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권력무상' 역대정권 막후실세들 현주소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9.23 10:3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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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짧고 뒤끝은 길다 "아~옛날이여!"

[일요시사=정치팀] 역대정권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정권의 막후실세들이 있었다. 이들은 한때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권불십년(權不十年). 아무리 막강한 권력도 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처럼 <일요시사>가 살펴본 이들의 현재 모습은 무척 초라했다.




이명박정부에서 '문고리권력'이라 불리던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이달 초 부인상을 당했다. 저축은행 비리사건에 연루돼 영월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김 전 실장은 귀휴(복역 중에 있는 사람에게 일정기간 주는 휴가)를 받아 문상객들을 맞았지만 장례식장을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고인이 된 아내는 김 전 실장이 구속된 뒤 변변한 수입도 없이 자녀들을 키우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결국 남편 김 전 실장의 만기출소를 한 달여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권력의 무상함을 실감케 하는 씁쓸한 사건이었다.

권력의 무상함
초라한 말년

그렇다면 한때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역대정권의 막후실세들은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전두환정권에서의 최고실세는 누가 뭐래도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었다. 그는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장으로 12·12쿠데타에 참여한 뒤 대통령 경호실장, 안기부장을 역임하는 등 5공의 최고실세 역할을 했다. 대통령 경호실장이던 1983년에는 버마 아웅산묘소 폭탄테러의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으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할 정도로 그에 대한 주군의 신임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웅산 폭탄테러 이후에도 그는 육군 준장에서 육군 중장으로 특진했으며, 대통령 경호실장직을 사퇴한 이후엔 안기부장으로 전격 발탁된다. 1986년부터는 전 전 대통령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표최고위원과 공공연히 신경전을 벌일 정도였다.

'의리의 돌쇠' 장세동 끝까지 일편단심
'6공 황태자' 박철언 '시인' 변신 눈길

하지만 장 전 안기부장은 정권이 바뀌자 용팔이사건, 5공비리, 12·12군사반란과 5·18내란 가담혐의 등으로 수차례 구속됐다 풀려나기를 반복하는 고초를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출소 직후 전 전 대통령의 집을 방문하여 "신고합니다. 각하!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라며 거수경례를 할 정도로 전 전 대통령에게 끝까지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었다.

장 전 안기부장은 이후 5·18특별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내기도 하고, 지난 2002년에는 대선출마선언을 하는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펼쳤지만 이후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해 6월 '특전사 마라톤대회'에서 특전사전우회 자문위원 자격으로 얼굴을 비춘 것을 마지막으로 또 다시 칩거에 들어갔다.

수차례 구속
최근엔 칩거

노태우정권의 실세는 박철언 전 의원이다. 그는 한때 '6공의 황태자'로 불렸다. 박 전 의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는 먼 친인척 간이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친분이 있었다. 검사 출신인 박 전 의원은 전두환정권에서 청와대 법률비서관으로 일하다 노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청와대 정책보좌관을 거쳐 정무장관을 지냈다.

문제는 그의 권력이 늘 직책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데 있다. 1988년에 치른 13대 총선에서는 자신이 만든 사조직인 '월계수회' 회원들을 대거 국회에 진출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잘 나가던 그는 김영삼(YS) 당시 민자당 대표와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투면서 서서히 몰락하기 시작한다. 박 전 의원과 대립하던 YS는 "청와대가 박철언을 두둔하면 우리는 판(3당 합당) 깨고 다시 야당으로 돌아간다"며 승부수를 던졌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백기를 들었다. 박 전 의원을 당시 정무장관직에서 전격 사퇴시킨 것이다. 그렇게 YS는 민자당을 완전히 장악하고, 그렇게도 꿈꾸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

이후 박 전 의원은 민자당을 탈당하고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YS에 대항해 국민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뛰어든 정주영 후보를 지원했으나 패하고, 1993년에는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1년6개월간 복역했다.

정계에서 은퇴한 그는 현재 변호사이자 시인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김영삼정권에서는 YS의 차남 김현철(고려대 지속발전연구소 교수)씨가 '소통령'으로 불리며 일약 정권의 실세로 떠올랐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청와대보다 김현철에게 줄을 서는 게 더 빠르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현철씨는 '아버지가 대통령임에도 구속된 아들 1호'가 됐다. 기업인 6명으로부터 66억원을 받고 12억여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이 일로 1999년 구속됐던 현철씨는 그해 광복절에 사면·복권됐지만 5년 뒤인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에게 불법정치자금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다시 구속 기소됐다.

승승장구하다 마무리는 항상 '감옥행'
권불십년 곱씹으며 와신상담 재기 노려

그는 이후 2007년 2월 다시 한 번 사면·복권됐다. 특히 2004년 검찰 조사 중엔 그를 둘러싼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었다. 현철씨가 검찰에서 조사를 받던 중 송곳으로 자신의 배를 5차례 찌르며 자해를 시도한 것이다. 인근 병원으로 후송된 그는 복부 2군데에 깊이 1cm , 3군데에 깊이 0.3mm가량의 상처를 입었으나 입감시키는 데는 무리가 없다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다음날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현철씨가 자해 과정에서 고작 1cm의 상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에서는 "막상 죽기는 싫었던 것 아니냐"며 비아냥댔다.




현철씨는 이후 지난 2008년에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2012년엔 거제에서 19대총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불공정 경선에 불복해 새누리당을 탈당한 후 무소속 출마를 고려하다 결국 불출마 선언을 했다. 현재는 모교인 고려대학교 지속발전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대중정권의 대표적인 실세는 차남 김홍업씨였다. 오죽하면 당시 홍업씨의 별명은 '100% 해결사'였다. 뭐든 부탁만 하면 100% 해결이 된다는 뜻이었다.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승승장구하던 홍업씨는 그러나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임기 중인 2002년 '이용호 게이트' 관련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에 권력형 이권개입 연루의혹이 발각되어 구속되기에 이른다.

홍업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와 조세포탈,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2003년 5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벌금 4억원, 추징금 2억6000만원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그는 구속수감 중 우울증 등 건강문제를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풀려난 뒤 수차례 형집행정지를 연장하던 도중 2005년 8월 대통령특별사면조치로 '특혜시비' 끝에 가석방, 사면복권 됐다.

이같은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출소 후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07년 4월 전남 무안·신안 국회의원 재보선에 출마해 당선된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호남은 범죄자도 'DJ 아들'이면 무조건 뽑아주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홍업씨는 이듬해 열린 18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으며, 지난해 4·11총선 때는 구 민주계 전 의원들이 주축이 된 정통민주당이 그를 비례대표로 영입하려 했으나 무산됐다.

정치 복귀 꿈
번번이 무산

노무현정권의 실세는 누가 뭐래도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였다. 이 전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이 정치에 처음 입문한 1988년부터 보좌진으로 그림자 역할을 수행했다. 이 전 지사는 노무현 국회의원 비서관, 노무현 대통령당선자 기획팀장, 청와대 국정상황실 팀장을 거쳐 2003년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시절 이 전 지사는 '노무현의 분신'으로 불렸다. 이 전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이 중요한 정치적 결단을 내릴 때마다 조언을 구하는 핵심참모였다.

참여정부의 인선 작업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국정상황실장은 사실 2급 비서관과 같은 직급이었다. 직급으로만 보면 이 전 지사가 실세였다는 설명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전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의 15년 지기로서 절대적인 신뢰를 받으며 대통령과 자주 만났다.

'소통령' 김현철 1cm 자해로 굴욕
'상왕' 이상득 출소 후 요양에 치중

특히 노무현정권에서 국정상황실은 대통령의 '눈과 귀' 역할을 했다. 국정상황실은 국정을 둘러싼 각종 정보기관의 보고를 취합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전 지사는 청와대 수석회의와 국무회의에도 2급으로는 유일하게 배석했다.

하지만 그 역시 지난 2009년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됐다. 재판 중인 2010년 6월2일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에 당선되었지만 2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7월1일 취임과 동시에 직무정지를 당했다.

그는 확정판결 전에 직무를 정지하도록 한 지방자치법 규정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이후 그의 재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림에 따라 2개월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그러나 2011년 1월27일 대법원에서 원심의 징역형을 확정판결하면서 도지사직을 최종 상실했다. 이 전 지사는 현재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소 연구원 겸 객원교수를 맡고 있다.

나빠진 건강
요양에 치중

이명박정권의 최고실세는 단연 이상득 전 의원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 전 의원은 이명박정권에서 상왕(上王)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국회에선 매년 예산안 심사 때마다 이 전 의원의 지역구에 너무 과도한 예산이 책정됐다며 이른바 '형님예산' 논란이 불거졌고, 모든 일은 형님(이상득)을 통한다고 하여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 의원 역시 이 전 대통령의 임기 말이었던 지난해 저축은행에서 불법정치자금 등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1년 2개월 동안이나 수감생활을 하는 불운을 겪었다. 지난 9일 만기출소한 그는 그간의 수감생활로 폐렴 등이 악화돼 당분간 요양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통해 '권력은 짧지만 뒤끝은 길고 고달프다'는 사실을 익히 보고 느끼는 지금 이 시간에도 달콤한 권력을 좇는 '정치불나방'들의 무한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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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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