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 성매매의 덫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09: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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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도 모델도…팔려가는 접대부들

[일요시사=사회팀] 원정 성매매가 업계 종사자를 거쳐 일반인들로까지 확대되는 모양새다. 그러나 돈을 노리는 포주와 브로커들은 고수익이라는 위험한 덫을 놓은 채 호시탐탐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한국은 미국 국무부가 매년 발간하는 '인신매매실태 보고서(Trafficking in Persons Report)'에서 "성매매의 근원지(source), 경유지(transit) 그리고 목적지(destination)"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 기준 여성가족부가 공식 집계한 한국 국적의 성매매 여성은 27만여명. 전체 여성 인구가 약 2500만명(통계청 2013)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인구 대비 1%가 넘는 여성이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성매매 근원지
성매매 수출국

특히 집계된 27만명 외에도 과거 성매매 경험이 있거나 정부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성매매 여성 인구를 합산하면 관련 업계 종사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언론이 늘 써오던 '성매매 천국'이란 수식어가 괜히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세간의 평가를 인정하듯 미 국무부가 지난 2013년 6월 발표한 인신매매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과 같은 내용이 명시돼 있다. 미국의 시각에서 본 2013년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성매매의 '근원지'이자 '경유지'이고, 또 '목적지'이다.


아울러 한국은 해외에서 성을 거래하는 시쳇말로 '성(性)진국'이기도 하다. 보고서는 "일부 한국 여성들이 국내 및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와 같은 곳에서 성매매에 유입되고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빚을 떠안은 채로 브로커에 의해 성매매를 강요받고 있다"고 고발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이들은 왜 국내가 아닌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등에서 성매매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

성 종사자 27만명…캐나다·호주로 '밀행'
워킹홀리데이 통해 대학생 해외성매매 급증

지난 21일 부산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한국 여성들에게 일본 등지에서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브로커 김모(33·남)씨와 한모(32·여)씨 등 5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 성매매 여성 47명, 포주·브로커·사채업자 등 18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알렸다.

경찰에 따르면 성매매로 적발된 여성 대부분은 20대 중후반 나이로 이중엔 전직 연예인 ㄱ씨와 레이싱 모델 ㄴ씨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유학생, 전직 공무원, 운동선수 등 언뜻 보기에는 성매매와 큰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력도 원정 성매매 명단에서 확인됐다. 아울러 경찰이 확인한 성매매 여성 중에는 평범한 가정주부도 있어 관계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업계에 따르면 사실 원정 성매매는 완전히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지난 2011년 있었던 이른바 '원정녀' 사건은 원정 성매매가 해외 업주와 연계해 이미 국내외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지난 2011년 10월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일본 현지인들과 결탁해 원정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최모(35)씨 등 브로커 6명과 성매매 여성 16명을 검거했다.

브로커 최씨 등은 '1달에 3000만원'이라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로 꼬드겨 원정갈 여성들을 모집했다. 그리고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접한 여성들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원정 성매매를 결심했다.

이들 대부분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여종업원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개중에는 성매매를 전문으로 해 본 적 없는 여대생도 포함돼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 등은 일본으로 귀화한 포주 스즈키(45·여)씨가 운영하는 도쿄 한 성매매 업소에 여성들을 넘겼다. 이들은 소개비 명목으로 1인당 100만∼200만원을 챙겼다.

그리고 여성들을 소개 받은 스즈키씨가 맨 처음 한 일은 여성들의 누드사진과 프로필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일이었다. 해당 사진을 본 일본 성매수자는 각자가 원하는 여성을 지목해 거래를 했다. 이들은 시간당 2만~15만엔의 화대를 업주 측에 지불했다.

전직 연예인도
레이싱 모델도

하지만 "1달에 3000만원을 보장한다"는 약속은 거짓이었다. 먼저 스즈키씨는 성매매 여성들이 벌어들인 돈의 40%를 상납 받아 업소 운영비로 사용했다. 더불어 성매매 여성들은 현지 숙박비와 성형수술비, 휴대전화 이용료, 홍보용 누드사진 촬영비 등으로 낸 선불금에 월 10%의 이자까지 얹어 매주 스즈끼씨에게 건넸다. 이들 중 일부는 600만∼1000만원의 빚을 진 채 일본에 체류해야 했다.

특히 일본에서 2차례 원정 성매매를 했던 ㄷ씨는 국내로 돌아와 자신의 원정 성매매가 찍힌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 충격으로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원정을 떠났다. 하지만 돈을 벌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단기간 고수입이 목표였고, 현지 업체와 연계된 브로커가 성매매에 개입됐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성매매 동기와 수법은 2년 전 '원정녀' 사건과 유사하다. 다만 포주가 사채업자와 짜고 인신매매를 동반하는 등 범죄 수위가 더 악랄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한씨 등은 지난해 2월부터 지난달까지 일본 도쿄 인근 우그이스타니에 업소를 차려놓고 한국 여성들을 데려다가 성매매를 시켰다. 한씨 등은 여성들에게 "월 2000만∼3000만원을 벌게 해주겠다"고 유혹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유흥업소 종업원 J씨는 선불금으로 175만엔(한화 약 2000만원)을 받고 일본으로 향했다. 수입이 거의 없던 연예인 ㄱ씨도 한씨의 꼬드김에 넘어갔다. 이들은 대개 브로커와 얘기를 나눈 후 원정 성매매를 선택했다. 브로커는 소개비 명목으로 1인당 100만∼150만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들은 외국행을 꺼리는 여성 등을 꾀어내기 위해 무속인을 고용, "올해 '삼재'가 있다. 일본에 가면 대박난다"고 속이기도 했다. 무속인은 그 대가로 1인당 70만∼1000만원을 받아 챙겼다.


일본에 간 성매매 여성들은 업주가 소개한 스튜디오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상반신을 노출한 홍보 영상이 가미됐다. 전단과 인터넷에는 이들을 찍은 나체 사진과 영상이 나돌았다. 그리고 일본 성매수자들은 성행위를 하기 위해 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포주는 연락이 오면 자동차로 여성들을 태워 도쿄 시내 가정집, 호텔, 모텔 등지로 출장을 보냈다. 여성들은 그곳에서 하루 5∼10명의 남자를 상대했다. 그리고 10일마다 한 번씩 240만원을 포주에게 송금했다. 포주는 모두 10회에 걸쳐 원금을 회수했다.

하지만 반복된 성관계에 건강이 악화된 여성도 있었다. ㄱ씨보다 앞서 일본에 가있던 J씨는 몸이 아파 포주가 정한 기한 내의 이자를 갚지 못했다.

그러자 한씨 등은 J씨의 여권을 빼앗아 귀국을 막은 뒤 일본 센다이 지역의 성매매 업소로 J씨를 175만엔에 되팔았다. 여권을 빼앗긴 J씨는 한국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겨우 풀려났다. 일본 내 한국 성매매 여성의 인신매매가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리만 346%인 살인적인 이자가 여성들을 짓눌렀지만 이들 중 고객이 많았던 여성 8명은 브로커의 도움으로 졸업증명서 등을 위조해 비자를 발급받고 1∼2년간 장기 체류했다. 또 일부 여성들은 미국 LA, 괌을 비롯해 호주 멜버른과 대만 타이베이 등을 오가며 원정 성매매를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경찰은 국내외 브로커들을 중심으로 원정 성매매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한편 연예인 ㄱ씨는 경찰 조사를 받자마자 다시 외국으로 건너가 현재는 연락을 끊은 상태라고 전해졌다. 성매매 여성 상당수는 비자가 만료되면 한국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외국으로 건너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호주서 활개
미국도 여전

앞서 <일요시사>는 '워킹홀리데이 해외원정 성매매 실태 집중 조명' 등의 기사를 통해 원정 성매매를 다룬 바 있다.

특히 호주에서의 성매매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갈수록 증가세를 보이는데 1년 사이 호주 유학을 다녀온 복수의 유학생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여자 유학생 10명 중 2명은 성매매를 시도했거나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남들 이목도 피할 수 있고,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점이 한국 대학생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호주는 성매매가 합법인 나라다.

호주 원정 성매매는 대부분 워킹홀리데이를 악용한 형태로 나타난다. 호주 정부는 지난 1995년 한국 정부와 워킹홀리데이 비자 협정을 맺으면서 18∼30세 한국인에게 일정 기간 동안 관광과 취업을 동시에 허락하는 비자를 발급해왔다.

'호주 원정 성매매' 기사에 따르면 현재 경찰은 상당수의 여대생들이 불법 성매매를 위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고, 호주로 향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호주에 도착한 이들은 대부분 현지에 있는 한국인 브로커를 통해 성을 제공할 업소를 알선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을 무대로 활동하는 브로커들처럼 호주의 브로커들도 달콤한 제안을 한다. 1달 400만∼1000만원이 넘는 고수입은 물론 일을 하는 시간이 4∼5시간 내외라 나머지 시간은 공부도 하고, 관광도 할 수 있다는 감언이설을 한다.

월 2000만∼3000만원 보장?
사채빚 지고 '구렁텅이로'
그녀들은 지금…하루 12시간 7명 상대

그러나 하루 5∼10명에 가까운 남성들과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점. 성병에 노출될 확률이 높다는 점. 경우에 따라 불법 감금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원정 성매매는 대학생들에게 굉장한 위험이다.

특히 한국인과 같은 외국인 여성들이 주로 일을 하는 성매매 업소는 대부분 허가받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무허가 업체다 보니 폭언 및 폭행은 기본이고, 성추행이나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원정을 가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건 역시 국내 브로커를 거친 단기 입국이다. 브로커들은 "1달에 2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허위 광고로 일종의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출국 전 "호주에서 일하려면 먼저 성형수술을 받고 가라"며 돈을 빌려준 뒤 꿔준 돈을 사채로 만들어 여성을 착취하는 행태가 몇 년째 반복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원정 성매매로 돈을 벌어 성공했다는 얘기는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다"며 "이제껏 많은 성매매 여성들을 조사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한 번 발을 들이면 빼기 쉽지 않은 곳이 또 성매매 업종이다. 지난 13일 서울지방청 국제범죄수사대가 밝힌 미국 원정 성매매 실태에 따르면 브로커들의 구인광고에 넘어가 미국으로 떠난 200여명의 성매매 여성 중 절반은 불법체류자로 전락해 지금도 현지에서 성매매로 생계를 잇고 있다.

앞서 브로커들은 유흥업소 종업원 구인사이트 등에 "월수입 2500만∼3500만원을 보장합니다" "출국부터 입국까지 에스코트해드려요" "LA에서 함께 일할 언니 초대해요" 등의 광고로 원정 성매매 여성들을 모집했다.

또 돈을 벌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여성들을 위해 일부 포주는 개런티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일반 개런티 계약은 3개월에 2000만원. 하지만 업주는 한국인의 성매매로 같은 기간 1억5000만원을 벌 수 있었다.

원정을 떠난 여성들은 매달 1000만∼1500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숙박비, 미용비 등으로 월 200만∼300만원의 고정비도 함께 지출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악덕 포주를 만난 여성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면서 하루 평균 7.2명의 손님을 받고, 수입은 포주와 6대4로 나누는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호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을 떠날 때 받은 선금의 이자가 불어나 그 빚을 갚기 위해 성매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미국 국토안보부와 수사공조를 통해 현지에 있는 또 다른 성매매업주 등 6명에 대한 국내 송환을 추진하는 등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인력만으로는 현지 성매매 여성의 연락처조차 얻기 힘든 상황이다.

국가 망신이다
일부 과장됐다

일부 외신보도와 현지인의 블로그 등을 검색하면 한국인의 원정 성매매를 다룬 글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용은 '한국인의 하룻밤 가격이 344달러다' '한국 여성들이 대만을 오고 가며 단체 성매매를 하고 있다' '난 호주인인데 한국에서 왔다는 성매매 여성의 신상은 이렇다'는 등 다소 불편한 내용이다.

그래서 원정 성매매가 '국가적 망신'이라는 비난도 있다. 앞서 일부 언론은 약 3만명 정도의 여성이 일본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통상 파악된 일본 상주 한국인(현지 거주 제외)이 18만∼20만명이고, 이중 남녀를 각각 9만∼10만명으로 잡아도 무려 33%에 이르는 여성이 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주장은 다소 억측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국격은 차치하고라도 원정 성매매 시장은 여전히 활개라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호주 한 거리의 위치한 붉은 색 벽돌집은 창문을 닫은 채 인터넷을 통해 성매수자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당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곳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는 한국 국적의 여성은 모두 3명으로 파악됐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동남아 섹스관광 1위는?

한국 남자들이 더 하네∼

동남아시아에서 성매수를 목적으로 한 관광 1순위는 한국이라는 실태 보고서가 작성됐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2012년 시행한 현지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된 '동남아시아 아동 성매매 관광의 현황과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지역 성매매 관광객 수 1위는 한국"으로 조사됐다. 연구원들은 매년 동남아를 입국하는 관광객 수, 유흥업소를 이용하는 빈도, 피해 여성의 증언 등을 분석해 이 같이 발표했다. 특히 만 18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시장에서 한국 남성은 '독보적인 존재'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는 이미 예견된 일이다. 앞서 유엔마약범죄국(UNODC)이 2010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남성은 '동남아 지역 특히 캄보디아 태국·베트남 지역 아동 성매매 관광의 주요 고객'이라고 명시돼 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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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br>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 김나정에게 강제로 마약을 투약한 한국인 사업가 권모씨에게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권씨는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일대에 서버를 두고 투자 사기,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6년간 수사망을 피하며 도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24일 경기북부경찰청 마약수사계는 아나운서 김나정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증거를 경찰에 제출했지만, 경찰은 해당 증거로는 강제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외 도주 대담한 행적 김씨는 지난해 11월12일 마닐라에서 자신의 SNS에 “제가 필리핀에서 마약 투약한 것을 자수한다”며 “죽어서 갈 것 같아서 비행기를 못 타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후 그는 마닐라에서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인천국제공항경찰대의 조사를 받았다. 사건은 주소지 등을 고려해 경기북부경찰청으로 넘어왔다. 이후 김씨 측은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 충정은 “김나정은 뷰티 제품 홍보 및 속옷 브랜드 출시를 위해 필리핀을 찾았다가 젊은 사업가 A씨(권씨)를 소개받았다. 젊은 사업가가 김나정의 사업을 적극 도와주겠다고 해 시간을 할애해 방문했을 뿐이다. 항간에 도는 소위 ‘스폰’의 존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가 필리핀에서 만난 1995년 8월5일생의 사업가 권씨는 SNS에 ‘투자 리딩방’을 개설해 범죄수익을 벌어들인 범죄자다. 업계에서 일명 ‘재림’으로 불리는 그가 리딩방 총책으로 활동하며 발생시킨 투자 사기 피해액만 약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19년 8월4일 필리핀으로 간 권씨는 이후 국내로 입국한 적이 없다. 제보자 등에 따르면 권씨는 드라마 의 주인공 차무식의 실존 인물인 이상태씨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호받아왔다고 한다. 검찰은 21년간 필리핀에서 도주 행각을 이어가던 이씨를 현지 교민 정보망을 활용해 검거했다.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광주지검 목포지청(곽영환 지청장)은 해외 도주를 이어가던 이씨를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지난해 8월23일 밝혔다. 사업가로 변신, 김나정 앞에 나타난 권씨 취재 결과 70억대 사기단 우두머리로 확인 이씨는 2014년 공범과 함께 필리핀에서 불법 도박 사무실을 운영하겠다며 투자금 1억1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20년 2월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구속 기소된 공범은 실형을 살았지만, 해외에 있던 이씨는 공소시효 임박에 따라 궐석재판으로 징역형이 확정돼 ‘자유형 미집행자’ 신분이 됐다. 자유형 미집행자는 징역·금고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잠적하거나 도주한 사람을 뜻한다. 이씨는 2003년 필리핀으로 출국한 뒤 세부섬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21년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공갈·사기 범행을 11건(피해액 약 8000만원) 저질러 지명수배·지명 통보 조치가 내려진 인물이다. 목포지청은 검거팀을 꾸려 이씨 검거에 나섰는데, 필리핀 현지 교민 사이트에서 이씨 거주지를 특정하는 단서를 확보해 검거에 성공했다. 현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씨에 대한 제보를 받아 검거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획득했다. 결국 법무부, 필리핀 파견 검찰 수사관, 필리핀 이민청 수배자 검거팀과 국제공조로 세부섬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검찰은 “7000여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본섬인 루손섬이 아닌 곳에서 범인을 검거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현실판 차무식의 비호를 받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온 범죄자가 바로 권씨인 것이다. 권씨의 이름은 다른 사건에서도 언급된다. 2022년 SNS에 ‘투자 리딩방’을 만든 뒤 대체 코인 거래 사이트로 이용자 130명을 유인해 70억원대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힌 일당도 권씨가 총책이라고 진술했다. 그해 6월30일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혐의로 투자 사기 일당 16명을 검거해 총판 관리팀장 20대 A씨 등 8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도주한 조직 총책인 권씨 등 핵심 간부 5명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하고, 국내에 체류 중인 나머지 조직원 1명은 지명수배해 뒤를 쫓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SNS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서 전문 투자 상담사를 사칭해 투자자 130명을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게 한 뒤 투자금 약 7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강제 투약 진실은? 총책인 권씨는 필리핀에 본사를 두고, 본사 운영팀과 총판 관리팀, 회원 모집책 등 역할을 나눠 치밀하게 조직을 운영했다. 우선, 인터넷에서 불법 수집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에게 무작위로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뒤 SNS에 개설한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 초대했다. 이들 일당은 “대체 코인 투자로 300~400%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라거나 “VIP에게만 제공하는 투자 리딩이 진행된다”며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회원 모집책 20대 C씨 등 13명은 투자 리딩방에서 대체 코인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낸 전문가인 것처럼 1인 다역 행세를 했고, 이에 속은 투자자들이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C씨 등은 가짜 투자 전문가 자격증과 사업자 등록증을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게시하거나 피해자에게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이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가입자 중에는 노후 자금 1억5000만원을 날린 60대 남성과 최대 2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날린 50대 남성도 있었다. 또 가상 자산인 코인 시장에 처음 들어가 재테크를 해보려고 나선 대학생과 주부 피해자들도 포함됐다. 피해자는 모두 130명에 달한다. 1인당 피해 금액은 1000만원에서부터 2억5000만원에 이른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에게 처음 한두 차례는 소액으로 투자한 수익금을 그대로 돌려줘 신뢰를 쌓은 뒤, 큰 투자금을 받는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계좌 28개를 지급 정지하고, 1억2000만원 상당의 범죄 수익에 대해 법원 결정을 받아 추징·보전 조치한 상태다.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는 권씨는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보니파시오 지역 등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제보자에 따르면, “필리핀, 태국 등지에 권씨의 차명 부동산이 여럿 있고, 일부 한국 영사들이 지내는 집도 사실상 권씨의 소유”라고 한다. 현실판 차무식 돈이 곧 권력이자, 신분인 동남아에서 권씨가 경찰을 매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권씨는 수사망을 피해 사업가로 위장했고 다수의 여성과 향락을 즐겼다. 김씨도 부유한 사업가로 위장한 권씨를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정 측은 “김나정은 술자리를 가져 다소 취했던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이 묶이고 안대가 씌워졌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김나정이 연기를 흡입하게 했다. 김나정이 이를 피하는 모습을 보이자 급기야 어떤 관 같은 것을 이용해 김나정이 강제로 연기를 흡입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며 “김나정의 핸드폰에 손이 묶이고 안대를 가리고 있는 영상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나정에게 문제가 된 마약을 강제 흡입시키기 전, 총을 보여주고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따로 없으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권씨는 다수의 범죄를 범해 수배 중인 자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자”라면서, “김나정은 권씨의 정체를 알게 됐고 후술하는 권씨의 협박이 허풍이 아니라는 생각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나정이 귀국 전 소셜미디어에 올린 마약 자수 관련 게시물은 ‘긴급 구조 요청’을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약은 이번 단 한 번만 있었던 것이고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강제로 행해진 것”이라며 “김나정이 경찰과 본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영상통화를 했고 이 과정에서 권씨의 관계자로 보이는 자가 권씨와 통화하며 김나정을 추적하는 영상을 녹화했다. 즉 김나정은 긴급히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마약 투약 사실을 자수한 것이지, 자의로 마약을 투약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후 자료를 제출받은 경찰은 약 3개월 동안 분석 작업을 했다. 또 경기북부경찰청은 김씨 측이 강제성을 주장하며 언급한 권씨에 대해 경찰청 본청 국제 관련 사건 담당 부서에 수사를 요청했다. 대검찰청은 2016년 필리핀 국가수사청과 초국가적 범죄 대응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검찰수사관 2명을 현지에 파견해 국제공조·도피 사범 검거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필리핀 본사···치밀한 조직 운영 추정 범죄 수익만 3000억원 이상 다만, 지난해 경기북부경찰청은 권씨에 대해 “수배 중인 자라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경찰단에서 2회 정도 조사를 받았고, (사건은) 주거지 관할인 경기북부경찰청으로 인계됐다”며 “사전 조사 후 1~2회 정도 소환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법에서 마약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투약하는 행위에 대해서 가중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마약 강제 투약도 일반적인 마약 관련 행위와 마찬가지로 마약 관리법 위반으로만 처벌된다. 지난 2019년 국회에서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임시 마약류를 다른 사람 의사에 반해 투약하거나 흡연 또는 섭취하게 한 경우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모두 폐기됐다. 법무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한 이후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다. 한편,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투자 리딩방 범죄조직들은 대부분 마약 유통에도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에서 탈옥한 조직원들도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이른바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대포폰 판매, 마약 유통 사업으로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등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숨겨 텔레그램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이들은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만명의 회원들을 마약방으로 초대해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했다. 이들은 수억원의 범죄수익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제보자는 “리딩방,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권씨도 똑같은 수법으로 마약 유통에 가담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김나정에게 마약을 쉽게 투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명 ‘재림’ 그러면서 “지난해 탈옥한 송씨도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에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로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로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