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이른 대권 도전 러시 숨겨진 노림수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12.09 13: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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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후 향해 뛰는 잠룡들의 합창 "나를 잊지 말아요!"

[일요시사=정치팀] 과거 대선이 끝나면 패배한 후보들은 한동안 정치권을 떠나 있는 것이 관례였다. 또 차기 유력 주자들도 정권 초반에는 최대한 몸을 낮추며 새 정부의 성공을 기원했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벌써부터 차기 대선 준비로 바쁜 모양새다. 차기 대선은 아직 4년이나 남았지만 유력 대권주자들이 앞다퉈 과속 페달을 밟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기 대선은 아직 4년이나 남았지만 유력 후보들은 벌써부터 차기 대선 준비로 분주하다. 새 정부가 출범한 후 얼마간은 차기 대권의 'ㅊ' 자도 거론하지 않던 관례와 비교하면 여야 유력 주자들이 때 이른 대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때 이른 경쟁
치열한 공방

가장 먼저 대권경쟁에 불을 지핀 것은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다. 김 의원은 지난 4월 재보선으로 국회에 입성한 후 그야말로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 의원은 자신의 행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김 의원을 바라보는 청와대의 시선은 싸늘하다.

특히 청와대 일각에서는 김 의원이 '근현대사역사모임' 등을 만든 것을 두고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인물이 벌써 사조직을 만드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는 후문이다.

김 의원의 행보는 자칫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앞당길 수도 있는 문제다. 게다가 김 의원은 지난 9월 김문수 경기지사, 홍준표 경남지사 등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한인축제에 참석해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대권 도전에 생각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이후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것이 아니다"라며 의미를 축소했으나 "주위에서 하도 권유하는 사람이 많으니, 내가 자격이 있는지 고민 중"이라며 또 한번 여지를 남겼다.

김 의원과 같은 행사에 참석한 김문수 지사 역시 덩달아 대권도전을 시사했다. 김 지사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국회를 떠난 지 8년이 지나 여의도에 의원 조직이 사실상 없다"면서 "더 이상 지방에 있으면 중앙정치를 못한다"고 말했다.

"대권가도는 마라톤, 지금부터 뛰어야"
어쩌다보니 대권행보, 자천타천형

경기지사 불출마와 함께 중앙정치 무대 복귀의사를 밝힌 셈이다. 김 지사는 "2010년 지방선거 때도 새누리당 내 상황 등을 생각하지 않았으면 출마하지 않고 초선만 하고 끝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차기 대권 도전을 위해 내년 경기지사 선거에 불출마 한 후 본격적으로 당내 세력확장에 나설 것임을 시사한 발언이다.

실제로 김 지사는 최근 여의도행이 잦아지고 있다. 통상적인 도정활동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차기 대선을 위한 세 모으기가 아니겠냐고 의심하고 있다.

대선이 끝난 후 전국을 돌며 민생탐방을 하기도 했던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은 최근 대구를 찾아 지역 국회의원들과 김범일 대구시장을 만났다. 정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 계열사 현대커민스는 대구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입주를 결정하기도 했다.

정 의원의 TK행보는 김 지사와도 겹치는 것이었다. 김 지사는 최근 경북도와 상생협약을 맺고 경북도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지역정가에선 두 사람의 TK행보에 대해 박 대통령이 떠난 뒤 무주공산인 TK를 선점하려는 경쟁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차후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 TK 지지도는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명 뛰니
따라 뛴다?

차기 대권을 선점하기 위한 움직임은 야권 내에서도 부단히 꿈틀대고 있다. 지난 11월29일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기자간담회를 열고 차기 대권 재도전 의사를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대선이 끝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날 간담회에서 문 의원은 "제가 꼭 (대선 후보를) 해야 한다고 집착하지는 않지만 회피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발언과 관련해 후폭풍이 일자 문 의원은 "그건 정권교체에 저도 최대한 기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원

론적 얘기"라고 해명했지만 석연치는 않다. 이날 발언은 비록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문 의원은 이날 작심한 듯 거침없이 발언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또 문 의원이 마음만 먹었다면 "아직은 차기 대권에 대해 논하기는 이르다"며 넘어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결국 정황상 작심발언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문 의원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무소속 안철수 의원 역시 최근 독자세력화에 나서며 활동영역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안 의원은 문 의원에게 대선 후보직을 양보하고 대선 당일인 지난해 12월19일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안 의원은 불과 82일 만인 지난 3월11일 서울 노원병 재보선 출마를 선언하며 정계에 복귀했다. 이후 안 의원은 안철수신당 창당과 관련해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신당이 궁극적으로 2017년 대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지적에도 별다른 이견을 나타내지 않으며 사실상 이를 인정하는 모양새다. 안 의원의 정치세력화는 결국 대선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행보라는 분석이다.

잠룡마다 천차만별 각자의 사정
'살아있는 권력' 청와대는 심기불편

그렇다면 벌써부터 줄을 잇고 있는 유력 후보들의 대권행보에 숨겨진 노림수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존재감 확보다. 차기 대선까지 아직도 4년이나 남았지만 역대 대선을 살펴보면 정권 초 유력주자로 손꼽혔던 인사들이 실제 대선에서도 유력주자로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10년 전 노무현정부 출범 당시 정치권은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 박근혜 의원, 정동영 의원 등을 차기 유력 대선후보로 꼽았고 실제 다음 대선은 이들 후보들의 각축장이 됐다. 5년 전 이명박정부 초에도 박 대통령은 이미 가장 유력한 차기 후보로 꼽혔었다.
유력 대선 후보군에 계속 이름을 올림으로써 존재감을 유지하는 것. 이는 여야 잠룡들이 때 이른 대권행보에 나선 공통된 이유라는 분석이다. 




물론 각자 나름의 사정도 있다. 김무성 의원의 광폭행보와 관련해서는 김 의원 측 내부 참모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른 것으로 알려진다. 정권 초기에 이 같은 행동으로 자칫 청와대와 친박계 의원들의 견제를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김 의원은 내년에 있을 전당대회를 노리고 있는 만큼 언제까지 숨죽인 행보만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이 빨리 입장을 정리해야 자기 세력을 본격적으로 끌어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청와대와 당 지도부가 제대로 된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현 시점이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고 세력을 넓힐 수 있는 적기로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김문수 지사의 경우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어 자천타천으로 대권행보를 공식화 하게 된 경우다.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김 지사가 언제까지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끝까지 달릴까?
중도 포기할까?

김 지사의 망설임으로 자칫 차기 후보군을 제대로 발굴해내지 못할 경우엔 책임론에 휩싸일 수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분석이다. 김 지사가 경기지사 불출마를 선택할 경우 가능성은 차기 대권 도전과 정계은퇴 두 가지뿐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김 지사의 대권 도전설이 기정사실화 됐고 김 지사 역시 이를 부인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또 이미 경쟁 후보군들이 세몰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지사 역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대권 도전 선언 러시에 의도적으로 동참하게 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안철수 의원도 비슷한 경우다. 일각에선 안 의원이 차기 총선에 맞춰 창당을 준비한다면 그 과정이 지금보다는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과거 자유선진당의 경우만 하더라도 200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그 해 2월에 창당을 했지만 인재를 모으는 데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여야 대립으로 꽉 막힌 현 정국이야말로 신당 창당의 가장 큰 명분이고, 안 의원으로서는 이러한 시점을 놓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선후보였던 문 의원이 대선이 끝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차기 대권 도전을 못 박고 나선 것은 최근 독자세력화에 나서며 활동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안 의원의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 대선에서 야권 내 최대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은 차기 대선에서도 라이벌 구도를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안 의원이 활동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상황에서 문 의원도 이에 대응해 자신의 존재감을 키울 승부수를 던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안철수신당이 민주당 일부 세력까지 잠식해오는 상황에서 문 의원으로서는 친노세력을 결집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문 의원의 차기 대권 재도전 시사는 안 의원의 신당 창당 행보에 대한 힘 빼기 성격도 배제할 수 없다는 평이다.

정치권 이목
벌써 4년 후로

게다가 야권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문 의원이 차기 대권 출마를 거론하며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모습이 여론의 관심을 끌고 야권의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소수의견으로는 문 의원이 차기 대권주자 이미지를 굳힘으로써 아직 끝나지 않은 NLL논란 등 여권이 문 의원을 공격할 때마다 차기 대권주자를 탄압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어 자기 방어용 자가발전이란 해석도 있다.

이처럼 여야 잠룡들은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박근혜정권 초부터 차기 대권을 향한 레이스를 시작한 모양새다. 하루하루 격동하는 정치권에서 벌써 4년 후를 준비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권으로 향하는 길은 마라톤과 같다. 지금부터 준비해야만 한다. 벌써 시작된 대권레이스의 승자는 누가 될까? 정치권의 이목은 벌써 4년 후로 쏠려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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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