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한국화가 오세철

전통 한지에 로마를 그리다

[일요시사=사회팀] 사람들은 1년도 못 갈 거라고 했다. 로마를 소재로 한 그림. 누군가는 "왜 관광지를 그리냐"고 했다. 오세철 작가가 경남 마산에서 첫 작품을 내놨을 때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 작가는 최근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4번째 개인전을 성황리에 마쳤다. 1년도 못 갈 거라던 그림들은 불과 7년 사이 컬렉터들이 주목하는 작품이 됐다. 희뿌연 장지 위에 연필로 수놓은 로마의 풍광은 경이로움을 넘어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대학교 졸업과 함께 떠난 배낭여행. 연필 하나만 들고 유럽으로 향했던 오세철 작가는 6개월 동안 온 힘을 다해 세상을 그렸다. 오 작가에게 유럽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닌 꿈을 쫓는 예술가가 도착한 순례지였다.

세밀한 묘사

"처음 로마에 간 게 2003년이니까 올해로 10년째죠. 로마는 제 삶이 바뀐 곳이기도 합니다. 로마의 거리와 건물, 빛과 공기. 도시가 내뿜는 아우라에 전 매혹됐고 돌이켜보면 그 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진실 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온 오 작가는 곧바로 로마를 주제로 한 전시를 준비했다. 당시 몇몇 사람들은 로마에 홀린 오 작가를 관광객이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오 작가는 로마를 향한 간절함을 떨칠 수 없었다. 자신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그림으로 남기고자 했던 오 작가의 집념은 결국 결실을 맺었다.

"4번의 개인전 모두 로마란 주제에서 자유로웠던 적은 없어요. 만족한 적이 없었죠. 그런데 이번 전시 작품들을 그리면서 정말 다 쏟아낸 것 같아요. 마음속에 있던 마지막 응어리마저 모두 토해낸 기분이랄까요?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면 이제 어느 정도 로마로부터 해방되지 않았나 싶고요. 다음 전시 때는 수원의 화성이나 서울의 종묘 같은 동양적인 소재의 작품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해요."


그간 오 작가는 로마를 주제로 한 작품을 기획하면서 늘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림의 구성을 패턴화하기도 했고, 강렬한 채색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 작가의 마지막 선택은 장지와 연필을 배합한 모노톤의 그림이었다.

"동양화를 전공하면서 장지라는 전통종이가 눈에 들어왔어요. 장지가 갖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색감은 인위적인 채색이 따라갈 수 없다고 봤습니다. 연필 같은 경우엔 참 진실된 재료예요. 누구나 다룰 수 있지만 솜씨가 가감 없이 드러나죠. 아직까지 장지와 연필만으로 작업을 한 화가는 본 적이 없어요. 로마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선택한 재료들인데 저만의 콘텐츠가 된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오 작가 작품의 회화적 강점은 세밀하면서도 탁월한 묘사에 있다. 흡사 로마의 건축물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선의 예술'은 관객 입장에선 '감동의 영역'이다.

"솔직히 똑같이는 못 그려요. 다만 사물을 꼼꼼하게 보고 탐구하는 편입니다. 그림은 3차원인 현실을 2차원으로 옮기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려면 내가 그리고자 하는 사물 뒤에 뭐가 있는지도 알아야 해요. 그림으로 표현되진 않더라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건 천지차이죠."

로마여행 주제로…장지에 연필 작업
4번째 개인전 성황…컬렉터들 주목

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성실한 그림'이라고 소개했다. 비록 전시에 내건 작품은 로마와 관련된 것뿐이지만 소재를 가리지 않는 빼곡한 스케치는 오 작가의 엄청난 연습량을 가늠케 했다.



"전 천재는 아니에요. 대신 전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성실함과 인내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요. 간혹 천재들에게 열등감을 느꼈던 순간도 있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지금까지 왔죠. 흔히 화가 나이 50이 되면 자기 그림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때까지 성실하게 그려서 언젠간 천재들과 맞붙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오 작가는 그림의 현장성을 강조했다. 그의 일관된 전시 테마가 '길에서 그리다'인 이유도 바로 현장성에 있다. 오 작가는 "(어떤 대상을) 똑같이 그리는 건 쉽지만 작품을 작품답게 하는 '분위기'는 화가가 끄집어내야 한다"면서 말을 이었다.

성실한 그림

"강의를 나가면 무조건 나가서 그리라고 말해요. 그림은 어떤 사물이나 풍경의 진실을 담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추운 겨울 현장에서 손을 벌벌 떨며 나무도 그려보고, 더운 날 땀 뻘뻘 흘리면서 고궁도 스케치해봐야 해요. 대상을 직접 관찰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화가의 진짜 영혼이 담기는 겁니다."

학창 시절, 오 작가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보고 화가를 결심했다. 그의 꿈은 천지창조가 걸린 성베드로 성당 앞 화랑에서 전시를 갖는 것이다. 지난 시간 늘 길 위에서 그림을 그려온 오 작가. 그의 인생길이 다시 로마로 통하기를 바래본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오세철 작가는?]

▲2003년 경남대 사범대 미술교육과 졸업
▲2005년 대우갤러리 초대 제1회 개인전 '길 위에서 그리다' (마산 대우갤러리)
▲2009년 중앙대 대학원 한국화과 졸업
▲2011년 챔버갤러리 기획초대 제3회 개인전 (창원 상공회의소)
▲2013년 '172일간의 유럽스케치 여행 그 후 10년' (서울 가나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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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