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에 빠진' 택시기사 살인사건 전말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4.02.05 09: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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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죽고 나 죽은' 의문의 죽음

[일요시사=사회팀] 택시기사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 자살했다. 경찰은 이 택시기사가 자신의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뜻밖의 연결고리가 드러났다. 분신 직전 이 택시기사가 "여자를 죽여 땅에 묻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 광주·전남 일대에는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24일 전남 나주 다도면 덕동리 일대가 발칵 뒤집혔다. 살해된 여성의 시신을 찾기 위한 경찰의 수색작업으로 조용했던 마을이 일대 소란을 겪었다.

오전 8시부터 여성의 시신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저수지와 인근 야산에 경찰력이 대거 투입됐다. 강력계 형사들과 기동대 대원 300여명은 현장을 분주히 누볐고 특공대 대원 4명은 잠수복을 입고 물과 뭍을 쉼 없이 오갔다. 또 공중에서는 헬기를 동원한 수색작업이 병행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오전 10시께 저수지 인근에서 사람의 살점과 혈흔을 발견했다. 또 1시간30분여 뒤에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풀숲에서 여성용 파우치 가방을 발견했다. 그러나 살해된 여성의 시신은 오전 내내 발견되지 않았다.


"땅에 묻었다"


수색작업이 오후로 넘어가자 경찰은 저수지 수색을 강화하기 위해 119에 지원을 요청하는 한편 전문 잠수부들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하수구 인근에서 '시신을 찾았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후 2시45분께 일이었다.


하수구 인근 풀숲에서 발견된 시신은 땅에 묻혀있었고 낙엽에 덮여 있었다. 시신의 목과 뒷머리 부위에는 각각 흉기에 찔린 흔적과 둔기로 맞은 것으로 보이는 상처가 있었다. 경찰은 황급히 시신을 수습하고 수색작업을 종료했다.

경찰이 수색작업을 통해 발견한 가방과 청구서·신용카드·파손된 휴대전화는 모두 A(49)씨의 것으로 판단됐다. 전남 함평군 문장면에서 술집을 운영하고 있던 A씨는 이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누가 A씨를 죽인 것일까.

같은 달 23일 오후 10시40분께 광주 서구 덕흥동에 있는 한 택시회사 주차장에서는 이 회사 소속 운전사 정모(48)씨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정씨는 분신을 말리기 위해 나온 한 동료에게 "잘 있으세요, 잘 사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불을 붙였다고 한다. 현장에 있던 그의 지인은 "정씨가 고통을 잊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

놀란 동료들은 소화기를 가져와 급히 불을 껐다. 하지만 정씨가 입은 화상은 심각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는 응급처치 후 서울의 한 병원으로 정씨를 옮겼다. 그러나 정씨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치료를 받던 정씨는 사고 하루 만인 24일 오후 사망했다.

정씨는 분신 전 회사 한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괴롭다. 차가 더러워서 미안하다. 휘발유를 뿌리고 죽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을 맡은 경찰은 최초 정씨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봤다. 그런데 정씨 가족들로부터 뜻밖의 진술이 나왔다. 사고 당일 오후 정씨가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경찰이 확보한 진술에 따르면 같은 날 오후 5시께 전남 나주에 있는 할머니 집에 간 정씨는 삽을 가지고 나간 뒤 1시간여 만에 돌아왔다. 할머니와 만난 정씨는 "여자를 죽인 뒤 땅에 묻었다. 아버지를 불러 달라"고 말했다. 놀란 정씨의 아버지(73)는 아들에게 "네가 살인을 한 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정씨는 아무 대답 없이 큰절을 하고 집을 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광주, 시간은 오후 10시께였다.


경찰은 가족들의 진술을 토대로 정씨가 몰던 택시를 확인했다. 그러자 택시 조수석과 뒷좌석, 문에서 엄청난 양의 혈흔이 발견됐다. 정씨의 자백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몸에 휘발유 뿌리고 자살…그는 왜?
분신 전 내연녀 살해·암매장 시인
범행 이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정씨에 의한 살인사건으로 수사를 전환한 경찰은 정씨가 탔던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했다. 영상분석 결과 정씨는 사건 당일 오후 4시께 덕동리에 있는 한 저수지에서 차량을 40여분간 정차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여러 정황상 저수지 인근에 시신이 유기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사고 다음날 아침 수색팀을 가동했다.

또 경찰은 정씨가 쓰던 신용카드 사용내역을 근거로 정씨가 사건 직전 한 40대 여성과 점심을 먹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 40대 여성이 바로 숨진 A씨였다.

A씨는 23일 오후 광주 광산구 우산동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정씨와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이들은 12시30분부터 2시간가량 이 식당에 머물렀다. 생전 A씨가 외부로 목격된 장면은 이게 마지막이다. 그렇다면 A씨는 왜 정씨와 함께 있었던 것일까.

정씨는 1달 전 지인으로부터 A씨를 소개받은 뒤 만남을 가져왔다. 이들은 지난 19일과 20일에도 광주 광산구에서 만나 같이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정씨는 이혼한 상황이었으며, A씨의 자택은 광주에 있었다고 한다. 둘의 관계에 대해 알려진 건 여기까지다. A씨와 정씨 모두 세상을 떠나 지금은 답을 줄 사람이 없다.


둘은 무슨관계?


A씨의 시신은 일부 훼손된 채 발견됐다. 정씨가 한 자백처럼 정씨는 A씨를 살해한 뒤 유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씨가 A씨에게 어떤 원한을 갖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뭔가 (의견이) 맞지 않아 때렸는데 죽어버렸다"는 설명이 끝이다. 때문에 이번 살인사건의 정확한 동기는 유력한 용의자의 사망으로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됐다.

경찰 관계자는 "정씨와 A씨가 저수지를 찾았다가 몸싸움과 말다툼을 벌이던 중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매장까지 한 것 같다"며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마무리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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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