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유구무언 패장’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

한심한 한국축구…믿었던 국민이 바보다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 홍명보(45) 감독이 이끌었던 축구대표팀이 결국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최선을 다했다고는 하지만 부진했던 게 사실이다. 홍 감독의 박주영 선발 고집 논란은 월드컵 내내 이어졌다. 공공연한 인맥축구가 한국 축구의 성장을 가로막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 감독의 거취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브라질월드컵 결과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에 도전했던 홍명보호가 결국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4브라질월드컵 16강은커녕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1998프랑스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가장 힘 빠지는 월드컵이었다. 성적 부진에 따른 비판의 화살은 자연스레 홍명보 감독을 향했다. 홍 감독의 지도력은 물론 ‘엔트으리’로 조롱된 ‘의리축구’는 칼날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홍명보호 곤조
의리축구 참패
 
홍명보호는 벨기에전을 끝으로 브라질월드컵에서 물러났다. 마지막 경기까지 패배한 후 홍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월드컵에 나오기에는 감독이 가장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어 홍 감독은 “우리 선수들을 점수로 말하기는 좀 어렵다. 다만 가지고 있는 부분에서 약간의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그 가운데 우리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저에 대해 제가 평가하기는 어렵다.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가장 부족했던 거다”라고 말하면서 감독직 사퇴에 대해서는 “알아서 잘 판단할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홍 감독은 또 “앞으로 한국 축구는 더 발전해야 한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영표 해설위원은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닌 증명하는 자리”라고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이번 월드컵대표팀은 그 어느 때보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선수 선발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독의 선발 원칙부터 깨졌던 게 문제였다. 지난해 6월 A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홍 감독은 “소속팀의 활약을 근거로 국가대표를 선발하겠다”라고 천명했다. “홍명보의 아이들도, 박지성도 무임승차는 없다”라며 자신의 선발 원칙을 강조했다.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선수라면 태극마크를 달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었다. 그러나 홍 감독은 “지금 경기력과 1년 후 경기력을 모두 체크해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그 소신을 끝까지 지키지 않았다. 말과 행동이 달랐던 것이다.
 
부상을 당하거나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한 박주영(아스날)을 비롯해 윤석영(QPR), 김창수(가시와 레이솔), 지동원(도르트문트), 박종우(광저우 부리), 김진수(호펜하임) 등이 홍명보 감독의 최종 선택을 받았다.
 
K리그 클래식에서 펄펄 난 이명주(알 아인)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박주호(마인츠)가 제외되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배우 김보성의 CF 광고를 빗대어 홍명보 감독의 ‘엔트으리’라는 패러디가 봇물처럼 마구 터져나왔다.
 
선수 선발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지만 1년여간 홍명보 감독이 걸어온 길은 ‘약속’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원칙을 깼다”라며 정면 돌파를 택했지만 그의 ‘의리축구’는 결과적으로 크게 실패했다. “난 항상 선수들을 믿는다”라고 말했는데, 역설적으로 선수들은 그의 믿음에 부응하지 못했다. 경기 감각이 떨어진 이들은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펼치면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무릎 부상 치료 후 봉와직염에 걸린 박주영은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코치와 함께 특별 관리에 들어갔으나 60분 출전이 한계였다. 홍명보호의 원톱은 러시아전과 알제리전에서 후반 15분 전후로 매번 그라운드 밖으로 나갔다. 박주영의 부진은 홍명보의 의리축구 논란에 더욱 불씨를 키웠다.
 
8강 꿈 안고 브라질 떠났지만…
1무2패 초라한 성적표 ‘침몰’
 
다른 선수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경기력이 떨어졌다. 손흥민을 제외하곤 특출나게 눈에 띄는 선수가 없었다. 홍명보 감독의 판단이 옳았다는 반전을 기대한 이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브라질월드컵 최종 명단 발표 이후 홍명보 감독의 베스트11은 변화가 없었다.
 
물은 계속 고여 있었다. 주전을 결정하고 조직력을 강화하는 것도 맞지만 지나치게 변화가 없었다. 그저 이름값에 치우친 모습이었다.
 
경기력이나 컨디션은 후순위였다. 1골 1도움을 올린 이근호(상주)는 조커로 국한됐다. 출전시간도 30분 내외였다. 김신욱(울산)도 제공권 강화에 맞춘 카드로만 쓰였다. 이청용(볼튼), 구자철(마인츠)은 컨디션이 분명 좋지 않았다.
 
결과가 전부는 아니지만, 브라질월드컵 3경기는 분명 실망스러웠다. 홍명보호는 브라질월드컵을 통해 한국축구가 아직 세계축구의 흐름에서 매우 뒤처져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사실 성적 부진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의 공통점이었다. 그렇지만 한국이 최고의 전력을 갖추고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했느냐에 대한 논란은 쉽게 식지 않을 전망이다.

인맥축구의
처참한 결과
 
앞서 지난달 18일 홍명보호는 브라질 쿠이아바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H조 첫 경기를 치뤘다. 결과는 1-1 무승부. 그나마 박주영과 교체투입 된 이근호가 강력한 슛으로 선제골을 터트려 무사히 경기를 마감할 수 있었다. 행운이 따랐지만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한국대표팀의 첫 경기 승리 공식이 22년만에 깨졌다.
 
아쉬운 무승부가 나온 건 불안한 수비와 골 결정력 때문이었다.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0-4로 대패한 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손흥민이 전반전에 러시아의 수비를 교란시키고 빈틈을 만들어 한국에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반면 박주영은 손흥민이 매우 좋은 두 번의 찬스를 줬지만 모두 놓쳐버리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전 경기력은 4:6로 러시아가 이겼다는 평가가 많다. 일본 스포츠전문매체인 <닛칸스포츠>는 “한국이 선제골을 넣었지만 러시아에 따라잡혔다”고 전했다.
 
브라질월드컵 BBC 해설을 맡은 마틴 키언은 “아스널에 박주영이라는 선수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박주영은 지난 시즌 아스널에서 단 11분 뛰었다. 그래도 월드컵에서 뛰다니 행운이 가득한 선수”라고 혹평했다.
 
아쉽게 승리는 놓쳤지만 최소한의 목표로 삼았던 승점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대표팀은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첫 경기 이전까지 비공개 훈련으로 일관했던 홍 감독도 훈련장을 모두 공개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홍 감독은 경기 직후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줬다. 집중력을 잃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고맙다”며 “비록 승리하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만족한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준비한 대로 선수들이 잘 해줬다. 전체적으로 조직력이 좋았다”고 했다.
 
앞선 가나와의 평가전 때문이었을까. 러시아전 무승부는 대표팀을 감싸던 무거운 공기를 걷어냈다. 결연함을 넘어 어둡기까지 했던 태극호는 순항하는 듯 보였다. 자연스레 16강 진출의 희망도 품게됐다. 홍 감독이 추구하는 ‘원팀’으로 더욱 결속력이 강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첫 경기 러시아전을 아쉽게 1무로 마무리하면서 알제리전 승리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알제리를 꺾지 못하면 마지막 3차전인 벨기에전에 부담을 갖게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승리해야만 했다.
 
하지만 홍 감독은 경기 전 “좋은 경기를 하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지휘관으로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동기부여를 일으키기 위해 승리하겠다는 말을 할 수도 있었지만, 홍 감독은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추측컨대, 승리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러시아 비겨 희망 보이다
알제리·벨기에 졸전 참패
 
홍명보호는 지난달 23일 포르투알레그리의 베이라히우 주경기장에서 열린 알제리와의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무려 네 골을 내주고 두 골을 쫓아갔지만 2-4로 완패했다. 예고된 참사였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골키퍼 정성룡의 부진과 수비진의 붕괴로 알제리에 4골을 허용하는 참사를 불러왔다.
 
한국의 오른쪽 측면이 무너지면서 상대 공격수와 골키퍼가 일대일로 맞서는 상황이 두 차례나 연출됐다. 홍 감독이 아끼던 박주영은 슈팅 0개로 별다른 활약 없이 후반 12분 김신욱과 교체되기도 했다. 이후 홍 감독은 이청용을 이근호로, 한국영을 지동원과 교체시켰지만 경기를 뒤집는 데 실패했다.
 
대표팀은 알제리전에서 수비진의 균열을 나타내면서 상대의 빠른 역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나마 손흥민과 구자철이 대표팀의 구겨진 체면을 살렸다.

리더 부재
모래알 조직
 
경기 후 홍 감독은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력 분석이나 대책이 잘못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전반에 수비가 안 돼 실점을 했는데 그 점이 아쉽다”고 평가하며 “전술적으로 적극적으로 대응 못했다”고 자책했다.
 
경기 후 알제리 최대 스포츠지 <르 뷔테르>는 “알제리는 한국에 한 수 가르쳤다”며 “사막의 여우들(알제리 축구팀 별칭)이 한국을 상대로 값진 승리를 거뒀다”고 기뻐했다. 또 다른 일간지는 “한국을 실신시켰다”고 보도했다.
 
알제리전 참패 이후 한국의 16강 진출은 사실상 불가능해보였다. 이미 자력 진출은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벨기에는 한국과의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조 1위로 16강에 진출이 가능했다. 한국의 승산을 점치는 전문가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벨기에는 러시아를 1-0으로 따돌리고 2연승(승점6), H조에서 가장 먼저 16강에 올랐다. 앞서 지난달 18일 러시아와 1-1로 비긴 한국은 대회 첫 승을 신고하지 못한 채 1무1패(승점1, 골득실 -2)로 H조 꼴지로 쳐지면서 3차전인 벨기에전을 승리로 끌고가야하는 애처로운 처지에 내몰렸다. 하지만 벨기에를 다득점으로 이기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안타깝게도 홍명보호는 지난달 27일 브라질 상파울루 아레나 데 상파울루에서 열린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0-1로 패배하면서 이번 브라질월드컵 성적을 1무2패로 마무리 지었다. 투혼을 발휘했다지만 역부족이었다.
 
전술 '꽝'
기술 '꽝'
체력 '꽝'
 
벨기에전에서 홍 감독은 선발에 변화를 줬다. 김신욱, 김승규가 첫 선발로 나섰다. 그밖의 포지션은 변화가 없었다. 2선에는 손흥민, 구자철, 이청용이 포진했고 중앙에는 기성용, 한국영이 배치됐다. 수비는 이용, 홍정호, 김영권, 윤석영이 맡았다.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박주영은 벤치에 대기했다.
 
빌모츠 감독의 벨기에는 주전을 대거 제외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신성 야누자이가 첫 선발 기회를 잡은 가운데 미랄라스, 메르텐스가 공격진을 이뤘다. 중원에는 펠라이니, 뎀벨레, 드푸르가 섰다. 수비에선 판데 보레, 판 바이텐, 롬바르츠, 베르통언이 발을 맞췄다. 골키퍼는 쿠르투아였다.
 
치열한 중원 싸움이 진행됐다. 한국은 김신욱의 높이를 활용해 벨기에를 공략했고 벨기에는 메르텐스의 빠른 발로 공격했다. 벨기에가 전반 25분 결정적 기회를 놓쳤다. 문전 혼전 중 메르텐스가 노마크 슈팅 찬스를 잡았지만 슈팅이 크게 떴다. 한국은 전반 30분 기성용의 날카로운 슈팅이 쿠르투아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0-0의 흐름이 계속됐고 전반 45분 변수가 발생했다. 벨기에의 드푸르가 거친 파울로 퇴장당했다. 볼 경합 과정서 김신욱에게 축구화 바닥이 보인 위험한 파울을 범했고 주심은 망설임 없이 레드카드를 꺼냈다. 전반은 득점 없이 끝이 났다.

무승 탈락
최악의 성적
 
한국은 후반 시작과 함께 한국영을 빼고 이근호를 투입하며 공격 숫자를 늘렸다. 그리고 후반 14분 손흥민의 크로스가 크로스바를 맞고 아쉽게 무산됐다. 팽팽한 흐름이 이어졌고, 양 팀은 교체로 변화를 줬다. 벨기에는 오리기, 샤들리를 투입했고 한국은 김신욱을 빼고 김보경을 내보냈다.
 
손흥민 대신 지동원까지 투입하며 한국은 총공격을 펼쳤다. 그러나 선제골은 벨기에가 넣었다. 후반 32분 오리기의 슈팅을 김승규가 쳐내자 쇄도하던 베르통언이 재차 차 넣었다. 다급해진 한국은 공격에 모든 걸 걸었다. 그러나 패스 타이밍이 늦었고 슈팅은 빗나갔다.
 
결국 한국은 0-1로 패했고, 조별리그서 탈락했다. 한편, 다른 경기에선 알제리와 러시아가 1-1로 비겼다. 알제리는 1승1무1패, 조 2위로 벨기에(3승)와 함께 16강에 올랐다.
 
홍 감독은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상무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친 후 1992년 유공코끼리의 지명을 받았으나 지명권 트레이드로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했다. 92년 포항의 K리그 우승에 크게 공헌해 신인 선수 최초로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97년 J리그 팀 벨마레 히라츠카로 옮겨 활약하다가 99년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해 그해 J리그 컵 우승에 공헌했다. 그리고 2002년 포항 스틸러스로 잠시 복귀했다가 2003년 미국 메이저 리그 LA갤럭시로 이적했다. 이후 2004년 선수로서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홍 감독은 90년 노르웨이와의 친선 경기에서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데뷔해 총 4번의 월드컵에서 2골을 넣었다. 월드컵 4회 참가는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다. 2002한일월드컵에서는 대표팀 주장을 맡아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4강을 이룩한 뒤 브론즈 볼을 수상했다. 이후 홍 감독은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딕 아드보카트가 감독일 당시 수석코치로 발탁됐다.
 
이후 2009년 조동현 감독의 후임으로 U-20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고 좋은 경기를 보여주면서 올림픽 대표팀 감독까지 맡아 2012년 하계 올림픽 동메달에 기여했다. 이후 최강희의 후임으로 한국대표팀 감독에 올랐다. 앞서 은퇴 기자회견 당시 홍 감독은 행정가의 길을 걷겠다고 공언했지만 그의 길은 행정가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행정가의 꿈은 계속 열어놓고 있다고 전해진다.
 
 
<khlee@ilyosisa.co.kr>
 

[홍명보는?]
 
▲서울 출생
▲동북고 졸업
▲고려대 졸업

▲대표선수 경력
  -이탈리아월드컵(90)
  -미국월드컵(98)
  -한일월드컵(02)
  -A매치 출전 128게임

▲프로선수 경력
  -포항제철(92∼96)
  -일본 쇼난 벨마레(97∼98)
  -일본 가시와 엔틀러스(99∼01)
  -포항제철(02∼03년)
  -미국 LA갤럭시(03∼04)

▲지도자 경력
  -대표팀 코치(02∼07)
  -U-23 대표팀 코치(07∼08)
  -올림픽 대표팀 감독(09∼12)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