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 불륜사건 전말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9.30 12: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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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외도에 내연녀 협박…부인은 괴로웠다

[일요시사=사회팀]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남편이 기혼을 숨기고 연수원 동기와 바람이 났다. 이에 충격을 받은 아내가 신혼집에서 목을 매달았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 자주 등장하는 막장 이야기와 비슷하다. 이 사건을 두고 양가의 진실공방이 뜨겁다.




지난 7월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A씨가 전 남편인 사법연수생 B씨의 불륜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사법연수생 불륜사건’이 세간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에 유부남 사법연수원생의 불륜사건의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카페가 만들어질 정도다.

숨진 A씨의 어머니는 지난 5일 서울 중구의 한 법무법인 앞에서 “내 딸 목매달아 자살하게 만든 살인자” “법조인이 될 자격 없다”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시위를 벌였다. 해당 법무법인에서 연수 중이던 C씨가 사위인 B씨와의 성관계 내용을 문자로 보내는 등 딸을 괴롭혀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사법연수원은 지난 22일 ‘사법연수원생 불륜사건’의 시작과 끝을 조사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번 사건의 논란은 지난 7월, 30세의 A씨가 자신의 신혼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시작됐다. 자살사건 직후 A씨의 유가족은 “사법연수원생인 남편 B씨(31)가 연수원 동기인 C씨(28)와 불륜을 저질러 A씨를 자살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자살 원인 둘러싸고 
양측 가족 진실공방

실제로 B씨는 유부남인 사실을 숨기고 사법연수원 동기인 C씨와 교제를 했다.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생이면 누구나 아는 ‘공인커플’이 됐으며, C씨는 B씨가 유부남인 사실을 안 뒤에도 관계를 정리하기는커녕 오히려 B씨와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캡처해 A씨에게 보내며 이혼을 요구하는 협박성 문자를 보냈다.


A씨는 결혼 전부터 시댁의 압박에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에 따르면 A씨는 B씨의 어머니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받아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수면제 없이는 잠을 청할 수 없었다. 또한 B씨 집안은 A씨에게 7000만원짜리 고급 외제차와 서울시내 5억원짜리 아파트, 일산 소재 2억원짜리 전셋집과 9000여만원의 카드빚을 갚아줄 것을 요구했고, A씨 측은 이를 모두 받아들였다. 소중한 딸의 행복을 위해서 희생을 택했던 것이다.

A씨와 B씨는 5년간 캠퍼스 커플로 만나다가 우여곡절 끝에 2011년 4월 결혼했다. 하지만 남편의 외도와 내연녀의 괴롭힘이 계속되자 A씨는 결국 신혼집으로 마련한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과정에서 C씨는 A씨에게 심한 욕설과 함께 ‘어떻게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을 8개월 동안 모를 수 있느냐’며 조롱했고, 자신이 B씨와 은밀히 나눈 대화 내용까지 고스란히 A씨에게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총각행세’유부남 연수원생 동기와 교제
내연녀 이혼 요구하는 문자 보내 조롱
밀애 눈치챈 아내 충격 받고 목숨 끊어

이 사건을 접한 누리꾼들은 사법연수원 게시판에 ‘불륜 커플 처벌바랍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수없이 올려 한때 게시판이 폐쇄되기도 했다. 추석연휴 동안에도 ‘사법연수원생 불륜’은 인터넷 검색순위 상위를 유지했다. 누리꾼들의 분노는 여전하다. 좀처럼 수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추석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자마자 사법연수원이 진상 규명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에 대한 처벌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 전망이다. 누리꾼들은 B씨와 C씨를 간통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간통죄를 적용하려면 간통을 한 날짜를 비롯해 장소와 물증 등이 확보돼야 하고, 간통을 한 당사자들의 자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형사처벌은 사실상 어렵다.

사법연수원 관계자는 “조사 결과에 따라 징계를 포함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며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징계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5급 공무원 신분인 연수생은 견책·감봉·정직·파면 등의 징계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삼촌이라고 주장하는 한 누리꾼은 ‘사법연수원 간통사건 묻혀선 안됩니다’라는 제목으로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호소글을 게재했다. 그는 2011년 12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A씨가 B씨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욕설이 담긴 문자메시지를 여러 개 공개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 글에서 그는 “B씨와 함께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A씨가 사법고시 1차를 합격한 후 B씨의 가족은 A씨를 예비 며느리처럼 극진히 대접했지만, 고인이 2차에 실패하고 2010년 아들이 사법고시에 최종 합격하자 B씨의 어머니의 태도가 돌변했다”고 전했다. A씨의 시어머니는 “내가 너라면 혼인신고로 남자 발목 안 잡을 것” “네 년 찢어 죽여도 분 안 풀려” 등 문자메시지로 폭언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B씨의 가족은 강남집, 외제차, 현금 10억원에 이르는 혼수를 요구했다. 오랜 시간 만났고 외로움을 많이 타던 고인은 사랑하는 B씨와 헤어질 수 없었고, 그걸 너무 잘 아는 고인의 어머니는 결혼시키기로 결심했다”며 “무리한 요구였지만 어머니는 집을 팔아 가락동 아파트(5억원), 차량(7000만원), A씨의 빚(9000만원), 전세아파트(2억원)를 혼수로 해줬다”고 밝혔다.

간통죄로 처벌?
현실적으로 어려워

또한 “하지만 B씨의 가족은 고인이 애비도 없고, 2차도 합격 못했는데 응당 주어야 할 현금 5억원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내용을 고인에게 밤새 전화와 문자로 쏟아 부었다”며 “고인은 그때부터 심한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손발이 극심하게 떨리고 심장이 뛰는 불안증 때문에 결국 사시 2차 시험 도중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나왔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B씨와 불륜 의혹 당사자로 거론된 연수원생 C씨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가족과 고인 사이에서 중재를 해줬어야 할 B씨는 연수원에서 총각행세를 하며 동기 C씨와 바람을 피웠다”며 “고인이 사준 외제차를 타고 장모가 매달 보내주는 생활비를 쓰며 B씨와 C씨는 8개월 동안 부부와 다름없이 생활했다”고 전했다.

또한 “B씨가 기혼자임을 알게 된 C씨는 A씨의 이혼을 요구했다”며 “B씨가 선뜻 이혼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고 차일피일 미루자 C씨는 협박하기 시작했다. 고인에게 직접 전화하는 것은 물론, B씨와 C씨 둘 사이에 있었던 온갖 문자와 편지, 채팅 내용을 캡처해 보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3일 B씨의 어머니 이씨는 기자들을 대상으로 이메일을 통해 “그저 피해자 가족이 작성한 내용에 가설이 보태져 카더라 통신처럼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이 사실 확인이나 여과 없이 기사화되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은 한 집안의 문제이고, 부부의 문제이며, 고부간-친사위간 갈등이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신혼의 달콤함
물거품처럼…

이어 “가족이 속한 학교와 교회에까지도 피해가 커지는바 저희도 조만간 모든 것을 밝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때가 되면 모든 정보를 다 들으시고 올바른 판단을 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A씨의 유족으로부터 진정서를 접수한 사법연수원은 관련자들을 불러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연수원은 유족 측의 주장이 인터넷을 타고 급속도로 확산되자 지난 10일부터 A씨와 B씨, C씨의 어머니를 직접 불러 조사를 벌였다. 연수원은 진상 규명을 위해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통화내역을 조회하는 등의 조사 방법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수원 관계자는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예민한 사안이지만 사실에 기초해 최대한 빨리 조사를 마칠 것”이라며 “관련자들의 잘못이 인정된다면 그에 따른 징계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이 기사화되자 A씨를 옹호하는 카페가 개설돼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에 A씨의 유가족은 지난 17일 “기사에 관한 입장표명글을 추가로 올린다”며 “먼저 저희 대신하여 열심히 청원 올려주시고, 저희 위해 싸워주셔서 너무나 큰 힘이 되고 정말 고맙다”고 전했다.

이어 “일단 유가족 입장은 사실 처음에 상간녀 C측에 바란 것은 정말 진정한 사과였던 것 맞다. 또한 이렇게 까지 인터넷 상으로 확대될 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렇게 세상에 알려진 뒤에도, 이모양과 신모 군 측은 진정한 사과를 하려고 생각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하면서 인터넷 글 지우기만 급급해서 정말 분개하고 화가 난다. 그래서 청원만큼은 지속적으로 올라왔으면 하는게 저희의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사법고시 합격하자 시댁 태도 돌변
아파트·외제차에 수억 지참금 요구
심한 불안과 우울증 시달리다 결국…

A씨의 어머니에 따르면 B씨 집안은 ‘사’자가 아니면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다. B씨의 아버지는 현재 H대학교 교수고 그 여동생은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 학생이다. 여동생은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의사를 만나겠다고 혈안이 돼 있다고. 그리고 평소 B씨 자체도 사치스러웠다고 한다. 결혼 전부터 수천만원짜리 명품 시계 6개를 가지고 있었다. 인터넷 중고거래로 명품을 팔기도 했다. 사치성을 알았더라면 결혼을 반대했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들은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다. 그저 혼인신고만 했을 뿐이었다. 이후 B씨의 어머니가 딸에게 ‘널 저주하는 데 내 인생 다 바치겠다’는 식으로 저주의 문자를 퍼부으며 괴롭혔다고. A씨는 스트레스 때문에 전화번호를 여러번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어머니는 딸의 죽음의 책임 절반은 B씨 부모에게 책임이 있다고 토로했다.
내연녀 C씨는 사건이 인터넷 등을 통해 급속히 퍼진 뒤 신상정보가 유출되는 등 2차 피해를 입자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 B씨의 어머니는 ‘기자들께 보내는 당부의 글’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내,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는 권력집단과 피권력집단의 문제도 아니고 사법연수원의 제식구 감싸기는 더더욱 아니다. 한 집안의 문제이고, 부부의 문제이며, 고부간-친사위간 갈등이 문제”라고 전했다.

이어 “진실을 밝힌다는 명목으로 더욱 많은 정보들이 공개됐을때 그 파장은 너무 커서 양쪽 가족 모두에게 지금보다 더욱 크나큰 상처가 되고 심지어 고인에게도 명예롭지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며 “자세한 내용은 꼭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하도록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우리가)그저 조용히 있는 것이 사돈 집안 사람들을 포함한 모두를 위한 길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연수원 진상조사 나서
내연녀 신상털기 조짐

A씨는 Y대 학부 졸업 후 지방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그리고 남편 B씨는 지방대에서 Y대로 편입해 사법시험을 패스해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B씨의 아버지는 지방대 교수로 알려졌다. 현재 숨진 A씨의 휴대폰은 잠금 상태고 공장 초기화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유족은 신중한 입장이다.

이번 불륜 사건이 인구에 오르내리면서 법조인 자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국민들은 사법연수원 측의 진상조사 결과 및 징계 수위를 눈여겨 볼 것이다. 만약 식구 감싸기 식의 형식적인 조사와 징계가 내려질 경우 법조계 전반에 대한 불신이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명을 다루는 법조인들에게 기본적인 도덕성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만일 이번 불륜사건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도덕성 측면을 충분히 감안해 그에 상응하는 징계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앞으로 법조인들이 존경과 신뢰를 받는 사회의 책임 있는 주체로 계속 남아있기를 원한다면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마땅하다. 스스로에게 관대한 자는 결코 남에게 엄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으로 사회에 파장을 일으키는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법조인을 차단할 수 있는 사전 정화장치가 요구되고 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판사들 출신 보니…
3분의 1 이상 ‘강남 사람’

매년 신규 임용되는 판사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와 강남 소재 고교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가치관에 귀 기울여 사회적 갈등을 마지막으로 조정하는 역할을 맡은 사법부의 인적 구성이 특정 지역·계층에 지나치게 편중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의 판사 임용자 명단을 분석한 결과 2010∼2012년 신규 임용 판사 499명 가운데 특목고와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강남 3구’ 출신은 174명으로 전체의 34.9%를 차지했다. 특목고 졸업생은 전체의 24.6%인 123명, 강남 고교 출신은 51명으로 10%를 넘었다. 강남·특목고 출신 판사는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고교별로 보면 대원외고 출신 신임 판사가 33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 학교 출신은 2위인 명덕외고(18명)의 배에 가까웠다. 3년 동안 10명 이상의 새내기 판사를 배출한 고교는 네 곳으로 한영외고(17명)와 대일외고(10명) 등 모두 수도권 소재 외국어고였다.

강남·특목고 졸업자 법조계 점령
지방 명문은 뒷걸음…편중화 지적

몇 년 전만 해도 희귀했던 과학고 출신 판사도 서울과학고 4명, 한성·광주·강원·대구과학고 각각 2명 등 16명이나 배출됐다. 특목고를 제외한 서울 일반고 출신 판사들 사이에서는 ‘강남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대부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곧바로 임용된 이들과 달리 올해부터는 최소 3년 이상의 법조 경력자만 판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외고를 중심으로 한 특목고 출신들이 2000년대 초반부터 법조계에 대거 수혈된 탓에 이들의 독주는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로스쿨이 사법고시를 대체하는 법조인 양성 통로가 되면서 오히려 특목고·강남 쏠림 현상이 심해질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부터 졸업하기 시작한 로스쿨 출신들은 2015년부터 판사직에 지원할 수 있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지난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09∼2012년 서울대 로스쿨 입학생 614명 가운데 특목고 출신은 219명(35.7%), 강남 소재 고교 출신은 98명(16.0%)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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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