설명했다.

조서에 따르면 국정원은 홍씨의 카카오톡 대화내용을 자신들이 제공한 보안메일로 수신했다. 이렇게 채집한 증거는 법정에 증거로 제출됐으며 홍씨가 대화한 상대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국정원 등 수사기관은 최대 2개월까지 통신제한조치를 허가받을 수 있다.


지난해 '철도 민영화 저지' 파업에 참여했던 이용석 철도노조 부산본부장은 카카오톡 로그인 기록과 실시간 IP를 '사찰'당했다. 지난 2월 경찰이 이 본부장에게 보낸 '통신자료제공 집행사실 통지서'에는 다음카카오(당시 다음커뮤니케이션즈와 카카오로 분리) 측에 경찰이 로그기록(ID·IP)과 실시간IP를 요청한 것으로 쓰여 있다. 이를 근거로 철도노조는 "사용자의 카카오톡 접속 위치가 실시간으로 추적된다"고 주장했으며, 당시 카카오는 이 본부장의 로그기록 일체를 경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외국계 IT회사 프로그래머로 일한 윤모씨는 "실시간 감청은 상황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 서버를 두고 데이터를 축적한 '싸이월드'를 예로 들면서 "이용자가 비밀방에 올려놓은 글이나 사진을 관리자가 볼 수 있었으며, 온라인에서 특정 키워드를 입력하면 알람이 울리도록 하는 등의 방법으로 감시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일반 대기업 보안 관계자들도 익히 아는 얘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찰은 최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수사하면서 유 전 회장이 은신해 있던 전남 송치재 일대 지명을 입력한 모든 사람의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위치)을 조회했다. 경찰은 유 전 회장 측과 통화한 430명 가운데 '송치재 휴게소' '송치골가든' 등의 검색어를 입력한 사용자의 위치정보를 수집했다. 이를 바꿔 말하면 '박근혜'라는 검색어를 입력한 특정인의 개인정보가 수사기관으로 제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의원은 지난 12일 정부의 인터넷 감시를 위한 패킷감청 인가 설비가 2005년 이후 무려 9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알렸다. 모두 9대였던 미래창조과학부 인가 감청설비는 2008년 이후 73대로 늘었으며, 이 가운데 71대가 인터넷 감시 설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국회 정보위원회에 통보토록 돼 있는 국정원의 감청설비는 집계되지 않은 수치다.

같은당 전병헌 의원은 다음카카오 측이 발표한 '카카오톡 정보제공 현황'이 축소됐다고 주장했다. 카카오톡은 올 상반기에만 61건의 감청을 요구 받아 90% 넘게 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신사실확인은 1044건, 압수수색영장은 2131건이었다. 여기에는 간접 제공된 회선(아이디 및 전화번호)은 포함되지 않았다.

당장 다음카카오가 수사기관의 협조를 거부함으로써 검찰은 난처한 상황이 됐다. '정권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며 발 빠른 대응을 했지만 도리어 사찰 의혹의 빌미를 준 꼴이 됐다.


"실시간 감청
 기술적 가능"

지난달 18일 대검찰청에서 열린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사범 엄단 범정부 유관기관 대책회의'에는 다음카카오가 출석을 요구받았다. 당시 다음카카오는 "실시간 모니터링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전면전을 선택한 다음카카오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언제 어떤 구실로 또 다시 검찰의 출석 요구를 받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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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