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사설탐정 24시' 비하인드 스토리

"500만원만 주면 뭐든지 합니다"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담배 파이프를 문 날렵한 사내가 살인자를 뒤쫓는다. 유달리 명석한 이 탐정은 채집한 증거들을 모아 탁월한 추리로 범죄자의 숨통을 조인다. 영국을 대표하는 명탐정 셜록홈즈는 소설 속 가상의 인물이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한 사립탐정은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설탐정 제도가 활성화된 영·미권 국가와 달리 한국은 탐정을 공인하지 않고 있다. 주변엔 셜록홈즈 운운하며 사고만 치는 흥신소 직원이 더 많이 보인다. 이제 갓 양성화 단계에 있는 사립탐정, 그 어두운 이면을 조명했다.

차가운 바람이 여민 코트 사이를 파고들었다. 넥타이를 맨 사람들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서류가방을 들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서울 모처에 있는 한 대형빌딩, A씨는 이곳 지하 1층에서 의뢰인과 만나기로 했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릴 터였다.

셜록홈즈 상상
"소설일 뿐"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건물 로비를 메웠다. 로비를 가로지른 그들은 엘리베이터 앞에 모여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하이힐 소리는 잦아들었다. 탑승객도 눈에 띄게 줄었다. 출근 시간은 거의 끝난 듯했다. 기다리던 전화벨이 울렸다.

A씨는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그의 눈앞에 50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다가왔다. 의뢰인이었다. 테이블에 앉은 그들은 서로를 탐색했다. 용무를 나누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의뢰인의 입에서 "무역회사에 있는 유승준(가명)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봐 달라"는 말이 나왔다. 의뢰인은 유승준이 낮 시간에 누구와 만나는지도 알아봐 달라 했다.

A씨는 의뢰인으로부터 유승준이 다니는 무역회사의 이름을 들었다. 작업에 착수한 A씨는 법인 등기부등본을 열람하여 유승준이 다니는 회사와 주소지, 운행하는 차량을 확인했다. 이후 A씨는 자신의 조력자들과 함께 유승준의 차량이 주차돼 있는 서울 한 병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조력자는 사람들이 오는지를 살폈고 또 다른 조력자는 GPS 위치추적장치를 차량에 부착했다. 이들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다.

A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유승준의 차량을 미행하면서 카메라 셔터를 연이어 눌렀다. 촬영된 사진은 의뢰인에게 전송됐다. 사진 한 장 가격은 100만원을 상회했다. 의뢰인은 계속 유승준을 감시해달라고 했다. A씨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었다.


위치추적 기본
대부분 불륜

사무실로 돌아온 A씨는 또 다른 의뢰인으로부터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익명의 의뢰인은 "김동규(가명)가 외근을 핑계로 서울 외곽에 있는 오피스텔을 찾고 있다"며 "사실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A씨는 낮은 수임료 등 여러 조건이 맞지 않아 의뢰인의 요청을 묵살했다. 당분간 A씨는 유승준을 미행하는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현행법상 특정인의 소재나 연락처를 알아내거나 금융거래 등 상거래관계 외에 사생활을 조사하는 일은 불법이다. 그럼에도 A씨는 그간 민간조사업자로 소개됐다. '셜록홈즈'란 이름도 사용됐다. 그렇지만 실상은 탐정을 빙자한 심부름센터 직원이었다.

수탁 받은 사건도 그렇고 근사한 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A씨가 받은 의뢰는 며칠 전 아내가 집을 나갔으니 찾아달라는 의뢰, 아내에게 애인이 생긴 것 같으니 뒤를 밟아달라는 의뢰, 특정 주소지에 내연녀가 아직 살고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의뢰, 자신의 동거남이 실제로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 등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A씨는 같은 기간 한 여성 의뢰인으로부터 "남편이 강원도에 있는 한 리조트로 세미나를 갔다고 하는데 정말로 세미나를 간 게 맞는지 확인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A씨가 한 일이라고는 리조트로 차를 끌고 가서 세미나가 열렸는지를 보고 오는 게 끝이었다. 산업 스파이를 추적하고 지명 수배자를 뒤쫓는 일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부산을 거점으로 암약한 한 사립탐정은 '불륜 원스톱 서비스'로 유명했다. 그는 남편이나 아내의 외도 증거를 잡아달라는 청탁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며 수익을 올렸다.

업무 특성상 미행을 하게 된 경우가 많았는데 배우자의 차종을 물어본 뒤 대형차는 500만원, 중형차는 300만원 하는 식으로 가격을 붙였다고 했다.


사립탐정 공인 초읽기…이르면 내년 통과
"아직 멀었다?" 흥신소 직원들이 물 흐려

또 불륜 포착 과정에는 위치추적기를 필두로 키홀더형 카메라, 볼펜형 녹음기 등이 동원됐다. 당사자 몰래 채증을 했음은 물론이다.

한 유명 연예인은 흥신소(심부름센터) 직원을 붙여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도 했다. 해당 흥신소는 아내의 과거 행적과 관련한 뒷조사도 병행했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한 중견기업 오너는 아내로부터 집안내력 등과 관련한 뒷조사를 당했다고 한다. 대학교 학적부를 들추고 고등학교 졸업 앨범을 뒤지는 식이다.

제법 이름 있는 흥신소의 경우는 자신들의 정보원을 가동해 특정인물의 개인정보 조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기자가 공식적으로 접촉한 한 흥신소 직원은 부산으로 출장 중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누구로부터 의뢰를 받았으며 어떤 사건을 수임했는지 밝히기를 꺼려했다.

만나기 어려우면 전화라도 하자고 했다. 그러자 이 직원은 "전화는 아니다"라며 "예의는 갖다 버렸냐"고 훈계했다. 앞뒤 안 가리고 여기저기 다 물어보는 것이 특기인 이 조사관은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전국 곳곳을 헤집고 있다.

또 다른 흥신소 직원은 대전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소위 말해 경찰과 끈이 닿는 능력자다.

자칭 조폭 출신 자산가 등과도 친하다. 잠시 흥신소 업계를 떠났던 그는 얼마 전 현업에 복귀했다. 그와 의뢰인으로 만나 호형호제하게 된 한 사업가는 "해결사라기보다는 브로커에 가까웠다"며 "경찰을 소개시켜주고 이득을 챙겼는데 나중에 내가 직접 경찰을 뚫으니 만날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업가처럼 누구나 경찰과 끈이 닿을 수는 없는 일. 때로는 "공권력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범죄자가 '사립탐정'을 찾기도 한다.

해결사 자처
"도장 찍으시오"

탐정 B씨는 지방에 있는 한 교도소를 찾았다. 강간치상죄로 수감 중인 고영진(가명)을 면회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고영진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의 한 직원과 만난 뒤 사건을 수임하기로 하고 면회 절차를 밟았다.


면회실 유리벽 틈으로 고영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사 관계자와 미리 입을 맞춘 B씨는 "재판에 필요한 단서를 찾고 사건을 해결해 주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B씨는 "(당신의 무죄를 입증할) 유리한 증인을 찾아 녹음해 증거로 제출하겠다"며 "경비는 나중에 받을 테니 계약서에 도장부터 찍어 달라"고 했다.

B씨의 행동은 변호사가 아니면서도 송사에 관여해 법률사무를 취급한 범죄행위였다. 그는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동행한 직원으로부터 계약비 명목으로 30만원을 받았다. 이어 그는 녹취록 작성비, 교통비, 식비 등의 실비 명목으로 모두 1300만원을 받았다.

앞서 B씨는 "내가 몇몇 사건의 목격자나 증인을 찾아 판결을 뒤집었다"며 "검사의 잘못을 밝히는 능력이 있으니 조사과정의 잘못을 짚어 (의뢰인의) 무죄를 받아주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믿은 고영진은 500만원씩 두 차례에 나눠 B씨가 지목한 녹취전문 흥신소로 현금을 송금했다. 그러나 1000만원을 입금 받은 흥신소는 B씨의 가족이 운영하는 흥신소였다.

연예인에 회장님·사모님도 '기웃기웃'
"뒷조사 해달라" 심부름센터에 사건 의뢰

더구나 B씨의 일처리는 미덥지 못했는데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의 대화를 무차별 녹음하는가 하면 재판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녹취록을 작성하는 등 의뢰인의 기대를 저버렸다. 결과적으로 B씨는 의뢰인에 의해 본인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굴욕을 맛봤다.

그나마 B씨는 셜록홈즈처럼 사건을 조사하는 흉내라도 냈지만 남의 사생활을 캐던 A씨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유승준을 쫓던 A씨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A씨는 유승준 미행을 위해 운전업무 종사자를 한 명을 섭외했다. 그는 A씨의 지시를 받아 유승준의 차량이 출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과 연결된 지하주차장으로 유승준의 차량이 들어갔고, A씨의 차량이 뒤를 따랐다.

그런데 백미러로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유승준이었다. 유승준은 주차를 중단하고 A씨의 차량에 따라 붙었다. 당시 유승준은 뒤편의 차가 자신을 따라오는 이유를 물어보려 했다. 미행이 발각된 것이다.

긴급 상황에 운전자는 당황했다. 유승준은 차문을 열고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운전자는 가속 페달을 밟아 현장을 벗어나려 했다. A씨의 차량이 급발진하자 유승준은 이를 피하다가 주차장 벽기둥에 부딪혔다. 이 사고로 유승준은 허리 부상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주차장을 빠져 나가던 A씨의 차량은 당시 정차 중이던 또 다른 차량을 들이박았다. 해당 차량의 운전자도 부상을 당했다. 이 장면은 주차장 CCTV 및 피해자 차량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녹화됐다. 그러나 운전자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대로 도주했다. A씨 일당은 모조리 경찰에 붙잡혔다.

범죄자도 의뢰
유명인도 의뢰

조사 결과 A씨에게 미행을 사주한 의뢰인은 한 법인기업의 회장이었다. 그는 기업 대표이사로 있는 자신의 아들과 유승준의 딸이 교제한다는 사실을 알고 유승준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려 했다. 결과적으로 회장님은 셜록홈즈를 고용해야 했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본인 역시 '범털' 신세를 면치 못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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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