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기러기아빠 아지트 ‘기러기바’ 실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9.16 1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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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빈자리, 그녀들이 채워준다

[일요시사=사회팀] 자녀의 교육을 위해 부인과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고 홀로 한국에 남아있는 ‘기러기아빠’들은 늘 외롭다. 이들은 가족을 그리며 술로 밤을 지샌다. 그리고 씻기지 않는 외로움을 달래고자 ‘기러기바(데이트바)’를 찾고 있다.



1990년대 조기유학 열풍이 불면서 시작된 ‘기러기아빠’ 문제, 한국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미 국어사전과 국립국어원에 신조어로 포함됐을 정도로 한국사회에 엄연한 보통명사로 자리잡았다. 그 숫자도 50만 가구 이상으로 추산되니, 이미 가족의 한 형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기러기아빠’의 속은 썩어 문드러진다. 지금 그들은 속 얘기를 들어줄 대화상대를 찾고 있다.

데이트 상대 찾아
밤거리 헤맨다

서울 강남 일대에 외로운 기러기아빠들을 상대하는 일명 ‘기러기바(데이트바)’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이곳은 초저녁부터 기러기아빠 등 외로운 남성들로 북적댄다. 이색적인 건 이들은 동행 없이 혼자 온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간 외로웠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여성을 선택해 1대 1로 술을 마시며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이들의 발걸음을 옮기게 하고 있다.

수년 전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먼 타국으로 떠나보낸 A씨는 최근 외로움에서 한 발짝 벗어났다. 기러기아빠가 주 고객인 ‘데이트바’에서 대화녀를 만나고부터다. 묘한 술집시스템에 대해 꽤 만족하는 눈치다. “내 나이쯤 돼서 기러기족 생활을 하다보면 룸살롱도 재미없고 늘 외롭다. 우연히 데이트바를 알게 됐는데 술에 대한 부담도 없고 젊은 아가씨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위로받는 느낌이다.”

사실 A씨는 ‘데이트바’를 처음 접했을 때, 신종 변태 유흥업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데이트바를 직접 가보니 신종 유흥업소가 아니었다.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최상의 장소였던 것이다. 그는 ‘데이트바’에서 만난 대화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대 이상의 위안을 느꼈다. 그 뒤로  A씨는 한 달에 두 세 번씩 데이트바를 찾고 있다.


A씨는 기러기아빠들이 모이는 한 인터넷 카페를 통해 데이트바의 존재를 알게 됐다. A씨는 이곳에서 활동하는 기러기아빠들과 고민을 털어놓으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가끔 열리는 정기모임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리고 정기모임 어느 날, 데이트바에 다녀온 B씨의 후기를 듣게 됐다. 당시 A씨는 퇴폐업소라고 생각해 단순히 웃어 넘겼지만 그 호기심은 며칠이 지나도 가시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쓸쓸히 퇴근하는 발걸음에, 문득 정기모임 때 B씨가 말한 데이트바가 떠올랐다. A씨는 B씨에게 들은대로 곧장 데이트바로 향했다.

솔로 남성들을 위한 전용술집 데이트바는 대화녀라고 불리는 예쁜 여종업원과 독립된 공간에서 1대1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룸살롬 등에 싫증을 느낀 기러기 아빠들이 많이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러기아빠 A씨는 본인이 원하는 아가씨 한 명을 지목해 1대 1로 ‘프라이빗바’에서 술자리를 함께했다. 맥주와 안주는 무제한 제공된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제법 이야기가 통했고 재밌었다. 기본 한 시간에 10만원이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화녀가 자신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시덥잖은 농담에도 밝은 미소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화녀의 반응에 들뜬 A씨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데이트바를 이용하는 기러기아빠 A씨는 “가정에서 치이고 회사에서 치이다 보면 삶이 황량하다. 체면 때문에 속내를 털어놓기도 힘들다. 그렇다보니 늘 외롭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러던 중 우연히 데이트바를 알게 됐는데 술에 대한 부담감도 적고 대화녀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위안을 받고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고 털어놨다.

진솔한 대화로
발길 끊이지 않아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데이트바’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손님들과 원활한 대화를 위해 대화녀들에 대한 철저한 서비스 매너 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리고 대화녀로 일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교양지식은 갖춰야 한다고. 학식 있는 기러기아빠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세태 속에 목돈 마련을 위해 ‘대화녀’를 자청하는 젊은 여성들이 늘고 있다.


사실 퇴폐적 서비스를 하는 바나 유흥업소는 천지에 널려있다. 하지만 데이트바는 유흥업소에 질린 외로운 남성들에게 안성맞춤이다. 큰 부담 없이 편하게 와서 기분전환하고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뜨거운 서비스나 진한 스킨십을 원하는 손님은 드물다. 물론, 간단한 스킨십 정도는 허용된다.

가끔 꼴불견인 손님들도 있다. 도를 지나쳐 가슴 등 신체 은밀한 부위를 노골적으로 만지려고 하는가 하면 치마 속 등 몰래카메라를 찍으려는 남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몇몇 남성들은 대화를 나누다 마음이 통한다 싶으면 “나랑 사귀자”고 말하기도 한다. 또 몇몇 손님은 은밀하게 성매매를 제의한다고 한다. 아무리 친절하고 매너가 좋아도 사적인 만남, 2차는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서울 강남 일대에 ‘데이트바’우후죽순
초저녁부터 외로운 남성들 북적북적

‘대화녀’ 가희(27·가명)씨는 “손님들이 사귀자는 건 대부분 엔조이를 의미한다. 가끔 정말로 마음이 통하는 손님이 있기도 하지만 일일 뿐이다. 솔직히 사귀는 건 힘들다”고 말했다.

가희씨는 6개월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자격증을 따러 학원에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지만 생활이 막막했다. 학원비며 수업에 필요한 도구며 돈 나갈 곳이 많았다. 거기에 생활비와 적금, 보험료 등 수입보다는 지출이 많아 경제적으로 힘들어 고민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데이트바에 발을 들이게 됐다.

“사실 처음엔 술집 접대부 같은 일은 아닐까 겁이 났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나름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가희씨에 의하면 데이트바 일 손님 대부분이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이다보니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어 견문이 넓어졌다고 한다.

과도한 스킨십 금지
여성은 목돈 목적

‘대화녀’로 일하면서 가희씨는 가끔 ‘카운슬러’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고 전했다. 딱딱하고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만큼 남들에게 말하기 힘든 남성들의 ‘속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그렇게 외로움도 많이 타고 고민이 많은지 처음 알았다”면서 “처음엔 술집 접대부 같은 일이 아닐까 싶었지만 요즘엔 무슨 심리상담사가 된 기분”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사실 ‘대화녀’들은 기러기남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지만, 진심으로 경청해주며 가끔 조언도 해주면 손님들이 큰 위안을 받는 것 같아 자신도 힘이 생긴다고 했다.

가희씨는 “낮에는 자신의 미래를 위한 공부를 하고 밤에는 기러기바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희씨 뿐 아니라 데이트바에서 일하는 대화녀들은 대부분은 낮에 직장생활을 한다. 이중에는 자기계발 중인 대학생들도 많다. 이들 대부분은 새벽 3시에 퇴근해 다음 날은 자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초미니스커트로 각선미를 과시하는 ‘대화녀’들은 대부분 낮엔 직장에 다니거나 피팅모델 등의 일을 하는 투잡족이다.

수연(22·가명)씨는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학교에 다닌다. 학비를 벌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대학 졸업 후 내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때 까지 계속 이 일을 할 예정이다”며 “시간을 많이 뺏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술을 많이 마시지 않으면서 고수익을 보장 받을 수 있어서 좋다”고 털어놨다.

한편 수연(24·가명)씨는 섹시바에서 일하다가 된통 당한 기억에 다시는 유흥업소 관련해서는 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커져버린 씀씀이를 감당하기 위해서 다시 눈길을 돌렸다. 그러다 데이트바를 만나게 됐다.


수연씨는 “섹시바에서처럼 속옷만 입고 일하지 않아도 되고, 손님들과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란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귀띔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대화녀들은 한 달에 보통 300만원을 번다. 1시간에 10만원의 비용 중 5만원이 대화녀의 몫이다. 술을 많이 먹지 않아도 되니 목돈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렇듯 외로운 기러기아빠들과 그들의 지갑을 노린 이들로 데이트바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누구는 외로움을 달래고, 누구는 목돈을 마련한다. 어떻게 보면 서로 좋은 만남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은 한국사회의 슬픈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정신적 고통 호소
아빠들이 위험하다

기러기아빠들은 정신적 고통을 가장 많이 호소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기러기아빠 3명 중 1명은 우울감을 느낀다. 또 이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무분별한 음주습관으로 알코올중독에 걸리기 쉽다. 씨는 방송을 통해 “혼자 지내다보니 술을 자주 먹게 되는데 거의 기절할 정도의 폭음이 잦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지난해 6월, 기러기아빠였던 국립대 퇴직교수 K(69)씨가 숨진 지 한 달 만에 이웃에게 발견돼 논란이 됐다. 경찰은 “K교수가 외로움 탓에 술을 많이 마셔 건강이 악화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지난 3월에는 대구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치과의사 A씨가 유학중인 딸과 아내 문제로 고민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스웨덴 우메오대학 연구팀이 1991∼2000년 68만3000여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녀·부인과 떨어져 사는 경우 자살률은 2.3배, 알코올이나 약물중독으로 인한 사망률은 4.7배로 훨씬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기러기아빠 현상을 중심으로 가족이 흩어져 사는 현상에 대한 연구로 연세대 대학원 신학과 목회 상담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양숙씨는 기러기아빠를 ‘비동거 가족’이라고 규정했다. 비동거 가족 문제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것.


‘쭉쭉빵빵’아가씨와 토킹 1시간 ‘10만원’
이중 5만원 대화녀 몫…간단한 스킨십 허용

그는 논문에서 기러기아빠를 “자녀를 외국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아내와 자녀를 외국에 보내 놓고 국내에서 혼자 생활하는 남자”라고 정의한 뒤, “한국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학력 중시 현상과 더불어 국제화 세계화 정보화라는 흐름 속에서 결국 자녀 조기 유학을 위해 가족 비동거라는 선택을 한다”고 요약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는 내 자녀가 잘 살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아 두렵다는 주관적 판단에서부터 군복무, 공ㆍ사교육 문제, 과열 경쟁 등이 제시됐다. 또 한반도 이남을 뒤덮고 있는 영어 콤플렉스는 영어가 곧 돈이라는 ‘영어 자본론’으로 직결되는데, 이는 공교육이 무너진 상황과 맞물려 ‘덩달아 유학’을 부추긴다.

그 이면은 어쩌면 더 심각하다. 이미 외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외국 교육의 장점 등에 길들여진 기러기 엄마와 자녀는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엄마 잘 만나야 대학 간다’는 말에 떠밀리듯 부인과 자식을 보낸 아버지는 갑작스런 독거 생활에 사실 처자식의 귀국이 그립기만 하다. 고독감, 정서적 불만, 성적인 욕구 불만 등은 그들이 맞닥뜨리는 보편적 문제라고 최 씨는 지적한다.

기러기 생활이 길어질 경우 가족 간 거리감이 심화돼 가정해체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물론 기러기 가족은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이지만 기러기아빠 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이 같은 문제들을 방치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자녀유학 명암
무작정? 계산기부터 두드려야!

자녀를 무작정 유학길에 보내는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미국에 입시경쟁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자녀를 아이비리그에 보내려는 미국인들은 초등학교부터 관리에 들어간다. 미국 중산층 엄마도 학교성적, 과외활동 등을 관리하는 맹모 생활을 한다. 그리고 ‘하버드 맘(엄마)’ ‘스탠퍼드 맘’ 같은 자녀 자랑을 자신들이 타고 다니는 차 번호판에 붙이고 다닌다.

경제학에 ‘밴드왜건 효과’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부화뇌동하는 것을 지칭한다. 연 10조원의 국부를 투입하고 50만명의 자발적 이산가족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금, 기러기 가족의 비용과 교육성과라는, 투입과 산출의 냉정한 경제학적 계산을 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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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