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대담> 박지원, 위기의 새정치민주연합 진단

"내가 새누리당 대표로 가겠다면 받아주겠나?"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요즘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국회의원들에게는 ‘안녕하시냐’는 가벼운 인사조차 건네기가 민망하다. 당 내부의 자중지란이 이어지면서 당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까지 폭락했고, 박영선 원내대표의 거취문제는 한때 탈당설로까지 번지면서 당은 최대위기를 맞았다. <일요시사>도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오늘은 쓴소리를 좀 하러 왔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이 끝없이 표류하고 있다. 당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 기록을 연거푸 갈아치웠고, 당대표 격이었던 박영선 원내대표가 탈당을 언급하며 당무를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는 온종일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보여준 행태는 ‘이전투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안 그래도 시원치 않았던 국회는 아예 멈춰버렸다. 뭐 하나 잘한 것 없는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의 연이은 자살골로 손쉽게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녕 난파선이 돼버린 ‘제1야당’을 구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일반 국민들은 물론, 야권의 지지자들까지도 야권을 향해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는 이때에 새정치연합의 중진이자 유력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를 <일요시사>가 만나봤다.

1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내내 박 전 원내대표의 어깨는 무거워 보였고,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은 박 전 원내대표와의 일문일답.

- 박영선 원내대표의 탈당시사로 당이 한때 발칵 뒤집혔습니다. 평소 박 원내대표와 친분이 두터우신 것으로 아는데, 박 원내대표의 탈당시사부터 당무복귀까지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 잘 아시다시피 저와 박 원내대표는 국회 내에서 ‘박남매’로 불릴 정도로 긴밀한 사이입니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6년간이나 함께했고, 같이 청문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낙마시킨 사람이 8명이나 돼 ‘청문회 8관왕’이라고 불립니다. 이번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선 국민과 당원들께 죄송했습니다. 박 원내대표가 왜 평소 본인답지 않게 저렇게 소통 없이 중대한 결정을 했을까? 개인적인 원망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 원내대표의 선당후사 정신만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비대위원장직을 사퇴하고 세월호 협상을 마무리한 후 거취를 결정하기로 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 일단 분당의 위기는 넘겼지만 정치권에선 여전히 분당의 불씨가 남아 있다고 얘기합니다. 당내 강경파와 중도온건파는 같은 당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생각이 다릅니다.
▲ 우리 새정치연합은 동교동계, 친노계, 노동계, 시민사회계, 안철수 세력 등 다양한 세력이 통합되어 한 정당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당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강경 및 중도온건 세력 간의 생각차이는 당연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당이 건강하다는 증거가 됩니다.

또 당 소속 의원들의 생각이 다양할수록 스펙트럼도 넓어지기 때문에 집권에도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역대 정계개편 및 신당창당은 선거가 임박해 일어났습니다. 아직 선거가 2년이나 남아 있는데 지금은 그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인재영입을 하기도 힘든 시기입니다. 총선 때나 대선 때는 공천이나 임명직을 바라고 사람들이 모이지만 아무런 선거도 없는 지금 신당을 창당한다고 해도 신당에 합류할 인사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 박 원내대표가 새정치연합에 완벽하게 복귀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박 원내대표가 ‘탈당하겠다’고 하자 당내 강경파 의원들이 이를 말리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출당시키자’고 했다고 합니다. 일단 복귀하긴 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개인적으로는 박 원내대표가 더 이상 당에 남아 있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탈당한다는 사람이나, 출당시키자는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감정을 앞세워 당을 파괴하려는 행동입니다. 박 원내대표는 이미 비대위원장직을 내려놨고 세월호법 협상결과에 따라 원내대표직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 이상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당의 모든 것이 정상화되는 일만 남았습니다. 박 원내대표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새정치연합의 일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새누리당 혁신행보, 우리 야당도 발상 전환해야"
"아직 선거 2년이나 남았는데 분당설 말도 안돼"

- 이번 사태를 촉발한 이상돈 비대위원장 카드에 대해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수혈도 혈액형이 같아야 한다”며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한광옥 위원장 등을 영입해 톡톡히 효과를 봤습니다. 새정치연합이 너무 폐쇄적인 것은 아닙니까?
▲ 이상돈 교수가 비대위원장이 아니고 비대위원 혹은 당대표 산하인 혁신위원장으로 오는 것은 좋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개혁과 혁신의 전문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엊그제까지 새누리당을 변론하고 오늘부터 새정치연합을 변론하는 것은 국민이 납득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치인은 내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영입을 하더라도 혈액형은 같아야 합니다. 비대위원장은 단 하루를 하더라도 당의 대표고, 당의 얼굴입니다.

새누리당의 비대위원이었던 이 교수를 우리 당의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는 것은 우리 당의 60년 정통성과 정체성을 흔드는 일입니다. 우리 당원들의 자존심 문제도 있습니다. 다른 직을 맡을 수는 있겠지만 비대위원장만큼은 안됩니다. 제가 새누리당 대표로 간다면 새누리당 사람들은 과연 용납을 하겠습니까? 한광옥 위원장도 새누리당 가서 대표를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일각에선 이상돈 카드가 새정치연합의 외연을 넓힐 좋은 카드였는데 외부인사가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 개혁에 나설 경우 기존 의원들이 기득권을 잃을 것을 두려워해 반대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 앞서 설명 드린 그런 문제점들이 있었던 것이지 기득권을 잃을 것이 두려워 이상돈 교수 영입을 반대한 것은 전혀 아닙니다.
 

-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됐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제3지대에 건전한 정당이 나오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침몰한다”며 제3지대 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 그 주장은 그 분이 학자로서 하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제가 뭐라 평가하기는 곤란합니다.  다만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정치에는 서생(書生)적 문제의식과 상인(商人)적 현실감각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양당제 체제하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양당제 체제하에서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는 양당제가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부르짖었는데 저는 진정한 국가개조를 위해서는 (제3지대 정당 창당보다는) 대통령이 제왕적 권한을 내려놓고 분권형 개헌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 원내대표 측은 탈당을 시사하면서 당 내부의 박영선 흔들기가 도를 넘었다고 반발했습니다. 그간 있었던 박 원내대표에 대한 당 내부의 비판이 ‘박영선 흔들기’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박 원내대표의 실책에 따른 당연한 비판이었다고 보십니까?
▲ 비판을 두려워하면 지도자가 아닙니다. 제가 원내대표를 두 번 해봤습니다.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의원들로부터 두들겨 맞는 재미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잘 취합해서 오히려 여당 원내대표와 협상하면서 협상카드로 사용해야 합니다. 비판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결정’과 ‘책임’ 이 두 가지밖에 없다고 합니다. 모든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을 해서 잘되면 공로를 당과 조직에 돌리고, 잘못됐을 때는 책임을 지면 됩니다.


책임을 지라는 것은 무조건 물러나라는 것이 아니라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면 된다는 뜻입니다. 이번 이상돈 파동도 박 원내대표가 결정한 일입니다. 이걸 문재인 의원도 동의했다 안 했다 진실게임을 벌여서 무얼 얻겠다는 겁니까? 그냥 책임지면 됩니다. 저는 문재인 의원도 이번에 굉장한 손해를 봤다고 봅니다. 자기가 이상돈 카드를 동의했다고 하면 되는데 자꾸 자기는 안 그랬다고 며칠간 변명을 하니까 둘 다 상처를 받았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지도자는 결정과 책임만 있으면 됩니다.

- 세월호특별법 대치정국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KBS>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0% 가까이가 장외투쟁에 반대를 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 최근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사건으로 장외투쟁의 동력이 크게 상실됐습니다. 이쯤 되면 장외투쟁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저는 먼저 박근혜 대통령에게 유감을 표시하고 싶습니다. 박 대통령께서는 유가족들과 만나서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눈물의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내 책임이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이렇게 말씀하시고 5개월이 넘도록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에서는 청와대와의 조율과정에서 늘 벽에 부딪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국무회의에서 세월호법은 끝난 것으로 정리를 해버리면 되겠습니까?

우리 새정치연합의 정체성은 다수의 잘 사는 사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어려운 약자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중정당이기 때문에 집권이 목표지만 우리 당 지지도가 10% 아래로 떨어지더라도 누군가는 그 세월호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도 그들을 버려야 하겠습니까? 세월호 유족, 새정치연합에 국민들이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세월호법 투쟁에 피로를 느끼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손을 놓아버리면 그 가족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 그렇다면 장외투쟁을 언제까지 지속할 생각이십니까?
▲ 저는 세월호특별법은 제정해야 하지만 장외투쟁은 당장이라도 접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야당의 가장 강력한 투쟁장소는 국회라고 했습니다. 제가 18대 국회 때도 ‘주국야광’하자고 했습니다. 낮에는 국회에서 싸우고 밤에는 광화문에서 싸우자는 뜻입니다. 국회를 버리면 우리 야당에게 무조건 손해입니다. 국회에 등원해야 합니다. 국정감사도, 예산심의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거 때 “나를 당선시켜주면 장외투쟁 잘 하겠습니다” 하고 당선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야당은 야당다워야 하고, 할 말은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회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국회 안에서 싸워야 합니다.

"박영선 원망도 했지만 선당후사 정신 높이 평가"
"비판여론 알지만 세월호 유가족 손 놓을 순 없어"

- 정의화 국회의장이 정기국회 의사일정을 직권으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일정 보이콧을 선언했습니다.
▲ 정의화 의장은 평의원 때부터 줄기차게 호남을 옹호해주고 야당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입니다. 심지어 정 의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모위원장까지 맡은 전력이 있습니다. 19대 국회 하반기에 법안 하나 통과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의장으로서 어찌 고민이 없겠습니까?

국회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지 정 의장이 국회법을 무시하고 직권 상정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아직도 날짜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여야 대표가 합의를 해야 하고 저는 합의가 되리라고 봅니다. 정 의장은 여야가 합의하라고 압력을 가하기 위해 그런 결정을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정 의장님을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 야당에는 ‘호기’가 될 수 있는 정부의 세금 인상안에 대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잇따른 세제 인상안 발표로 민심이 흔들리고 있는데 새정치연합이 이 문제를 집중 공략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저도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SNS에 올렸더니 가장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국민들은 우리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이 누가 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빨리 세월호법 통과시키고 국회에서 일해라, 경제 좀 살려줘라 합니다. 세월호 정국을 틈타서 정부가 사실상 증세를 하고 있습니다. 결국 서민 돈 걷어다가 부자들 도와주는 것입니다.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부자 감세만 철회해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우리 당은 현재 경제전문가인 김진표, 이용섭 이 두 분이 안 계시기 때문에(※ 지난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국회의원직 사퇴) 정부의 경제정책을 효과적으로 비판도 못하고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두 의원의 공백이 너무나 큽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두 분이 비록 원외에 있지만 당직을 맡게 해서 이런 것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담뱃값 인상은 증세가 아니라고 했지만 얼마나 웃긴 이야기입니까? 하루에 담배 1갑을 피는 흡연자가 내는 1년 세금이 9억짜리 아파트를 가진 사람이 내는 1년 재산세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런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새누리당에서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보수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고 혁신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혁신이 더 시급한 새정치연합은 정작 별다른 혁신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처럼 ‘정치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자신의 대권 경쟁자인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보수혁신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을 보고 김무성 대표가 정말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새누리당이 부러웠습니다. 우리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처럼 인물을 키우려 하지 않고 경쟁자를 자꾸 없애려고 합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 누가 뭐라 하더라도 수도권의 가장 강력한 대통령 후보였습니다.

원래 수원 영통에 출마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팔달로 보내서 낙선하게 했습니다. 안철수 전 대표, 지금도 현역 정치인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을 몰고 다니는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을 4개월 실패했다고 해서 버려야 되겠습니까? 모두 다 링 위에 올라와서 경쟁하고 협력하고 투쟁하면서 당원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국민으로부터 검증받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어야 합니다. 새누리당은 이렇게 장을 깔아주는데 우리는 장을 걷어 버리는 것을 보고 큰 실망을 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여쭙겠습니다. 차기 당대표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 대표가 되신다면 당을 혁신시킬 복안은 무엇입니까?
▲ 아직 출사표도 안 던졌습니다. 지금 당이 어려운 시기에 제가 벌써부터 당권 관련 이야기를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다만 당의 중진으로서 자중지란을 겪었던 당을 잘 수습하고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들을 잘 실천해서 당을 혁신시키는 데 일조하겠습니다.

 

<mi737@ilyosisa.co.kr>

 


<박지원 전 원내대표 프로필>

▲ 동서양행 뉴욕지사 지사장
▲ 미국 뉴욕한인회 회장
▲ 제14, 18, 19대 국회의원
▲ 제2대 문화관광부장관
▲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
▲ 민주당 원내대표
▲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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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