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 남자들' 사활 건 권력암투 막후

'서열 2위 전쟁' 박·정·김 한판 붙었다

[일요시사=사회팀] 청와대 안팎에서 총칼 없는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현직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은 'VIP(대통령)의 남자' 정윤회씨에게 한 달간 미행 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하지만 정씨는 "미행은 없었다"며 역으로 박 회장의 측근을 배후로 지목한 상황이다. 청와대 안에선 '대통령의 복심'이 관련 내사를 무마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거인들 간의 권력암투. 숨겨진 전모는 무엇일까.

지난 23일 <시사저널>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윤회씨가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을 한 달 이상 미행했다고 보도했다. 최고 권력자를 사이에 놓고 '그림자권력'이 맞붙은 것이다.

쫓는 정윤회
쫓기는 박지만

<시사저널>에 따르면 박 회장은 지난해 11월부터 오토바이를 탄 정체불명의 사람에게 미행당하고 있다는 낌새를 챈 후 같은해 12월 자신의 집 앞에서 오토바이 운전기사를  붙잡았다. 그리고 "왜 나를 미행하느냐"고 추궁했다. 그러자 운전기사는 "정윤회의 지시로 미행하게 됐다"고 실토했다.

화가 난 박 회장은 이를 김기춘 비서실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알렸다. 먼저 박 회장은 김 실장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에 김 실장은 "그럴 리 없다"고 답했다.

그래도 분노가 가시지 않았는지 박 회장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간부 A씨에게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서 A씨는 박 회장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데 과거 박 회장이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됐을 당시 A씨는 박 회장을 수사한 담당 검사였다. 이 같은 인연으로 둘의 관계가 돈독해졌는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A씨는 박근혜정부가 출범하자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요직을 꿰찼다.


A씨는 즉각 자신의 부하 직원 B씨에게 '박지만 미행 사건'에 대한 내사를 지시했다. B씨는 현직 경찰 신분으로 청와대에 파견된 베테랑 수사관이다. 그는 경찰 내에서 정·관계 인사나 대기업이 연루된 굵직한 사건을 주로 맡았는데 수사력에 있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B씨는 내사 직후 대기발령이 떨어져 사실상 좌천됐다. 현재 B씨는 서울 강북지역 한 일선경찰서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은 B씨의 인사 문제와 관련, 한 여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대통령 측근'이 A씨에게 전화를 걸어 B씨를 (경찰로) 원대 복귀시키라고 지시했다"며 "(미행을 사주한) 정씨가 곤경에 처할 수 있다고 판단한 '대통령 측근'이 내사를 중단시켰던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소문만 무성한
'밤의 비서실장'

그렇다면 내사를 무마한 '대통령 측근'은 누구일까. <시사저널>은 누구라고 특정하지 않았지만 정씨와 친분이 있는 '문고리 3인방'이 이번 사건과 관련돼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여기서 '문고리 3인방'은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실장, 안봉근 제2부속실장을 말한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국회에 입성한 1998년부터 지근거리에서 박 대통령을 보좌한 '복심 중의 복심'이다.

대외적으로 이들은 정씨와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손발을 맞췄다. 당시 보좌관(일각에서는 비서실장이라는 증언이 있다) 신분으로 박 대통령을 모신 정씨는 2004년 3월 박 대통령이 당 대표가 되자 보좌관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돌연 여의도에서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정씨와 관련한 의혹은 이 무렵부터 꼬리를 물었다. 사람들은 정씨를 가리켜 '밤의 비서실장'이라고 불렀다. '막후에서 박근혜를 움직이는 그림자권력'이라는 소문부터 '박정희 일가의 숨겨진 재산관리인'이라는 소문까지 정씨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은 유령처럼 정가를 떠돌았다.

정씨는 박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로 전해진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다. 정씨의 부인은 최 목사의 딸 최순실씨로 이들 부부는 서울 강남 일대의 부동산과 강원 평창 인근의 토지를 소유한 부호로 알려져 있다.

정씨 부부는 슬하에 딸을 두고 있는데 정씨의 딸은 국가대표급 승마선수로 서울 소재 한 고등학교에 통학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고등학교 한 관계자는 "워낙 고위층 자제가 많아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최태민 사위 정윤회, 박지만 미행 의혹
'문고리권력 3인방' 내사 무마 의혹…누가?

지난 대선을 전후로 여권 일각에선 "정씨가 서울 생활을 접고 평창으로 간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숨은 실세' 정씨가 정치판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정씨는 딸의 훈련을 지켜보기 위해 자주 승마장을 찾았으며, 정씨의 주거지 또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인근인 것으로 알려져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사정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정씨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정씨가 지난해 사석에서 술자리를 가졌는데 한껏 호기가 오르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이번 정부의 서열을 말해줄까? 1위는 대통령(박근혜), 2위는 최순실, 3위는 바로 나(정윤회)." 해당 발언의 배경을 놓고 정씨가 농담을 한 것인지 아니면 속내를 드러낸 것인지 관계자는 명확히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고급 요정에서 나온 비화"라고 설명을 갈음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 외곽에는 정씨가 소유한 빌딩이 있다. 이 빌딩은 ㈜얀슨이 입주한 건물로 유명하다. 정씨는 ㈜얀슨의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얀슨의 주소지로 알려진 건물 4층은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간판도 없었다. 다른 층은 모두 임대된 상황, 정씨를 만날 기회는 없었다. 앞서 정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미행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제3의 권력'
개입 가능성

그런데 정씨의 인터뷰 중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 그는 '미행을 사주했다'는 의혹을 부인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 그 친구가 그랬나?"라고 제3의 인물을 특정했다. 이어 "내가 하도 기가 막혀서 왜 이런 일에 휘말렸나 생각을 해보니까 박지만 회장 쪽에 ○○○씨라고 있는데 그 친구 문제가 나한테 불똥이 튄 게 아닌가 해서 알려주는 거다"라고 말했다. 여러 정황상 정씨가 지목한 인물은 박 회장의 오랜 측근 C씨로 의심된다.

C씨는 지난 이명박정권의 '실세' D씨와 친분이 있는 인물로 몇 차례 언론을 탔다. 한 야권 인사는 C씨에 대해 "D씨와 박 회장 사이의 다리를 놓았다"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청와대 지근에 똬리를 틀었던 D씨와 대통령의 동생인 박 회장은 '권력의 주변부'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정씨는 왜 실세 D씨가 아닌 C씨를 이번 사건의 배후인 듯 밝혔을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난 대선 이후 C씨와 문고리 권력 3인방이 세게 붙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며 "그때 생긴 앙금이 이번 사건의 한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시사저널>은 한 여권 인사의 말을 인용, "지난해 현 정부가 출범할 당시 박 회장과 가까운 사람들이 청와대 직원으로 임명되는 것을 비서진(문고리) 3인방이 막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런 이유 등으로 박 회장뿐 아니라 박 회장과 가까운 사람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이렇듯 이번 사건의 발단은 자리싸움. 즉 논공행상 과정에서의 알력다툼이다. 이를 토대로 관련자들의 진술을 종합한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이 추정된다.

최초 '문고리 3인방'은 C씨가 주도하는 '박지만 측근'의 청와대 장악을 경계했다. 때문에 C씨는 3인방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가졌다. 인사에서 배제된 박 회장 측은 칼을 갈았고, 그러던 중 정씨가 3인방의 막후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박 회장은 정씨로부터 미행을 당하고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박 회장은 이곳저곳에 하소연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3인방은 정씨를 편들면서 박 회장의 심기를 건드렸다. 박지만-정윤회 세력 간의 권력 다툼은 이처럼 대리전으로 시작했다가 1년 만에 양 세력의 좌장이 직접 나서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 좌장 노릇을 했는지는 미지수.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청와대 밖 인사에서도 박 회장의 이름이 들렸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이름을 빌린(혹은 사칭한) 누군가가 외부 인사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것이다. 정씨 역시 정권 초기 박 회장과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주변인들의 전횡으로 당사자인 박 회장과 정씨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은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

논공행상 둘러싼 갈등 "내 사람 심는다"
12월 전후 관계 변화…채동욱 사태 변수?

이번 미행사건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은 김 실장의 역할이다. 막후 권력인 정씨 등과 달리 김 실장은 자타공인 살아있는 권력이다. 그런데 <시사저널>이 보도한 내용을 보면 김 실장은 "그런 일(미행을 사주한 일)이 없다"고 했을 뿐 미행 사건을 직접 챙기지 않았고, 청와대의 내사가 방해받고 있는데도 "난 그런 지시(내사를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며 떠넘기는 등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지난해 8월 김 실장은 청와대로 입성한 후 '1인 독주체제'를 굳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력을 일원화하는 과정에서 3인방을 제압했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돌았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달랐다. 실제 3인방은 김 실장의 통제범위 밖에서 고유 업무를 처리했다고 한다.

외부적으로 김 실장은 권력기관을 차례로 접수하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갈등설을 막지 못해 위기를 자초했다. 김 실장이 강공 일변도로 나갈 때 청와대 3인방이 이를 견제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올해 초 '김기춘 사퇴설'이 대두됐을 때 관련 배경을 놓고 "김 실장 흔들기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3인방은 건재한데 김 실장은 계속해서 위기론이 나온다. 권력암투의 승자가 누군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혼란의 12월
무슨 일 있었나


실제로 '청와대 직원'이 김 실장의 지시라고 꾸며, 내사를 무마하려 했음에도 김 실장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박 회장이 민정수석실에 미행을 알린 시점(2013년 12월)과 '김기춘 사퇴설'이 처음 등장한 시점(2014년 1월)은 묘하게 일치한다.

비슷한 시기(2013년 12월∼2014년 1월) 청와대는 '채동욱 찍어내기' 의혹으로 출범 후 가장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청와대에 근무한 조모 행정관의 혐의가 최초 밝혀진 날은 2013년 12월2일, 우연인지 필연인지 조 행정관의 직속상관은 이 비서관이었다.

'채동욱 뒷조사'에는 이 비서관이 있는 총무비서관실과 교육문화수석실, 고용복지수석실, 민정수석실이 동원됐다. 청와대 차원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공직자 감찰 차원에서 개인정보를 조회했다"고 해명했다.

만약 청와대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관련 정보를 컨트롤해야 할 사람은 단 한 명. A씨다. 그런데 A씨는 굳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도 업무 협조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A씨가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윗선'의 의지가 있었던 것일까.

미행과 뒷조사. 각각 다른 사건을 놓고 나란히 '키맨'이 된 A씨와 3인방. 이들 뒤에서 각각 숨을 죽이고 있는 박 회장과 정씨. 얽히고설킨 이들의 파열음이 청와대 안팎에서 감지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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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