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청와대 '김무성 죽이기' 막전막후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11.26 09: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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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 대들다 완전히 찍혔다?"

[일요시사=정치팀] "김무성 의원이 청와대에 완전히 찍혔다?"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을 둘러싼 정치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지난 18일 새누리당 내 친박(친박근혜)계가 주도하는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 출범한 것을 두고는 사실상 '김무성 죽이기'가 시작됐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온다. 김 의원은 지난해 대선승리의 일등공신이다. 그랬던 그가 청와대에 완전히 '찍힌' 이유는 무엇일까?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과 청와대 사이가 껄끄럽다는 소문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지난 10월 재보선 출마를 선언하자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서 의원이 김 의원을 견제하기 위한 카드라는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김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선캠프의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대선승리의 일등공신이다. 그런 김 의원이 정권이 출범한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청와대에 찍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정치권에 나도는 이른바 '김무성 죽이기'의 실체는 무엇일까?

친박 복귀?
탈박 직전

우선 박근혜 대통령과 김 의원은 기본적으로 껄끄러운 관계다. 김 의원은 지난 2009년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박 대통령과 대립하다 완전히 갈라섰던 전력이 있다. 비록 지난해 대선을 통해 박 대통령과 다시 인연을 맺게 됐지만 아직 박 대통령과 김 의원 사이의 신뢰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가장 큰 문제는 김 의원이 박근혜정권이 출범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사실상 차기 대권을 향한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본인(김 의원)은 아니라고 하지만 김 의원이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복귀한 후 보인 행보는 누가 봐도 세 모으기였다"며 "김 의원이 차기 대권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까지의 광폭행보는 설명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청와대 일각에서는 김 의원이 '근현대사역사모임' 등을 만든 것을 두고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인물이 벌써 사조직을 만드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새누리당 당 지도부는 김 의원의 근현대사역사모임의 성격과 강연 내용 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견제구를 날리기도 했다.

친박이 김무성 견제용 포럼 창립? 뒷말 무성
김무성 주축 모임은 참여 의원 확 줄어 '당혹'

새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당내 유력 인사가 사실상 차기 대권을 준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청와대로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여권 내 차기 대선주자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한 인물이라 더욱 민감한 일이다. 게다가 김 의원은 차기 유력 당권주자로도 분류되는데 청와대는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는 김 의원이 당권을 잡는 상황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김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번번이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일부 친박계 의원들이 김무성 죽이기에 나섰다는 소문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모난 돌 김무성
정 맞을까?

김무성 죽이기의 신호탄으로 여겨지는 것은 지난 18일 출범한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이다. 새누리당 내 친박계가 주도하는 이 포럼의 창립총회에는 황우여 대표, 최경환 원내대표, 홍문종 사무총장 등 당 지도부가 총출동했으며, 김 의원의 견제카드로 평가받는 서청원 의원까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포럼의 총괄간사는 최근 김 의원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유기준 의원이 맡았다. 포럼의 참석자들은 정치적 해석을 자제해달라며 말을 아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포럼이 사실상 김 의원의 '근현대사역사교실'을 견제하기 위한 모임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정말 공부를 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다고 보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지난해 민주당에서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내일을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을 출범시켰는데 거기 참여했던 사람들이 거의 다 현재 민주당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런 당내 분위기를 의원들이 느끼기 시작했고, 김 의원 측에 줄서기를 시도하던 의원들조차 현재는 관망세로 돌아섰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김 의원이 지난 11일 근현대사역사교실에 이어 출범시킨 '퓨처라이프포럼'에는 여야 국회의원 43명이 참여하는 데 그쳤다.

지난 9월 근현대사역사교실에 새누리당 의원만 103명이 참석한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특히 퓨처라이프포럼은 극보수 성향의 근현대사역사교실과 달리 민주당 원혜영 의원과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를 공동대표로 내세워 여야를 아우르는 모임으로 발족했음에도 참여 의원 수가 크게 줄었다.

일각에서는 김 의원이 최근 세력화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해서 일부러 포럼을 작은 규모로 꾸린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적극적으로 가입을 권유했고, 안 했고의 차이라는 것인데, 김 의원에게 눈도장을 찍고 싶어 하는 인사들이라면 초대를 못 받아도 득달같이 참석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생리다. 김 의원이 출범시킨 모임에 참여하려는 의원들 수가 크게 줄었다는 것은 결국 이들이 김 의원에게 줄을 서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는 방증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 의원의 당내 영향력이 크게 감소한 원인은 청와대의 의중도 실려 있지만 무엇보다도 서청원 의원의 복귀가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다. 차기 당대표의 경우 2016년 20대 총선 공천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따라서 의원들은 대통령보다도 오히려 유력 차기 당권주자에게 줄을 설 수밖에 없다.

그동안 당내에는 김 의원을 견제할 만한 인물이 없었다. 청와대와 김 의원 간의 불편한 관계를 알면서도 의원들이 김 의원에게 줄을 서려 했던 이유다. 하지만 서 의원이 국회로 돌아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김무성 죽이기 움직임은 김 의원의 텃밭인 부산·경남(PK)에서도 꿈틀대고 있다. 부산시장 선거를 둘러싸고 친박계 서병수 의원이 김 의원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게 대표적인 사례다.

텃밭 부산서도
김무성 견제

유력한 차기 부산시장 후보인 서 의원은 지난 9월 "김무성 의원이 부산시장 경선 때 박민식 의원을 지원해 주겠다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들었다"며 "박민식 의원 출판기념회(7월4일) 직후 김무성 의원이 박 의원에게 '시장에 출마하면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경로를 통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서 의원은 지난해 19대 총선 새누리당 후보 공천 당시 당 사무총장을 역임해 김 의원의 공천 탈락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김 의원과는 껄끄러운 관계다. 때문에 지역정가에서는 김 의원이 다가오는 부산시장 후보경선에서 서 의원을 낙마시키고 자기사람을 심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회자됐다. 그런데 서 의원이 풍문으로만 존재하던 이야기를 직접 꺼낸 것이다.

서 의원의 작심 발언은 김 의원에 대한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였다. 박민식 의원은 지난 10월 재보선을 앞두고 서청원 의원의 공천을 반대한 소장파 의원 중 한 명으로 김무성의 사람으로 분류된다.


서청원 복귀가 결정적, 김무성 사면초가
극복하고 당권 거머쥐면 '탄탄대로 대권행'

김 의원 측은 서 의원의 주장에 대해 다음날 즉각 보도자료를 내 해명했다. 하지만 김 의원 측의 보도자료는 이른바 '밀약'은 없다는 의미에 무게 실은 것이 아니라 "과거의 계보, 지연, 학연이라는 인연으로 줄 세우기 하는 구태를 벗어나야 한다"며 서 의원을 비판하는 내용에 오히려 무게를 실었다.

부산 서구가 지역구인 새누리당 유기준 의원은 최근 부산신항 부두건설 정책과 관련, 김무성 의원과 공개적으로 다른 의견을 개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PK 지역구 의원이 PK의 수장 격인 김 의원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기란 이전까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 의원이 벌써 차기 대권론에 휘말린 것을 두고는 누군가 '김무성 대권설'을 일부러 띄우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무성 대권설을 일부러 언론에 흘리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5선의 베테랑 정치인이다.

김 의원 본인도 너무 일찍 차기 대권을 준비하는 것은 여러 모로 견제를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김 의원의 단순한 모임과 만남 등을 크게 부풀려 언론에 흘리고 청와대에 보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찍어낼까?
버텨낼까?


김 의원은 지난 6월 비공개로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자신이 대선기간 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문을 읽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해당 발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큰 곤욕을 치렀다. 최근에는 검찰 조사까지 받아야만 했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비공개회의에서의 발언을 제보자가 작심하고 언론에 흘렸다는 점이다. 이는 김 의원에 대한 노골적인 견제라고 볼 수 있다. 김 의원을 견제하는 세력이 당내에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정치권에서는 김 의원이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껄끄러운 것도 문제지만, 오히려 대통령 주변에 있는 인물들과 관계가 껄끄러운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들이 김 의원과 박 대통령을 점점 더 대립하게 만드는 실체라는 주장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서 김무성 죽이기는 극에 달할 것"이라며 "이른바 김 의원이 미는 사람이 얼마나 당선되느냐에 따라 김 의원의 차기 행보는 극명하게 엇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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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