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재보선 '거물들의 대전쟁' 막전막후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5: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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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니선거에도 대한민국 정치권 '들썩들썩'

[일요시사=정치팀] 오는 10월30일 치러질 재·보궐선거의 열기가 벌써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자천타천으로 여야 거물급 인사들의 출마설이 줄줄이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10월 재보선을 통해 국회로 복귀한다면 대한민국 정치권의 역학구도는 통째로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거물들의 대전쟁이 될 10월 재보선을 <일요시사>가 미리 살펴봤다.



10·30 재보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물밑 움직임이 분주하다. 일선에서 물러났던 정치거물들이 10월 재보선을 통해 정계복귀를 타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사람들도 이번 재보선에 도전장을 던질 예정이어서 오는 10월 재보선은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 될 전망이다.

최대 9곳
미니총선

10월 재보선은 당초 10석이 넘는 ‘미니총선’이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재판 결과들이 뒤집히면서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다. 현재까지 재보선지역으로 확정된 곳은 경북 포항 남·울릉과 경기 화성갑 두 곳에 불과하다. 이와 함께 인천 서구ㆍ강화을, 인천 계양을, 경기 수원을, 경기 평택을, 충남 서산ㆍ태안, 전북 전주 완산을, 경북 구미갑 등 7개 지역은 오는 30일까지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재보선이 치러지게 된다.

현재 10월 재보선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는 거물급 인사들은 새누리당 서청원 상임고문,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안상수 전 인천시장과 민주당 손학규, 정동영 상임고문 등이다.

민주당 손 고문의 경우는 경기 수원을 출마 가능성이 점쳐진다. 손 고문은 과거 경기지역에서만 4선을 한데다 경기도지사를 지낸 경력이 있는 만큼 재보선에 나선다면 수원을이 유력하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경기 평택을도 있지만 현재 평택을 지역은 이 지역에서 내리 3선을 한 뒤 지난 19대 총선에서 불출마한 민주당 정장선 전 의원의 출마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무성 견제구? 서청원에 힘 실리나?
안철수 정치세력화 첫 시험무대

손 고문이 수원을에 출마한다면 새누리당 소속 임 전 대통령실장과의 빅매치가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 임 전 실장의 경우도 경기 성남 분당을에서 3선을 지내 인근 지역구인 수원을에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임 전 실장은 손 고문을 피해 평택을에 출마한다고 해도 3선 출신 정 전 의원과의 맞대결이 예상돼 쉽지 않은 싸움이 될 전망이다.

손 고문은 현재 재보선 출마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지만 이번 재보선 결과에 민주당의 명운이 걸려 있는 만큼 당의 적극적인 출마권유가 있다면 '당을 위해 헌신한다'는 명분으로 출마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손 고문은 지난 2011년 4월에도 새누리당의 텃밭으로 불렸던 분당을 보선에 출마해 승리한 적이 있다.

인천 서ㆍ강화을 역시 빅매치 예상 지역으로 손꼽힌다. 이곳은 새누리당 대선후보경선에도 참여했었던 안상수 전 인천시장이 출마를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새누리당 서청원 상임고문 역시 이곳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게 된다면 공천 때부터 치열한 대결이 불가피하다. 다만 충남 천안 출신인 서 고문이 충남 서산ㆍ태안으로 방향을 돌릴 가능성도 있다.

전북 전주 완산을에서는 민주당 정동영 상임고문의 출마설이 제기된다. 이 지역은 민주당의 텃밭이라 굳이 중량감 있는 인사를 출마시킬 필요는 없지만 안철수 의원 측이 이 지역을 '호남 교두보'로 삼기 위해 후보를 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안철수 vs 민주당
새누리당 vs 안철수

안 의원 측 인사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중량감 있는 정 고문이 출마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눈길을 끄는 지역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경북 포항 남·울릉이다.


이곳은 이미 재보선이 확정된 곳으로 이 전 의원의 직계였던 이춘식 전 의원과 박명재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 이 지역에 최근 친박계 서청원 고문의 측근인 서장은 전 서울 동작갑 당협위원장이 사무실을 마련하고 출마를 준비하면서 친이와 친박 간의 대리전이 예상돼 주목을 받고 있다. 

이처럼 10월 재보선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지만 정작 출마가 거론되는 거물급 인사들은 아직까지도 출마 지역을 확실히 정하지 못하면서 정치권은 혼란을 겪고 있다. 일부 인사는 출마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이런 상태라면 자칫 재보선 출마자들이 낙하산 논란이나 부실공약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도 크다.

정치권의 관계자는 "정치 도의상 대법원 확정판결도 나오지 않은 지역에 출마하겠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낙하산 논란이나 부실공약 논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재보선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던 이들 거물들이 10월 재보선을 통해 국회로 복귀한다면 정치권의 역학구도가 크게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서청원 고문의 복귀 여부는 정치권의 핫이슈다. 서 고문은 그동안 박근혜정부의 막후실세로 지목받아온 인물이다. 서 고문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등장으로 화제가 된 7인회의 멤버이기도 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기 말 단행한 특별사면에서는 친박계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당시 서 고문의 사면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사면을 반대하는 박 대통령을 달래기 위해 끼워 넣은 카드라고 분석했었다. 서 고문은 당시 가석방으로 풀려난 상태였지만 사면을 통해 상실했던 피선거권을 회복하면서 이번 재보선에 출마할 수 있게 됐다.



서 고문은 현재 6선으로 재보선에 당선되면 7선이 돼 하반기 국회의장도 노릴 수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서 고문이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을 견제하기 위한 카드가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비록 지난 대선에서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탈박계인 김 의원이 당내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을 두고 친박계들의 불만이 크다는 후문이다.

따라서 서 고문이 국회에 입성하게 되면 차기 당권 경쟁에 나서고 친박계 의원들이 서 고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이른바 '김무성 죽이기'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이다. 결국 서 고문이 국회에 재입성한다면 새누리당 내 당권경쟁구도가 크게 출렁일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임태희 전 실장의 행보도 눈여겨볼만 하다. 임 전 실장은 이명박정권에서 고용노동부 장관과 대통령실장을 지낸 친이계의 핵심이다. 임 전 실장이 재보선을 통해 국회로 복귀한다면 그를 중심으로 친이계가 차기 당대표 선출을 위한 내년 전당대회를 전후해 급속히 결집될 가능성이 있다.

김무성 견제?
친박 핵심 투입

민주당으로서도 이번 재보선은 분수령이다. 민주당 당대표와 경기지사를 지냈던 손학규 고문이나 민주당의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고문이 재보선을 통해 국회로 복귀한다면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당내 역학구도가 크게 변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선거는 박근혜정부 출범 8개월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도 지닌다. 재보선 가능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는 7곳은 수도권, 충청, 호남, 영남으로 고루 분포돼 있어 이들 지역이 최종적으로 재보선에 포함된다면 민심의 바로미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번 재보선의 결과에 따라 여소야대의 정국이 도래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새누리당은 153석으로 국회 내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민주당 127석, 통합진보당 6석, 정의당 5석, 무소속 7석 등이다. 새누리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3석을 잃으면 과반이 무너지게 된다. 현재 재보선 대상으로 거론되는 지역 가운데 6곳 정도가 새누리당 지역이다.


박근혜정권 심판? 과반 깨질 수도
통진당 사건 파장 어디까지?

이번 재보선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관전 포인트는 안철수 의원 측 인물들의 재보선 선전 여부다. 안 의원은 이번 재보선을 단단히 벼르고 있는 모양새다. 안 의원은 야권연대 없이 독자후보로 승부를 걸겠다고 밝히면서 이번 재보선은 그의 독자세력화 가능성에 대한 첫 시험무대이기도 하다.

만약 안 의원이 내세운 인물들이 이번 재보선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다면 안 의원의 영향력은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된다. 반대로 재보선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정치권 인사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민주당의 발목만 잡는 모양새가 된다면 안 의원의 독자세력화는 사실상 어려워진다.

통진당 사태 
대형 악재

정치권은 10월 재보선의 판세와 관련 국정원의 통합진보당 수사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역 국회의원을 포함한 원내 정당이 내란음모,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만큼 사건 자체가 무척 민감하고 심각하기 때문이다. 10월 재보선까지 이번 이슈가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지난해 통합진보당 사태가 두 달 가까이 지속됐던 경험에 비춰보면 이번 사건이 10월 재보선 판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충분하다.

야권으로서는 대형악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민주당은 더더욱 진보정당과의 연대가 불가능해졌다. 안철수 세력마저 독자출마를 선언한 만큼 이번 재보선에서 야권은 뿔뿔이 흩어져 각개전투를 벌여야 할 처지다. 정치권에서 호남을 제외한 야권의 재보선 전패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이유다.


돌아온 거물들의 각축장이 될 10월 재보선. 최후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그 결과에 벌써부터 정치권의 눈과 귀가 쏠려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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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