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등지는 사람들 '왜?'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8.19 11: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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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은 안철수 대권가도 '빨간불'

[일요시사=정치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최장집 이사장이 지난 10일 이사장직을 전격 사퇴했다. 이로써 안 의원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10월 재보선은 물론 향후 정치세력화 과정에서 적잖은 차질과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안 의원이 정치에 입문한 후 안 의원의 곁을 떠난 사람은 최 이사장뿐이 아니다. 그들은 왜 안 의원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십고초려' 끝에 영입한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난 10일 안 의원에게 직접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사장을 맡은 지 고작 80일 만이다.

갑작스런 사임

당황한 안 의원은 최 교수의 연구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의 한 오피스텔을 직접 찾아가 최 교수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끝내 최 교수의 결심을 되돌리진 못했다.

최 교수는 안 의원 측에 합류한 이후 '진보적 자유주의' 등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는 한편 인재 영입의 상징으로 평가돼 왔다. 최 교수의 사임이 안 의원 측에 직접적 타격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최 교수는 이사장직을 사퇴한 이유에 대해 "원래 연구소에서 정책적, 이론적 역할을 할 생각이었는데 연구소 역할이나 기능이 정치적인 것까지 해야 하는 것으로 확대됐다"며 "정치권에 있는 연구소이기는 하지만 정치에 발을 딛고 활동하는 것은 내가 원래 생각했던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정치적 역할은 공직이나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며 "나는 공직이나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사퇴이유를 밝혔다.

안 의원은 최 교수의 사임 배경에 대해 "최 교수님이 학자적 양심을 가지고 정치적 이해타산 없이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도 주위에서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해석하다보니 많이 힘드셨던 것으로 들었다"고 설명했다.

안 의원은 또 일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 교수님이) 가시지는 않았다"며 "최 교수님과 계속 만나며 상의하고 배울 것"이라고 '결별설'을 부인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최 교수의 갑작스런 사퇴를 두고 안 의원과 최 교수의 불화설이 더 힘을 얻고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두 사람의 결별이유에 대해 "최 교수가 기초선거 정당공천 등과 관련,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것에 대해 안 의원 측 내부에서 반발이 많았던 것 같다"며 "이 때문에 최 교수가 '내 의견을 말하면서 눈치를 보며 못하게 하느냐'고 생각해 관둔 측면이 큰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실제로 안 의원은 최 교수가 이사장직을 맡은 직후 노동자 중심 정당을 언급하자 최 교수 개인의 생각이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또 최근 논란이 됐던 NLL 문제와 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해 최 교수는 안 의원이 보다 분명한 입장 표명을 하길 바랐지만 안 의원은 새누리당도 잘못했고 민주당도 잘못했다는 식의 양비론을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는 최 교수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인해 오는 10월 재보선과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당창당 등 독자세력화를 준비하고 있는 안 의원의 행보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최 교수 사퇴를 계기로 안 의원의 용인술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안 의원은 이미 지난 대선 기간 자신을 도왔던 멘토들과 연이어 결별한 경험이 있다. 안 의원은 함께 '청춘콘서트'를 열며 자신의 '정치적 멘토'로 불리던 김종인 전 의원,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전후해 결별했다.


윤여준도 가고 최장집도 가고…
머뭇거리는 안철수 '성격이 문제?'

이들은 그 뒤 안 의원의 정치 역량과 상황 판단력에 회의적인 발언을 거듭하며 사실상 '안티 안철수'로 변신한 바 있다. 특히 이들은 안 의원과 결별한 뒤 각각 안 의원의 반대진영인 박근혜캠프와 문재인캠프에 자리를 잡으면서 안 의원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물론 안 의원 측은 최 교수와의 갈등설을 적극 부인하고 있고, 최 교수의 사퇴가 안 의원의 정치세력화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최 교수는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원로학자이자 한국 정당정치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인물이다.

안 의원이 십고초려를 해서라도 최 교수를 영입하려 했던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최 교수의 사퇴가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안 의원 측의 주장은 어딘가 어색하다.

정치는 세력싸움이다. 언제나 다수결의 원칙이 절대적인 룰이다. 때문에 자신을 돕기로 했던 이들의 마음조차 제대로 잡아두지 못하는 정치인이라면 결코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없다. 안 의원이 안철수 신당의 성공을 넘어 차기 대권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는 결정적인 약점일 수밖에 없다.

안 의원의 용인술과 대조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용인술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김종인 전 의원과 안대희 전 대법관,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을 차례로 영입했다. 이들은 대선 기간 각각 박근혜캠프의 경제민주화, 정치쇄신, 국민대통합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들을 아우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김 전 의원의 경우 수차례 박 대통령과 갈라서겠다며 엄포를 놨고, 안 전 대법관과 한 전 고문을 잡아두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중요한 상징성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한명이라도 캠프를 이탈한다면 큰 타격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들을 아우르며 끝까지 대선을 완주하는데 성공했고 대권을 잡았다. 안 의원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특히 안 의원과 결별한 이들이 결별 후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은 '안 의원이 중요한 순간에 결단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지적이 사실이라면 안 의원은 매순간 국가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대통령이 되기에는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매우 민감한 이야기다.

당황한 안철수

최근 안철수 신당의 지지도가 조금씩 하락하고 있는데, 정치권에서는 안 의원의 머뭇거리는 행동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한때 안 의원의 멘토였던 윤 전 장관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들이 기다리는 기대가 길어지니까 실망하는 사람도 있고 염증이 생기는 사람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 의원의 신당 창당을 비롯한 정치세력화가 늦어지면서 염증을 느끼고 안 의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유력한 대권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안 의원이 주변에 인재가 모이지 않아 곤혹을 치르고 있는 것은 분명한 문제"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안 의원 본인의 용인술과 리더십에 문제는 없는지 점검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빨라진 안철수

최장집과 결별 후 적극모드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현안마다 즉각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매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4일 남북이 개성공단 재개 협상을 타결 짓자 안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오랜만에 단비 같은 소식"이라면서 공식 입장을 냈다. 

안 의원은 타결 소식이 전해진 지 불과 2시간이 조금 지난 시점에 공식 입장을 밝혔다. 국정원 국정조사와 관련해서는 "원세훈, 김용판 두 증인은 청문회에 나와서 국민의 물음에 성실하게 대답해야 한다"고 했고, 두 증인의 불출석에 "핑계치고 너무나 궁색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서울광장에서 어버이연합에 폭행을 당한 민주당 의원을 걱정하기도 했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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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