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서양화가 허연정

"현실에 없는 이상향을 그립니다"

[일요시사=사회팀] 서양화가 허연정 작가의 작법은 이성적 그리기가 아닌 자신의 감성에 솔직한 표현주의 화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정제되지 않은 드로잉으로부터 출현된 에너지는 겹겹이 쌓여 낯선 세계의 문을 연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계. 시간과 공간 속에 놓인 모든 것들. 만약 '운명의 실'이 있다면 이 세계에 존재했거나 존재하는 것들은 실타래처럼 얽혀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와 우리 주변을 연결하고 있는 이 실은 때때로 우리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도한다. 실을 따라 걸어간 그곳이 유토피아인지 혹은 디스토피아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허연정 작가는 'Another World(또 다른 세계)'라고 표현했다. 허 작가가 그린 '또 다른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또 다른 세계 표현

"제 그림의 콘셉트는 현실에 없는 이상세계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내 앞에 있는 사과는 빨간색이지만 이상 세계에선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일 수 있잖아요. 어쩌면 다른 색의 사과가 이미 현실에 있지만 우리가 그걸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거구요. 현실에서 보기 힘든 이미지를 구현하다 보니 원색보단 중성적인 색상을 선호하게 된 점이 있죠. 또 강렬한 채색과 거친 느낌의 붓선 역시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제 나름의 의도가 담겨 있고요."

언뜻 보기에 이질적이며 (좀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오컬트적인 요소가 스며있는 허 작가의 그림은 일반 관객들에게 '어둡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쉽다. 하지만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안에서 일종의 '패러독스'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허 작가 고유의 균형감각으로 볼 수 있다.


"지난 전시에선 펭귄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어요. 대개의 경우 작품 안의 펭귄은 이상세계로 향하는 주인공이죠. 또 펭귄은 제 자신이 투영된 매개로 볼 수 있어요. 작품 주제가 다소 무겁다보니 보이는 이미지가 재밌고 밝은 느낌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른 게 펭귄이고, 개인적으로는 <배트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펭귄'을 좋아해요. 남들은 악당으로 부르지만 사실 ‘펭귄’은 우리 사회의 희생양이잖아요."

허 작가의 그림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구성력. 그러나 허 작가는 작품 안의 모든 요소가 짜인 틀 안에서 그려진 건 아니라고 얘기한다.

강렬한 채색과 거친 붓선…표현주의 화법 구사
어두운 주제·밝은 이미지…탄탄한 구성력 강점

"제가 그린 그림 안의 모든 것이 처음부터 특정 의도를 갖고 그려진 건 아니에요. 다른 작가 분도 마찬가지겠지만 주제에 따라 구도나 색상, 터치 등이 자연스럽게 바뀌는 경우가 많아요. 가령 제 그림 중에는 장례식으로 불리는 이미지가 있는데요. 사실 그 그림은 장례식이 아닌 부활의식을 그린 겁니다. 그런데 그 그림을 장례식으로 본다고 해서 틀린 거냐. 그건 아니거든요. 작가 본연의 의도가 있다고 해서 토씨 하나까지 세세한 분석에 매달릴 필요는 없겠죠. 어디까지나 그림은 심상을 표현한 거니까요.”

허 작가는 "영화나 음악을 선택할 때도 다수가 좋아하는 유형이 아닌 남들이 잘 보지 않는 걸 찾아서 보는 걸 즐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허 작가는 "'마이너 정서'를 의도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전 장난감을 모으는 취미가 있습니다. 이건 제 나이 또래에선 일반적인 취미가 아니죠. 하지만 장난감을 사는 행위 자체를 하위문화로 치부할 수 있느냐. 그건 또 아니거든요. 리히텐슈타인도 그래요. 그 당시엔 동료들도 욕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부러워하는 후배가 더 많아졌죠. 세상엔 여러 취향이 존재하는 거고, 여러 작품이 존재하는 겁니다. 제 자아가 강한 탓도 있겠지만 맹목적으로 무엇인가에 강요받고 싶지 않아요."

허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꿈이 화가였다. 전문 작가가 되기 전까진 고흐처럼 되길 바랐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개성과 그림을 향한 쉼 없는 열정이 허 작가가 고흐를 좋아한 이유였다.


"요즘 들어 '난 고흐가 아니구나'란 생각이 서서히 들어요. 테크닉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현실적인 문제로도 고민이 많죠. 하지만 늘 그림을 생각해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음 전시에 쓸 아이디어 구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영감이 사그라지는 것 같아서 한 달 정도 유럽여행을 다녀왔는데 앞으로도 여행은 많이 할 생각이에요. 사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지루한 이론 강의보단 제 경험담을 녹여서 얘기하는 게 좋은 것 같고요."

때론 코믹하게

허 작가는 이상향을 그린 'NEVER-NEVER LAND' 시리즈에 이어 '환생 전의 세계'를 주제로 다음 전시를 기획 중이다. 어쩌면 무거움이 진동했던 최근작보다 더 황량해질 수 있다는 것이 허 작가의 설명.

"무거운 주제죠. 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하고 싶진 않아요. 회화적인 느낌을 유지한 채로 약간 위트 있게 때론 코믹하게 다루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저는 대중에게 좀 더 와 닿을 수 있는 작업을 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사람들의 취향이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했어요. 제 작품을 좋아해달란 얘긴 아니고요(웃음). 너무 유행만 쫓지 마시고 (제 작품 외에) 다양한 작품을 포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허연정 작가는?]

▲동덕여대 회화과 졸업
▲10년 Another World 개인전 (미술공간現, 서울)
▲10년 NICAF 남부국제현대미술 아트페어(텐진, 중국)
▲세경대 미술치료학과 외래교수 역임
▲현 인덕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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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