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연쇄 보험사기 전말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12.16 13: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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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연봉' 보험왕의 두 얼굴

[일요시사=사회팀] 보험설계사로 억대 연봉을 챙기며 승승장구했던 김모(39·여)씨. 그는 청북 청주에서 일명 '보험왕'으로 통했다. 그런데 이 보험왕은 수십명의 고객들로부터 30억∼40억원을 건네받은 뒤 돌연 잠적했다. 김씨는 과연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충북 청주에서 한 보험설계사의 수십억원대 사기 정황이 포착돼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청주에서는 올해 하반기에만 비슷한 수법의 사기 사건이 3건 연달아 터지면서 피해자들이 냉가슴을 앓고 있다.

감언이설로 속여

지난 10일 금융감독원은 국내 유명 보험회사의 직원 김모(39·여)씨가 자신의 고객들로부터 30억∼40억원 상당의 투자유치를 받은 뒤 잠적해 정확한 피해규모 등 사실 확인에 나섰다고 밝혔다. 김씨는 청주에서 이른바 '보험왕'으로 통했기에 충격은 더 컸다.

김씨는 평소 고객들을 가족처럼 대했다. 생일과 결혼기념일 등 각종 애경사를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고객의 자녀·부모·지인의 대소사까지 꼼꼼히 보듬어 신뢰를 얻었다.

특히 김씨는 고객이 아프다고 하면 약을 사서 전달했고, 고객이 외롭다고 하면 취미 생활도 함께하는 등 고객 확보에 갖은 정성을 쏟은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 A씨는 "김씨가 단순한 보험설계사가 아닌 가족이나 다름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A씨는 김씨가 자신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게 될지는 알지 못했다.

3년 전부터 김씨는 주변에 투자를 권유했다. 높은 이자를 담보로 피해자들을 현혹했다. 주로 목돈이 필요한 사업가들이 김씨에게 걸려들었다. 평소 김씨와 친분이 있던 사업가들은 김씨를 믿고 스스럼없이 돈을 맡겼다.

적게는 몇 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이르기까지 김씨에게 넘어간 돈은 어림잡아 40억원에 달했을 것이란 추정이다. 또 피해를 본 고객은 수십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한 이웃은 김씨에게 1억5000만원을 투자했다. 그는 "워낙 성격이 좋고 사람 됨됨이가 괜찮아 믿고 돈을 맡겼다"며 "이런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김씨의 이웃은 처음에 별다른 의심 없이 1000만원을 김씨에게 맡겼다. 그런데 10일 간격으로 김씨가 약속한 30만∼40만원의 높은 이자가 실제로 회수됐다. 재미를 본 이웃은 투자금액을 1억5000만원까지 늘렸다.

그런데 김씨는 지난 3일 오후부터 주변과의 연락을 끊었다. 김씨의 집을 찾아가도 김씨를 만날 수 없었다. 거액의 투자금을 건넨 이웃은 약속한 이자는커녕 원금조차 회수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화가 난 그는 김씨의 집 주변과 대로변에 현수막을 내걸고 피해자 확보에 나섰다. 그러자 달콤한 말에 속았던 피해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김씨는 종자돈이 없다는 고객들에게 지금까지 들었던 보험을 담보로 약관대출을 권유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고객들의 보험료도 일부 대납하면서 신임을 얻었다. 이미 수차례 보험왕에 오를 정도로 업계에서 검증됐던 김씨라 고객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김씨의 동료들 역시 김씨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김씨는 이 같은 수법으로 수십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한 뒤 돌연 종적을 감췄다. 가족들은 즉각 실종 신고를 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고이자 담보로 고객들 거액 투자 유도
수십억 들고 잠적…피해자 더 많을 듯

배신감에 휩싸인 피해자들은 금융감독원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곧장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심산이다. A씨 등 11명은 지난 11일 검찰에 김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들이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김씨는 ▲유명 보험회사에 다니며 ▲지점에서 억대 연봉을 받고 있는 데다 ▲워낙 고객 관리를 잘해 피해자들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액은 13억5천만원. 그러나 실제 피해자들 및 피해액은 훨씬 더 많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고소장을 접수한 검찰은 김씨의 소재를 추적하는 한편 사실 관계를 면밀히 파악할 예정이다.

그런데 청주에서 억대 사기 행각이 벌어진 건 올해 하반기 들어 벌써 세 번째다. 귀가 솔깃한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고 수십억원을 투자받은 뒤 내빼는 사건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 검거된 청주 소재 유명약국 약사 최모(52)씨는 무려 150억원대의 사기행각으로 충격을 줬다.

최씨는 지난 20여 년 동안 청주 시내를 비롯해 충청 곳곳에 약국을 개업했다. 그는 자신의 지인들에게 약국 확장을 위한 투자금 명목으로 돈을 긁어모았다.

최씨는 적게는 2억∼3억원, 많게는 10억∼20억원을 빌려 해마다 15∼20%의 이자를 채권자에게 안겨줬다. 높은 이자를 약속한 최씨는 김씨처럼 처음엔 적은 금액의 투자를 권유했다. 하지만 이자는 듬뿍 챙겨줬다. 높은 수익에 투자자들 스스로가 투자금을 조금씩 늘리도록 유도한 것이다.

병원과 제약회사 관계자, 개인사업자, 주부, 정치인, 공무원 심지어 금융권까지 그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발을 빼지 못하고 피해를 떠안았다.

최씨 때문에 14억원을 날렸다는 한 피해자는 "수익이 워낙 높아 사기인 줄 모르고 투자금만 늘렸다"고 가슴을 쳤다.

한 유력 정당의 도당 당직자로 알려진 안모(47)씨 역시 188억원의 지게차 투자사기로 철창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는 지난 2004년부터 올 7월까지 청주와 인천 등에서 "내 사업에 수천만원을 투자하면 월 100만∼130만원의 배당금을 주겠다"고 속여 모두 126명으로부터 188억원의 투자금을 갈취했다.


그는 이렇게 갈취한 투자금으로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호화 호텔에서 숙식하는 등 투자 목적 이외의 용도로 돈을 탕진했다. 피해자들 모두 약속한 배당금은커녕 원금도 제대로 환수 받지 못했다. 감언이설에 속은 값비싼 대가였다.

높은 이자 미끼

현재까지 보험왕 김씨의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드러난 정황을 놓고 봤을 때 최씨와 안씨의 경우처럼 사법 처벌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더불어 피해자들 중 일부는 김씨가 속한 보험회사가 이번 사기 행각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뚜렷한 혐의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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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