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공기업 ‘낙하산 전쟁’ 백태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9.23 10:5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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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떨어진 그 나물에 그 밥들

[일요시사=경제1팀] 공기업 인사 시즌이 개막됐다. ‘관치 인사’ 논란이 불거진 지 3개월여 만이다. 우선, 수장 자리가 공석이거나 전임이 계속 일하고 있는 공기업을 필두로 공모 절차 진행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후보자 면접도 하기 전에 또다시 특정인물 내정설이 나돌면서 정부의 ‘낙하산 배제’ 약속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반년 가까이 자리가 공석인 공기업은 수십 곳에 달한다. 집권 초 ‘인사참사’와 ‘윤창중 성추문 사건’을 겪은 박근혜 대통령이 온갖 변수를 꼼꼼히 따지다 보니 정작 중요한 타이밍을 놓쳤다는 분석이다. 최근 청와대 인사위원장이 김기춘 비서실장으로 바뀐 뒤 인선작업이 재가동됐지만 ‘낙하산 인사’논란은 여전히 재연되고 있다.

내부출신이냐
외부출신이냐

최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김 비서실장은 지난달 초 취임 직후 전임 비서실장이 올린 공공기관 인사 방안을 전면 재검토해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미 공모를 시작했거나 임원추천위원회 등이 소집되는 공공기관은 사실상 청와대 재가가 떨어진 상태라는 해석이다. 이에 따라 6월 관치 논란으로 잠정 중단된 신용보증기금 한국거래소 한국수력원자력 등의 사장 인선작업이 재개됐다.

‘낙하산 요람’으로 불리는 한국거래소(KRX) 이사장 인선은 어렵사리 5부 능선을 넘었다. 한국거래소 임원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는 서류심사 결과를 바탕으로 11명 중 6명을 탈락시키고, 5명으로 후보를 압축했다.

탈락자 6명에는 황건호 전 금융투자협회 회장과 임기영 전 대우증권 사장 등이 포함됐다. 거래소와는 별 인연이 없는데도 공모에 참가했던 우기종 전 통계청장도 탈락했다.


눈치보고 떠난 사장 빈자리 공모전 급물살
후보자 면접도 전에 특정인물 내정설 돌아

합격자 5명은 최경수 전 현대증권 사장, 유정준 전 한양증권 사장, 이철환 전 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우영호 전 거래소 파생상품시장 본부장, 장범식 숭실대 교수다. 임추위는 이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거친 뒤 26일 주주총회에서 3명의 최종후보를 상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재개된 사장 선임과정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가 “공기업의 낙하산 인사를 배제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공언한 것과 달리, 이 원칙에서 벗어난 경우가 눈에 띄기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최경수 전 현대증권 사장은 공모전부터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금융투자업계에는 ‘내정 과정에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지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최 전 사장의 이사장직 선임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최 전 사장은 행정고시 14회 출신으로 재정경제부 세제실장과 조달청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경력도 있다.

최 전 사장 내정설이 불거지자 임추위와 공모제가 허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공모절차라는 형식만 취했을 뿐 권력 실세가 특정 인사를 낙점한 것 아니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이 같은 논란은 3개월 전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당시 후보 공모가 끝나기도 전에 친박근혜 계열인 김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 내정설이 유력하게 제기되면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내정설에 멍든
신보·기보…

신용보증기금(신보)과 기술보증기금(기보)도 수장을 뽑는 공모절차가 시작되기도 전에 ‘차기 이사장 내정설’에 휩싸였다. 신보 이사장으로 유력한 것으로 알려진 서근우 금융연구원 기획협력실장이 대표적이다.

서 실장은 연구원과 마피아의 합성어인 ‘연피아’로 분류되는 인물로, 서울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금융감독위원회 자문관, 하나금융지주 부사장 등을 지냈다.

서 실장은 김대중 정부 환란 위기 때 이헌재 당시 금감위원장 밑에서 부실기업을 처리하며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은 이로 평가받는다. 서 실장은 이 전 위원장이 한국신용평가 사장이었을 때 같이 일했는데 그가 “DJ정권에서 금감위원장을 맡으면서 데려간 이는 딱 두 명이었다. 한신평에서 함께 일했던 서근우와 이성규”라고 말하는 등 널리 알려진 ‘이헌재사단’의 일원이다.

이런 이유로 서 실장은 원래 유력한 신보 이사장 후보였는데 내정설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 실장이 이사장으로 선임되면 금융연구원 출신이 금융당국과 은행권에 이어 공기업의 요직까지 진출하게 된다.

서 실장은 박근혜 정부 들어 유력 금융유관기관장 등으로 자주 거론됐다. 지난 3월에는 보험연구원장, 지난달에는 한국은행 부총재보의 유력 후보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신보는 지난 6월 초 임추위를 구성했지만 BS금융지주 등의 잇단 ‘관치논란’에 휩싸이면서 임추위 가동이 사실상 중단된 바 있다. 안택수 이사장은 지난달 17일 임기가 만료됐지만 한달 넘게 이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상태다.

기보 역시 홍영만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의 내정설에 휩싸였다. 홍영만 기보 이사장 후보는 행정고시 25회로 재무부 증권보험국과 세제국, 재정경제원 경제협력국, 재정경제부를 거쳐 2005년 금융위로 복귀해 자본시장국장 및 금융서비스국장 등을 지냈다.

홍 위원의 경우 지난해와 올해 유력한 신보 이사장 후보로 거론되는 등 관치논란을 낳았던 인물이다.

앞서 김정국 기보 이사장은 임기를 1년 남기고 지난달 말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김 이사장은 건강상의 사유라고 밝혔지만, 금융권에서는 정부가 내정자를 언론에 흘린 것이 사퇴에 영향을 준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관치·낙하산
끝없는 잡음

이 밖에도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해 서부발전, 남동발전, 대한석탄공사 등 에너지공기업들도 사장 공모를 마무리하고 서류, 면접절차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한수원 차기 사장으로는 조석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유력하고, 보험개발원장에는 김수봉 전 금감원 부원장보가 물망에 올라 있다는 관측이다.

한국공항공사와 코레일 등도 사장 공모절차를 다시 시작했다. ‘낙하산 압력’ 논란으로 중단됐던 코레일 사장 재공모에는 총 19명이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코레일은 정창영 사장 후임 선임을 위해 당초 지난 7월 말에 공모 절차를 진행했으나 국토교통부가 인원추천위원회 위원들을 상대로 인사 청탁을 했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재공모가 결정됐다.

지난 10일 마감된 재공모에는 지난 7월 공모에서 3배수에 뽑혔던 이재붕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장, 팽정광 현 코레일 부사장이 다시 한 번 출사표를 던졌다.

또한 새누리당 당협위원장과 한국교통대 교수로 재직 중인 최연혜 전 한국철도대학 총장도 지원했다. 최연혜 교수는 코레일 부사장 출신이다. 업계에서는 정치권의 변수만 없다면 이들 3명이 최종 사장 자리를 두고 경합을 벌일 것으로 보고 있다.

곳곳서 인선작업 잡음
‘MB맨’→‘박의 남자’
대선캠프 출신들 포진

한국공항공사 사장 후보에는 지난 2009년 ‘용산 참사’의 무리한 진압을 지휘한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포함되면서 잡음이 일고 있다. 공항공사는 지난 9일 사장 후보자로 김 전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오창환 전 공군사관학교장, 유한준 전 국토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결정해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 제출했다.

이 소식을 들은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참사로 경찰공직에서 물러나 책임을 면피하려 했던 김석기가 다시 공기업 사장으로 거론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분노하고 있다.


이 같은 공기업 인사 잡음의 근원지는 결국 최종적인 임명권을 가진 청와대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 3월 첫 국무회의에서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선 원칙을 천명한 이후 내정설이 끊이지 않으면서 주요 기관장 인선 공식절차가 힘을 잃고 청와대 눈치만 보는 현상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청와대 눈치보기는 ‘MB맨’들의 사퇴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대통령실장 출신인 정정길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은 임기를 8개월 남겨 놓고 지난달 30일 사의를 표명했고, 농림부장관 출신의 장태평 한국마사회 회장은 지난 2일 임기가 1년 2개월여 남은 상태에서 돌연 사퇴했다.

앞서 언급한 기보 이사장의 사퇴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김 이사장은 행시 9회로 공직생활을 시작, 공정거래위원회 국장,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관, 재정경제원 차관보 등을 거쳐 지난 2011년 기보 이사장에 임명됐다.

MB맨 물갈이
교체 본격화

MB 정권에서 임명됐다는 이력 때문에 올 초부터 꾸준히 교체설이 흘러나왔다. 이와 함께 대표적인 ‘MB맨’으로 꼽히는 이석채 KT 회장과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거취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연대 한 관계자는 “공기업 사장 인선엔 특정 인물의 낙하산보다 바닥에 곤두박질 친 자본시장 현안을 잘 짚어 낼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며 “그러나 이번에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관료 출신이나 특정 후보의 낙하산이 될 것이 뻔하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또다시 중앙정부의 뜻대로 좌지우지하려는, 낙하산을 솎아낸 자리에 다시 낙하산을 앉히려는 작태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세훈 한전 인사 개입 의혹

 

김중겸도 윗사람 의중?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김중겸 전 한국전력 사장의 선임 과정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국정원장이 사용하는 안가에 외부인이 수시로 드나들며 인사청탁을 한 사실도 공개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11일 열린 원 전 원장의 알선수재 사건 첫 공판에서 황보연 황보건설 대표는 “2011년 2월 당시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이 회사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자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되고 싶다는 뜻을 밝히며 원 전 원장과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부탁했다”고 진술하며 금품제공과 인사 청탁 사실 등을 시인했다. 

검찰은 원세훈과 황 대표 사이에 오간 문자메시지 등을 관련 증거로 제시했다. 원 전 원장은 김중겸 전 현대건설 사장이 한전 사장으로 내정되기 한 달여 전인 2011년 7월18일 “지금 김사장 접촉 노출하면 좋지 않음”이라는 문자메시지를 황 대표에게 보냈고, 황 대표는 이후 자신의 부인에게 “내일은 김중겸 한전 사장 될 것”이라는 문자를 발송했다. 황 대표는 “원장님이 그렇게 얘기해서 문자를 보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 세 사람은 이같은 문자를 주고받기에 앞서 함께 골프를 쳤다. 김 전 사장은 이 자리에서 한전 사장으로 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황 대표는 진술했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면서 김 전 사장의 입지가 좁아진 상황이었다.

김 전 사장은 2011년 7월 한전 사장직에 응모, 같은 해 9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사장으로 일했다. 공모 당시 김 전 사장을 포함해 3명이 지원했지만 그가 미리 내정됐다는 얘기가 돌았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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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