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포 논란’ 갑의 역습 막전막후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9.23 10: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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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반하장도 유분수…드디어 ‘철판 반격’

[일요시사=경제1팀] 재계에 불어 닥친 ‘갑을 논란’은 새로운 풍속도를 만들었다. 갑은 여론에 밉보일까 전전긍긍하고 을은 기존에 갖지 못한 우월적 지위를 얻게 된 것. 상황은 곧 반전 됐다. 거듭된 폭로에 고초를 겪던 갑들은 결국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가만히 앉아 당하고만 있을 순 없다는 식이다.




‘갑의 횡포’ 대명사였던 ‘빵 회장’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4개월 전, 롯데호텔 주차관리 지배원을 폭행해 논란을 일으켰던 강수태 프라임베이커리 회장이 당시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와 롯데호텔 등을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에 나선 것이다. 

강 회장은 지난달 말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열고, “사건을 왜곡 보도한 A 언론사에 대해 재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하는 한편 롯데호텔을 상대로 민형사상 고소를 했다”고 밝혔다. 언론의 왜곡 과장 보도,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지난 4월24일 이 호텔 1층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는 과정에서 호텔 현관서비스지배인과 승강이를 벌였다. 해당 장소가 공적인 업무로 호텔을 방문한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정부 관계자 등이 잠시 이용하는 임시 주차장임을 감안해 지배인이 여러 차례 이동 주차를 요구하자, 이에 발끈한 강 회장이 들고 있던 지갑으로 지배인의 얼굴을 때린 것이다.

호텔 앞에서 
‘화풀이’

이 사건은 6일 뒤, A 언론사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마침 당시 포스코 임원의 항공기 여승무원 폭행 사건이 불거졌던 터라, 두 사건은 함께 엮여 네티즌들의 맹비난을 받았다.


급기야 온라인상에서 프라임 베이커리 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그 여파로 프라임베이커리는 주요 납품처인 코레일로부터 납품 중단 통지를 받고, 갑작스러운 세무조사를 받는 등 궁지에 몰렸다. 결국 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강 회장은 직원들의 임금 체불로 노동부에 고발당했다.

이후 강 회장은 해당 언론사를 상대로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한편, 롯데호텔을 상대로 손해배상 준비에 착수했다. 사건 당일 당사자 간의 사과 후 강 회장이 지배인에게 전달한 명함을 롯데호텔이 유출했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그러나 58억원 규모의 피해보상과 정정보도를 요청한 조정에서 실패했다. 언론중재위원회 서울 제8중재부는 지난달 12일 “당사자간 합의 불능 등 조정에 적합하지 않은 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불성립을 결정했다. 이후 강 회장은 해당 언론사와 기자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등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청부살인 남편
“욕먹긴 싫어”

고소로 맞선 회장님은 또 있다. 이번엔 ‘밀가루 회장님’이다. ‘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 피의자 윤길자씨의 전 남편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은 최근 네티즌 140여 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윤씨의 전 남편 류 회장이 지난 7월부터 8월 초까지 네티즌 140여 명을 상대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영남제분 측은 “피고소인들이 윤씨의 형집행정지와 관련이 없는 영남제분과 회장 일가를 근거 없이 비판하는 등 악성 댓글을 다는 바람에 회사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취지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영남제분은 또 네이버에 개설된 카페 ‘안티 영남제분’의 운영자를 같은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규명위원회’(antiynam)라는 아이디를 쓰는 카페 운영자는 최근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영남제분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으니 출두하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앞서 류 회장의 전 부인 윤씨는 10년 전 사위와의 불륜을 의심한 여대생을 청부살인했으나 권력을 이용해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고 병원 특실에서 호의호식한 사실이 방송을 통해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었다.

방송에 따르면, 윤씨는 지난 2002년 1억7000만원을 주고 청부 살해를 의뢰해 여대생을 살해했다. 윤씨는 판사이던 자신의 사위가 숨진 여대생과 바람을 피운 것으로 의심해 현직 경찰관 등 10여명을 동원해서 두 사람을 미행했으나 불륜 현장을 잡지 못하자 청부 살해를 감행했다.

“수십억 피해”“명예 실추”고소고발 남발
악플러 수백명 조사…폭로하면 법으로 응대

더 큰 문제는 이후 윤씨의 이상한 수감생활이었다. 윤씨는 청부살인 혐의로 2004년 5월 대법원으로부터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지만 2007년 유방암 치료를 이유로 검찰로부터 형집행정지 허가를 받고 수차례 연장처분을 받았다. 게다가 방송을 통해 공개된 윤씨의 모습은 환자라기보다는 호화 병실에서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는 일반인처럼 비춰져 충격을 줬다.

방송을 본 네티즌들은 윤씨과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진 ‘부산의 모 제분회사’와 진단서를 끊어준 연대 세브란스병원, 수사당국에 대해 분노했다. 급기야 네티즌들은 청부살인을 의뢰한 윤씨에 대한 신상 털기에 나섰고, 윤씨가 부산 소재 코스닥 상장기업인 ‘영남제분’ 회장의 부인이라는 정보를 캐냈다.

네티즌들은 영남제분 불매운동을 벌이는 한편 주식관련 사이트나 게시판 및 온라인커뮤니티에 ‘여대생 청부살인’과 관련 영남제분 회장 일가와 영남제분을 비판하는 글들을 올렸다. 이것을 문제 삼아 류 회장은 네티즌 140여 명을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류 회장은 지난 3일 허위 진단서를 대가로 주치의에게 돈을 건넨 혐의로 구속됐다.

진실 놓고 공방
“누가 거짓말?”

이른바 ‘딸기찹쌀떡 논란’의 ‘갑’으로 지목됐던 대웅홀딩스 역시 사측으로 쏟아진 비난에 대해 공개적으로 해명하는 한편,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청년사업가 김민수씨를 고소했다.

대웅홀딩스는 지난 7월 권용순 대표이사 명의로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딸기찹쌀떡’과 관련한 입장을 표명했다.
권 대표는 “최근 인터넷에 대우홀딩스와 관련해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몇몇 사람들에 의해 유포되고 있다”며 “그 정도가 상식을 뛰어넘어 관련 법적 조치와 더불어 입장을 표명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권 대표는 “대웅홀딩스는 과일찹쌀떡 사업과 관련해 인수 또는 합병 계획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2013년 6월13일자 인터넷 기사 보도대로 ‘이찌고야’ 브랜드와 업무 관련 컨설팅 계약만 체결했으며 그 외 관련 사업은 검토조차 한 사실이 없다”고 분명히 했다.



권 대표는 또 “만약 인터넷 유포 내용이 거짓으로 판명되면 관련자들은 당 회사가 입은 모든 유·무형적인 손실에 대해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갑의 횡포’라는 시대적인 이슈를 교묘히 이용한 행태가 있다면 이는 반드시 처벌 받아야 하며 이에 의한 선의의 피해를 보는 기업도 없어야 할 것”이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앞서 MBC 시사매거진 <2580>은 ‘딸기찹쌀떡의 눈물’ 편에서 청년사업가 김씨 사연을 소개해 주목받았다. 방송에 따르면 김씨는 영화 스태프로 일하던 2009년, 일본의 떡 장인인 다카다 쿠니오에게서 어렵게 ‘과일 찹쌀떡’ 제조비법을 전수 받았다.


이후 김씨는 명동의 한 분식집 사장 안모씨와 51%로 49%로 지분을 나누고 지난 6월 딸기 찹쌀떡 전문점을 차렸다. 창업 5일 만에 김씨는 '청년창업 달인'으로 TV에도 출연하는 등 사업이 번창했으나, 보름 만에 안씨로부터 계약해지를 통보 받는 황당한 상황에 놓였다.

김씨는 안씨가 갑작스레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에 대해 안씨가 자신 몰래 프랜차이즈 사업을 준비해 오는 과정에서 대웅홀딩스랑 계약을 맺었으며, 자신이 TV에 등장하자 쫓아내다시피 한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실제 대웅홀딩스와 안씨가 컨설팅 계약을 맺은 것이 이즈음 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론에 밉보일라’ 전전긍긍 ‘때는 이때’
앉아서 당할 수 없다 ‘을의 눈물’ 물타기

하지만 안씨는 이에 대해 김씨가 청년창업 달인으로 등장한 프로그램은 조작이었으며 김씨는 딸기찹쌀떡을 만들 줄도 모르는 초보였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안씨는 김씨가 딸기찹쌀떡 제조 방법을 일본의 장인에게 전수받았는지도 믿을 수 없고 분식집에서 딸기찹쌀떡을 만든 하씨에게서 이 기술을 전수받았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딸기찹쌀떡에 투자한 45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해 이 투자금이라도 받기 위해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중이며, 안씨는 김씨가 이 같은 내용을 인터넷 등에 퍼뜨렸다며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김씨를 고소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6월 “하도급업체로부터 음해와 협박을 당했다”고 고백, 이들을 고소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청업체가 ‘갑의 횡포’라며 현대백화점을 공정위에 제소하자 현대백화점이 하청업체를 사문서 위조 및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하기로 한 것이다.


현대백화점 측은 아이디스파트너스가 2004년부터 수의계약 방식으로 백화점 광고와 관련한 일체의 업무를 독점했지만 지난해 내부감사 결과 160억원의 비용을 부당 편취하는 내부 비리가 적발됐다고 주장했다.

아이디스파트너스는 지난 2004년 현대백화점에서 퇴사한 직원들이 출자해 설립한 종업원 지주회사로 최근까지 현대백화점 광고와 관련한 업무를 독점적으로 수행해왔다. 아이디스파트너스는 기자회견 하루 전날, 현대백화점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인건비와 광고제작비 등 용역비 51억원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공정위에 제소했다.

고소로 일관 대응
돌연 ‘소 취하’

롯데월드도 잠실 롯데월드 내 점포 임차인들이 ‘롯데 횡포’를 들고 일어서자 지난 4월 상인들을 형사 고소했다. 상인들은 대기업의 이름만 믿고 투자했다 갑작스런 계약 해지로 내쫓기는 신세가 됐다고 주장했고, 롯데월드 측은 “계약서상 내용이 명시됐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며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반면 고소 후 더욱 논란이 커지자 고소를 취하하는 갑도 있었다. ‘갑 횡포’ 정점을 찍었던 남양유업은 지난 1월 대리점주들이 인터넷과 언론에 사실이 아닌 조작된 자료를 뿌렸다는 이유로 이들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이후 영업사원 욕설 음성파일이 공개되면서 남양유업 사태가 장기화되자 남양유업은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 이어 이들에 대한 고소를 모두 취하했다.

최근 가맹점과 불공정거래로 논란이 됐던 화장품업체 토니모리도 마찬가지다. 7월 말 토니모리는 ‘본사 횡포’를 국회에 고발한 여천 대리점주를 사기죄로 고소한데 이어 8월 초 허위사실 유포 등 불법 행위 금지 요청 건에 대한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상황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토니모리=악덕 기업’이라는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자 본사 측은 돌연 전략을 바꿨다. 가맹점과의 상생 협력 참여를 약속하고 일부 점주들과의 소송도 취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스스로를 갑이라 여기는 갑들은 ‘갑을 논쟁’에서만큼은 자신들이 ‘을’의 위치에 있다고 호소한다. 기업 이익만을 앞세워 을을 괴롭히는 존재로 인식돼 늘 여론의 질타를 받는 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가 갑의 반란을 만들어 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을의 눈물’로 갑의 반란이 시작됐지만 어디까지나 상생의 관계에서 그쳐야 한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갑과 을’의 인식 변화다. 갑은 관행처럼 해오던 ‘갑질’을 자제해야 하고, 을 역시 여론과 언론을 등에 업은 ‘을의 횡포’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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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