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초대석> '가짜 조용필' 주용필의 진짜인생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4.01.27 1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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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내 낸다고 죄인은 아니죠"

[일요시사=사회팀] 나훈아 모창가수인 너훈아(본명 김갑순)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미테이션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너훈아와 함께 전국 곳곳을 누볐던 주용필(본명 이일노)이 증언한 업계의 '빛과 그림자'를 비춰봤다.




지난 2007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는 자신이 모창가수임을 밝히지 않고 가수 박상민인 것처럼 속여 박상민에게 경제적·정신적 손해를 끼친 혐의(부정경쟁방지법 위반)로 기소된 임모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런데 임씨와 같은 모창가수가 모두가 죄인은 아니었다. 법원도 모창가수가 모창으로 돈을 버는 건 죄가 아니라고 했다. 관련한 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유명 가수를 모방해 외양을 유사하게 꾸미고 모창을 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이미테이션 가수 활동은 유명 가수를 접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며, 절묘한 모방 자체로 그것을 보고 듣는 사람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것으로 그 활동이 금지돼 있다고 볼 수 없다."

짝퉁이란 낙인

그러나 우리 사회는 스타를 흉내 내는 이미테이션 연예인에게 '짝퉁'이란 낙인을 찍었다. 이들은 죄인은 아니지만 평생을 편견이 만든 감옥에 갇혀 지냈다.


지난 12일 숨을 거둔 고 김갑순은 그의 가수 인생 20여년을 김갑순이 아닌 너훈아로 살았다.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잡초'처럼 살았던 김갑순은 끝내 죽어서야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생전 비루한 현실에도 '가수'란 직업을 천직으로 여겼던 김갑순, 짝퉁이란 손가락질에도 '노래'만은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삶은 모창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바꾸는 씨앗이 되고 있다.

너훈아와 더불어 1세대 모창가수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주용필(조용필)은 얼마 전 타계한 '형님'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지난 1992년 결성한 '이미테이션가수협회' 회장을 역임한 그는 "이제야 사람들이 형님(너훈아)을 알아보는데…"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모창가수는 크게 두 부류가 있어요. 자신의 앨범을 갖기 위해 이름을 알리는 과정에서 모방을 선택하는 가수가 있다면, 타고난 생김새나 목소리가 비슷해 이미테이션 업계에서 최고를 꿈꾸는 가수가 있습니다. 형님은 우선 업계에서 최고가 돼야 한다고 말했고, 언젠가 자신의 앨범을 갖겠다는 꿈이 있었어요. 언론에 이름 한 줄 나간 것만으로 아이처럼 기뻐했던 형님인데 요즘과 같은 관심을 생전에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창립 당시 50∼60명에 달했던 이미테이션가수협회 회원 수는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반 토막이 났다. 현숙이(현숙), 방쉬리(방실이), 주연미(주현미) 등 업계에서 나름 인지도가 높았던 가수들도 과거에 비하면 행사 섭외가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너훈아' 사망 후 이미테이션 빛과 그림자 관심
사회적 편견 속 2000년 들어 섭외 현격히 줄어

 너훈아도 일거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모창가수의 인생은 원조가수의 인생을 닮아간다'는 말처럼 원조가수인 나훈아가 부침을 겪으면서 모창가수 너훈아를 찾는 사람도 급격히 줄었다.


"한창 때는 하룻밤에 서너 개의 스케줄을 소화해야 할 정도로 일이 많았어요. 당시에는 박남정, 심신, 김완선 등을 모방한 연예인이 함께 활동했죠. 또 형님과 저는 지방에서 수요가 많았는데요. 진짜 가수들이 갈 수 없거나 가지 않는 곳은 우리가 다 갔습니다. 그런데 저나 형님이나 진짜 가수들의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한동안 일이 없다시피 했어요. 그래도 전 조용필 형님의 새 앨범이 나오면서 숨통이 좀 트였는데요. 그때 형님(너훈아)이 전화를 주셔서 잘하라고 한 건 잊을 수가 없어요."




예나 지금이나 모창가수에게는 매우 낮은 개런티가 지불되고 있다. 대개의 경우 원조가수의 10분의 1 가격이 그들의 보수다. 하지만 그나마도 행사를 주최한 측에서 돈을 떼먹는 경우가 꽤 많았다고 한다.

"요즘은 스타급 가수도 힘들다고 난리지만 나이트클럽이 호황일 때도 우리가 돈을 많이 번 건 아니었어요. 주면 주는 대로 받는 식이었고, 심지어는 '너 같은 짝퉁이 무슨 가수냐'면서 약속을 뒤집기도 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무대가 소중했으니까 참았고, 그렇게 무대에 오르면 이번엔 관객들이 '어디서 가짜를 데려왔느냐'고 시비를 걸었죠. 정말 외로웠습니다."

간혹 닮은꼴 스타로 TV에 나가도 주변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의 가족들마저 "제발 방송에 나가지 마라"고 만류했다. 부끄럽고 창피했던 것이다.

"방송을 마치고 나오면 사람들이 제 얼굴을 봐요. 그리고 비웃어요. 정말 불쾌했죠. 노래를 들을 때도 '얼마나 똑같이 하나 보자' 이렇게 팔짱을 끼고, 무시하기 일쑤고요. 이러다보니까 한 번은 형님이 '우리가 사는 동안 아무도 우리의 삶에는 관심을 갖지 않겠지'라고 한 적이 있어요. 마음이 아팠죠. 형님이나 저나 우리 모창가수들은 정말 최고가 되기 위해 스타를 연구하고, 분석하고, 연습 또 연습해서 노래하는 거거든요. 박수 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었는데 그때는 참 대중의 마음을 열기 힘들었어요."

모창가수들은 자신이 스타를 대신해 소외된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보람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래서 이들의 무대에는 한계가 없다. 교포단체가 나훈아를 찾으면 외국으로 가고, 산골에 사는 할매들이 조용필을 찾으면 그리로 간다. 주용필은 "자꾸 대중과 담을 치려는 연예인들의 권위의식을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까운 일본만 봐도 원조가수와 모창가수가 함께 무대에 서는 일이 많아요. 그런데 우리는 정말 최근에야 '히든싱어'와 같은 프로그램이 생긴 거고요. 제가 강원도에서 3년 동안 노래교실을 연 적이 있었는데요. 주민들이 정말 좋아하는 거예요. '우리가 언제 가수를 만나겠냐'면서 제 손도 잡고, 같이 웃고. 또 마을회관이고 논밭이고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이 모이면 그곳이 곧 무대가 됐죠. 톱스타가 거대한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한 몸에 받았다면 우리는 똑같은 소재로 우리를 필요로 하는 무대를 가리지 않은 겁니다."

주용필은 "조용필을 닮기 위해 그 누구보다 노력했고, 피나는 연습 속에 비로소 음악을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제는 모창가수가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성노'로 활동 중인 그는 최근 발표한 신곡 '오직 나만'을 소개하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멸시, 무시, 편견…

"주용필이란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성노도 있는 겁니다. 모창은 결국 자신의 장점을 찾기 위한 과정이거든요. 개그맨 박명수나 방송인 조영구도 시작은 모창이었잖아요. 우리도 어엿한 가수로서 노력하고 있으니까 넓은 마음으로 지켜봐 주셨으면 해요."

지난해 12월24일 너훈아는 암 투병으로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황에서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 모두가 말렸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진짜 나훈아는 이런 데를 못 오니 나를 보며 대리만족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이미 와 버린 그와의 이별이지만 '진짜'를 몰라봤던 사람들은 무시로 너훈아가 그리울 것이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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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