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자찬' 우수국회의원의 불편한 진실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12.10 11: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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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상 하나 못 받으면 바보?"

[일요시사=정치팀] 국정감사가 끝나고 연말이 다가오면 여의도 주변에선 으레 온갖 시상식이 열린다. 연말에 상 하나쯤 못 받은 국회의원은 '바보'란 소리를 들을 정도다. 여야 모두 정쟁에만 매달리다 올 한해 허송세월만 했다는 평가를 받고도 자화자찬에 여념이 없는 우수국회의원 시상식의 불편한 진실을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올해 국정감사(이하 국감)에 대한 평가는 냉혹했다. 국감 평가를 진행한 경실련은 "15일 남짓한 기간에 하루 평균 40여개 기관을 감사해야 했던 만큼 처음부터 졸속감사, 부실감사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면서 "여기에 정치공방에만 매몰되면서 정작 중요한 행정부 견제와 경제민주화, 복지 문제, 비정규직 문제, 전·월세 대책 등 민생현안은 외면당했다"고 지적했다.

전국의 국감현장을 밀착 모니터한 '국정감사NGO모니터단'은 올해 국감에 대해 C학점을 매기기도 했다. 올해는 여타 국회의 활동도 낙제점이었다.

묻지마 시상?

국회는 올해 예산 처리 법정시한을 넘겼고, 정기국회 3개월 동안 계류법안 6320건 중 단 한 건도 통과시키지 못했다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국감이 끝난 후 연말이 다가오면서 여의도 주변은 자화자찬격인 온갖 시상식으로 소란스럽다.

정치권에선 "연말에 상 하나도 못 받으면 바보"란 이야기까지 들려온다. 모 의원의 보좌관은 "우수의원 시상식은 말 그대로 성실한 자세로 성과를 낸 의원들에게 주는 상인데 어떤 의원은 제대로 출석도 안하고 상을 받기도 한다"며 "열심히 일한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정치발전에도 저해가 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출석률이나 법률안 발의, 가결 숫자 등 양적 평가에 치우치다 보면 의원들이 묻지마 법안 발의에만 매달린다는 지적도 있고, 질적 평가를 하려다 보면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각종 단체에서 수여하는 우수의원상은 남발 수준을 넘어 '상 나눠먹기' 양상에 이르렀다는 비판이다. 연말 우수의원 시상식을 개최하는 단체는 각종 이익단체와 언론사, 시민단체 등 수십여 곳에 달할 것으로 집계된다. 

일례로 지난달 열렸던 모 시상식의 경우는 여야가 대립하며 파행만 거듭하다 제대로 국감일정을 소화하지도 못했던 상임위의 위원장을 대상에 선정하거나, 본회의 출석률과 재석률이 낮은 의원들, 대표법률안 가결건수가 '0건'인 의원들까지 마구잡이로 수상자 명단에 올려 논란을 일으켰다.

민주당의 모 의원은 10·30 재보궐선거 유세지원 관계로 국감기간 12일 중 8일을 결석했음에도 소속 상임위 의원들 중 유일하게 우수의원으로 선정돼 구설수에 올랐다.

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국정감사 최우수 상임위원장상'에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아닌 모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선정된 것이다. 특별위원회는 국감을 실시하지 않는다. 국감도 실시하지 않은 특위 위원장을 국정감사 최우수 상임위원장에 선정한 것은 그야말로 블랙코미디였다. 논란이 커지자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일부 의원들은 자체적으로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의정활동은 '대충' 시상식 참석은 '열심'
기준 모호해 사실상 상 나눠먹기?

일부 이익단체들이 개최하는 우수의원 시상식의 경우는 로비성 행사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러한 일부 이익단체들은 객관적 근거도 없이 자신들에 유리한 법안을 제출했거나 자기 단체와 관련된 예산을 다루는 의원들을 대상으로 상을 남발하기도 한다.


한 이익단체가 개최한 시상식에서는 전체 38명의 수상자 중 모 상임위에서만 수상자가 10명 넘게 나왔는데, 해당 상임위는 시상식을 개최한 이익단체와 관련된 기관의 감사를 담당하는 곳이라 '로비성 시상식'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상 기준도 모호한 경우가 많다. 한 단체는 우수의원을 선정하며 '상임위원회 활동' '언론보도' '전문성' 등을 살펴봤다고 했는데 어떠한 기준으로 심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은 없었다. 심사위원의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이 크게 작용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심사위원의 선정과정 역시 모호했고 심사위원들 중 일부는 심사위원을 하기에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들 단체는 국감을 직접 모니터한 것도 아니고 주로 언론에 보도된 것을 토대로 의원들을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 단체는 국회의원들에게 공적서를 제출하게 해 공적서를 바탕으로 우수국회의원을 선정해 논란을 빚었다. 공적서는 일방의 주장으로 실제 의정활동과 다를 수도 있다. 이를 토대로 우수국회의원을 선정한다는 것은 객관성과 공정성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문제는 이들 단체와 공신력 있는 단체의 시상식의 명칭이 대동소이해 일반인들이 보기엔 어떤 상이 권위있는 상인지 구별하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모 국회의원의 보좌관은 "사실 이러한 상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 선거를 대비해 의정홍보물에 우수국회의원상을 받았다는 한 줄을 넣기 위함"이라며 "어차피 일반 유권자들은 구별도 못하는데 우리가 주는 상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열심히 일한 국회의원들만 억울해지는 순간이다.

억울한 모범생들

또 다른 국회의원의 보좌관은 "우리 의원실은 초선으로서 의원과 보좌진이 모두 국감을 맞아 밤을 새가며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도 막상 상을 받는 의원들의 면면을 보면 자극적인 내용을 밝혀내거나 힘이 있는 의원들인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물론 의원평가에 있어 질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국회 출석일수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한 의원들에게도 상장을 뿌리듯 나눠주는 것은 국민이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도록 왜곡하는 행위"라며 "하루 빨리 공신력 있는 시상식을 만들어 의원들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의원들이 선의의 경쟁을 펼침으로써 우리나라 정치도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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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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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