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현정은 ‘사생결단 승부수’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4.01.02 11:22:08
  • 댓글 0개

고비서 꺼낸 히든카드…묘수냐 악수냐

[일요시사=경제1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재계를 대표하는 여성 오너다.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세자녀를 둔 가정주부에서 그룹 총수로 변신, 지난 10년간 그룹을 이끌어왔다.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크고 작은 풍파가 끊이질 않더니 해운업 불황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이 과정에서 ‘시월드’와의 갈등도 새나왔다. 현 회장은 결국 회사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또 한 번 눈물의 결단을 내렸다. 최근 시장에서 제기된 현대그룹의 유동성 문제에 미온적 태도로만 일관해오다 자구책을 내놓은 것이다. 핵심은 그룹의 돈줄 역할을 해오던 금융업 철수. 고심하던 현 회장은 현대증권을 포함한 금융계열 3개사를 파는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지난 2003년 남편인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타계 후 그룹 총수 직에 오른지 딱 10년째에 맞는 일이다. 

“돈 되는 건…”
현대증권 포기

현대증권은 현 회장에게 의미가 남다른 회사다. 1962년 설립된 국일증권을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77년 인수하면서 그룹 내 금융사업의 주춧돌 역할을 해왔다. 남편인  정 전 회장이 2000년 ‘왕자의 난’에서 승리했을 당시 현대건설과 현대증권을 ‘그룹 적통’의 양대 기반으로 삼기도 했다.

현대증권이 현 회장에게 단순히 핵심 금융계열사로서의 역할을 넘어 ‘옛 현대그룹의 계승자’인 셈이다. 2010년 시아주버니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대결에서 현대건설을 넘겨주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현 회장에겐 그룹 정통을 이어갈 마지막 기반이기도 했다.

하지만 해운경기 악화로 현대상선의 유동성 압박이 거세지자, 채권단은 현대증권 매각을 포함한 고강도 자구계획을 요구해왔다. 현 회장은 이를 완강히 거부했지만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한진그룹, 동부그룹 등이 3조원 이상의 ‘통큰’ 구조조정안을 내놓으면서 현대그룹에 가해지는 압박도 더욱 거세졌다.


장고 끝 결단…돈줄 팔고 4개 사업부문 재편
‘손실만 6000억’낸 대북사업은 그대로 유지

매각 카드 외엔 별다른 대안이 없었던 현 회장은 결국 정통을 포기하는 통탄의 결단을 내렸다. 현대그룹은 이 자구안을 바탕으로 최소 3조 3400억원의 자금 조달하고 1조 3000억원가량의 부채를 탕감, 2조원의 유동성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세부적으로는 현대증권, 현대자산운용, 현대저축은행 등 매각을 통해 7000억∼1조원 이상을 마련할 계획이다. 현대상선이 보유한 항만터미널사업의 일부 지분을 매각과 벌크 전용선 부문 사업구조 조정을 통해서는 약 1조5000억원을 확보할 방침이다.

현대상선이 보유한 국내외 부동산과 유가증권, 선박 등도 4800억원에 매각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유가증권, 부산 용당 컨테이너 야적장, 미국·중국·싱가폴 소재 부동산 등이 포함된다.

자산 매각 외에도 현대상선의 외자유치 추진,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 현대로지스틱스 기업공개 등으로 3200억원 이상을 마련할 예정이다. 또 내부 구조조정, 반얀트리호텔 매각 등을 추진해 총 3400억원 이상을 조달키로 했다.

이를 통해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스틱스 등 주요 3개사의 부채비율을 지난 3분기 말 493%에서 200% 후반대로 대폭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 웨이’
남편 뜻 유지


뼈를 깎는 그룹 구조 개편에도 적자를 면치 못하는 현대아산은 사업을 유지키로 했다. 대북사업을 담당하는 현대아산은 국내여행 사업 등 일부 사업은 경영개선 조치에 나설 방침이지만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등의 대북 사업 조직은 그대로 놔둔다는 방침이다.

이는 남편 정 전 회장이 살아생전 아버지인 정 전 명예회장의 뜻을 받아 공을 들였던 회사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어려움 속에서도 남편의 유지를 이어가겠다는 현 회장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현 회장은 지난 8월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정 전 회장의 선영을 찾은 자리에서 “한길을 개척해 나간 정 회장의 꿈과 도전정신을 잘 이뤄나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시아주버니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 등에 의지하지 않고 자구책을 마련한 것도 남편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생전 남편이 형들과 형제의 난을 벌일 정도로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 전 회장 사망 이후 현 회장 역시 범 현대가와의 경영권 분쟁을 수차례 반복해왔다. 일부에서는 현 회장을 두고 ‘시련의 여인’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정 전 회장이 사망한 2003년, 남편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현 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 사이에 현대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시숙의 난’이 벌어졌다. 당시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국민기업화’라는 빅 카드를 내밀었다. 즉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현대엘리베이터가 ‘국민주’를 발행하는 것이다.

국민이 주주가 되는 주인 없는 회사가 되고 현 회장마저도 소유권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될지언정 현대그룹을 KCC그룹으로 계열화시킬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내린 결단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주주총회에서 최종 승자를 가리기로 했고, 주주들이 현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시숙의 난부터
시동생의 난까지

2006년엔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 지분을 사전 협의 없이 매입하며 현대그룹과 맞섰다. 이른바 ‘시동생의 난’. 현대그룹은 당시에도 현대엘리베이터를 통해 파생상품 회사와 계약을 맺고 우호지분을 확보해 가까스로 경영권을 지켰다.

2007년에도 ‘사단’이 벌어졌다. 현대그룹은 경영권 보호를 위해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주주 이외의 제3자에게 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변경을 시도했으나 범 현대가의 강한 반발로 관철되지 못했다.

2010년엔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의 정면충돌이 있었다. 현대건설 인수전과 관련해서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현대차그룹이 이의를 제기했고 우선협상자가 현대차그룹으로 바뀌는 곡절을 겪었다.

결국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함으로써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을 통해 현대상선 지분 7.7%를 보유하며 현대상선 경영권 분쟁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고 정몽헌 사망후 시댁가와 갈등·반목 반복
경영권 방어만 집착하다 주력사업 손실 누적


2011년 현대상선의 주총에서도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 등 범 현대가의 표 대결이 전개됐다. 현대그룹이 올린 우선주 발행 한도 확대 안건은 범 현대가의 반대로 부결됐다. 당시 현대중공업과 KCC, 현대산업개발 등이 주총에 참석해 반대표를 던졌다. 찬성 64.95%, 기권·무효·반대가 35.50%로 안건이 가결되지 못 했다.

재계에선 현 회장이 잇따라 경영권 분쟁을 빚으면서, 경영권 방어에만 집착한 것이 결국 스스로의 발목을 잡았다고 분석한다.

실제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우 그룹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재무적 투자자와 체결한 파생상품 계약에서 큰 손실을 부담해 영업흑자가 났음에도 2011년, 2012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현대상선 주가 하락으로 입은 손실만 7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에 “이 파생 계약으로 현대엘리베이터에 신용 위험을 전가시켰다”며 현 회장을 상법 신용공여 금지 규정 위반 혐의로 지난 11월 말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금강산 관광 등 대북 사업 중단과 주력 사업인 해운업이 불황 사이클을 타고 있다는 점도 현대그룹의 발목을 잡았다. 1998년 11월18일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11일 발생한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으로 5년 넘게 중단돼 있다. 현대아산이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지금까지 입은 매출 손실만 6000억원에 육박한다. 현대상선은 해운업 침체로 2011년부터 현재까지 1조 4000억원이 넘는 누적 순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허리띠 조르고
몸집 줄이고


과정이 어찌됐건 전환점을 맞은 현대그룹의 앞날은 ‘해운’과 ‘대북사업’으로 점철될 예정이다. 해운(현대상선), 물류(현대로지스틱스), 산업기계(현대엘리베이터), 대북사업(현대아산) 등 4대 사업을 새롭게 그룹의 축으로 조정한다. 해운과 대북사업이 전면에 서고 산업기계와 물류 산업이 그룹의 수익 창구로 발돋움하도록 사업 구조를 재편한다는 게 현대그룹의 방침이다.

물론 우려도 나오고 있다. 현대증권 매각 등 자구책 세부 계획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가 없을 뿐 아니라 해운업계 시황 회복이 더뎌 자금 확보에 악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현대그룹에 입성한 후 오너의 자리에서 가시밭길을 걸어온 지 어언 10년. 그룹의 회생을 위해 내린 현 회장의 결단이 과연 현대그룹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민주당 막전막후

브레이크 없는 민주당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정부를 겨냥한 더불어민주당의 공격이 거침없다. “정치 보복은 없다”고 단언한 이재명 대통령이기에 국민의힘에서는 크게 반발했다. 민주당은 ‘정치 보복’이 아닌 ‘내란 종식’이라고 받아쳤다. 사분오열로 흩어진 국민의힘이지만, 대통령 취임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이재명정부를 공격하는 때에는 손발이 척척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주도로 ‘채상병 특검법·내란 특검법·김건희 특검법’인 이른바 ‘3대 특검’이 가결됐다.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를 의결함으로써 수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지난 3년 동안 이어진 가결-거부권 무한 굴레가 이 대통령 취임 후 속전속결로 해결됐다. 허니문 없이 본게임 돌입 3대 특검은 모두 윤석열정부를 겨냥하고 있다. 해당 법안들은 본회의서 재석 198명 중 찬성 194표, 반대 3표, 기권 1표로 가결됐다. 내란 특검법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내란 외환 행위, 군사 반란, 내란 목적 선동을 수사한다. 김건희 특검법은 윤 전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비롯한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명품 가방 및 금품수수 의혹 ▲공천 개입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등 국정 농단 의혹 등의 수사를 골자로 한다. 마지막으로 채상병 특검법은 2023년 7월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사망한 해병대원 채모 상병 사건 수사를 방해 및 은폐했다는 의혹을 규명하는 내용이다. 당시 수사 외압 과정에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임 전 사단장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태 공범 이모씨와 골프 모임 의혹이 터져 나오면서 사건의 마지막 퍼즐이 김건희씨로 지목됐다. 특히 채상병 특검은 전 정권에서 민주당 등 야당이 여러 차례 본회의에 올려 통과시켰지만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에 막혀 번번이 무너졌다. 1년9개월 동안 제자리걸음이었던 특검법이 이재명정부에서 단번에 통과되자 본회의를 지켜보던 해병대 예비역 회원들이 일제히 자리서 일어나 거수경례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3대 특검은 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날 오전 이 대통령은 이를 심의·의결한 뒤 자신의 SNS를 통해 “세 건의 특검법은 모두 윤정부가 거부권을 반복 행사하며 지연됐던 것”이라며 “멈춰있던 나라를 정상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3개 특검법안에 대한 특별검사 임명 요청 서류에 결재했다”며 이 대통령에게 요청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요청서를 받은 이 대통령이 특검 후보 추천을 공식 의뢰하면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서 특검 후보자를 각 1명씩 추천하게 된다. 속전속결 속 민주당 3특검법 모두 통과 반성 없는 국힘 ‘이 대통령 때리기’ 올인 내란 특검에 60명, 김건희 특검에 40명, 채상병 특검에 20명의 파견 검사가 투입되는 등 대규모 특검이 예고된 가운데, 민주당과 혁신당은 법조계 인사들 중 후보자를 물색해 빠른 시일 내 추천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정쟁에 함몰되는 대통령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기본원칙적 교훈과 경고를 드린다”며 곧바로 날을 세웠다. 앞서 민주당 단독으로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의결되고, ‘대통령 재판 중지법’까지 잇따라 추진되자 국민의힘은 “대선 다음 날 민생도, 외교·안보도 아닌 첫 입법 행위가 ‘사법부 장악법’이라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경악스럽다”며 “괴물 독재 국가의 출발점”이라고 비판했다. 신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여야가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협치는 사라지고 또다시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허니문 기간도 없이 곧바로 싸움이 번진 것은 여당이 의석 다수를 차지한 여대야소 정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한국 역사를 돌이켜 보면 대선과 총선이 ‘심판론’처럼 작용하면서 여소야대와 여대야소 현상이 번갈아 나타났다. 대표적인 여대야소 예로 민주화 이후 치러진 13대 총선이 있다. 1990년 노태우정부 시기 당시 민주정의당과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뭉치는 이른바 ‘3당 합당’으로 200석이 넘는 초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하지만 지역주의 고착화와 계파 갈등의 이유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혔다. 초반부터 어깃장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지난 17대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과반이 넘는 152석을 얻었다.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121석에 그치면서 여대야소 정국이 펼쳐졌지만,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진행 중이었던 만큼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10년 만에 정권을 교체했다. 대선이 치러진 직후에 열린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기세를 몰아 153석을 얻어 여대야소 정국을 이어갔다. 이후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꾼 뒤 2012년 4월 치러진 19대 총선에서 친박(친 박근혜)계가 당권을 장악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같은 해 12월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여대야소의 틀을 갖췄지만 여권 내 계파 갈등, 쟁점 법안 등으로 실질적으로는 여소야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박정부가 레임덕에 접어들면서 새누리당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고 결국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23석, 새누리당이 122석을 얻었다.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뒤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어 여대야소 정국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와 부동산, 집값 상승 등으로 5년 만에 정권을 고스란히 넘겨줬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심판론 성격으로 치러진 21대 총선에선 민주당이 180석을 얻으면서 그야말로 압승을 거뒀고 결국 3년 만에 여대야소 정국으로 돌아왔다. 이처럼 대한민국 정치 역사상 여당이 더 많은 의석수를 차지하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유독 이번 정권에서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이 이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부터 ‘의회 독주’를 넘어 ‘의회 독재’ 프레임을 씌우며 견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5월 유세 현장에서 국민의힘은 “이번 대선은 자유민주주의 선진 대국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전체주의 1인 독재국가로 추락하느냐의 기로에 있다”며 ‘이재명 포비아’ 여론을 띄웠다. 이낙연 전 총리가 상임고문으로 있는 새미래민주당은 “이재명 독재 정권 탄생 저지가 필요하다”며 국민의힘과 국민통합공동정부 운영 및 제7공화국 개헌추진 협약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대선 하루 전날이던 지난 2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회 독재를 이재명과 민주당이 시작하면서 베네수엘라 지옥문을 반쯤 열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의 비극이 남의 일이 아니다”라며 “한때 남미의 모범 국가였던 베네수엘라가 반미 포퓰리즘과 경제 파탄, 사법 장악과 독재의 길을 걸으며 국민의 삶이 무너지고 자유가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잊지 말자” 윤 심판론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역시 “예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도 독재한다고 말을 들었지만, 유신정우회를 만들어서 입법부를 장악하려고 했던 정도였다”며 “사법부를 장악하려 드는 것은 이재명 후보가 아마 가장 심할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이 대통령 당선 이후 국민의힘은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과 대장동 재판이 사실상 중지된 것을 두고는 “정치 권력에 사법부가 무릎 꿇고 정치적 면죄부를 주면서 법 앞에 권력이 있다는 걸 선언한 것”이라며 “사법부는 이재명 괴물 독재 국가의 공범이 된다는 걸 기억하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자신의 SNS에 “유권무죄가 상식이 되어버린 세상, 권력이 있으면 면죄부를 받는 세상. 가히 ‘이재명 독재’ 세상이 도래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독재 프레임을 주장해 온 국민의힘에 국민 40%가 힘을 실어준 데에는 지난 3년간 민주당이 보여준 ‘협치 없는 정치’ 때문이라는 반박이 나온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금까지 봐온 이재명이란 사람은 당 대표 때의 정치 스타일도 그렇고 업무 방식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며 “지금 민주당에서 누가 감히 이 대표를 견제하겠나. 국회의장도 민주당 출신이다. 제어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선 이후에도 국민의힘은 반성은커녕 당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집안싸움이 한창인 와중에도 민주당의 법안 처리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의회 독재라고 비판하니, 국민의 피로감도 덩달아 높아지는 형국이다. ‘민주당의 의회 독재가 우려되나’라는 질문에 여당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국민의 선택을 독재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윤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행태를 알리기 위해서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탄핵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당에 힘을 ‘몰빵’해준 것은 다름 아닌 국민이며, 야당이 된 국민의힘은 원색적인 비난을 멈추고 여당 견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회 독재? 윤 심판은 국민의 뜻” 여대야소 처음 아닌데…야 맹공 민주당 양부남 의원 역시 대선 전 토론 프로그램 <국민맞수>를 통해 “의회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서 의회 민주주의로 당을 지도했을 뿐이고 앞으로 하려는 것도 민주주의”라고 설명했다. 양 의원은 “이낙연 전 총리나 바른미래당 손학규 전 대표 등 몇몇 사람이 의회 독재라는 주장을 하고 김문수 후보도 ‘방탄 괴물 독재 국가’를 운운한다”며 “이재명 (당시) 후보를 괴물 독재로 지칭하는 자체가 국민 의식 수준을 우습게 보는 것이고 정치 엘리트 기득권의 기만이자 오만이며 교만”이라고 직격했다. 이날 토론에 함께 출연한 국민의힘 홍석준 전 의원이 민주당의 예산 폭주, 행정부 장악 등을 예로 들자 “독재와 개혁을 혼동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양 의원은 “민주당이 하려는 사법제도 개혁이라든지 기재부 개혁 등은 나름 합리성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이런 개혁을 독재로 호도하는 것은 정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국민 생각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도 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우리나라 국민 성숙도를 봤을 때 의회를 장악했다고 독재 정치를 하다가는 그 정권도 혼이 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KBS <전격시사>에 출연해 ‘내란 극복’을 축소할 것을 주장하며 “내란 극복이라는 것을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해서 하다가는 결국 보복이라는 말도 나올 수 있다. 국민과 대화, 특히 자기와 반대되는 측 사람과 대화를 활발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과거 여대야소 정국에서는 여당이 고삐를 꽉 쥐고 있었음에도 하루하루 순탄치 않았다. 지금처럼 의회 독재든, 계파 갈등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야당이 호시탐탐 무너뜨릴 기회를 노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대통령을 배출한 거대 여당이지만 계속해서 발목 잡힌다면 문재인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효능감 문제에 부딪힐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번엔 다르다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과거의 여대야소와 지금의 여대야소는 다르다”고 말했다. 최 평론가는 노태우정부 당시 3당 합당을 예로 들며 “과거에는 여대야소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국민투표를 통해 민주당 계열에 표가 몰렸다. 그리고 민주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며 “윤석열이란 선장이 자격이 없으니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견제론이 나왔고, 그 결과 총선과 대선 모두 윤석열 심판론으로 치러졌다. 방향타를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라고 진단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 대통령 재판, 올스톱 일단 푼 사법 족쇄? 법원이 오는 18일로 예정됐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파기환송심 사건에 대해 기일을 추후에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이같이 밝히며 “헌법 제84조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헌법 제84조에 따라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진행 중인 재판에 적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리스크였던 대장동 배임 사건 역시 재판부가 재판을 연기했다. 이로써 이 대통령의 다른 재판 역시 추후 지정될 가능성이 커 법조계에서는 사실상 임기 중 재판이 정지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법원은 대장동 배임 사건 재판부는 이 대통령과 함께 기소됐던 더불어민주당 정진상 전 정무조정실장에 대해서는 계속 재판을 진행할 방침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