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떠도는 ‘숨바꼭질 괴담’ 추적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1: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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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정체불명 알파벳…혹시 살인마 암호?

[일요시사=사회팀] 영화 <숨바꼭질>은 ‘초인종 옆 의문의 암호’와 관련된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현재 관객수 500만을 향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그런데 영화 속 초인종 암호가 주택가에서 실제로 발견되고 있어 의문이 일고 있다.



영화 <숨바꼭질>은 전세계를 경악케 한 일명 ‘초인종 괴담’ ‘숨바꼭질 괴담’이 모티브다. 2008년 도쿄를 시작으로 뉴욕, 유럽, 상하이 그리고 서울 및 수도권 지역에까지 걸쳐 발견된 초인종 옆의 수상한 표식과 관련된 이 도시괴담은 누군가 거주자의 성별, 숫자 등을 초인종 옆에 의문의 암호로 표시한 뒤 범죄에 사용한다고 알려져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공포 영화가
현실에서도…

“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숨어 살고 있다면?…” 영화 <숨바꼭질>의 주인공 성수(손현주)는 고급 아파트에서 완벽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성공한 사업가다. 그러나 하나 뿐인 형에 대한 비밀과 지독한 결벽증을 갖고 있다. 어느 날 그는 형의 실종 소식을 듣고 수십 년 만에 찾아간 형의 아파트에서 형을 알고 있는 주희(문정희) 가족을 만나고 집집마다 새겨진 정체모를 암호를 본다.

“제발 그 사람한테 제 딸 좀 그만 훔쳐보라고 하세요” 어린 딸과 단 둘이 살고 있는 주희는 자신의 집을 훔쳐보는 누군가의 존재를 느끼며 두려움에 떤다. 낡은 아파트의 암호를 찬찬히 살펴보던 성수는 그것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성별과 수를 뜻하는 것을 알게 된다.  

형의 아파트를 뒤로한 채 자신의 안락한 집으로 돌아온 그 날, 성수는 형의 아파트에서 봤던 암호가 자신의 집 초인종 옆에서 새겨진 것을 발견한다.


<숨바꼭질>의 허정 감독은 “요즘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귀신이 아니라, 피부에 와 닿는 현실적인 두려움”이라며 남의 집에 몰래 숨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게 된 의도를 밝혔다.

그런데 지난달 <숨바꼭질>이 개봉한 이후 이와 관련된 괴담이 무성하다. 이 영화 줄거리의 핵심내용인 ‘초인종 옆 의문의 암호’가 실제로도 발견됐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영화 관객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의 집 초인종을 한번씩 확인해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영화 속 장면이 현실에 그대로 나타난 경우가 있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영화 <숨바꼭질>처럼…초인종 표식 확인
서울·수도권 일부 아파트·원룸서 발견

인천에 사는 A씨는 무더운 여름에 땀을 식히며 스릴러물인 숨바꼭질의 개봉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지난달 개봉 당일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뭔가 찜찜함을 느꼈다. 낙후된 복도식 아파트였던 영화의 배경처럼 자신이 사는 아파트도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A씨는 설마 하면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설마는 현실이 됐다. 집으로 돌아간 A씨가 확인한 결과 초인종 밑에는 검정색 볼펜으로 비교적 뚜렷한 암호가 새겨진 흔적이 있었다. A씨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 고요한 정적이 흘렀고 A씨는 자신이 사는 6층을 포함해 아파트 단지 1층부터 18층 까지 전 층의 초인종 밑을 확인하기 위해 발로 뛰었다.

A씨는 “처음에 깜짝 놀라 당황했다”며 “혹시나 영화를 본 아이들의 장난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전 층을 다 돌며 확인 작업에 나섰다”고 말했다. 여러 집에 낙서가 있다면 아이들의 장난으로 쉽게 넘겨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A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A씨의 집만 유일하게 암호가 새겨져 있었다. A씨 집 초인종 밑에는 ‘□1 ○1 △2’표시가 진하게 나타났다. 이는 ‘부(□1) 모(○1) 자녀(△2)’라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A씨의 가정은 4인 가족이다. 그리고 현재 4인 모두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즉 평일 낮에는 집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A씨는 암호 낙서의 범인이 이 점을 노린 것이라고 판단해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A씨의 신고에 경찰은 황당하다는 태도를 취했다. A씨는 답답해하며 경찰서 안에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경찰에게 알렸다. 경찰은 그제야 A씨의 신고내용을 진지하게 들었다. A씨는 초인종 암호 흔적을 보여주며 아파트 단지 순찰 강화를 요구했다. 경찰은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조금 황당하긴 하지만 아파트 단지의 순찰을 강화하겠다”며 “현재 순찰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또한 아파트 경비원도 이러한 사실을 숙지해 거수자를 발견하는 데 노력하기로 했다.

초인종 표시
누가? 왜?

파주에 사는 B씨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A씨와 마찬가지로 B씨도 <숨바꼭질>의 개봉을 기다려 영화를 관람했다. B씨의 집은 A씨의 집처럼 복도식 아파트가 아니었음에도 B씨는 초인종이 궁금했다. 결국 B씨도 수상한 암호를 자신의 집 초인종에서 발견했다. 영화의 흥분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B씨의 집 초인종 옆에는 ‘○/√’, 동그라미와 브이체크 표시가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B씨는 순간 두려웠다. 그리고 반대편 이웃집의 초인종을 다급히 확인했다. 그런데 이웃집의 초인종에도 ‘○/√’, 동그라미와 브이체크 표시가 있었다.


B씨는 “설마하며 우리 집과 이웃집의 초인종을 봤는데 똑같은 표시가 있었다”면서 “혹시 신문배달원이나 요구르트 아줌마가 남긴 표시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두 집 다 관련 없다”며 “모녀 가정인 우리집과 독신여성인 이웃집을 노린 것 같다”고 말하며 불안한 심정을 토로했다. 사실 암호에 대한 해석은 쉽게 단정 지을 순 없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의 특성을 고려해 이러한 사실을 비춰본다면 어느 정도 추측은 가능해 보인다.

최근 이처럼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의 낙후된 복도식 아파트나 원룸촌의 초인종 옆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표식이 적혀 있다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꽤 오싹한 이야기다. 그 표시라는 것도 연금술의 금속 기호나 카발라 기호처럼 그럴듯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α’ ‘β’ ‘x’ 등 간단한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이 다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 단순성 때문에 공포는 배가되고 있었다. 대체로 혼자 혹은 여성들만 사는 집을 노리는 도둑들의 영업지도가 아닐까라는 의견도 상당하다.

‘□1○1△2’‘○/√’
“도대체 이게 뭐지?”

그러나 이러한 괴담 사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내에서만도 초인종 표식 괴담과 대학가 원룸 표식괴담 실화 등이 지난 2009년부터 최근까지 5년간 매해 뉴스를 통해 보도되고 있다. 또 누리꾼들의 실제 목격담들이 줄을 잇는 등 사회적 이슈를 일으키며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2010년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도 초인종 괴담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바 있다.

이러한 ‘초인종 괴담’ 실화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꾸준하게 확산되고 있으며 실제 경험 사례가 댓글을 통해 전해지며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 흥미로운 건 한국에만 국한 된 괴담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세계적인 사회문제로 주목을 끌고 있다.

그 중에서도 ‘뉴욕 아파트 영상’으로 알려진 숨바꼭질 괴담은 2009년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며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공개된 영상은 뉴욕의 한 남성이 집 안의 음식이 계속 없어지는 것을 의심하던 중 거실에 직접 CCTV를 설치해 포착해 낸 실제 장면이다.

앞서 2008년 일본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또한 헤어진 여자 친구의 집에 숨어사는 엽기남이 화제가 되기도 하는 등 낯선 사람이 남의 집에 몰래 숨어 사는 영화와 같은 일이 실제로 매해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들은 “누군가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집을 염탐하고 숨어 살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당황스럽고 두려운 심경을 감추지 못했다.

경비 취약한 곳
여성집 집중공략

초인종 옆 네모, 동그라미, 세모와 숫자로 이뤄진 의문의 상징. 영화 <숨바꼭질>은 극초반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기 위해 이 같은 이상한 암호를 등장시켰다. 그리고 이 암호는 현실에서도 발견됐다. 이 같은 암호는 시대적 요구를 충족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고 한다. 제작과 복잡성, 해석법 등에 따라서 그 세대를 구분짓기도 한다.

천정희 서울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1세대 암호는 패스워드 방식, 2세대는 군사·외교 등 중요한 비밀데이터를 보호하는 데 사용한 대칭키 암호, 3세대는 전사서명 및 공인인증서를 바탕으로 한 전자상거래에서 자주 활용하는 공개키 암호, 4세대는 암호화된 상태에서 계산을 가능하도록 한 암호이다.

<숨바꼭질>에 등장하는 암호는 수작업을 통한 방법으로 개념상으로는 2세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수작업을 통한 암호는 예컨대 1941년 12월7일 일본 연합함대가 본국에 타전한 암호 전문인 ‘도라 도라 도라’가 이에 속한다. 우리말로 ‘호랑이 호랑이 호랑이’이란 뜻을 가진 이 암호는 태평양전쟁·제2차 세계대전 도발을 알린 것이었다.

모녀가정·독신여성 범죄자 타깃 
암호 새겨 범죄지도 데이터 추정


암호는 종류가 다양하나 작성 방식을 기준으로 볼 때 문자암호(Cipher)와 어구암호(Code)로 분류된다. 문자암호는 다시 전자(轉字)·환자(換字)방식으로 나뉘어진다, 이 중 전자방식은 말 그대로 문장 안의 글자 순서를 서로 바꿔 암호화하는 것이다. 예컨대 ‘일요시사’를 ‘시요사일’처럼 순서를 바꾸는 간단한 방식이다.

환자방식은 일정한 규약에 맞춰 제작된다는 차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 ‘09 12152205 251521’이란 숫자를 알파벳 A부터 숫자 1을 대입하면 위의 숫자 배열은 곧 아이러브유(I Love You) 말로 해석되는 원리다.

어구암호는 어구 하나하나를 일정한 기호로 바꿔 쓰는 방식을 말한다. 사용되는 어구 수가 너무 많아서 암호를 작성하거나 해독하기 위한 암호책(Code Book)이 필요했다.

1970년대 이르러 암호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다. 정수론과 타원곡선, 대수기하, 조합이론 등 다양한 수학이론이 동원됐기 때문이다.

최근 암호는 제품의 상품성과도 직결된다. 스마트폰 화면을 열 때 공개키와 대칭키 등의 암호모듈이 적용돼 ‘당신의 개인정보를 잘 지키고 있다’는 식의 신뢰감을 안겨준 탓이다. 이는 곧 제품판매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중요해지면서 암호화 기술은 아주 난감한 상황을 풀어내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만일 이륙 직전 비행기에 탑승금지자 명단에 오른 테러리스트가 탔다고 가정해보자. 법률적으로 테러리스트 명단은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받는다. 또 비행사는 탑승자들의 개인정보를 고객간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정보 당국에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럴 경우 탑승금지자 색출이 가능할까.

우선 CIA나 FBI가 보유한 테러리스트 명단을 암호화된 상태로 넘겨받는다. 또 비행사의 탑승자 명단도 같은 암호화 방식으로 처리된 데이터로 받은 후 이 데이터의 교집합을 이룬 암호만을 찾아 복호화(암호번역)하면 된다. 이럴 경우 다른 사람들의 신분은 드러나지 않은 상태로 탑승금지자를 찾아낼 수 있다.


세상 삭막할수록
괴담은 꽃핀다

이번 초인종 괴담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단지 추측만 무성할 뿐, 암호에 대해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한 가지 의문점은 범인이 암호로 흔적을 남긴다는 자체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 이러한 미심쩍은 흔적을 두고 일각에서는 절도나 강도의 범죄는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되기 때문에 범죄의 연관성이 있을 확률은 낮다는 입장을 보였다.

초인종 암호의 진위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영화 <숨바꼭질>의 흥행과 더불어 이 괴담은 급속도로 퍼져 많은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미스터리한 암호 흔적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면서 불신의 분위기가 형성된 가운데 이웃과의 관계에도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괴담은 그 시대 사람들의 은밀한 공포와 억압된 욕망을 괴이하게 표출한 것이라는 데 공감한다. 그러나 어찌나 괴담들은 하나같이 괴담스러운지 그저 대중이 늘 괴담 자체를 고파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우리는 혹시 괴담이 품고 있는 일말의 리얼리티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이야기를 과장하고 변형시키는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범죄에 취약한 계층의 심리적 불안을 교묘하게 자극해 사람들 마음에 안착한 이번 ‘초인종 괴담’이 괴담으로서 진검승부를 하려면 아직 거쳐야 할 관문이 남았다. 일단 그런 장난을 누가 했는지 잡아야 한다. 현실 속에서 풀 수 있는 문제를 괴담으로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괴담이나 다름없는 억지를 이미 현실이라며 밀어붙이는 것도 보기 좋지 않다. 아이러니지만, 세상이 삭막할수록 이야기는 꽃핀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화 <아저씨> 현실로…
어린이 눈 빼간 잔혹범

6세 남자 어린이를 납치해 두 눈을 빼가는 충격적인 범죄가 중국에서 발생했다.
<인민일보> 인터넷판은 지난달 24일 오후 10시쯤 산시성 린펀시의 한 교외 들판에서 6세 남자 어린이가 두 눈을 잃은 채로 발견됐다고 지난달 27일 보도했다.

발견 당시 피해 어린이는 마취약에 취해 정신을 잃은 상태였고 얼굴 전체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중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어린이는 괴한들에게 납치된 뒤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산시성 공안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 성 차원에서 전담팀을 꾸려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중국인들은 어린이를 상대로 한 잔혹 범죄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번 범행은 이식 수술용 각막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정상적인 장기 기증이 활성화되지 못해 환자들이 장기 이식을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신장은 암거래 시장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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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