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불편한 '정치인펀드'의 비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4.01.06 11: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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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고 치는 불법정치자금 모금 통로?"

[일요시사=정치팀] 지방선거의 해가 돌아왔다. 이맘때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돈'이다. 선거를 치르는 데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정치인들의 고민을 크게 덜어준 제도가 있다. 바로 '정치인펀드'다. 시민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투명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한다는 정치인펀드. 그 실체를 들여다봤다.




올해는 빅3선거 중 하나인 지방선거가 열리는 해다. 선거가 임박해오면 정치인들은 돈 걱정에 시달린다. 선거를 한번 치르는 데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손해 없다?

이러한 정치인들의 고민을 크게 덜어 준 것이 바로 '정치인펀드'다. 정치인펀드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유 전 장관은 지난 2010년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하면서 펀드를 만들어 무려 41억원을 모았다.

정치인펀드는 후보자가 선거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일반 국민들로부터 돈을 빌려 쓴 뒤 선거가 끝나고 이자를 더해 갚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정치인펀드는 선거가 끝나면 후원자들에게 빌린 돈을 갚는다는 점에서 정치인에게 조건 없이 제공하는 정치후원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치인펀드는 후보자들이 본인을 지지하는 시민들로부터 십시일반 선거자금을 마련하면서 선거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고 검은 돈이 개입될 여지를 크게 줄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조직 및 자금력이 부족한 정치 신인과 무소속 후보들에겐 가뭄의 단비 같은 새로운 정치자금 조달 수단이다. 게다가 선거 출마자는 펀드 모금을 홍보하며 자연스럽게 이름을 많이 알릴 수 있고, 더 많은 지지자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정치후원금(1인당 1회 500만원, 1년 2000만원 제한)과 달리 투자금액에 제한도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특정후보를 지지할 수도 있고, 돈도 돌려받으니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다. 물론 그렇다고 큰 수익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정치인펀드를 개설한 후보자들이 내세운 수익률은 대부분 연 6% 정도로 은행 예금금리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지만, 실제로 돈을 빌리는 기간은 약 3개월이므로 이자 부담이 낮아진다.

정치인펀드의 경우 시중은행 등 금융기관의 통상적인 이자율과 비슷하게 하면 문제가 없지만 이보다 낮거나 높은 이자율을 설정하면 정치자금법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15% 이상 득표 시엔 법정선거비용이 보존되므로, 원금 손실 위험도 비교적 적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 2011년 10·27재보선에서 '박원순펀드'를 결성해 38억5000만원의 선거자금을 47시간 만에 모았다. 특히 대선이 열렸던 지난 2012년엔 정치인펀드를 통해 모은 자금만 1000억원대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야말로 정치인펀드의 전성시대인 것이다.

대부분 상환요구 안해, 정치후원금?
후보자가 '먹튀'해도 보상 길은 막막

따라서 올해 지방선거에서도 수많은 정치인펀드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치인펀드가 선거 때마다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그 부작용도 우려된다. 우선 정치인펀드는 전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는 우리나라만의 제도다. 최근에서야 투명한 선거자금을 모으기 위한 대안으로 급부상하면서 아직 이를 규제할 마땅한 법이 마련되지 못한 것이다. 금융계 일각에선 정치인펀드가 '유사수신 행위에 관한 법률(인가 받지 않고 투자금을 모으는 행위)'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안정성에도 의문이 일고 있다. 선거 때마다 야권단일화 바람이 불면서 후보들이 중도사퇴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대선펀드를 모집하던 중 출마 포기선언을 했다. 선거 도중 후보가 사퇴하면 선거비용을 보존 받을 수 없다.




후보자가 선거에서 15% 이상을 득표하지 못했을 경우도 문제가 된다. 선거에서 15% 이상을 득표하면 법정선거비용이 전액 보존되고 10% 이상일 경우 반액이 보존된다. 그 이하는 선거비용을 보존 받을 수 없다. 후보자가 선거비용을 보존 받지 못해 지급 불능 상태에 처하면 펀드투자자금을 회수할 길이 막막하다.


만약 후보자가 자금부족을 이유로 펀드 환급 불가를 선언해도 이를 처벌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 후보자가 돈을 갚지 않을 경우에는 민사 소송 등 법적 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른바 '먹튀'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또 소액투자자의 경우 사실상 지지후보를 위한 기부였다고 생각하는 만큼 투자금의 반환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펀드자금을 모은 정치인은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은 셈이 된다.

정치인펀드가 투명한 선거를 만든다고 하지만 법의 허점을 이용하면 오히려 합법적인 뇌물이 오갈 우려도 있다. 투자금액에 제한이 없고 돈을 돌려줄 때 법적으로 이 과정을 공개할 의무도 없어서 짜고 치는 불법정치자금 모금 통로로 변질될 우려가 상존하는 것이다. 상환하지 않은 펀드자금은 부채로 잡히니 재산신고 때 정치인의 재산액을 크게 낮춰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잡음도 있었다. 유시민 전 장관이 지난 2010년 창당한 국민참여당 조성 펀드에 돈을 투자했던 사람들이 국민참여당과 합당한 통합진보당을 상대로 투자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와 참여당계는 서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며 투자금을 반환하지 않았다.

안전장치 없어

한편 정치인펀드를 통해 돈을 모은 정치인들은 득표율 15%에 울고 웃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선거에서 15% 이상을 득표하면 법정 선거비용이 전액 보존되기 때문이다. 득표율이 낮은 후보의 경우 펀드 환급을 위해 사비를 털어야 한다. 법적 제도가 미비해 갚지 않아도 되지만 이른바 먹튀를 할 경우 이미지가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 차기 선거를 노리고 있는 정치인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 2012년 4.11총선에서 낙선한 강용석 전 의원의 경우 2억원 가량의 강용석펀드를 개설해 모금 시작 5시간 만에 목표액을 달성했었다. 하지만 득표율이 4.3%에 그쳐 자신의 사비를 털어 투자자 357명에게 원금과 이자를 돌려줬다.

한 정치전문가는 "정치인펀드는 점차 확대되는 추세인데 법적 장치는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다"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정치인펀드의 모집과 환급 등에 대한 기준이나 금융당국의 검사권한 강화, 정치자금법에 근거한 법적 장치 등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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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