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앞두고…" CNK 기획입국 의혹

MB정권 실세들 날릴 '다이아 게이트' 열릴까

[일요시사=사회팀] 2000년대 초반까지 목욕탕 주인이었던 그는 아프리카에서 광산을 발견하며 일약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했다. 전직 부장판사, 현직 방송사 간부, 정치권 핵심 인사까지 차례로 그와 손잡았다. 정부가 보증 선 노다지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여기저기서 돈뭉치가 굴러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주식시장에 밀물처럼 들어왔던 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럼에도 이 남자는 다이아몬드를 쥐어주겠다며 호언장담했다. 오덕균 CNK 대표. 그는 유능한 사업가일까. 아니면 희대의 사기꾼일까. 갑작스러운 그의 귀국에 관심이 모아진다.

해외 다이아몬드 개발을 미끼로 주가조작을 통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아온 오덕균(48) 씨앤케이인터내셔널(CNK) 대표가 도피생활 2년여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지난 13일 카메룬 현지에서 자진 귀국할 뜻을 검찰에 전한 오 대표는 23일 새벽 4시30분께 인천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가조작 몸통
2년 만에 귀국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검사 이선봉)는 귀국한 오 대표를 현장 체포한 뒤 곧바로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이송했다. 이날 오전 6시30분께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한 오 대표는 "광산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오 대표는 사회고위층은 물론 정관계 핵심인사가 연루된 CNK 주가조작 사건의 몸통으로 의심받고 있다. 검찰의 수사 착수 2주 전인 2012년 1월8일 광산 사업 등을 이유로 카메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오 대표는 그로부터 2년 넘게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오 대표가 소환조사에 불응하자 CNK 변호인을 통해 귀국을 종용했다. 그러나 오 대표는 광산 기공식 등을 이유로 차일피일 귀국을 미뤘다. 참다못한 검찰은 외교부와 공조해 오 대표의 여권 반납을 명령했다. 그러나 오 대표는 이마저 불응했다. 결국 검찰은 같은 해 3월6일 오 대표의 여권을 무효화했고, 체포영장을 발부한 뒤 인터폴에 공개 수배했다.


한 달 뒤 오 대표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4월에서 5월 중으로 귀국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주 카메룬 한국대사관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린 오 대표는 자신의 무죄를 항변했다. 그러나 약속한 날짜에도 오 대표는 입국하지 않았고, 검찰은 인터폴에 요청해 오 대표의 수배 단계를 적색으로 높였다.

'주가조작 몸통' 2년 도피 오덕균 구속
입국 전 핵심공범 자수…시기 조율한 듯

그럼에도 오 대표는 카메룬에 남아 별다른 제재 없이 사업 활동을 계속했다. 이를 지켜보던 검찰은 2012년 8월 법무부를 통해 범죄인인도청구를 카메룬 측에 정식 요청했다. 하지만 카메룬은 이를 거부했다. 이렇듯 신병 확보에 난항을 겪던 검찰은 지난해 2월19일 오 대표를 기소 중지한 뒤 국내에 있는 피의자들의 혐의 입증에 주력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CNK 수사는 사건 관계인이 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난항에 부딪혔다. 그 사이 오 대표는 틈틈이 국내에 있는 측근들을 통해 "카메룬에서 볼 일을 다 보면 당당히 돌아가겠다"고 하는 등 건재를 과시했다.

카메룬은 2012년 8월 다이아몬드 수출입과 관련한 국가들의 협의기구, 킴벌리 프로세스(Kimberly Process)에 가입했다. 이는 CNK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호재였다. 킴벌리 프로세스는 다이아몬드 원석의 수출입에 관한 사항을 조정하는 UN 산하 국제 협의체다. 가입건만 놓고 보면 얼마가 됐든 간에 다이아몬드는 진짜 있었던 셈이다.

핵심공범 자수
입맞춤 있었나

관련 보도 직후 "카메룬 광산에 다이아몬드가 없다"고 했던 여론은 주춤했다. 주가도 반등했다. 오 대표는 국내 취재진을 카메룬으로 불렀다. 다이아몬드가 매장돼 있다는 광산이 공개됐다. 채굴 과정도 보여줬다. 오 대표는 결백을 주장했다.


지난해 9월에는 CNK가 광산 개발에 따른 토지사용권을 획득했다는 공시가 나왔다. 당연히 주가는 뛰었다. 주주들이 오 대표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오 대표가 중국 대기업의 투자 유치를 받아냈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카메룬 모빌롱 다이아몬드 광산에 대한 5000만달러(한화 약 550억원)의 지원이 있을 것이란 내용이었다. 오 대표는 성공을 확신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생겼다. 지난해 말,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공범 중 한 명인 CNK 이사 정승희씨가 전격 귀국한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18일 도피생활을 마치고 자진 귀국한 정씨를 인천국제공항에서 체포했다.

앞서 정씨는 오 대표와 함께 카메룬에서 4억2000만캐럿이 매장된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권을 따냈다고 속여 주가를 띄우는 수법으로 900억원 상당의 부당 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같은 날 검찰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범죄혐의에 관한 소명이 부족하고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적다는 사유였다.

정씨가 체포되기 2주 전 서울 성북동에 있는 오보코(OVOCO) 갤러리에선 CNK가 주최한 카메룬 다이아몬드 전시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CNK는 그간 카메룬 광산에서 캐낸 원석을 한국으로 반입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아프리카 밀림에서 탐사와 생산을 했다는 영상자료와 함께 원석을 나석으로 만드는 시연이 병행됐다. CNK 측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강조했다. "원석은 있고 가공도 된다." 하지만 CNK가 반입한 원석은 고작 2000캐럿. 오 대표가 주장한 4억2000만캐럿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정씨는 전시회 직후 한국 쪽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눈치 챘다. 이는 그의 귀국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정상 오 대표와 정씨가 입국 시기를 조율했을 가능성도 높다. 결정적으로 정씨는 구속수사를 피하면서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했다. 오 대표 입장에서 정씨에게 청구된 영장이 기각됐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이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다시 불붙은
정관계 로비설

이로부터 3개월 뒤 오 대표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지난 12일 변호인을 통해 재기신청서를 제출한 것.  그는 검찰 수사에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의혹을 해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오 대표의 귀국 배경을 놓고 복수 언론은 "결국 오 대표가 카메룬에 막대한 양의 다이아몬드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자신이 있는 것 아니겠냐"는 분석을 내놨다. 특히 오 대표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될 경우를 가정하면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킴은 물론 투자 유치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오 대표가 꺼낸 승부수는 뭉개졌다.

지난 26일 검찰은 오 대표를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영장을 심사한 서울중앙지법 윤강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매우 중대하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과정에 비춰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영장발부 사유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CNK는 당시 중앙정부부처의 이례적인 사업 홍보로 3000원대인 주가가 1만8000원까지 급등하는 등 상한가를 쳤다. 하지만 몇 달 사이 매장량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주가는 급락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오 대표는 김은석 전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대사를 꼬드겨 외교부가 CNK 측 입장을 두둔하는 자료를 배포토록 지시했다.
 

이 같은 수법으로 오 대표 측이 챙긴 차익은 약 9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빼돌린 돈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란 지적이다. 한 증권 전문가는 대략 1조원대의 돈이 증발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CNK의 원래 주가는 3000원대였는데 외교부 발표 직후 1만4000원대로 수직 상승했다. 또 7000원대로 내려간 주가는 다시 1만8500원으로 급등했다. 이후 CNK 주가는 검찰 수사로 폭락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3000~4000원대로 수렴되는 분위기. 때문에 몇몇 전문가는 이 시기 주식을 대량으로 매매한 사람을 리스트로 뽑으면 숨겨진 연결고리가 드러날 것이라고 제언한다.


증발한 1조원 어디로?
정관계 로비설 재점화

앞서 검찰은 지난해 2월 CNK 주가조작에 관여한 김 전 대사와 안모 CNK 기술고문, CNK 카메룬 현지법인 기업 가치를 허위로 과대평가한 회계사 등 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오 대표로부터 금품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진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나 조중표 전 국무총리실 실장 등에 대해선 단서가 없는 것으로 보고 사법처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 대표의 구속으로 묵혀놨던 정관계 로비 수사가 다시 활기를 띨지 관심이다. 당시 박 전 차관은 카메룬 정부당국에 CNK의 다이아몬드 광산개발권 획득을 직접 요청하는 등 부적절한 개입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대가로 박 전 차관이 수십억원의 보수를 요구했다는 증언도 확인된다.

오 대표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헐값에 매각한 점도 수사대상이다. 오 대표는 지난 2009년 10월부터 2010년 7월까지 신주 172만2352주의 인수권을 주당 1262원에 넘겼다. 자신이 매입한 취득가(1599원)보다 더 싼 값에 손해를 보며 판 것이다. 만약 오 대표가 자신의 신주인수권을 정치권 등에 로비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밝혀질 경우 지방선거를 앞둔 정국에는 큰 파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왜 하필 지금
기획입국 의혹

검찰은 CNK의 BW 매매계좌 수십여개 중 사회지도급 인사 40여명이 연루된 계좌에 대한 수사를 벌여왔다. 때문에 정치권은 오 대표가 입을 연다면 지난 MB정권 실세는 물론, 현 정부와 연결된 인사도 수사망에 오르지 않을까 주목하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타이밍이 참 애매하다"며 "기획입국이 아닌가를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선거를 앞둔 타이밍에 오 대표가 돌연 귀국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 측에서 지난 정권에 대한 사정작업의 일환으로 오 대표를 설득시켰든, 반대로 오 대표 측이 로비리스트를 언급하며 '플리바게닝'을 요청했든, 다시 불붙은 '다이아몬드 게이트'에 눈길이 쏠린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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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