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계 발 '페이퍼컴퍼니 괴담' 추적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12.02 13: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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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의원님…사정기관 타깃 정해졌다?

[일요시사=사회팀] 효성그룹 총수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페이퍼컴퍼니 괴담'이 눈길을 끈다. 박근혜정부 들어 타깃이 된 전두환 전 대통령,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모두 페이퍼컴퍼니를 직·간접적으로 운용했기 때문. 이 같은 배경으로 사정기관의 다음 타깃 역시 페이퍼컴퍼니를 개설한 사회고위층이 될 것이란 소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페이퍼컴퍼니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정·재계를 아우르는 유명 인사들은 케이맨 군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조세피난처는 실제 발생한 법인 소득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에 대해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나 지역을 뜻한다. 

사회고위층
비자금 통로

조세피난처는 기업 입장에서 세제상의 혜택뿐 아니라 외국환거래법 등의 규제가 적고 경영상 장애요인이 거의 없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더구나 조세피난처에선 모든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역외 탈세 및 돈세탁용 자금 거래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조세피난처에 세워진 페이퍼컴퍼니는 흔히 비자금 통로로 의심받는다. 기업들은 경영상 소요되는 제반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특수목적법인(페이퍼컴퍼니)을 설립한다고 하지만 조세정의 측면에서 페이퍼컴퍼니는 말 그대로 '눈먼 돈'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5월 <뉴스타파>의 특종 보도 이후 유명 인사들의 페이퍼컴퍼니 소유 여부는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당시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공동 취재한 결과물을 공개하면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들은 모두 245명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90년대 중반부터 재벌 중심으로 '유령회사' 성행
거래시 차명 기본…조세피난처서 제3국으로 은닉

보도에 따르면 페이퍼컴퍼니 설립 시 한국 주소를 기재한 사람은 159명,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해외 주소를 기재한 사람은 86명이었다. 그리고 해외 주소를 기재한 사람 중 일부는 경과세국인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에 현지 법인을 설립한 뒤 법인 소득을 다시 해외 계좌로 빼돌리는 수법을 사용, 세금을 탈루했다. 이는 한국에서 빠져나간 돈이 경과세국을 거쳐 조세피난처로 옮겨졌다가 다시 제3국을 경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해외 주소를 갖고 있는 이들과 더불어 주목되는 무리가 있다.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들로 불리는 외국인 기관투자자들은 법률상 한국인이 아니면서 한국으로부터 많은 돈을 쓸어 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투자 목적으로 개설한 페이퍼컴퍼니는 관계 당국이 파악한 총량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스위스를 본거지로 했던 검은머리 외국인들은 한국과 스위스가 금융정보 교환 협정을 맺게 되자 조세피난처에 특수목적법인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외국인 신분으로 국내 주식 시장에 투자하지만 외국 법인 명의를 빌리기 때문에 신원을 감출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은머리 외국인의 존재는 외국에 등록된 일부 기관투자사의 대주주가 국내 고액 자산가일 가능성과 연결된다. 다시 말하면 대주주가 자신의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해 페이퍼컴퍼니 설립 과정에서 검은머리 외국인의 명의를 빌린 것이다.

꼭꼭 숨겨진
눈먼 돈의 행방

우리나라는 금융실명제를 도입하면서 가명이나 무기명을 이용한 금융 투자를 1993년부터 금지해왔다. 때문에 국내 지하자본은 일찍부터 각종 금융규제에서 자유로운 해외를 주목했다. IMF를 전후로 한 시점에 국내 자본의 상당수는 해외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고위층의 재산도 국외로 유출됐다. 특히 지난 2007년 있었던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사회고위층의 재산 은닉 시도는 증가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산 은닉을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대표적인 인물로 불리고 있다. 앞서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인 블루아도니스를 설립하면서 비자금 은닉 의혹을 샀다. 그러나 재국씨는 지난 10월 말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해당 의혹을 부인했다.

재국씨가 직접 밝힌 사건 개요는 이렇다. 재국씨는 미국 유학생활 중 부친인 전 전 대통령이 백담사에 가게 되면서 급히 귀국했다. 귀국 후 그는 미국에 남겨둔 미화 70만 달러를 해외로 옮기는 게 좋다는 주변 권유에 따라 아랍은행을 소개받았다. 그러나 아랍은행 관계자는 법인하고만 거래한다면서 재국씨의 예금 예치를 거절했다. 그러자 재국씨는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고 계좌를 개설하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공교롭게도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게 됐다는 해명이다.

여기서 재국씨 해명의 진실성과는 별개로 전 전 대통령은 미납 추징금 전액을 납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사건이 일단락됐다. 그러나 전두환 수사의 불씨는 또 다른 곳으로 옮겨 붙었다. 미납 추징금 규모 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사기대출·횡령 등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17조9253억원의 추징금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전체 추징금 중 887억원만을 납부해 눈총을 사고 있다. 또 김 전 회장은 해외로 빼돌린 수백억원의 재산으로 호화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파문은 가라앉지 않는 상황이다.

김 전 회장은 그간 조세 당국의 추적을 피해 국외 페이퍼컴퍼니를 운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7월 복수 언론은 <뉴스타파>의 보도를 인용해 "김 전 회장의 비자금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방콕은행으로 송금됐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관련 내용을 종합한 전체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김 전 회장의 아들 선용씨는 옥포공영이라는 유한회사를 통해 베트남 하노이 중심부에 위치한 반트리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선용씨의 골프장 개발 사업권 획득 과정에서 노블에셋과 노블베트남이란 페이퍼컴퍼니가 등장한다. 일각에선 이 두 법인의 실소유주를 선용씨로 보고 있다.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업체인 PTN의 내부문서 등에 따르면 방콕은행 뉴욕지점은 노블에셋의 지시를 받아 2003년 9월부터 2006년 5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미화 670만달러를 노블베트남에 송금했다.

하지만 노블에셋의 관리 대행업체였던 PTN 직원들은 노블에셋이 방콕은행에 계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 방콕은행으로 송금된 670만달러의 출처를 알지 못했다. 2004년 말 기준 노블에셋은 단 2달러를 소유한 유령회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002년 있었던 한국자산관리공사와 김 전 회장의 민사소송 기록이 심상치 않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대우 미주법인을 통해 홍콩에 있는 페이퍼컴퍼니인 KMC에 수천만 달러를 송금했다. 이어 KMC는 이중 2500만달러를 방콕은행에 개설된 데레조프스키 명의 계좌에 입금했는데 데레조프스키는 선용씨의 가명인 것으로 보도됐다.

즉 대우에서 빠져 나온 거액의 돈은 페이퍼컴퍼니로 흡수됐고, 조세피난처를 거쳐 마지막엔 골프장 인수에 사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소문만 무성
의뭉스러운
 거래

하지만 선용씨는 지난 10월 모든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재국씨와 함께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그는 노블에셋에 대해 "태국 부동산개발업자가 싱가포르에 세운 특수목적법인"이라며 "이 회사가 지난 2007∼2008년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자 요청에 따라 지분을 인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지분 인수 대금은 옥포공영 비상장 주식을 매각하고 유상증자를 통해 마련한 것"이라며 남은 의혹을 일축했다. 즉 선용씨의 부친인 김 전 회장과는 아무 관련 없는 돈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김우중 일가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의뭉스러운 거래는 여전히 의혹의 대상이다. 선용씨가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한 투자회사는 베트남 하노이에 건설 중인 대형 주상복합 건물 사업권을 매각하면서 이득을 남겼는데 해당 거래 과정에서 코랄리스 S.A.란 페이퍼컴퍼니가 고개를 들었다. 코랄리스 S.A.는 유럽의 대표적인 조세 피난처로 알려진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다.

하지만 선용씨 측은 "정상적인 투자 과정을 거쳤고, 조세 당국에도 세금을 완납했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 관계자는 "페이퍼컴퍼니가 반드시 불법으로 사용되는 건 아니다"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 예가 있다. 지난 10월31일 민주당 이상직 의원은 "현대글로비스와 대한항공이 마셜아일랜드와 파나마, 케이맨 군도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파장은 미미했다.

 같은 날 이 의원은 현대글로비스와 대한항공의 역외 탈세 가능성을 언급했다. 또 이 의원은 국세청의 조사를 촉구하며 "현대글로비스와 대한항공이 각각 선박과 항공기를 페이퍼컴퍼니에서 리스해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경영 과정에서 복수의 금융기관(대주단)이 자신들의 금융 담보에 대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페이퍼컴퍼니에 대한 권리는 모두 대주단이 갖고 있어 대한항공은 권리를 행사할 수 없고, 조세 회피 목적이 없다"고 못박았다.

이 같은 대한항공의 해명이 진실인지 여부는 중립기관을 통해 확인되지 않았다. 외부로 알려진 대로라면 지금껏 국세청은 대한항공을 상대로 대응을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눈여겨볼 인물이 있다. 대한항공 부회장을 역임한 조중건 고문의 부인 이영학씨다.


앞서 이씨는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확인됐고 탈세 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예고했던 국세청은 아직까지 잠잠하다. 원인은 두 가지로 좁혀진다.

첫째, 탈세 혐의를 최종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길어지고 있을 확률이다. 지난 9월 국세청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405명의 명단을 확보, 39명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일정상 빠르면 올해 말이나 늦어도 내년 초에 조사 결과가 발표될 수 있다. 그러나 조사 대상자에 이씨가 포함돼 있는지는 미지수다.

때문에 이씨에 대한 조사가 처음부터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일각에선 "털어도 더 나올 게 없어서 그런 것 아니겠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는 페이퍼컴퍼니의 설립 여부보다는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자금이 어디로 도착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에 무게를 싣는다. 따라서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검찰의 역할은 자금의 성격을 파악하는 일에 초점이 맞춰진다고 한다.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윤대진 부장검사)는 효성그룹 총수 일가의 수천억원대 탈세 고발 사건과 관련해 조현준 효성그룹 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바로 전날 조석래 회장의 핵심 측근인 이상운 그룹 부회장을 소환조사한 데 이은 광폭 행보였다.

해외에 꼬불친 '검은돈' 뿌리
전두환·김우중 비자금도 흘러가

현재 검찰은 효성그룹이 IMF 사태 때 해외사업에서 손실을 입자 총수 일가가 1조원대 분식회계를 지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1996년 홍콩에 임원 명의로 된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1000억원대 비자금이 조성된 경위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조 회장 등은 싱가포르 법인 명의로 외국계 은행에서 200억원을 대출받은 뒤 자사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외국인 투자자 행세를 하며 국내 주식을 매매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아울러 이들은 임직원 및 법인 등 250여개 명의로 된 차명 계좌 수백개를 운용하면서 불법 비자금을 조성·관리한 의혹을 받고 있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특수2부는 해당 사건을 연내에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총수 일가의 탈세 및 비자금 조성 정황을 어느 정도 확인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검찰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비자금이 정계 로비 용도로 사용됐는지도 초미의 관심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 2008∼2009년 있었던 효성그룹 수사 당시 비자금 규모와 사용처, 오너 일가의 개입 여부 등을 입증하지 못했다. 다만 조 사장 개인은 지난해 9월 회사돈으로 미국 고급 주택을 구입한 사실이 확인돼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바 있다.

자금 종착지는
해외 부동산?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이 나왔을 때부터 눈길을 끌었던 해외 부동산 불법 매입 여부도 관심이다. 추적 불가능한 대규모 건설 사업(혹은 건물)에 법인이 만든 검은 돈이 쏠렸을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건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대기업 A사가 해외에서 조성한 비자금을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는 설과 MB정권 실세인 B씨가 한 건설사 지분을 검은머리 외국인 명의로 차명 보유하고 있다는 설 등은 지난 국정감사를 앞두고 여의도 안팎에 나돌았다.

얼마 전에는 대기업 C사의 오너가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역외 탈세, 주가 조작 등 혐의로 내사를 받았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C사의 경우는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검은 돈의 종착지를 두고 루머가 춤을 추는 상황인 것이다.

페이퍼컴퍼니를 겨냥한 역외 탈세 수사는 지하경제 양성화란 박근혜정부 공약에 부합한다. 현 정부 들어 타깃이 된 전 전 대통령과 조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모두가 페이퍼컴퍼니를 직·간접적으로 운용했다는 점은 꽤 놀랍다. 이른바 페이퍼컴퍼니 괴담은 정보를 다루는 입장에서 매혹적인 소스가 틀림없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앞서 밝혔듯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만으로 법적 처벌을 가할 수 없다. 또 일부 기업들은 벌써 역외 탈세 세무조사에 대비한 방어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갈수록 대담해지고 교묘해지는 사회고위층의 검은 돈 숨기기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지 않는 한 뿌리 뽑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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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