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계 발 '페이퍼컴퍼니 괴담' 추적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12.02 13: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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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의원님…사정기관 타깃 정해졌다?

[일요시사=사회팀] 효성그룹 총수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페이퍼컴퍼니 괴담'이 눈길을 끈다. 박근혜정부 들어 타깃이 된 전두환 전 대통령,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모두 페이퍼컴퍼니를 직·간접적으로 운용했기 때문. 이 같은 배경으로 사정기관의 다음 타깃 역시 페이퍼컴퍼니를 개설한 사회고위층이 될 것이란 소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페이퍼컴퍼니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정·재계를 아우르는 유명 인사들은 케이맨 군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조세피난처는 실제 발생한 법인 소득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에 대해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나 지역을 뜻한다. 

사회고위층
비자금 통로

조세피난처는 기업 입장에서 세제상의 혜택뿐 아니라 외국환거래법 등의 규제가 적고 경영상 장애요인이 거의 없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더구나 조세피난처에선 모든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역외 탈세 및 돈세탁용 자금 거래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조세피난처에 세워진 페이퍼컴퍼니는 흔히 비자금 통로로 의심받는다. 기업들은 경영상 소요되는 제반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특수목적법인(페이퍼컴퍼니)을 설립한다고 하지만 조세정의 측면에서 페이퍼컴퍼니는 말 그대로 '눈먼 돈'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5월 <뉴스타파>의 특종 보도 이후 유명 인사들의 페이퍼컴퍼니 소유 여부는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당시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 취재한 결과물을 공개하면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들은 모두 245명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90년대 중반부터 재벌 중심으로 '유령회사' 성행
거래시 차명 기본…조세피난처서 제3국으로 은닉

보도에 따르면 페이퍼컴퍼니 설립 시 한국 주소를 기재한 사람은 159명,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해외 주소를 기재한 사람은 86명이었다. 그리고 해외 주소를 기재한 사람 중 일부는 경과세국인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에 현지 법인을 설립한 뒤 법인 소득을 다시 해외 계좌로 빼돌리는 수법을 사용, 세금을 탈루했다. 이는 한국에서 빠져나간 돈이 경과세국을 거쳐 조세피난처로 옮겨졌다가 다시 제3국을 경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해외 주소를 갖고 있는 이들과 더불어 주목되는 무리가 있다.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들로 불리는 외국인 기관투자자들은 법률상 한국인이 아니면서 한국으로부터 많은 돈을 쓸어 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투자 목적으로 개설한 페이퍼컴퍼니는 관계 당국이 파악한 총량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스위스를 본거지로 했던 검은머리 외국인들은 한국과 스위스가 금융정보 교환 협정을 맺게 되자 조세피난처에 특수목적법인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외국인 신분으로 국내 주식 시장에 투자하지만 외국 법인 명의를 빌리기 때문에 신원을 감출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은머리 외국인의 존재는 외국에 등록된 일부 기관투자사의 대주주가 국내 고액 자산가일 가능성과 연결된다. 다시 말하면 대주주가 자신의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해 페이퍼컴퍼니 설립 과정에서 검은머리 외국인의 명의를 빌린 것이다.

꼭꼭 숨겨진
눈먼 돈의 행방

우리나라는 금융실명제를 도입하면서 가명이나 무기명을 이용한 금융 투자를 1993년부터 금지해왔다. 때문에 국내 지하자본은 일찍부터 각종 금융규제에서 자유로운 해외를 주목했다. IMF를 전후로 한 시점에 국내 자본의 상당수는 해외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고위층의 재산도 국외로 유출됐다. 특히 지난 2007년 있었던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사회고위층의 재산 은닉 시도는 증가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산 은닉을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대표적인 인물로 불리고 있다. 앞서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인 블루아도니스를 설립하면서 비자금 은닉 의혹을 샀다. 그러나 재국씨는 지난 10월 말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해당 의혹을 부인했다.

재국씨가 직접 밝힌 사건 개요는 이렇다. 재국씨는 미국 유학생활 중 부친인 전 전 대통령이 백담사에 가게 되면서 급히 귀국했다. 귀국 후 그는 미국에 남겨둔 미화 70만 달러를 해외로 옮기는 게 좋다는 주변 권유에 따라 아랍은행을 소개받았다. 그러나 아랍은행 관계자는 법인하고만 거래한다면서 재국씨의 예금 예치를 거절했다. 그러자 재국씨는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고 계좌를 개설하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공교롭게도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게 됐다는 해명이다.

여기서 재국씨 해명의 진실성과는 별개로 전 전 대통령은 미납 추징금 전액을 납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사건이 일단락됐다. 그러나 전두환 수사의 불씨는 또 다른 곳으로 옮겨 붙었다. 미납 추징금 규모 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사기대출·횡령 등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17조9253억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전체 추징금 중 887억원만을 납부해 눈총을 사고 있다. 또 김 전 회장은 해외로 빼돌린 수백억원의 재산으로 호화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파문은 가라앉지 않는 상황이다.

김 전 회장은 그간 조세 당국의 추적을 피해 국외 페이퍼컴퍼니를 운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7월 복수 언론은 <뉴스타파>의 보도를 인용해 "김 전 회장의 비자금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방콕은행으로 송금됐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관련 내용을 종합한 전체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김 전 회장의 아들 선용씨는 옥포공영이라는 유한회사를 통해 베트남 하노이 중심부에 위치한 반트리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선용씨의 골프장 개발 사업권 획득 과정에서 노블에셋과 노블베트남이란 페이퍼컴퍼니가 등장한다. 일각에선 이 두 법인의 실소유주를 선용씨로 보고 있다.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업체인 PTN의 내부문서 등에 따르면 방콕은행 뉴욕지점은 노블에셋의 지시를 받아 2003년 9월부터 2006년 5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미화 670만달러를 노블베트남에 송금했다.

하지만 노블에셋의 관리 대행업체였던 PTN 직원들은 노블에셋이 방콕은행에 계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 방콕은행으로 송금된 670만달러의 출처를 알지 못했다. 2004년 말 기준 노블에셋은 단 2달러를 소유한 유령회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002년 있었던 한국자산관리공사와 김 전 회장의 민사소송 기록이 심상치 않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대우 미주법인을 통해 홍콩에 있는 페이퍼컴퍼니인 KMC에 수천만 달러를 송금했다. 이어 KMC는 이중 2500만달러를 방콕은행에 개설된 데레조프스키 명의 계좌에 입금했는데 데레조프스키는 선용씨의 가명인 것으로 보도됐다.

즉 대우에서 빠져 나온 거액의 돈은 페이퍼컴퍼니로 흡수됐고, 조세피난처를 거쳐 마지막엔 골프장 인수에 사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소문만 무성
의뭉스러운
 거래

하지만 선용씨는 지난 10월 모든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재국씨와 함께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그는 노블에셋에 대해 "태국 부동산개발업자가 싱가포르에 세운 특수목적법인"이라며 "이 회사가 지난 2007∼2008년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자 요청에 따라 지분을 인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지분 인수 대금은 옥포공영 비상장 주식을 매각하고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한 것"이라며 남은 의혹을 일축했다. 즉 선용씨의 부친인 김 전 회장과는 아무 관련 없는 돈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김우중 일가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의뭉스러운 거래는 여전히 의혹의 대상이다. 선용씨가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한 투자회사는 베트남 하노이에 건설 중인 대형 주상복합 건물 사업권을 매각하면서 이득을 남겼는데 해당 거래 과정에서 코랄리스 S.A.란 페이퍼컴퍼니가 고개를 들었다. 코랄리스 S.A.는 유럽의 대표적인 조세 피난처로 알려진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다.

하지만 선용씨 측은 "정상적인 투자 과정을 거쳤고, 조세 당국에도 세금을 완납했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 관계자는 "페이퍼컴퍼니가 반드시 불법으로 사용되는 건 아니다"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 예가 있다. 지난 10월31일 민주당 이상직 의원은 "현대글로비스와 대한항공이 마셜아일랜드와 파나마, 케이맨 군도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파장은 미미했다.

 같은 날 이 의원은 현대글로비스와 대한항공의 역외 탈세 가능성을 언급했다. 또 이 의원은 국세청의 조사를 촉구하며 "현대글로비스와 대한항공이 각각 선박과 항공기를 페이퍼컴퍼니에서 리스해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경영 과정에서 복수의 금융기관(대주단)이 자신들의 금융 담보에 대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페이퍼컴퍼니에 대한 권리는 모두 대주단이 갖고 있어 대한항공은 권리를 행사할 수 없고, 조세 회피 목적이 없다"고 못박았다.

이 같은 대한항공의 해명이 진실인지 여부는 중립기관을 통해 확인되지 않았다. 외부로 알려진 대로라면 지금껏 국세청은 대한항공을 상대로 대응을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눈여겨볼 인물이 있다. 대한항공 부회장을 역임한 조중건 고문의 부인 이영학씨다.


앞서 이씨는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확인됐고 탈세 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예고했던 국세청은 아직까지 잠잠하다. 원인은 두 가지로 좁혀진다.

첫째, 탈세 혐의를 최종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길어지고 있을 확률이다. 지난 9월 국세청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405명의 명단을 확보, 39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일정상 빠르면 올해 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에 조사 결과가 발표될 수 있다. 그러나 조사 대상자에 이씨가 포함돼 있는지는 미지수다.

때문에 이씨에 대한 조사가 처음부터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일각에선 "털어도 더 나올 게 없어서 그런 것 아니겠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는 페이퍼컴퍼니의 설립 여부보다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자금이 어디로 도착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에 무게를 싣는다. 따라서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검찰의 역할은 자금의 성격을 파악하는 일에 초점이 맞춰진다고 한다.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윤대진 부장검사)는 효성그룹 총수 일가의 수천억원대 탈세 고발 사건과 관련해 조현준 효성그룹 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바로 전날 조석래 회장의 핵심 측근인 이상운 그룹 부회장을 소환조사한 데 이은 광폭 행보였다.

해외에 꼬불친 '검은돈' 뿌리
전두환·김우중 비자금도 흘러가

현재 검찰은 효성그룹이 IMF 사태 때 해외사업에서 손실을 입자 총수 일가가 1조원대 분식회계를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1996년 홍콩에 임원 명의로 된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1000억원대 비자금이 조성된 경위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조 회장 등은 싱가포르 법인 명의로 외국계 은행에서 200억원을 대출받은 뒤 자사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외국인 투자자 행세를 하며 국내 주식을 매매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임직원 및 법인 등 250여개 명의로 된 차명 계좌 수백개를 운용하면서 불법 비자금을 조성·관리한 의혹을 받고 있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특수2부는 해당 사건을 연내에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총수 일가의 탈세 및 비자금 조성 정황을 어느 정도 확인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비자금이 정계 로비 용도로 사용됐는지도 초미의 관심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 2008∼2009년 있었던 효성그룹 수사 당시 비자금 규모와 사용처, 오너 일가의 개입 여부 등을 입증하지 못했다. 다만 조 사장 개인은 지난해 9월 회사돈으로 미국 고급 주택을 구입한 사실이 확인돼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바 있다.

자금 종착지는
해외 부동산?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이 나왔을 때부터 눈길을 끌었던 해외 부동산 불법 매입 여부도 관심이다. 추적 불가능한 대규모 건설 사업(혹은 건물)에 법인이 만든 검은 돈이 쏠렸을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건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대기업 A사가 해외에서 조성한 비자금을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는 설과 MB정권 실세인 B씨가 한 건설사 지분을 검은머리 외국인 명의로 차명 보유하고 있다는 설 등은 지난 국정감사를 앞두고 여의도 안팎에 나돌았다.

얼마 전에는 대기업 C사의 오너가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역외 탈세, 주가 조작 등 혐의로 내사를 받았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C사의 경우는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검은 돈의 종착지를 두고 루머가 춤을 추는 상황인 것이다.

페이퍼컴퍼니를 겨냥한 역외 탈세 수사는 지하경제 양성화란 박근혜정부 공약에 부합한다. 현 정부 들어 타깃이 된 전 전 대통령과 조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모두가 페이퍼컴퍼니를 직·간접적으로 운용했다는 점은 꽤 놀랍다. 이른바 페이퍼컴퍼니 괴담은 정보를 다루는 입장에서 매혹적인 소스가 틀림없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앞서 밝혔듯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만으로 법적 처벌을 가할 수 없다. 또 일부 기업들은 벌써 역외 탈세 세무조사에 대비한 방어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갈수록 대담해지고 교묘해지는 사회고위층의 검은 돈 숨기기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지 않는 한 뿌리 뽑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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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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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