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르포> 연초 물만난 ‘복 아줌마’ 따라가보니…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1.13 11: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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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짱끼고 가슴 부비적…대담한 미시들의 위험한 대시

[일요시사=사회팀] 길거리를 걷다보면 ‘복이 많다’며 다가오는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번화가나 지하철 입구에 특히나 많다. 과거부터 꾸준히 성행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미시’로, 요즘에는 그 수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이제는 외모가 출중한 아가씨를 동원하기도 한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위해 ‘복’을 떠드는 걸까. 그 속사정을 알기 위해 한 미시를 따라가 봤다.




지난해 30일,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서울의 한 번화가를 찾았다. 인근 지하철역 입구에 다가서자 ‘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복이 많다’며 접근하는 ‘복 전도사’ 미시들은 사냥감을 찾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 하이에나처럼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타깃을 찾고 있던 이들은 이내 기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익숙한 멘트가 귀를 때려 박았다. “얼굴에 복이 많으세요.”

‘복…복…복…’
그녀들의 도발

역시나 어김없이 들려온 소리. 복이 많다고 한다. 정말 얼굴에 복이 많아서 그럴까.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위해 낯선 이들에게 연신 복을 외치는 걸까. 그 ‘복’소리의 진실을 파해치고자 미시를 따라갔다. 미시는 “얼굴에 복이 많다”며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건 하늘이 정한 것”이라며 깊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자신을 도인이라고 설명했다.

카페로 이동한 후 미시는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커피 값 계산을 요구하며 유유히 뒤돌아 걸어갔다. 이내 의자에 앉아 종이 한 장과 검은 펜을 꺼냈다. 본격적인 ‘복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미시는 우선 만남 자체에 크 의미를 부여했다. 미시와 기자의 만남은 하늘이 내려줬다는 것. 보통 사람이었다면 무시하며 그냥 지나쳤겠지만 그렇지 않았기에 매우 특별한 만남이라고 강조했다.

“평소였으면 그냥 갔겠죠? 그런데 왜 저를 따라왔을까요? 왜냐하면 오늘은 하늘이 내려준 날이기 때문이에요. 운명이라는 거죠.”


미시의 외모는 단정했다. 깔끔한 옷차림에 진지한 말투를 보였다. 살아있는 눈빛에서 프로페셔널한 면을 볼 수 있었다. 그저 장난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천천히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만남 자체에 대한 의미 부여를 마치고 본격적인 ‘복 분석’에 나섰다. 미시는 기자의 얼굴과 손금 등을 보며 인생을 점치고 과거, 현재, 미래를 풀어냈다.

“손금을 보니까 조상님이 생명줄을 이어줬네. 조상님께 감사해야겠어. 그리고 얼굴을 보니 돈이 많이 모이겠네. 근데 지금은 힘들어 하고 있어. 고민도 많고.”

“도 아십니까”무표정 도인들 없어지고 
“차 한잔해요”미모의 여성들 거리 활개

그녀의 펜은 쉴세 없이 움직여 어느새 흰 종이는 깜지로 변했다. 그녀의 화법이 진지했던 탓일까.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가슴에 와 닿았다.

“요즘 하는 일이 잘 안 되지?”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지?” “고민이 많네” 마치 기자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 감정에 호소해 무언가 설득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쉽게 흔들릴 수 있는 감정에 기대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경계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녀는 기자의 이름과 나이를 묻더니 복잡한 한자어를 종이에 휘갈기기 시작했다.


“큰 복을 타고 났어. 근데 그 복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있어. 복이 지나가는 맥이 꽉 막혀있어서 그래.”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복을 받고 태어났다는 것. 하지만 복을 가로막는 장애물 때문에 현재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복이 제대로 내려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원한 있는 ‘조상탓’이라며 조상들의 ‘한’이 복을 가리는 막이라고 했다.

복이 뭐길래…
이렇게 붙잡나

그녀는 이내 손을 꽉 붙잡더니 “손이 차갑다”며 손이 차가운 이유가 무엇일 것 같냐고 질문했다. “겨울이니까요”라는 기자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조상 중에 동상에 걸려 죽은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다소 황당했다. 그녀의 주장은 간단했다. 조상 중에 추위에 떨다 얼어 죽은 사람의 한이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 엉뚱한 논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과거에 원한을 품고 죽은 조상의 영혼이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며 ‘복을 타고난 후손’을 ?아다닌다는 것이었다. 믿을 후손이 본인뿐이기 때문에 조상들이 혼이 들러붙는다는 것. 이런 식으로 ‘선택된 후손’임을 강조하며 억울한 조상들의 원한을 풀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녀에 따르면 부모님이나 가족이 아픈 이유도 억울하게 죽은 조상의 영향이라고 한다. 즉 ‘나’ 자신을 둘러싼 모든 작용이 조상과 연관이 있다는 것. 역설적이지만 복을 타고났기 때문에 조상의 혼이 끊이지 않고 붙는다는 것이다. 믿을 후손은 하나기 때문이라고. 타고난 복은 많은데 기대려는 조상들의 혼 때문에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복이 이렇게나 많은데, 지금 이 복을 누리지를 못하고 있어. 왠지 알아? 조상들이 이걸 막고 있어.”

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효’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지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체도 효의 일종이라고 했다. 예의바른 사람이기에 의심치 않고 자신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의와 효에 대한 칭찬 세례는 계속됐다. 그리고 복을 받는 맥이 막혀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참 잘될 사람인데, 복이 막혀 있어서 어떡해…눈물이 나네…”

그녀는 몇 방울의 눈물까지 흘렸다. 답답했는지, 자신의 가슴을 치며 큰 한숨을 쉬었다.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당신 복이 너무 아까워, 이 복을 뚫어줘야 되는데…”

“그럼 조상들로부터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그건….”

카페로 이동해 손 꽉 잡고
조상 들먹여 불안심리 조장
결국 제사 핑계로 돈 뜯어

이때부터 본론이 시작됐다. 지금까지의 말은 포장에 불과했다. 이제 내용을 소개할 차례였다. 어떻게 해야 복을 제대로 받을 수 있냐는 질문에 그녀는 환한 미소를 보이며 “역시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라며 “당신은 말 귀 알아듣는 사람이니까 끝까지 잘 들을 거라 생각 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말하는 해결책은 간단했다. 막혀있는 맥을 뚫기 위해서는 조상들께 ‘제사’를 지내야한다는 것이었다. 제사를 통해 억울한 조상들의 한을 풀어줘 막혀있는 맥이 풀려 선택된 참 복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를 따라오면 돼. 방법은 간단해. 제사 지낼 장소가 있으니까 같이 가자.” 기자의 이름과 사주를 적은 종이를 불태우고 제사를 지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 제사까지는 좋았다. 그냥 해줄 리는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제사 지내는 비용이 얼만데요?” 이 질문에 미시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얼굴을 붉히며 다소 격양된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이 사람아. 당신의 인생이 걸린 문젠데, 지금 돈이 중요해?”


“아, 그럼 공짜로 제사를 준비해주세요?”

“아니…이 답답한 양반아… 내가 지금까지 뭐라고 했나…”

그녀는 돈 이야기가 나오자 민감하게 반응하며 회피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다시 펜을 들고 설명을 이어갔다.

“오늘은 운명적인 날이야. 무조건 제사를 드려야 돼. 오늘을 놓치면 당신은 평생을 후회하게 될 거야. 제사 한 번으로 인생이 180도 변할 거야. 이렇게 중요한 날에 돈이 무슨 소용이요?”

이런 비슷한 말들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제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순 없었다. 기자도 반복적으로 비용을 물었다. 그러자 회피만 하던 그녀의 입에서 돈 이야기나 나왔다. 제사 비용으로 ‘30만원’을 달라는 것. 너무 황당했다. 그리고 ‘너무 비싸요’라고 딱 잘라 말했다. 이때부터 그녀의 강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였다.

“오늘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니까. 그깟 30만원이 중요한가? 술 좀 덜 먹으면 될 것 아닌가? 당신 인생이 걸린 문제야.”

“30만원이 없어요.”

“그럼 25만원에 해줄게.”

그녀는 5만원 씩 5만원씩 가격을 내렸다. 절실해 보였다.

“당신 아까 커피 뭐로 샀어? 카드로 샀지? 카드도 돼.”

막힌 복 뚫어주는
“제사 지내세요”

구린내가 팍팍 났다. 끝끝내 거절하고 나가려고 하자 또 한 번 ‘오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기자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리고 번호를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럼 언제 시간 돼? 시간 될 때 제사 지내줄게.”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던 그녀. 굳이 오늘이 아니어도 다른 날에 제사를 지내도 된다며 말을 바꿨다. 바뀐 태도를 지적하자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뒤돌아서서 카페를 나왔다. 그녀는 종이와 펜을 들고 기자를 쫓아왔다. 그리고 자신이 근무하는 ‘사무실’로 가자며 애원했다.

“정말 너무 아까워서 그래. 당신 얼굴에 복이 이렇게나 많은데, 복이 피질 못하고 있다고….”

무시하고 돌아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역시나 역 주변에는 그녀와 같이 영업(?)을 하는 미시들이 줄지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미시들의 손길을 외면했다. 그러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건수 하나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순진한 사람 하나만 제대로 잡으면 수 십 만원 버는 건 일도 아닌 것이다.

“손이 왜이리 찬지 알아?”

“겨울이니까요”

“아냐, 얼어 죽은 조상이 있어서 그래”

이처럼 ‘복 장사’를 하는 미시들은 전국적으로 퍼져있다. 조직적으로 뭉쳐 다니며 타깃을 ‘복’으로 유혹한다. 간단한 스킨십은 영업의 시작으로 보인다. 이들이 이렇게 양성적으로 번화가를 돌며 활동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장사’가 잘 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만큼 순진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순진한 사람의 감정을 흔들어 결국 제사까지 이르게 하는 것. 이렇게 돈벌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사기’라는 걸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낯선 미시들이 ‘복’짜만 꺼내도 바로 거절한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그 수법이 조금 변했다.

조상으로 영업하는
거리의 사기꾼들

직장인 A씨는 퇴근길에 뒤에서 ‘복∼’하며 다가오는 여성들을 마주했다. A씨는 순간 짜증났다. 그런데 다시 뒤를 돌아보니 평소에 부딪혔던 미시들이 아닌, 아가씨들이었던 것이다. 그는 순간 설레임을 느꼈다. 낯선 여성이지만 젊고 예쁜 아가씨들이었기 때문이다. 사기라는 걸 의식하면서도 아가씨들과의 대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A씨는 그녀들과 함께 카페로 이동해 긴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아가씨들은 제사비용 50만원을 요구했다. 이처럼 최근에는 젊은 여성들까지 거리로 나서 ‘복 사기’를 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얼마나 예쁘길래…

40대 꽃뱀 아줌마가 20대 명문대생 유혹

중국 베이징의 한 중년 여성이 나이와 학력 등을 속이고 17살 연하의 명문대생을 유혹해 사기결혼에 성공한 드라마 같은 사건이 있다. 일명 ‘꽃뱀 아줌마’로 통하는 올해 나이 41세의 쉬샤오윈씨는 지난 2월 지인을 통해 자신보다 17살이나 어린 26세의 칭화대학 대학원생 리모씨를 소개 받았다.

당시 쉬씨는 자신의 나이는 26세로 칭화대 박사과정을 밝고 있으며, 아버지는 전 중국UN대사, 오빠는 국제경찰로 소개했다. 나이완 다르게 늙어보이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는 갑자기 10kg 이상 살이 찌는 바람에 외모가 조숙해졌다고 둘러대는 뻔뻔함까지 보였다. 때문에 리씨는 쉬씨를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나누며 호감을 갖게 됐고, 결국 이들은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후에도 쉬씨는 리씨에게 미국 명문대로의 유학을 제안하는 등 자신의 재산과 가문을 자랑하면서 이씨에게 환심을 샀고 둘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급기야 이들은 결혼을 약속하게됐다. 하지만 쉬씨는 이씨에게 여러 차례 돈을 요구했고 그렇게 5만위안(850만원)을 뜯어냈다. 

이 같은 쉬씨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이씨는 그녀의 학적을 확인하고 주변조사를 하면서 자신이 속은 것을 알게됐다. 결국 이씨는 쉬씨를 공안(경찰)에 신고했다. 공안은 쉬씨는 푸단대학을 나온 명문대생이었지만 이미 2번의 사기죄로 복역한 전과가 있다고 전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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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