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권 살벌한 신공안정치 실체 해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12.09 11: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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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걸리면 '종북몰이'로 찍어낸다?"

[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정권의 이른바 '신(新)공안정치' 광풍이 모든 사회현안을 집어 삼키고 있다. 일자리 부족, 전세대란, 대학등록금,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이 넘쳐나지만 이같은 이슈들은 박근혜정부 출범 후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종북몰이'에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서민들의 삶은 오히려 더 팍팍해졌음에도 '종북 척결'이란 대의 아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과연 박근혜식 신공안정치의 실체는 무엇일까?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실시됐던 지난 2월.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한 취재를 하고 있던 한 기자는 황당한 일을 겪어야만 했다. 취재를 위해 찾았던 모 의원실 관계자가 "이렇게 엄중한 때에 생뚱맞게 그런 취재나 하느냐"며 핀잔을 줬기 때문이다. 이같은 분위기 탓인지 당시 한창 의혹이 불거지고 있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이슈는 순식간에 구석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 공안이슈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다.

종북 핵폭탄
이슈 블랙홀

박근혜정부 들어 신공안정치의 광풍이 무섭게 휘몰아치고 있다. 정권에 불리한 현안이 부각될 때마다 종북 이슈를 띄워 모두 묻어버리는 방식이다. 지난달 28일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종북몰이에 분노를 느낀다"며 강경한 발언을 쏟아 낸 배경에는 이러한 사연이 있다.

공안 카드는 박근혜정부가 수세에 몰릴 때마다 예외 없이 등장했다. 지난 6월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한 정황증거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며 한창 시끄러울 때 국정원은 2007년 정상회담 회의록을 전격 공개했다. 새누리당 소속 서상기 정보위원장은 발췌본을 열람한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있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정국은 순식간에 NLL 진실공방 정국으로 전환됐다.

위기 때마다 이념대결로 역공
종북과 선 못 긋는 야권도 문제


지난 9월에는 국정원이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수사에 착수하면서 또 한번 수세에 몰린 국면을 전환했다. 이에 대해 진보진영에서는 3년 이상 내사를 진행해온 사건을 왜 이렇듯 미묘한 시점에 공개했느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여론에 밀려 제대로 된 의혹제기조차 할 수 없었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태 이후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이 각각 밀어붙이고 있는 통진당 해산청구안과 이석기 제명 징계요구안 역시 종북몰이로 의심할 만하다.

이미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과 관련해서는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재판의 결과를 지켜본 후 결정해도 될 사항임에도 정부와 여당이 공안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해당 사항들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박근혜정부와 여당은 톡톡히 재미를 봤고 어느새 '종북'은 그들의 만능키가 되었다.

종북 만능키
만사OK

지난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유럽순방 당시 일부 유학생과 교민들이 부정선거 규탄 촛불집회를 벌이자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시위대를 종북세력으로 규정하며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발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 의원은 시위를 주도한 세력이 통진당이라며 비판했다. 

하지만 당시 시위에 통진당 관계자가 참석했다고 해도 시위대 전체를 종북세력으로 매도하며 합법적인 시위대에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협박을 한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야권은 "김 의원의 논리는 현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은 모두 종북이라는 식"이라며 비판했다. 실제로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정부정책과 관련해 쓴소리를 내던 단체들이 오비이락격으로 줄줄이 수사를 받고 있다. 전교조와 전공노에 대한 검찰 수사가 갑작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이 같은 수사는 일단 외형상으로는 정당한 절차에 의한 것이고 오비이락에 불과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왠지 뒷맛이 씁쓸하다. 가장 최근에는 국가기관 대선개입에 대해 시국선언을 했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원로신부에 대해 검찰이 국보법 위반혐의로 수사에 착수한 것이 이와 비슷한 사례다.

박근혜정부 들어 본격화되고 있는 공안 분위기 조성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국방부는 지난해 10월 전군에 '종북 실체 표준 교안'을 배포, 장병을 대상으로 종북 관련 교육을 강화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육군 모 사단 훈련소는 훈련병들에게 가족 앞에서 "종북 쓰레기를 몰아내자"는 구호를 복창하게 해 지나친 공안 분위기 조성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 6월엔 고교생 상당수가 6·25를 북침으로 응답했다는 언론보도를 토대로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묵과할 수 없는 문제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며 지적하자 교육당국은 2017학년도 입시부터 한국사를 수능에 필수화하는 틀을 만들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지난 8월 검정과정을 통과한 교학사 교과서가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등을 미화하는가 하면 남북정상회담 내용을 누락시키는 등 지나치게 반공·반북 역사인식만 부각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공안정치는 역대 보수정권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 왔던 것으로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반공을 앞세워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한 것을 시작으로 최초의 직선제를 통해 탄생한 노태우 정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다음 대선에서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정부 말기 안기부를 통해 '북풍'을 일으켰다.

야권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공안정치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정치의 후진성에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공안정치는 진보세력의 책임도 일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북풍사건과 같이 완전히 조작된 사건은 분명히 이전 정권의 잘못이지만 현재 공안사건들은 분명한 팩트가 있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다소 침소봉대됐다는 논란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조건 공안정치라고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일례로 최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원로신부의 연평도 포격 북한 옹호 발언에 대해 민주당은 공식적으로는 선긋기에 나섰지만 당내 일부 강경파들은 국회에서 보란 듯이 시국미사를 열며 박 신부의 발언에 힘을 싣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이는 당 지도부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른 행동이었다.

박 신부의 연평도 포격 북한 옹호 발언은 일반국민들이 보기에도 분명히 문제가 있는 발언이었다. 이런 발언을 대변하고 나서는 것은 스스로 종북 논란을 부추기는 행동이란 비판이다.

종북 옹호
야권도 문제

이외에도 야권은 각종 현안들에 대해 종북 선긋기에 실패함으로써 정부와 여당이 종북몰이를 할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제공했다는 비판이다. 특히 지난해 통진당 게시판에 비례대표 선출과정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내용을 최초로 폭로한 부산 금정구의회 이청호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전 대표가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과의 합당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에 종북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측은 내부적으로 종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만 해놓고서는 정작 합당하고 나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당장의 세력확장을 위해 종북세력이라는 의심을 하면서도 일단 손을 잡고 보는 진보세력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유 전 대표가 민주노동당과 손을 잡겠다고 결심했다면 종북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며 묻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북 문제가 해결되기 전 까지는 합당을 미루는 책임감 있는 자세를 보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종북몰이에 물 건너간 국민대통합
"집권 후반기엔 역풍 맞을 것"

종북으로 의심받는 세력임을 잘 알면서도 당장 힘을 키우기 위해 손을 잡고 문제가 생기면 꼬리 자르기 식으로 그동안 문제를 해결해왔기 때문에 야권 전체가 종북 낙인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정치권이 공안정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현재 사회의 갖가지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종북논란에 묻혀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한 전문가는 "박 대통령이 신공안정치를 통해 유신시대로 회귀하려 한다느니 하는 야권의 주장은 사실 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진짜 우려하는 것은 모든 이슈를 잠식해버리는 종북 이슈의 특성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공론화되어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종북 이슈에 묻혀 제대로 된 논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모두 감수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 공방
민생은 뒷전


또 다른 전문가는 "정말 종북세력이라고 한다면 정확한 팩트를 가지고 법적 처벌을 하면 된다.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종북으로 낙인찍는 방식은 온 나라를 분열시키는 일로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시절 줄기차게 외쳤던 국민대통합과는 거리가 멀다"며 "종북 몰이가 당장은 효과적인 정권 방어수단이 될 수 있겠지만 집권 후반기가 되면 분명히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종북 몰이보다는 민생을 챙기는 방법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한다"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는 또 "현재 정부차원에서 종북몰이를 통해 이슈를 덮으려 하는 것은 분명한 팩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종북세력이 있는 것도 팩트"라며 "정부와 여당은 종북몰이를 중단해야 하고 야권도 확실하게 종북세력과 선을 긋고 종북몰이의 여지를 남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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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