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도 넘은 '보수단체 편애' 실태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12.18 09: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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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 앞세워 국가기관 대선개입 덮는다?"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정부의 보수단체 편애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법적 지원근거가 부족한 '묻지마 지원금'을 보수단체들에 퍼주는가 하면, 지난 10월엔 박근혜정부의 실세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남재준 국정원장이 잇따라 보수단체 대표들과 비공개 회동을 갖기도 했다. 박근혜정부의 보수단체 편애 이면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그 실태를 파헤쳐봤다.




박근혜정부의 실세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10월 잇따라 보수단체 대표들과 비공개로 회동을 가졌다. 특히 김 실장은 이들을 만나는 자리에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과 신동철 국민소통비서관까지 대동하고 나가 보수단체 대표들의 의견을 업무에 참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수단체 대표들과의 만남에서 김 실장과 남 원장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는 덕담 정도의 이야기를 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파장은 컸다.

보수단체 편애
진보단체 소외

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비판과 우려에는 귀를 막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왜곡해온 우파 인사들과 편향된 소통에 나선 정부가 국민을 편 가르고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라 격려 받게 된 것은 아닌지 국민의 걱정이 태산 같다"고 비판했다.

야권에서는 박근혜정부가 집권 초부터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등으로 정권 기반이 흔들리자 보수단체를 통해 이를 상쇄하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여름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촛불집회가 주말마다 열리자 보수단체인 애국단체총협의회가 지방조직을 동원해 맞불집회를 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애국단체총협의회는 자유총연맹, 재향군인회 등 30여개의 보수성향 단체들을 가입되어 있다. 이중 자유총연맹은 국내 최대의 보수단체로 정부로부터 매년 10억원이 넘는 지원금을 받고 있다. 자유총연맹은 맞불집회에 회원들을 참가시키고, 행사비 일부도 지원했다.

재야 시민단체 대선개입 규탄, 보수단체 부추겨 맞불
정권에 잘 보이면 지원금도 듬뿍 '관변단체 살아나나?'

이들은 맞불집회에서 의도적으로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광장 방향으로 대형 확성기를 켠 채 집회를 진행하는 등 사실상 촛불집회를 방해하는 행동을 일삼았다. 당시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맞불집회의 확성기 소리가 너무 크다며 경찰에 항의했지만 경찰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단체에 대한 지원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박근혜정부는 이 같은 법을 사실상 무시하고 '묻지마 지원'을 자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백재현 의원이 안전행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정부는 577개 민간 비영리단체(NPO)에 144억8000만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올해 선정된 단체들 중 일부는 지난해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등 정치적 색을 띠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을 어긴 것이다.

정치색 다분
관변단체 부활?

우선 '대국민 안보의식 고양 및 저변 확산' 사업을 위해 정부에서 7500만원을 지원받은 '국민생활안보협회'는 지난해 12월10일 서울 명동에서 박 후보 지지선언대회를 열었다.


'선진화시민행동'은 작년 10월24일 '대한민국 선진화 전진대회'에 박 후보를 초청한 데 이어 이른바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에 대해 '꼼수'라고 비난하는 등 정치적으로 편향적 활동을 했다. 이 단체는 '통일안보교육 및 캠페인 개최' 사업으로 3700만원을 지원받았다.

'탈북자단체 숭의동지회'와 'NK지식인연대'는 각각 통일안보 문화탐방사업 3300만원과 북한 실상 정보포럼사업 5000만원의 보조금을 받았으나, 이들 단체는 지난해 11월 박 후보 지지연대 결성에 참여했다.

또 안전행정부는 '최근 3년 이내 불법 폭력시위를 주최·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한 단체, 구성원이 소속단체 명의로 불법시위에 참여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처벌받은 단체에서 제출한 사업은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자체규정을 만들었으나 일부 보수단체는 이 같은 규정에 저촉됨에도 버젓이 지원금을 받았다.

지난 2009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민분향소를 파괴하고 시민에게 가스총을 발사해 2011년 12월 법원으로부터 위로금 80만원의 지급 판결을 받았던 '국민행동본부'가 대표적이다. 국민행동본부는 이러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2009년부터 올해까지 5년 동안 2억77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받았다.

특히 국민행동본부의 서정갑 본부장은 지난 2004년 개최된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 운영위원장으로 당시 일부 참가자들이 경찰관을 폭행하도록 방조한 혐의로 집시법 위반 및 특수공무집행 방해치상이 인정돼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력도 있다.

하지만 서 본부장은 이명박정권 말 특별사면을 받았다. 당시 서 본부장은 고등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자 즉각 항소하며 최종심에서 무죄를 받아내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었다. 그런데 특별사면을 앞두고 갑자기 항소를 포기하면서 이명박정부와 사전교감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었다.

지난 8월에는 청와대의 한 행정관과 안전행정부의 모 국장이 국내 최대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의 회장 선거를 앞두고 특정후보가 당선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같은 논란이 불거지자 야권은 청와대가 자유총연맹 회장선거에서 특정후보가 당선되도록 선거에 개입해 자유총연맹을 앞으로 있을 선거나 여론조성 등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니냐며 반발했다.

의혹의 당사자인 청와대 행정관은 이에 대해 한 언론에 해명하는 과정에서 "(특정후보 지지 부탁이 아닌) 종북좌파 쪽에서 국정원 관련 촛불집회를 하니까 (보수단체인) 자유총연맹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활동할 것인지 내용을 상의하러 갔던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더욱 키웠다.

청와대 관계자가 보수단체 간부와 만나 국정원 관련 촛불집회 대응책을 논의했다는 사실도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야권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자유총연맹은 지난 7월 안행부의 특별검사 결과 보조금 1억3800만원을 부당하게 집행하는 등 불법 및 내부규정을 위반한 행위 36건이 적발됐으나 내년에도 13억가량의 보조금을 지급 받을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자유총연맹은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이 아닌 '한국자유총연맹 육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고를 지원받고 있지만 사실상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어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인사도 관여?
정치적 이용

한편 우리나라는 선진국들과 비교해 후원문화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아 정부 보조금이 비영리 민간단체의 활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지난 2000년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법'을 제정해, 각 단체별로 한 해에 최소 3천만원에서 최대 1억원(행정안전부 2012년 기준)을 지원하고 있다. 이 법의 목적은 시민단체의 자발적인 활동을 보장하고 건전한 민간단체로 성장하도록 지원함으로써, 시민단체의 공익활동 증진과 민주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데 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이 법을 악용해 정부 보조금을 정권의 성향이나 입맛에 맞는 단체에 지원해 이들을 정권 방어에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정치색 짙은데 '묻지마 지원' 나선 정부
과잉충성 경쟁 벌이는 극렬 보수단체들

안전행정부의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지원사업 선정 결과' 자료를 보면 지난 2011년부터 비영리민간단체에 대한 지원금 규모가 급격하게 늘어난 사실을 알 수 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매년 49억원을 지원해오던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지원사업비가 2011년에 들어서면서 98억7000만원으로 늘었다.

더불어 매년 150개 전후였던 지원 사업 수도 220개로 늘어났다. 그런데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총사업비와 지원사업 수가 크게 늘기 시작한 2011년부터 '국가안보'라는 항목이 생겼다는 것이다.

2011년에 새로 도입된 '국가안보 증진 및 안전문화 정착' 항목은 2012년 '국가안보 및 사회통합', 2013년 '국가안보·재난안전과 사회통합'으로 조금씩 명칭을 바꿔가며 지원사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진보진영에서는 보수단체에 대한 지원금을 늘리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를 거치며 보수 성향 단체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져가는 이유다.


물 만난 보수
커지는 목소리

한 전문가는 "사실 정부의 시민단체 편향지원은 현 정부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노무현정부 때는 반대로 진보성향단체에 지원이 집중된다는 비판이 있었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성향에 맞는 단체에 보조금을 몰아주는 행위는 결국 시민단체를 정치화시킬 수밖에 없고, 정부를 비판해야 하는 시민단체를 길들이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시민단체가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며 "지금부터라도 공정한 지원금 지원기준을 만들어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활동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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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