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다시 등장한 김종필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2.16 14: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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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시대’ JP가 움직인다

[일요시사=사회팀] 한국 정치사는 김종필 전 총리의 정치 인생과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최다 9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 전 국무총리는 살아 있는 한국 정계의 거목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 이후 잠잠했던 그가 5년10개월 만에 국회에 나타났다. 존재감은 여전했다. 현 정국에 그의 등장이 의미하는 것을 무엇일까.




지난 10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국회를 찾았다.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운정회’ 창립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운정회는 그가 한국 산업화 시대에 기여한 공로를 기리자는 취지로 결성됐다. JP의 국회 방문은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던 2008년 2월 이후 처음이다. 무려 5년10개월 만이다. 그는 2008년 12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칩거해왔다.

운정회 창립총회
참석차 국회방문

JP는 이날 흰색 밴을 타고 국회에 도착해 휠체어에 앉았다. 이완구 새누리당 의원과 정진석 국회사무총장이 행사장까지 JP의 휠체어를 밀어 눈길을 끌었다. JP는 국회 헌정기념관 1층에 도착해 전시돼 있는 자신의 두상을 둘러봤다. 행사장 안에는 참석자 300여 명이 대기하고 있었고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김종필’을 연호하며 칭송했다.

이들은 발기문을 통해 “우리는 지난날 운정 김종필 전 총리를 모시고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는 데 참여하고 헌신해 왔다”며 운정 선생은 고 박정희 대통령을 지도자로 추대, 국구 충정으로 5·16혁명을 주도해 최빈국 대한민국을 세계 속의 선진대국으로 도약시키는 데 초석을 놓으셨다“고 평가했다.

이어 “두 차례의 총리와 9선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등 4개 정당의 총재와 대표를 역임해 오신 우리 현대사의 주역이며 산 증인”이라며 “우리는 한평생 국태민안을 위해 헌신해 오신 운정 선생의 공업을 기리며 뜻을 같이해 온 동지 상호 간의 친목을 증진시키고자 김 전 총리의 아호를 빌려 운정회 발기인총회를 개회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대회사와 축사에 나선 주요 인사들은 김 전 총리가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삼김 시대’의 한 축을 담당하며 풍운아와 같은 삶을 살아온 점을 환기시키며 조국근대화에 대한 그의 업적을 평가했다.

정운찬 전 총리는 “운정 선생님의 명성을 처음 대한 것은 20세가 채 안 된, 대학에 입학하고 난 직후였다. 선배들이 거사의 정당성을 설파하실 때 보여주신 선생님의 논리적인 언변을 전설처럼 들려줬다”며 “선생님은 대한민국 현대사 자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휠체어에 의지한 채 마이크를 잡은 JP는 40여분간 비교적 또렷한 목소리로 원고 없이 자신의 정치 역정을 연설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특히 맹자의 ‘무항산 무항심(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할 수 없다)’을 인용했다. 그는 “배가 고픈데 무슨 민주주의가 있고 자유가 있느냐”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성과를 언급했다. 8억 달러의 외자를 유치했지만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았던 한일 국교 정상화에 대해서는 “저는 나라는 팔아먹지 않았다. ‘제2의 이완용’도 아니다”라며 “그 돈으로 포항제철을 건설했고, 거기에서 생산된 철로 현대자동차와 조선업도 가능해졌다”고 강조했다.

JP는 “이제 갈 곳은 죽는 곳밖에 없는데 국립묘지(현충원)에 가지 않고 우리 조상이 묻히고 형제들 누워 있는 고향(부여 선산)에 가서 눕겠다. 누구나 늙으면 병이 생기고 병이 생기면 죽는 경로를 밟는데 저도 ‘생로병’까지 왔다”며 남은 인생에 대한 자신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한 국회 사랑재에서 강창희 국회의장, 김수한·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한동·이홍구 전 총리 등과 환담하는 중에 강 의장이 “정치가 시끄러워 죄송하다”면서 조언을 구하자 “야당은 실권을 쥔 사람들을 때려 얻어내려고 하지 말고 져주면서 얻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야당은 집권당을 상대로 머리를 쓰고, 지면서 이기는 방법을 모색해야지 물리력을 쓰면 결국은 손해”라고 했다.

5년10개월 만에 외출…존재감 드러내
나타난 속내는? 돌아온 속사정 주목

또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일으켜서 비가 많이 오고 홍수가 날 지경인데도 홍수가 안났다고 하지만 그 효과 때문이 아니다”면서 “박 전 대통령 시절 산에 못 들어가게 하고 벌거벗었던 산이 파랗게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한 가지를 하더라도 어떻게 이런 것을 이롭게 해주셨나 하고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모르면 공부를 해서라도 어제를 잘 알아야 한다”면서 “그래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충청권 인사가 대거 결집했다. 회장을 맡은 이한동 전 총리와 전혁직 국회의장 등 거물급 인사들이 자리에 함께했다. 부회장을 맡은 새누리당 이완구, 정우택, 성완종 의원을 비롯해 이인제 의원,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 등 충청권을 기반으로 내년 지방선거나 당권 등을 노리는 인사들 등 400여명이 대거 참석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운정회 발족을 계기로 충청권이 세 결집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행사에 참석한 새누리당 충남도당 관계자는 “운정회 창립총회를 계기로 충청권이 다시 뭉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 아니겠느냐”면서도 “JP는 현실 정치에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다시 돌아온
‘영원한 2인자’

JP의 외부활동이 그나마 가능한 현 시점에서 이러한 결집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여권 내부가 본격적인 세 결집으로 분주한 모습을 보이면서 계파 또는 지역 등을 기반으로 한 각종 모임으로 세 확장에 나설 모양새다. 근대 당내 모임이 잇달아 출범하더니 충청권 기반 모임까지 결성된 것. 이들은 나름의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내년 지방선거 등을 겨냥한 행보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새누리당 안에서 가장 두드러진 모임을 보면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을 꼽을 수 있다. 친박계 의원이 주축인 이 모임은 빠르게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출범 당시 33명에 불과하던 회원 수는 현재 70여 명에 이른다. 이 포럼 관계자는 “하루에도 몇 명씩 회원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유기준 최고위원이 총괄간사인 이 모임엔 홍문종 사무총장과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등 친박 핵심인사가 대거 포진했다.

당대 최고 공부 모임인 ‘근현대사역사교실’도 세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김무성 의원이 주도하는 이 모임의 회원(의원) 수는 109명에 이른다. 왼외 회원은 23명이다. 이 모임 관계자에 따르면 매주 수요일 열리는 모임엔 50∼60명의 회원이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최근 불거지는 역사논쟁에서 보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근현대사역사교실은 보수층 결집 의도를 담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 새누리당 중진인 남경필 의원이 주도하는 ‘대한민국 국가모델 연구모임’도 눈여겨볼 만하다. 회원 수 62명 가운데 20명 안팎이 매주 목요일 열리는 모임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여권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총궐기하고 있다. 더군다나 5년 만에 나타난 충청권 보스인 JP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여의도 정가에선 보수대연합이 촉발될 수 있다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의 행보가 앞으로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봐야할 일이다. 반면 범야권은 연일 전략부재를 노출한 데 이어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신당 추진 등으로 분열 조짐이 일고 있다. 박근혜 정부 1년 차 말기에 나타나고 있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지방선거 노린
여권의 결집?

김종필 전 총리는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그는 유복한 소년기를 보내며 공주중과 공주고를 졸업했다. 졸업 후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주오대학 예과에 들어갔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곧 중퇴, 귀국후 대전사범학교에 입학했다. 1945년 대전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하고 보령군의 소학교 교사로 발령났다. 그러나 그는 교편을 잡은 지 2개월 만에 그만두고 경성제국대학(서울대 전신) 사범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제8기생으로 입교했다. 그리고 1960년 일어난 항명 파동으로 육군 중령에서 예편했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된 그는 한때 ‘사상계’를 찾아가 이력서를 넣었으나 면접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예비역 중령 신분으로 자신의 처삼촌인 박정희 등과 교류했고 61년 5·16 군사정변을 준비한다.

5·16군사 정변이 성공하자 그는 다시 현역으로 복귀해 육군 중령이 됐다. 이어 대령으로 진급했고 준장까지 진급했다. 한편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을 거사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자, 그는 “내가 박정희 장군을 모시고 5·16을 기획했다”고 했다.

이후 군사혁명위원회(국가재건최고회의)가 구성되면서 중앙정보부가 신설됐다. 그는 제1대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된다. 군사 정변 직후 그는 장인 박상희의 경력과 관련해 사상 공세에 시달렸고, 황태성이 남하한 후에는 한일회담 직전까지 야당인사들로부터 수시로 의혹을 받았다.

62년에는 민주공화당의 사전 창당조직 연구팀과 사전 조직인 동양화학 주식회사의 창립을 주도했다. 이들은 연구실의 이름을 ‘동양화학 주식회사’로 위장하고 종로 2가 제일전당포 2∼3층에 사무실을 차렸다. 이렇게 재건당을 조직해 민정에 군출신 인사들이 참여하기 위한 창당작업을 지속적으로 준비해 나갔다. 63년 그는 육군 준장에서 예편했고 중앙정보부장직도 사퇴했다. 이후 민주공화당을 창당하자 야당 인사들은 구정치인 정정법으로 묶어놓고 자신들만의 사전조직을 비밀리에 결성했다며 비난했다.

한편 꾸준히 육사 5, 6기생들의 견제를 받던 그는 63년 2월 민주공화당 창당 준비위원장을 사퇴하고 순회대사의 자격으로 동남아시아와 유럽 여러 곳을 역방하고자 출국했다가 귀국하여 국회의원에 입후보했다. 63년 11월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그해 12월 민주공화당 당의장에 선출됐다.


65년에는 일본 외무상인 오히라 마사요시와의 비밀 접촉으로 논란이 일었다. 식민지에 대한 사과, 약탈 문화재 반환, 재일동포 지위, 동해어업권, 강제 동원 피해자 보상, 원폭피해자 문제 등 주요 현안은 무시한 채 경제적 보상과 차관을 대가로 모든 문제의 종결을 선언해 이후 야당 인사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이 협상은 ‘김-오히라 메모’로 불린다. 후일 그는 “내가 이완용이 소리를 들어도 그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조금 적은 액수이더라도 빨리 공장을 세우고 기술을 배웠기 때문에 우리 경제성장이 빠르지 않았느냐”며 “후회하지 않는다”고 회고했다.

공적 기리는 ‘운정회’
보수결집 신호탄 되나

64년부터 한국에서는 한일협상을 반대하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굴욕적인 한일회담을 반대한다는 학생시위가 일어난 것.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을 선포해 반대 목소리를 탄압하고 회담을 지속했다.

67년에는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됐지만 부정·타락 선거라는 이유로 그 이듬해에 의원직을 사퇴했다.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3선 후 물러난다는 선언을 하면서 JP는 김영삼, 김대중, 이철승 등과 함께 차기 유력주자로 떠올랐다. 그리고 민주공화당 내에는 그를 지지하는 파벌이 나타났다. 이것이 박 전 대통령이 그를 경계하는 원인이 되어, JP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에 JP는 당원직을 사퇴하고 일시적으로 미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의 2인자로 끊임없이 박 전 대통령과 갈등했고 75년 12월 총리직에서 전격 경질된다. 77년에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남미를 순방한 바 있고, 79년 제10대 국회의원에 재선했다.

현충원 아닌…
고향에 누울 것


79년 10월,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한 후, 그해 11월 민주공화당 당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총재로 선출됐다. 이후 JP는 김영삼, 김대중 등과 함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부각했다.

80년 5월에는 보안사에 체포돼 감금당했다. 신군부는 관제보도를 통해 JP 등 10여 명을 유신 시대의 부정축재자로 발표했다. 이때 모욕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전두환을 증오하게 됐다. 그리고 그해 9월 신군부에 의해 재산을 헌납하도록 강요받고, 정계에서 은퇴한다는 각서를 썼다.

이후 정치활동이 정지당한 채 87년까지 야인생활을 했지만, 그해 다시 정계에 복귀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총재에 추대돼 민주공화당과 국민당을 흡수했다. 그리고 87년 8월, 신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선거 결과는 4위였다. 이후 88년 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민주정의당의 노태우로부터 삼당합당의 제의가 오자 고려 끝에 노태우의 제안을 수용했다. 90년 2월 민주자유당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그러나 내각제를 추진하려는 JP와 대통령중심제를 고수하려는 YS 간의 정치적 견해 차이로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92년에는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에 재선임되고, 95년 민자당 총재직 사퇴와 동시에 탈당해 독자정당인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다. 이후 일부 영남권 인사들을 포섭하고 군부 출신 인사들과 지지층의 표심을 공략했으나 실패했다.

96년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리고 97년, 이념적으로 차이가 있는 DJ와 손을 잡고 DJ를 당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일명 DJP연합), 그해 11월에는 자유민주연합 명예총재로 정계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자민련을 이끈 JP는 2000년 실시된 제16대 총선에서 원하는 의석을 얻지 못해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다. 소수야당의 총재로 남게된 것이다.

2004년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민련에서 아무도 비례대표가 나오지 않자, 총재직을 사퇴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로써 JP의 정치 생명은 사실상 종결됐고, 대통령에 끝내 당선되지 못했다. 충청권 지역 정당으로 국민중심당, 자유선진당 등이 만들어졌지만 JP는 이에 가담하지 않았다.

2008년 12월, 갑자기 뇌놀중으로 쓰러져 입원했고, 재활운동을 통해 건강을 회복했다. ‘JP’라는 약칭은 정치가로 활동할 당시 JFK(미국 케네디 대통령)을 본따 만든 것으로 알려진다. ‘알파벳 이니셜’의 원조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김종필은?]

▲충남 부여 출생
▲공주고 졸업
▲서울대 교육학 학사, 육군사관학교 학사
  페어리디킨슨대 등 명예박사학위 9개
▲제 1대 중앙정보부 부장
▲제 6대 공화당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당의장
▲제 7대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부총재
▲제 8대 국회의원
▲제 11대 국무총리
▲제 9대 국회의원
▲제 10대 국회의원
▲제 13대 국회의원
▲민주자유당 최고위원
▲자유민주연합 총재
▲제 15대 국회의원
▲자유민주연합 명예총재
▲제 31대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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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철창행 김건희’ 아직 남은 의혹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논란과 문제가 끊이지 않던 퍼스트레이디가 결국 구속됐다. 김건희 여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부터 사사건건 발목을 잡던 의혹으로 최초로 구속된 영부인이 됐다. 김 여사의 구속 기간인 20일 동안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법원이 지난 13일,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발부하면서 최초로 전직 대통령 부부가 모두 구속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대통령보다 힘이 세던 V0이 몰락한 셈이다. 주요 의혹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등으로 김 여사 구속에 성공한 김건희 특검팀은 남은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증거인멸 도주 우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김 여사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정식 구치소 입소 절차를 거쳤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 등 인적 사항을 확인한 후 일반 수용자와 마찬가지로 정밀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이는 마약 등 반입 금지 물품을 지니고 들어왔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왼쪽 가슴 부분에 수용자 번호가 있는 미결수용 수용복으로 갈아 입고, 얼굴 사진인 ‘머그샷’을 촬영한다. 또 지문 채취와 구치소 내 규율 등 생활 안내, 건강 검진도 받게 된다. 이후 세면 도구와 모포, 식기 세트 등을 받아 본인 ‘감방’으로 향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영부인 신분이 아닌 만큼 일반 수용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게 법무부 측 설명이다. 김 여사는 앞서 수감된 윤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독거실에 수용될 전망이다. 크기는 구인 피의자 대기실과 비슷하며 매트리스와 책상 겸 밥상, 관물대, TV 등이 비치돼있다. 끼니도 구치소에서 제공하는 1700원짜리 음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식사와 목욕도 일반 수용자와 같은 절차에 따르지만, 보안상 다른 수용자와의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은 지난 7일, 김 여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특검은 법원에 22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와 함께 848쪽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구속 의견서에는 ▲지난 4월4일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김 여사가 휴대전화를 교체한 사실 ▲탄핵 인용 전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 있는 노트북을 포맷한 사실 ▲김 여사의 ‘문고리’로 불리던 유경옥·정지원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휴대전화를 초기화한 사실 등이 적시됐다. 특검은 ▲김 여사가 지난 6일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한 점 ▲김 여사의 진술이 계속 바뀌는 점 ▲압수된 휴대전화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등 수사에 비협조적인 점 ▲전 대통령실 행정관 등 최측근과 말 맞추기를 시도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여사가 건강상 이유로 입원할 경우 수사에 불응할 가능성이 있다며 구속 사유에 ‘도주 우려’를 포함했다. 영장실질심사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주도했던 한문혁 부장검사 등 8명이, 김 여사 측에선 유정화·채명성·최지우 변호사가 참여했다. 김 여사 측은 이날 약 8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준비했으며 특검도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약 3시간 분량의 프리젠테이션(PT)을 진행했으나 법원은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특검팀이 처음 주목한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로 불리는 ‘명태균 공천 개입’ 건진 게이트로 불리는 ‘건진법사·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이다. 특검팀은 이를 848쪽의 구속 의견서에 담았다. 최초 전직 대통령 부부 구속 의견서엔 구체적 사실 적시 구체적으로 김 여사가 지난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행에 가담한 공범이라고 판단하며 불법 거래 횟수가 총 3822회에 달한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으로 수익 8억1144만3596원을 얻어내기 위해 70만2512주를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과 공모해 통정매매 188회, 가장매매 12회를 했다고 판단했다. 또 같은 기간 주가를 올리려는 목적으로 높은 값에 사는 척하는 고가 매수 주문 1661회, 주가를 내리려는 목적으로 많은 양의 주식을 파는 척하는 물량 소진 주문 1432회, 허수 매수 주문 367회, 시가·종가 관여 주문 242회 등의 이상매매 주문을 김 여사가 권 전 회장 등과 공모해 제출했다고 봤다. 4년 넘게 김 여사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0월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인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는 이용됐지만 범행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취지라며 주가조작 공모와 방조 모두 무혐의로 판단했다. 하지만 특검은 보강 수사를 거쳐 방조 혐의를 넘어 공범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은 2011년 1월경 김 여사가 미래에셋증권 직원과 통화하면서 “6대 4로 나누면 저쪽에 얼마를 줘야 하는 것이냐”며 “2억7000만원을 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한 통화 녹취록을 확보해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통화 당일 은행 계좌에서 2억7000만원을 수표로 인출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특검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주도 세력인 ‘저쪽’에 수익 40%를 떼어줬다고 판단하고 “시세조종이라는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관련 공천 개입 의혹과 건진법사 전성배씨 관련 통일교 현안 청탁 의혹 등에 대해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공적 지위를 사적으로 활용한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특검은 “헌법적 가치가 훼손됐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로부터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받고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에 정치권력과 금권이 개입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선거제도의 출발점인 공천의 공정성을 훼손하면서 정당의 후보자 추천 제도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침해했다”고 영장에 적시했다. 또 윤모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으로부터 샤넬 백 2개와 영국 그라프사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총 8000여만원의 금품을 전씨를 통해 전달받은 뒤 통일교 현안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김 여사 구속영장을 통해 “종교와 정치가 분리돼야 한다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규정했다. 848쪽 의견서 특검은 통일교의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등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지원 청탁에 대해선 “김 여사가 대한민국 정부의 조직과 예산에 대한 사적 개입으로 국정 질서에 혼란을 초래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밝혀낸 3가지 의혹의 주요한 사실과 더불어 제시한 ‘증거인멸 정황’이 김 여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검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매해 김 여사에게 교부한 혐의를 받는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으로부터 전날 제출받은 자수서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진품, 김 여사의 친오빠 진우씨의 장모 자택에서 압수한 목걸이 가품을 영장실질심사에서 제시했다. 이 회장은 자수서에서 “대선이 치러진 2022년 3월 직후 비서실장을 통해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를 구입해 김 여사에게 전달했고 다시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특검에 따르면 김 여사가 이 회장 측에 진품을 돌려준 시기는 2022년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순방 이후 재산 미등록 의혹 관련 고발장이 제출된 2022년 9월 이후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건희 특검팀이 수사하고 있는 의혹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 ▲코바나컨텐츠 뇌물성 협찬 사건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명태균·건진법사 등 민간인이 국정에 관여한 국정 농단 사건 ▲인사 개입 사건 ▲채해병 사건 및 세관 마약 사건 구명 로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제8회 전국동시지방 선거 개입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개입 ▲명태균 등을 통해 제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불법 여론조사 등 총 16가지다. 이 외에도 ▲무상 여론조사 제공 대가로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거래 등 선거 개입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및 양평 공흥지구 인허가 과정 개입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및 국가 계약에 개입 ▲국가기밀정보 유출 ▲제1호부터 제15호까지의 사건과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및 특별검사의 수사에 대한 방해 행위 등이다. 특검팀은 의혹의 정점인 김 여사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최장 20일간의 구속 기간 동안 아직 풀리지 않은 사건들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대부분의 의혹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태균·건진법사 게이트와 관련된 사건으로, 특검팀은 관련된 사실을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들통난 거짓말 이에 특검팀은 출범 이후 인지한 사건인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베트남에서 귀국한 ‘김 여사 일가의 집사’ 김예성씨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를 중심으로 IMS모빌리티(구 비마이카)에 대가·보험성 투자 혐의가 의심되는 기업들과 김 여사 일가의 사금고 의혹을 받는 신안저축은행, 그리고 김 여사가 운영해 온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전시회 뇌물 협찬 기업들로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우선 특검팀은 이번 김 여사의 구속영장 청구에서 배제됐던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 의혹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6000만원대로 알려진 해당 목걸이는 2022년 6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나토 정상회의 참석 차 유럽 순방 당시 착용했다가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의 중심에 섰던 바 있다. 목걸이의 행방을 추적해 왔던 특검팀은 최근 김 여사의 오빠인 김진우씨의 장모집에서 해당 목걸이를 확보했지만 감정 결과 모조품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여사 역시 해당 목걸이에 대해 모친인 최은순씨에게 선물하기 위해 2010년쯤 홍콩에서 구매한 200만원대 모조품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특검팀이 최근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김 여사에게 반클리프 스노 플레이크 목걸이의 진품을 직접 건넸다’는 취지의 자수서를 확보하면서 수사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윤 전 대통령 당선 직후 해당 목걸이를 선물했으며, 몇 년 뒤 김 여사 측으로부터 돌려받아 보관해 왔다는 게 서희건설 측의 설명이다. 서희건설 측은 해당 목걸이 실물도 특검팀에 제출했다. 특검팀 관계자는 “김 여사는 서희건설 측으로부터 목걸이 진품을 교부받아 나토 순방 당시 착용한 게 분명함에도 특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착용한 제품이 20년 전 홍콩에서 구매한 가품이라고 진술하고 김 여사 오빠 인척집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와 동일한 모델인 가품이 발견된 경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여사를 비롯한 모든 관련자를 수사 방해 및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 명확히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받은 귀중품 수사 확대 집사 게이트·관저 이전 의혹도 특검팀은 조만간 이봉관 서희건설 회장과 비서실장 최모씨 등을 소환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인척집에서 최소 3000만원 이상의 바셰론 콘스탄틴 여성용 시계 보증서가 발견된 것과 관련해서도 김 여사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수사 중이다. 해당 시계를 구매한 사업가 서모씨는 최근 특검팀 조사에서 지난 2022년, 윤 전 대통령 취임 뒤 김 여사의 부탁을 받아 같은 해 9월7일쯤 자신이 구매한 뒤 직접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시계 구매 자금 중 일부는 김 여사 측으로부터 받았다는 입장이다. 같은 해 9월 대통령경호처와 1870만원 상당의 로봇개 경호 시범 사업 계약을 맺기도 했다. ‘집사 게이트’와 관련해서는 핵심 키맨인 김씨가 베트남 호찌민에서 귀국하자마자 특검팀은 인천공항에서 체포해 특검 사무실로 압송해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김씨의 체포 기한이 영장 집행 기준 48시간 이내이기 때문에 특검팀은 그 안에 수사를 마치고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김씨 역시 특검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특검팀은 김씨를 상대로 집사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들의 184억원 투자 경위와 46억원의 행방 그리고 코바나콘텐츠 뇌물 협찬 의혹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가 운영한 렌터카 플랫폼 사이드스탭 ‘뿅카’는 비마이카와 함께 2015~2019년 코바나콘텐츠가 개최한 4개 전시회 협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또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은 물론 신안저축은행을 대상으로 특검팀의 수사가 확대될지도 주목된다. 특검팀은 카카오모빌리티와 HS효성 등이 IMS모빌리티에 거액을 투자하기 전후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받은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지난 11일,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위한 정부세종청사 공정위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도 했다. 김 여사 일가가 운영하는 이에스아이엔디(ESI&D) 등에 130억원이 넘는 대출을 해준 것으로 알려져 사금고 논란이 제기된 바 있는 신안저축은행은 코바나콘텐츠 전시회에도 협찬했다. 신안그룹 회장 차남인 박지호(개명 전 박상훈) 전 신안저축은행 대표는 2010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EMBA)에서 김 여사와 김씨를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연이 이어져 2013년 3월 신안저축은행의 각종 불법 대출 혐의가 불기소 처분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김씨는 박 전 대표의 집사 역할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 박 전 대표는 신안저축은행이 2017년 김씨와 모친 최은순씨의 329억원대 허위 잔고 증명서 사건의 피해자였음에도 이듬해 김씨를 계열사인 바로투자증권(현 카카오페이증권) 임원으로 선임했다. 특검팀 과제는? 특검팀은 관저 이전 특혜 의혹에 관한 수사도 본격화했다. 이들은 지난 13일 “관저 이전과 관련해 21그램 등 관련 회사 및 관련자 주거지 등에 대해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등 혐의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이 관저 이전 문제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저 이전 특혜 의혹은 윤 전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증축 과정에서 21그램 등 무자격 업체가 공사에 참여하는 등 실정법 위반이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