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교우·호남향우·해병전우회' 힘빠진 ‘3대 조직’…왜?

대한민국 들었다 놨다…지금은 달라졌다

[일요시사=사회팀] 고려대교우회, 호남향우회, 해병대전우회는 결집력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이들의 조직력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로 뻗어있다.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는 한국의 대표적인 인맥 줄기다. ‘우주에 떨어뜨려 놓아도 잘 산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 그런데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 새로운 피가 제대로 수혈되지 않아 전통 조직들이 외면 받고 있는 현실이다.

해병대의 정서 공유는 자타가 공인하는 ‘단결력’이다. 힘든 시기에 함께한 고통이 평생 정서 공유를 가능하게 한다. 동네마다 해병대 컨테이너를 찾을 수 있는 이유다. 고대 정서 공유의 특징은 ‘소속감의 편안함’이다. 교우회에 소속돼 있는 것만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고대 출신들의 특성이라는 것. 호남 정서 공유의 특성은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아따 형님∼’ 한 마디면 여러 뉘앙스를 전달하며 남도 특유의 정서 공유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젊은이여 오라”
그래도 안 모여

고려대교우회, 호남향우회, 해병대전우회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거대 조직으로 손꼽힌다. 이 세 조직은 중앙회와 함께 각 지역마다 지회를 두고 있다. 심지어 해외에도 지회가 있어 이들의 결집력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특히 호남 출신, 해병대 전역, 고려대 학사를 모두 가진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 가도 절대 굶어죽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요즘은 예전 같지 않다. 새 피가 제대로 수혈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3대 조직의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해 해병대를 전역한 A(25)씨는 전역 후 곧바로 대학에 복학했다. 캠퍼스로 돌아온 그는 자연스럽게 해병대전우회 활동을 시작했다. 해병대 기수가 훨씬 높은 선배들의 참여 권유를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학내 행사들로 인해 해병대모임은 잦았고 개인 시간에 영향을 미쳤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광풍과도 같은 스펙 쌓기와는 거리가 먼 행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해병대 선후배 관계가 싫었던 건 아니었지만 불편함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A씨는 졸업 후 지역 전우회에 가입을 해 봉사활동을 할 생각이 없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A씨는 “해병대 빨간 명찰이 인생의 큰 힘이 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굳이 전우회에 가입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해병대 전역자 B(23)씨는 부대에 있을 때부터 해병대전우회에 대한 많은 말을 들었다. ‘전역하면 다시 이등병으로 돌아간다’는 공포의 말이었다. 말장난으로 하는 이등병이 아닌, 계급으로서의 이등병을 뜻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B씨는 전역하자마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씨? 해병대 11XX기 맞죠? 저는 10XX기인데 ○○관으로 6시까지 오세요.” 전역하면 ‘해피콜(?)’이 온다더니, 사실이었다. 그러나 B씨는 대학 해병대전우회에 가입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다시 막내 생활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이후 해병대 선배들의 전화를 피하면서 조용히 학교를 다녔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전우회 보다 중요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앞날 생각에 마음은 급했다. 해병대 자부심은 살아 있지만 선뜩 나서고 싶지는 않았다. B씨는 “스펙 쌓기도 바쁜데 어떻게 전우회 활동을 병행할 수 있겠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C(31)씨는 호남향우회에 가입하라는 부모님의 요구를 줄곧 받아왔었다. 그러나 C씨는 부모님과 달리 호남에서 자라지 않고 서울에서 자랐다. 직접적인 연고가 없는 것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 향우회 활동을 한다는 게 썩 내키지도, 쉬운 일도 아니었다. 그에게 고향은 서울이었다. C씨는 “서울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 고향을 따라 향우회에 가입해야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풍속도는 아주 최근의 일은 아니다. 서서히 변화하고 있는 시대의 자화상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결속력 하면 손가락에 꼽히는 조직이지만 젊은 세대들의 ‘오늘’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끈끈하기로 유명한 고대·호남·해병대에 새 피 수혈이 원활하지 않다. 개인주의적 성향과 경기 불황이 이러한 현실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먹고사느라…”
청년들의 외면

해병대전우회 관계자에 따르면 전국 각 지역 해병대전우회 회원이 감소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의 가입률이 현저히 낮아진 상황이다. 과거에는 해병대 출신 청년들이 지역 선후배들과 함께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최근에는 신입회원이 뜸해 아쉬움이 크다고 한다.


대학 해병대전우회는 어느 정도 반강제적인 면이 있어 신입회원 모집에 큰 어려움이 없지만, 지역 전우회는 강제성이 없어 무작정 회원을 끌어들일 수도 없다. 그래서일까. 현재 지역전우회의 막내가 40∼50대인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해병대전우회 회원의 월 회비는 1만∼2만원 선이다. 전우회 회원이 되면 월례회 참석과 지역에서 실시되는 다양한 행사에 참여한다. 교통정리 및 환경정화 활동 등이다. 행사는 주로 주말에 이루어진다.

끝내주는 조직력…결집력 강하기로 유명
한국 사회 인맥 줄기 ‘패밀리’로 꼽혀

해병대전우회 관계자는 “요즘엔 젊은 친구들 찾기가 어렵다”며 “취업하랴, 직장생활하랴, 바빠서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꾸준히 활동하는 건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이다”고 설명했다. 즉 세대교체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황인 것. 40대부터 70대까지의 회원이 가장 많은 게 현실이다.
 

그래도 여전히 청년들이 활동하는 곳이 있다. 인천연합회는 20∼30대 회원들의 활동이 나름대로 활발한 편이다. 물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지부에 비해서는 새로운 피가 꾸준히 수혈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과거에 비하면 많이 약해진 모습이라고 한다. 인천연합회의 경우 1990년대 3000여명에 이르던 회비 납부자가 해마다 줄어 지난해에는 500여명에 불과했다고 전해진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와 개인주의가 겹치면서 나타나는 시대적 현상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결속력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전해진다.

고려대교우회는 매해 6000여명의 졸업생들에게 신규회원 자격을 준다. 때문에 자연스레 회원 수는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회비를 납부하는 동문은 현저히 줄어든 상태다. 고대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는 무려 3만여명의 동문들이 회비를 냈지만 지난해에는 2만6000여명만 회비를 냈다. 고대 동문은 30만여명으로 알려진다.

고대 교우회 관계자는 “동문들에게 지속적으로 우편물을 보내고 있다”며 “호소문을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임원을 늘려서라도 회비를 납부하는 동문을 늘릴 생각이라고”밝혔다. 고대 교우회는 별다른 수입 없이 동문들의 회비와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평생회비를 내는 회원에게는 몇 가지 혜택이 제공되지만, 회비 액수가 크기 때문에 이 회비를 내는 사람은 소수다.

호남향우회는 해병대전우회와 고대교우회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청년층의 무관심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전국에 5800여개의 광역회와 지회를 두고 있는 호남향우회도 신규회원이 줄고 있어 고민이다. 한때 호남 출신 인구 1150만명 중 30% 가까이 차지했던 향우회 회원이 현재는 10% 이하로 줄었다고 전해진다.

3대 조직 향한
불편한 시선들

호남향우회 관계자는 “향우회 행사를 하면 대부분 노인들이 참석한다”며 “신규회원 수가 예전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는 호남인데, 본인은 서울에서 태어났다며 서울이 고향이라고 말하는 청년들이 많다”고 전했다. 호남향우회는 회원제와 비회원제로 나뉜다. 회원제를 실시하는 곳은 경기도 의왕시 호남향우회로 알려진다. 이곳은 연회비를 내지만, 대부분은 비회원제로 운영되며 별도의 회비는 없다. 회비 없이 운영하는 것이 가능한가 싶지만 임원들의 쾌척하는 금액이 크기 때문에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한국의 대표적인 3대 조직으로 손꼽히던 ‘고대·호남·해병대’가 고령화와 개인주의라는 시대적 변화에 부딪히며 위축을 겪고 있다. 불황 속 경쟁주의 일색인 현실도 한몫하고 있다. 또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정서 차이도 전통적으로 강세였던 조직들의 앞날을 위협하고 있다.

회원 감소로 젊은피 절실
강해지는 개인주의에 흔들
독특한 조직 문화도 변화


이러한 현상은 고대·호남·해병대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일반 기업은 물론 공직사회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합리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학연, 지연 등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끌어주고 밀어주기 관행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한국의 대표적인 정통 조직들의 문화가 주춤한 반면 새로운 인맥 라인이 부상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광진구에 위치한 대원외고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이 학교의 동문회의 경우 고교 동문회로는 이례적으로 20∼30대가 주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 번 모이면 300여명 이상이 모인다고 전해진다. 매년 참가자가 늘고 있는 모양새다.

외국어고 동문회가 부상하는 것은 기존 조직보다 위계질서가 느슨하고, 사회 각계의 우수한 인재들과 인맥을 쌓기 유리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외에도 연예인들의 팬클럽 모임 등이 기존 3대 모임에 뒤지지 않는다고 알려진다. 자발적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규모도 규모지만 각종 봉사활동 참여와 더불어 취미 이상의 소속감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이렇지만, 한때 고대교우회·호남향우회·해병대전우회는 한국의 ‘3대 패밀리’와 함께 ‘3대 마피아’로 불렸다. ‘패밀리’는 혈연을 연상케 하는 응집력을 표현한 명칭이었고, ‘마피아’는 거기에 더해 구성원이 공유하는 사적 이익과 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강한 집행력에 초점을 맞춘 호칭이었다. 하지만 이 세 집단은 비슷하면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고대교우회는 ‘고대생답다’ ‘투박하고 촌스럽다’ ‘끈끈하고 질기다’ ‘한국적 인간관계의 화신들이다’ 이런 학풍을 어떤 사람은 지방출신 비중이 높고 여학생이 상대적으로 적은 인적 구성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도심에서 상대적으로 멀어 자기들끼리 어울리는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지정학적 분석도 있다.

호남향우회는 정치, 경제적으로 소외됐던 특정 지역주민들의 ‘생존전략’이라는 측면이 매우 강하다. 그들을 둘러싼 상황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향우회를 올바로 볼 수 없다. 과거 박정희 정권 때부터 시작된 편견과 여러 가지 제약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전두환 정권 시기 탱크와 대치하면서 죽음의 냄새를 함께 맡았던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집단적 기풍이라고 볼 수 있다. 전남도청 건물에 아직도 남아있는 총탄 자국이 호남인들의 가슴 속 상처를 전해준다.


그래도…
뭉쳐야 산다?

해병대전우회는 특정한 체험을 공유하는 공동체다. 결집력의 근거는 ‘군생활’이다. 비슷한 고통을 경험했다는 이유로 하나가 된다. 이들의 자부심은 개인 차량이나 지역 행사장 등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순진무구함도 느껴지는 순정마초이기도 하다.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부를 매개로 연결된 이익집단과는 거리가 멀다.

결속이라는 측면에서 고대교우회와 비견될 수 있는 패밀리는 ‘TK’가 유일하다. 뚜렷한 실체는 없지만 TK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대구, 경북 사람들 모두를 TK라는 인적 네트워크 범주에 뭉뚱그려 집어넣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호남향우회, 고대교우회, 해병대전우회 일원이 될 수 있지만 이를 낯뜨거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집단주의라는 측면에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공동체 구성 원리를 일깨워준다는 점에서는 그리 부정적이지 않다고 보는 시각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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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78년 만에 해체’ 검찰 분해 전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한때 정부의 ‘칼’ 역할을 맡아 위세를 떨쳤던 검찰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또 한 번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됐다.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 유예기간은 1년. 검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봤다. 검찰은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 개혁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적도 있다. 칼로 쓰이면서 동시에 고쳐야 할 기관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정부도 검찰의 존재 자체를 지우진 못했다. 견제 기관을 만들어 권한을 축소한 적은 있지만 ‘폐지’를 가시화한 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대통령 의지 당이 화답? 지난달 26일 검찰청을 폐지하고 기획재정부를 분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에 따라 검찰청은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검찰청 업무 중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기소는 공소청이 맡는다.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장관, 공소청은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정해졌다. 검찰청 폐지와 중수청·공소청 설치에는 1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지난달 30일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검찰청 폐지는 내년 10월로 정해졌다. 내년 10월1일에 법률안이 공포되고 이튿날인 10월2일 중수청·공소청이 설치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찰개혁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재명정부에서 검찰 폐지를 결정하면서 진보 정부의 숙원이 이뤄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정부 출범 직후부터 검찰청을 폐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기소 업무를 분리하고 수사권 등은 신설 기관으로 이관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취임한 이후부터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 선거 전부터 “추석 전 처리”를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도 않는 것을 기소해 무죄를 받고 나면 면책하려고 항소하고, 상고하면서 국민한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형사소송법에 ‘10명의 범인을 놓쳐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며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 무죄추정의 원칙(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혹시 무죄거나 무혐의일 수 있으면 기소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기소해서 고통을 주고 자기 편이면 죄가 명확한데도 봐주면서 기준이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1심이 무죄라고 했는데 (검찰이) 무조건 항소해서 유죄로 바뀌면 타당한가”라며 “검찰이 1심에서 무죄 난 사건을 항소해서 유죄로 바뀔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라고 물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내년 10월 폐지 확정돼 정 장관이 ‘5% 정도’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95%는 무죄를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항소심으로 생고생한다는 말”이라며 “나중엔 무죄는 났는데 집안이 망했다, 이거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 아닌가”라고 했다. 또 “국가가 왜 이리 국민한테 잔인한가”라며 “인류 수천년 역사에서 경험으로 정한 역사가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 이익으로 하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검찰청 폐지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검찰개혁을 숙원으로 여겼던 여권에선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일방 독주’라고 비판했다. 실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하면서 민주당 주도로 표결이 진행됐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본회의 의결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대통령님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정권의 칼, 검찰은 이제 사라졌다”며 “역사적인 날이다. 검찰청이 78년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과 함께 기자간담회를 진행한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78년이라는 세월 사이 우린 여러 번에 걸친 개혁의 후퇴, 개혁의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며 “이제는 그 길을 다시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개혁 의지가 제대로 발현된 정부조직법”이라고 개정안을 평가했다.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이재명정권이 끝내 검찰청을 없앴다. 이는 간판을 바꾼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던 마지막 사법 안전망을 무너뜨린 폭거”라며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그러면서 “그 공백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드러난다. 아동 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노인 학대 사건은 피해자가 말문을 열기 어렵고 증거는 금세 사라진다”며 “예전에는 빠진 단서를 보완하고 잘못된 수사를 되돌릴 두 번째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 그 문이 닫혔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은 집단 반발 하루아침에 조직이 사라지게 된 검찰 내부는 참담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 대행은 지난달 29일 검찰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78년간 국민과 함께해 온 검찰이 충분한 논의나 대비 없이 폐지되는 현실에 총장 직무대행으로서 매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헌법상 명시된 검찰을 법률로 폐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역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들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명백한 위헌”이라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헌법은 89조에서 검찰총장 임명에 대해, 또한 제12조와 제16조에서는 검사의 영장 청구권에 대해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규정은 헌법의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정부의 준사법기관인 검찰청을 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설명했다. 검사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을 통해 발동한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3대 특검팀에는 110명의 검사와 99명의 검찰 수사관이 파견돼있다. 김건희 특검팀에는 40명, 내란 특검팀과 채 상병 특검팀에는 각각 56명, 14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건희 특검팀과 내란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 수를 보면 웬만한 일선 검찰청 검사 정원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김건희 특검팀에 파견된 검사들이 “검찰청으로 복귀하겠다”고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국무회의 의결에 대한 집단 반발로 해석된다. 위헌 주장 헌재 가나 검사들은 지난달 30일 민중기 특검에게 입장문을 제출했다. 입장문에는 정부여당의 검찰개혁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 ‘검찰의 직접 수사 금지’인데 특검에 검사들이 남는 건 모순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권이나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자업자득’이라는 의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서 현재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권력의 방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는 검찰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줄 수 없다는 의지가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실제 진보 정부에서는 오랜 시간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혁을 시도해 왔다. 본격화된 것은 문정부 때부터지만, 그 시발점은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라고 봐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 등 검찰개혁의 핵심 방안들은 다 그 시기에 나왔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검찰개혁은 실패했다. 검찰의 반발이 대단했고 당시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위세도 엄청났다. 실질적인 검찰개혁이 이뤄진 건 문정부 들어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고 국민 여론도 정부에 힘을 더했다. 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로 기능하면서 동시에 개혁 대상으로 지목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제는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출혈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이후 한직으로 좌천돼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연이어 영전시켰다. 진보 정부의 숙원 노·문 거쳐 결말 이는 향후 문정부를 뒤흔들었던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갈등,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 당선 등의 불씨가 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구기도 했다. 조 전 장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정면으로 출동했다. ‘추·윤 대전’이라는 표현이 1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개혁은 흐지부지됐다. 법안이 급하게 처리되면서 ‘누더기’라는 지적이 잇따랐고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등을 두고 기관끼리 갈등을 빚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에 수사가 몰리면서 재판이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정부의 검찰개혁을 ‘반쪽짜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이정부는 아예 검찰청을 없애겠다는 뜻을 품고 임기를 시작했다. 대선후보 때는 물론 윤석열정부 시기 내내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은 검찰에 대판 비판적인 시각을 줄곧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뜻은 민주당을 거쳐 법안을 통해 실현됐다. 물론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 보완수사권 문제를 두고 이견이 있고 중수청과 공소청을 어떻게 운영할지 세밀하게 구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보완 수사권을 존치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검사가 경찰의 기록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하면 부실 기소, 불기소 남발 등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주장의 배경이다. 또 검찰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개혁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기관이 비대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일각에서는 이름만 다른 ‘검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검찰이 정권의 칼로 기능했던 것처럼 다른 이름의 ‘칼’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걱정이다. 산적한 과제 후폭풍 남아 검찰은 꽤 오랜 시간 외줄 위에 서 있던 상황이다. 이정부가 그 줄을 끊으면서 검찰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검찰에 대한 경고는 늘 있었고 전조도 뚜렷했다. 이제 후속조치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사회가 시끄러워질 전망이다. 검찰 해체가 가져올 후폭풍은 국민에게 언제쯤 닿을 것인가.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