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분서주 '양주 발바리' 추적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10.07 12: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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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오면 아랫도리 근질근질

[일요시사=사회팀] 얼마 전까지 경기 양주경찰서에는 비슷한 수법의 성추행 범죄가 1달에 1번꼴로 접수됐다. 이 사건들은 모두 동일범의 소행으로 의심됐다. 비 오는 날이면 본성을 드러냈던 범인. 그는 귀갓길 젊은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성범죄를 일삼았다. 지난 1년 동안 비오는 양주의 밤거리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범인은 비 오는 날 빨간 옷을 입은 여성을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온 마을에 비상이 걸렸고 여성들은 불안에 떨었다. 경찰의 끈질긴 추적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은 지난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된 후 지금껏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화성사건 모방?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와 다르다. 완전범죄를 꿈꿨던 이들은 좁혀오는 수사망에 대부분 꼬리를 잡힌다. 그 어떤 지능범도 흔적을 남기지 않고 도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도 양주에선 비 오는 날 여성들을 노린 성추행 범죄가 잇따랐다. '양주 발바리 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은 인근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지난 1년간 같은 수법으로 신고된 강제추행 범죄는 모두 10여건. 경찰은 동일범의 소행을 의심했다.

피해자들은 여성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었으며 "성추행을 당한 시간에는 어김없이 비가 오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는 모두 다행히 생명에 지장이 없었지만 연속된 성범죄가 또 다른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수사는 오랫동안 답보상태였다. 범인은 사건 현장 주변 CCTV에 자신의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우산을 쓰고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또 범행 때마다 인상착의를 매번 바꾸는 등 자신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경계했다. 범인의 얼굴을 특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이 용의자 검거에 애를 먹는 사이 주민들의 불안감은 높아졌다. 특히 마을 인근에서 일어난 성범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사실에 딸은 둔 부모들은 애가 탔다. 몇 년 전부터 양주 일대에선 초등학생 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지난 2011년 8월 섬유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오모(61)씨는 양주 한 놀이터 앞 노상에서 등교 중인 여자 초등학생을 뒤따라가 막으면서 자신의 신체 부위를 노출했다. 그는 2011년 3월부터 9월까지 같은 수법으로 음란행위를 4차례에 걸쳐 반복했다.

'묻지마 성범죄'는 양주 시내 또 다른 곳에서도 발생했다. 지난해 4월 양주 한 빌라 앞 노상에서 놀고 있던 A양은 강모(53)씨에게 강제추행 당했다. 이 사건을 목격한 A양의 친구는 강씨의 얼굴을 기억했고, 강씨는 곧 경찰에 붙잡혔다.

양주 일대 성범죄 잇달아 "주민들 불안"
1달에 1번 신고…귀갓길 젊은 여성 타깃

비슷한 시기 김모(19)군은 양주 일대에서 초등학생을 노린 성범죄로 악명을 떨쳤다. 김군은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초등학생 B양 등을 대상으로 신체 특정 부위를 만지고 달아나는 등 강제추행을 반복했다. 지난해 6월28일 김군은 B양의 친구인 초등학생 4명에게 붙잡혀 경찰에 인계됐다.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도 잦았다. 지난해 8월 조모(37)씨는 20대 주부 C씨를 강제추행했다.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걷던 C씨를 뒤따라가 신체 일부를 더듬고 달아난 것이다.


하지만 C씨는 자신의 신분노출을 꺼렸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원치 않았다. 성범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수사기관도 공소제기를 위한 절차를 밟을 수 없다. 자연스레 조씨는 법망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조씨는 1년 뒤 경찰에 구속됐다. 여대생 2명을 성추행한(강제추행 치상) 혐의였다. 경찰이 찾던 '양주 발바리'는 바로 조씨였다.

지난 8월23일 양주경찰서는 여대생 D(20)씨로부터 "새벽 2시께 괴한에게 성추행당했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D씨는 성추행 과정에서 넘어져 상해를 입은 상태였다. 경찰은 현장 주변 CCTV 10여대에 기록된 영상을 입수, 분석 작업에 착수했다.

영상 속 D씨는 버스에서 내린 뒤 한 아파트 단지로 향하고 있었다. 짧은 스커트 차림의 D씨는 마침 비오는 날이라 우산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D씨와 멀리 떨어져 걷던 반팔 티셔츠 차림의 한 남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점점 발걸음이 빨라지더니 이내 작정한 듯 D씨에게 달려들었다. D씨는 곧 넘어졌고 해당 남성은 빠른 걸음으로 도망쳤다. 이와 비슷한 영상은 양주 곳곳에서 발견됐다.

그런데 현장 인근 CCTV에는 어김없이 백팩을 맨 의문의 남자가 등장했다. 조씨였다. 경찰은 조씨를 용의자로 지목한 뒤 그의 도주로 파악과 CCTV 분석에 주력했다. 조씨의 집을 알아낸 경찰은 조씨를 붙잡아 구속했다.

경찰 조사 결과 조씨는 지난해 9월에도 같은 수법으로 E(23)를 강제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C씨를 성추행한 지 1달도 되지 않아 똑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조씨는 주택가나 공원일대,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혼자 걸어가는 여성들을 뒤따라가 범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조씨는 아이를 안고 가는 20대 엄마, 교복 차림의 10대 여학생 등 젊은 여성이 홀로 다니면 가리지 않고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시간은 인적이 드문 밤. 비가 오는 날로 일정한 패턴을 보였다.

경찰 조사에서 조씨는 "비오는 날 새벽이면 성적인 충동을 참을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범행은 모두 4건이다. 그러나 비슷한 신고가 10건이 넘어 경찰은 다른 사건도 조씨의 범행으로 보고 있다.

범인 잡혔지만…

다만 한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사건을 없던 걸로 해달라고 했다"면서 "동네가 좁다 보니 이런 일로 이름이 알려지는 걸 꺼려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조씨는 초등학생 남매를 둔 가장이자 평범한 회사원으로 전해졌다.

 

강현석 기자<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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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