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승부수 던진 정몽준

“박원순 나와! 계급장 떼고 붙어보자” <서울시장>

[일요시사=사회팀]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MJ’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경선은 이혜훈 최고위원, 김황식 전 총리와 맞붙는 ‘빅3 매치’가 됐다. 현재로선 MJ가 여권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로 꼽히는 상황.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연대는 악재다. 야권 강자인 박원순 서울시장과 맞대결을 펼칠 경우 뜨거운 박빙이 예상된다. 정치적 마지막 승부수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 결과로 27년 정치생활을 마감하게 될지 아니면 차기 대권가도에 날개를 달지, 지켜봐야할 일이다.

 

 지난 2일, 백범광장 김 구 선생의 동상 앞에서 ‘MJ’가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졌다. 공식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여권경선은 이혜훈 최고위원, 김황식 전 총리와의 3자 구도 윤곽이 더욱 뚜렷해졌다. 그동안 말이 많았던 그의 서울시장 출마를 둘러싼 안개가 걷히면서 대결윤곽이 분명해졌다. 사실 MJ는 올해 초부터 서울시장에 출마할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겼지만 길어진 장고에 간만 본다는 흉까지 들었었다. 그러나 MJ는 자신의 지역구민들과 산행을 하는 등 지역구 의사를 경청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서울시장선거에 나서기 위한 명분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이제부터 6·4지방선거 서울시장 탈환을 위한 레이스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당선되면 ‘대박’
낙선하면 ‘쪽박’

앞서 MJ는 지난 26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시도당위원장 연석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제 고민 끝 행복 시작”이라며 당찬 시작을 예고했다. 이어 서울 우의동의 경전철 공사현장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재오 의원 출판기념회에서 기자들에게 “요즘 서울은 다소 침체하고 있다. 서울을 살고 싶은 도시, 사랑하는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출마 배경을 강조했다.

그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힘을 합쳐 주택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주택정책과 같이 가야 하는 것이 교통정책”이라면서 주택문제와 교통문제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울 것임을 시사했다.

서울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MJ는 경쟁 후보로 거론되는 김황식 전 총리에 대해서는 “김 전 총리가 판단해야 할 문제”라면서 언급을 피했다. 이미 출마선언을 한 이혜훈 최고위원에 대해서는 “저든 이 최고위원이든 시장이 되면 서울시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 강연을 마친 뒤 귀국해 10일 이후 출마선언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거론되고 있는 새누리당 후보들의 지지율은 MJ 35.4%, 김황식 전 총리 25.2%, 이혜훈 최고위원이 7.5%를 보이고 있다.

차기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MJ는 만약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임기 중 대선과 겹치게 된다. 이와 관련, MJ 측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정 의원은 2017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임기를 마치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전했다.

현재로서는 서울시장 도전이 코앞에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원론적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일각에서는 MJ가 과거부터 대권도전 의지를 나타냈기 때문에 서울시장에 당선되더라도 2017년 대선이 다가오면 결국 태도를 바꾸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MJ 측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관계자는 “다음 대선은 포기하고 시장에 당선되면 임기를 마치는 것은 물론 연임까지 이뤄 내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권 포기는) 정치인 개인 커리어로 놓고 볼 때는 손해일 수밖에 없지만 나이로 보나 현재 여당 인물군으로 보나 차기 대선 후보 1위를 달리고 있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MJ는 현역 의원 중 최다선인 7선 의원이다. 2002년 대선 후보였던 전력을 감안하면 서울시장에 뛰어든 것은 하향 지원인 셈이다. 그만큼 절실하다는 여당과 본인의 의지가 반영된 선택인 것으로 풀이된다. MJ 측 핵심 관계자는 “6·4 지방선거가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은 물론 향후 새누리당의 주도권에 중대한 분기점”이라며 “경선을 거쳐 본선인 민주당 소속 박원순 시장과의 대결에서 필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지율 상승세
“승산 있을 것”

홍준표 경남지사는 MJ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다면 박 시장과 겨뤄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거 MJ가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어려운 지역구를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선이 됐기 때문에 이같이 전망했다.


그러나 박 시장에 앞서 먼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이혜훈 최고위원이다. 인물 이혜훈보다는 그의 질문이 문제다. 이 최고위원은 줄곧 “대선을 나갈 사람이 서울시장 선거를 나오면 안 된다. 나올 거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해왔다.

서울시장 출마 선언 “일단 대선은 다음에”
정치생명 건 한 수…여야 양자대결 흥미진진

이와 관련해 세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첫째,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실제로 대권 후보 경쟁에서 이탈하는 것. 둘째,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고 당면한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후 대선이 다가왔을 때 적당한 핑계를 대고 다른 결심을 하는 것. 셋째,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지 않고 서울시장 선거를 치르는 것 등이다.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하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길을 택할 경우 유력한 차차기 대권주자가 될 수도 있지만 4년 후의 일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두 번째 길을 택할 경우 대선전에서 약점이 하나 생겨버린다. 세 번째 길을 택할 경우엔 당면한 서울시장 선거에서 약점이 생기게 된다.

사실 MJ는 대중적 인지도와 폭넓은 인기를 자랑하지만 재벌가 출신이라는 약점이 있다. 여기에 다른 약점까지 만들게 된다면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박원순 서울시장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내부 경쟁자는 이 최고위원만 있는 게 아니다. 다음 경쟁자는 김황식 전 총리다. 일각에서는 박심이 김 전 총리를 향해 있다고 본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의 박심은 ‘필승 인물’을 찾는 것 뿐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지방선거 결과에 가장 민감한 집단이 역설적으로 청와대인 것 같다”며 “지방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밀린다고 보고 필사적이다”라고 증언한다.

여권에서 현실적으로 서울시장 본선 경쟁력을 갖춘 사람은 이 최고위원보다는 MJ와 김 전 총리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결국 두 사람의 경선은 ‘재벌가 인사’라는 MJ의 약점과 ‘이명박 정부 사람’이라는 김 전 총리의 약점 중 어느 것이 일반 대중에게 더 악영향을 미칠지를 판별해보는 장이 될 것이다. 이 평가를 거쳐야만 고대하던 서울시장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마지막 경쟁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만만하지 않은 상대다.

지난 25일 MBC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야권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단일후보로 내세울 경우를 가정한 양자대결에서는 박 시장이 41.9%, MJ가 40.7%로 오차범위 내 초박빙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다.

앞서 MJ는 박 시장을 겨냥해 “서울의 인구가 1000만 명 밑으로 떨어지는 등 활기가 떨어지면서 걱정”이라며 “(박 시장은) 말로만 서민을 이용하는 정치인”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새누리당 출신으로서 (MJ의) 이런 말씀, 정말 시민들에게는 모독적으로 들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반박했다.

사실 MJ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패배할 경우 차기 대권가도와 더불어 정치인생에 치명적인 내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백지신탁제도…
돈이냐 권력이냐


그러나 MJ가 친박 주류의 지지를 받고 경선에서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 MJ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 때문이다. MJ와 박 대통령은 장충초교 동창이다. 당시에는 모르고 지냈지만 둘은 1964년 2월 초등학교를 함께 졸업한 동기동창으로 알려진다.

그러다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양재 테니스클럽에서의 교류였다. 사적으로는 친밀해 보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악연의 연속이었다. 과거 세종시 원안을 고집하던 박 대통령을 향해 미생지신(고지식함을 빗댄 표현)이란 고사성어까지 인용해 비판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원안 추진이 당론이라고 공언한 MJ가 소신을 바꿨다며 판단력에 오류가 있는 것이라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결국 MJ와 박 대통령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200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는 MJ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당내 경선이 치열해질수록 둘의 관계는 더 멀어졌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MJ는 지난 2011년 8월 펴낸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서 박 대통령과 얼굴을 붉힌 사례를 소개했다. 자서전에 따르면, 2009년 9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 취임 후 박 대통령과 국회 커피숍에서 회동한 적이 있다.

회동 후 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10월 재보선에서 박 전 대표(박 대통령)가 선거를 도울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을 받았고, 이에 MJ는 “박 전 대표도 마음속으로 우리 후보들이 잘되기를 바라시지 않겠는가”라고 답했다.

현대중공업 지분 문제 부각
‘백지신탁’그룹 지배력 상실


당시 보도가 난 후 MJ는 박 대통령의 항의 전화를 받았고, “화를 내는 박 전 대표의 전화 목소리가 하도 커서 같은 방에 있던 의원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는 바람에 민망했다”고 회고했다. 이외에도 몇 가지 일화가 더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친박 주류에서는 용꿈을 꾸고 있는 MJ가 차기 대선 주자로 급부상할 경우에 발생할 조기 레임덕을 우려하고 있다. 잠룡 속성상 현직 대통령과 마찰이 잦을수록 지지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사소한 충돌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장 빅매치를 앞두고 뒷말이 무성한 가운데,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인 MJ가 보유한 지분에 대한 백지신탁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백지신탁제란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 있는 주식을 처분하거나 대리인에게 위탁하고 간섭할 수 없게 하는 제도다.

그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 주식은 717만7769주(지분율 10.15%)로 26일 종가기준 약 1조6186억원에 달한다. 서울시장에 당선될 경우 공직자윤리법 주식백지신탁제도에 따라 직무와 관련성이 있는 보유주식은 매각하거나 백지신탁 해야 한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 평가액이 총 3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취임 1개월 내에 처분하는 것이 원칙이다. 직무 관련성은 안전행정부 산하 주식백지신탁 심사위원회의에서 결정된다. 현대중공업은 본사가 울산에 위치해 있고 선박·건설기계 제조 등 수출위주 업종을 주력으로 하고 있어 서울시와의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룹 계열사인 현대오일뱅크와 하이투자증권, 호텔현대 등은 서울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이에 대해 MJ 측은 내심 직무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판정되길 바라는 눈치다. 그는 지난달 말 방미 일정 이후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과의 만남을 소개하며 “재산이 50조인 블룸버그 전 시장도 심사를 받았지만 직무 관련이 없다는 결과를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만약 주식을 전량 매각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를 중심으로 한 현대중공업의 지배구조도 유지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수석부장에 대한 주식 증여도 불가능하다. 공직자 윤리법은 직계존속의 주식도 백지신탁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MJ가 보유 지분을 그룹 내 비영리 재단에 증여하는 방안이 유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아산나눔재단은 현대중공업의 지분 2.65%와 0.65%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긴장하는 정치권
뚜껑 열어봐야…

MJ는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맞선 노무현 대통령과 단일화에 나섰다가 결국 대통령후보 경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성급한 행보 때문에 높았던 국민적 지지도가 반토막나는 시련을 겪은 바 있다.

추락한 지지율은 울산에서 서울 동작구로 지역구를 옮기고 한나라당 대표를 맡으면서 다시 정상궤도로 올렸다. 더 큰 정치적 모험을 할 수 있는 내공을 쌓았다는 평도 나온다. 그가 직접적으로 밝힌 적은 없으나 최근 그의 행보를 보면 과거와 달리 진중하고 무거워 보인다.

MJ의 핵심관계자는 “서울시장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뒤 2022년에도 기회가 온다면 그때 대권에 나서는 가능성까지 닫아둘 이유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변화는 MJ의 말에서 느껴진다. 그는 출마를 결심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서울시장으로서 일할 기회가 생기면 봉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말을 통해 시정에 대한 지론을 짐작해 볼 수 있다. “88올림픽과 월드컵 때 서울이 많이 발전했고 서울이라는 브랜드가 알려졌지만 요즘의 수도는 다소 침체되고 있다고 느낀다”며 “서울이 단지 일자리가 있어서 사는 도시가 아니라 살고 싶은 도시, 사랑하는 도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도시개조·주택환경 개선·교통정책 개선에 나서겠다는 것이 서울시장에 나서는 그의 포부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정몽준 의원은?]

▲부산 출생
▲중앙고 졸업
▲서울대 경제학 학사, M.I.T경영대학원 석사, 존스홉킨스대학교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대한축구협회 회장
▲FIFA(국제축구연맹) 부회장
▲2002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FIFA 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FIFA 명예 부회장
▲제13∼19대 국회의원(7선)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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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