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일가 항소 노림수

40억 다 내라고? 1원이라도 깎는다!

[일요시사=사회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와 처남 이창석씨가 1심에서 수십억원의 벌금을 맞은 뒤 나란히 항소해 눈길을 모은다. 검찰은 이들이 자진납부한 추징금 외에도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숨겨놓고 있다며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재용씨 등은 "벌금을 낼 돈이 없다"며 팽팽히 맞서는 상황. 이들의 항소는 단순한 시간벌기일까, 아니면 노림수가 있는 고도의 책략일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50)씨와 처남 이창석(63)씨가 거액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지난 25일 법원에 따르면 재용씨와 이씨의 변호인은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부장판사 김종호)에 지난 19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추징 작업 박차

같은 날 검찰 역시 이들에 대한 항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피고인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형량과 벌금 액수가 적다고 판단했다"며 항소 이유를 밝혔다. 따라서 재용씨와 이씨의 벌금 납부는 항소심 선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미뤄지게 됐다.

앞서 이들은 지난 2006년 경기 오산시 양산동 토지 28필지를 445억원에 매각하면서 다운계약서를 작성해 양도소득세를 허위로 신고하여 27억7100여만원의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용씨 등은 28필지를 토지대금 325억원, 임목비 120억원으로 각각 나누어 매매한 것처럼 계약서를 꾸몄고, 거래 과정에서 임목비를 제외한 가격으로 토지를 넘긴 것처럼 조세당국을 속였다.

당초 검찰은 이들이 토지를 585억원에 거래하고도 계약가를 445억원으로 낮춰 신고했다는 의심을 했다. 하지만 심리 과정에서 실제 매매대금이 445억이었다는 재용씨 측의 주장을 받아 들여 동일한 내용으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법원은 재용씨 등이 임목비를 허위로 계상해 거액의 양도세를 포탈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재용씨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 이들에게는 벌금 40억원이 나란히 부과됐다.

선고 직전 재용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이) 고액의 벌금을 낼 수 없는 처지"라며 임목비 산정과 관련한 추가 심리를 요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변호인이 제출한 입증 방향과 무관하게 이 사건의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재용씨 측 요구를 기각했다.

재판 과정에서 이씨 측 변호인은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를 위한 조사 과정에서 (조세 포탈이) 밝혀졌고, (전두환 일가가) 추징금을 전액 납부키로 한 만큼 양형에 반영해 달라"고 읍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특별히 양형에 참작할 사유는 되지 않는다"며 일축했다.

23일을 기준으로 전 전 대통령이 내야 할 추징금 2205억원 중 현재까지 집행된 돈은 모두 955억원이다. 같은 날 서울중앙지검 전두환 일가 미납추징금 특별환수팀(팀장 노정환 부장검사)은 추징금 집행을 위해 확보한 책임재산 1703억원 중 422억원을 환수했다고 전했다. 아직까지 거둬야 할 미납 추징금만 1000억원이 넘는 셈이다.

판결 직후 재용씨는 "추징금이 성실하게 납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변호인과 상의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항소로 재용씨의 '진정성'은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재용씨의 항소 배경을 놓고 여러 추측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1심 선고 직후 복수 언론은 "재용씨가 벌금 납부 대신 교도소 노역을 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다. 그간 재용씨는 "부친의 추징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벌금을 낼 돈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사법당국은 "재용씨 등이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노역이라도 시키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전재용·이창석 집유 선고 후 항소
"벌금 낼 돈 없다" 또 버티기 돌입
단순 시간끌기? 고도의 책략?

그런데 현행법상 노역은 3년으로 제한돼 있다. 벌금 40억원을 1000일 기준으로 분할하면 일당 400만원 상당의 노역이 된다. 일반적인 노역형은 일당 5만원으로 계산된다. 그리고 재용씨의 경우는 벌금을 완납한다고 했을 때 무려 250여년을 일해야 한다. 이러나저러나 상식을 벗어난 형벌이 되는 셈이다. 특히 다른 범죄자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했을 때 재용씨가 노역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재용씨는 진실로 벌금을 낼 돈이 없어서 항소한 것일까. 이를 두고 검찰과 재용씨 측의 주장은 엇갈린다.

검찰은 "무기명 채권 등을 추적한 결과 전두환 일가가 자진 납부한 추징금 외에도 수백억원대의 숨겨놓은 재산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전두환 일가에 대한 강도 높은 압박인 셈이다.

하지만 재용씨는 "저는 들은 바 없고, 아는 바도 없다"며 '숨겨놓은 재산'이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재판 과정에서 재용씨와 이씨는 포탈된 세액을 납부하기 위해 변호사에게 재산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이들이 갚은 돈은 13억원으로 전해진다. 또 재용씨 등은 "나머지 재산은 모두 압류돼 있어 은닉 재산은 있을 수 없다"고 항변한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파산 신청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던 장남 재국씨조차 은닉한 미술품이 추가로 확인되는 걸 보면 재용씨의 진술은 다분히 신빙성이 의심된다.

검찰은 지난 23일 재국씨로부터 자진납부 형식으로 제출받은 미술품 44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두환 일가가 1703억원 상당의 책임재산을 내놓은 것과는 별개로 발견된 재산이다.

검찰은 경매회사와 화랑 등을 상대로 일가의 거래내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재국씨가 과거 매각을 시도한 미술품들이 현재까지 거래되지 않은 사실을 파악했다. 재국씨는 검찰의 추궁이 이어지고 나서야 숨겨놨던 미술품을 꺼냈다. 검찰이 확보한 미술품 경매가는 최소 5억원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일가가 반납한 책임재산 외의 숨겨둔 재산이 발견됨에 따라 재국씨 역시 따로 은닉한 재산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아울러 '전두환 비자금'의 관리인인 이씨 역시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넘겨받은 돈이 최소 2000억원으로 알려진 만큼 "40억원을 납부할 수 없다"는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번 항소로 급한 불은 껐지만 재용씨 등은 또 다시 법정에서 검찰과 진실을 다퉈야 할 처지에 놓였다. 검찰 한 관계자는 "(전씨 등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주장할 것이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즉 향후 재판 과정에서 재용씨의 숨겨진 범죄 사실이 드러나 추가 기소될 확률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재산 더 있나

검찰의 입장과는 반대로 재용씨 등은 향후 벌금액을 낮추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재용씨는 지난 2004년 167억 상당의 채권과 관련한 조세포탈 사건 당시 벌금액을 낮춘 전력이 있다. 대법원까지 간 뒤 파기 환송된 이 사건은 서울고법에서 73억5500만원의 채권만 '전두환 비자금'으로 인정돼 재용씨 입장에서는 득을 봤다. 그러나 검찰의 추징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력한 지금, 재용씨의 노림수대로 재판이 흘러갈지는 지켜볼 일이다.
 

강현석 기자<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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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