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군산 살인 미스터리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8.12 13: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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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었는데…때아닌 꽃뱀 공방

[일요시사=사회팀] 군산에서 실종된 이모씨가 결국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범인은 숨진 이씨와 내연 관계였던 정모씨로 밝혀졌다. 정씨는 경찰출신답게 수사에 혼선을 줬지만 끝내 붙잡혔다. 사건은 일단락 됐지만 몇 가지 불편한 부분이 남아 있다.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지난달 24일 오후, 평소 알고 지내는 정씨를 만나러 간다며 집을 나갔다가 실종된 이씨는 결국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관인 정씨가 이씨를 살해하고 유기한 것이다. 정씨는 지난 2일 신출귀몰 도피행각 끝에 논산에서 붙잡혔다. 정씨는 경찰에 “이씨가 임신했다며 돈을 요구했고, 액수가 적다며 부인에게 불륜 사실을 알리겠다고 해 우발적으로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다.

경찰과 이혼녀…
불륜이 빚은 참극

정씨는 해군에서 전역한 뒤 1999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정씨는 주로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근무했고 교통계와 생활질서계에서도 근무했다. 이번 범행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최근까지 경찰청장 표창 1개와 지방청장 2개, 시도지사 1개, 서장상 16개 등 모두 20개의 표창을 받았을 정도로 자신의 업무에 충실했다. 다만 사회생활에는 미숙한 면을 보였다. 그는 동료들과 거의 교류가 없었으며 낚시를 주로 즐기는 조용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14년 경찰 경력을 바탕으로 지능적이고 치밀하며 특히 수사에 혼선을 주려는 대담한 행동까지 벌이는 등 경찰을 당혹시켰다.

정씨는 지난달 25일 이씨 실종과 관련해 경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지만, 연관성을 거부하고 나아가 강압 수사라고 반발하며 버틴 끝에 6시간 만에 풀려났다. 이에 앞서 휴대전화의 통화기록과 메시지를 지우기도 했다.


경찰 조사 후 그는 경찰의 감시망을 피해 집 반대방향으로 승용차를 몰아 강원도 영월로 이동해 옷가지를 구입해 변장을 하기로 했다. 특히 경찰의 추적을 의식해 지난달 26일 영월에 승용차를 버리고 곧장 대중교통편으로 대전, 전주, 군산을 거쳐 고향 인근의 대야터미널로 오는 대담함을 보였다.

특히 이런 행적의 단서가 될 승용차 안 블랙박스 영상을 모두 지워 경찰을 당혹스럽게 했다. 정씨의 치밀함과 수사 시선을 돌리기 위한 고의 행동을 엿볼 대목도 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26일 대야터미널에서 택시로 회현면 시골마을까지 이동했다. 이후 약 3시간30분 동안 이씨의 옷을 숨기거나 시신유기 또는 증거인멸 등의 중요 행동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주민과 경찰 수사망을 피하려고 일부러 인적이 드물고 CCTV가 설치되지 않은 시골마을에서 내려 어두운 밤에 논길로 이동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정씨는 군산에서 오래 근무해 주변 지리와 주민 이동 특성에 밝은 점을 최대한 이용한 것이다.

여기에 다음 날 발견된 이씨의 옷가지는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당일 밤 일부러 주민 왕래가 잦은 농로 옆 밭에 놓았다는 게 경찰의 추정이다.

임신 여부 확인할 수 없어…시신 부패 심해
일방적인 피의자의 진술…팔은 안으로 굽나


정씨가 지난 2일 충남 논산시 취암동에서 검거될 당시 그는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었다. 이런 정황으로 봤을 때 정씨는 경찰 추적을 피하고자 동선 파악이 어려운 자전거를 이동수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씨를 검거한 충남 부여경찰서 이희경 경위는 지난 5일 SBS 라디오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해 “(정 경사)본인이 순순히 응하고 저항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검거 당시에 대해 “앞서서 걸어가고 있던 젊은 남자(정씨)가 배낭을 메고 양 옆으로 물병을 두 개를 끼고 있었고, 뒤에서 보니까 자전거 뒷바퀴에 흙도 묻어 있었다”며 “순간 젊은 남자가 혹시 군산 실종사건 용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걸어오는 모습이 군산 사건 용의자와 얼굴형도 비슷하고 연령대도 비슷하고, 검은 선글라스를 썼는데 턱선 쪽으로 들어간 부분도 비슷해서 지켜봤는데 그가 PC방 쪽으로 걸어갔다”며 “논산 시민이라면 샤워를 하고 PC방을 갈 텐데 바로 PC방을 가서 용의점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 경위는 “군산과 부여나 논산은 가까운 인적이기 때문에 언젠가 한 번 지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며 “평소 검문검색도 하고 있었고 스마트폰 메일에도 용의자 얼굴을 알 수 있도록 저장해놓고 근무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어느 정도 확신을 한 이 경위는 논산 지구대 경찰관 두 명과 함께 2층 PC방으로 올라갔다. 경찰관 2명이 다가가 신분을 확인하자 정씨는 처음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름을 대자 “본인이 맞다”며 고개를 숙여 현장에서 바로 체포됐다.

이씨가 실종된 직후 참고인으로 소환됐던 정씨는 “이씨와는 알고 지내는 친구 사이일 뿐 내연 관계는 아니다”라며 “최근 만난 적이 없고 성관계를 가진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두 사람의 불륜이 드러났다.

이씨 가족들은 “두 사람은 내연 관계였다”며 “최근 이씨가 정씨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았고, 지난달 24일 병원비 등을 받고 그동안의 관계를 마무리짓기 위해 정씨를 만나러 나간 뒤 소식이 끊겼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혼한 상태고, 정씨는 유부남이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내연 관계라면 보통 행적을 알리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본인이 누구를 만나는지 알리고 나간 것으로 봐서 관계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을 이씨가 감지하고 있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등에 따르면 실종된 이씨와 군산경찰서 소속이었던 정씨는 1년 전쯤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두 사람을 소개한 친구 역시 동료 경찰관이며 이씨와 내연 관계를 맺었다고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의 전 애인인 동료 경찰관이 정씨에게 자신의 애인을 ‘사귀어 보라’고 소개해 줬다”며 “정씨는 ‘임신한 아이가 동료 경찰관의 아이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던 상태였다”고 말했다.

동료가 이씨 소개
“내 애인 만나봐라”

정씨는 이씨와 7월 초 성관계를 한 차례 가졌으며, 이씨는 같은 달 17일 정씨에게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렸다. 이씨의 임신 소식을 들은 정씨는 이씨의 연락처를 스팸 처리하는 등 그의 연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했고, 이씨는 정씨에게 “전처럼 약속을 취소해서 일 못 보게 하지 말아라” “너와 나 사이를 다른 사람이 알면 좋겠냐” “만나 달라” “집에 찾아가겠다”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 이씨가 임신했다고 하자 정씨는 지난달 22일 적금 500만원을 찾았다. 정씨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24일 이씨를 만나 “300만원을 줄 테니 그만 만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이씨는 금액이 너무 적다며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정씨를 협박했다. 이씨가 부인에게 불륜 사실을 알리겠다며 정씨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가려 하는 등 몸싸움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이씨가 정씨의 얼굴을 할퀴었다. 정씨는 자신의 차 안에서 이씨의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시신을 군산시 회현면 월연리 폐양어장에 유기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이씨 시신에 대한 부검을 마쳤지만 임신 여부를 밝혀내지 못했다. 국과수는 시신 부패 상태가 심해 여러 차례 검사해야만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이 이씨의 휴대전화 기록을 분석한 결과 이씨가 실종되기 전 ‘7월11일에 생리를 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나타나 이씨가 임신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씨-유가족 간 입장 엇갈린 채 ‘미궁’
진실 아는 건 범인 정씨와 숨진 이씨뿐

하지만 너무 압축적으로 마무리된 탓에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살해된 실종 여성의 가족들은 “살해된 것도 억울한데 꽃뱀으로까지 몰리고 있다”고 절규하고 있다.

이처럼 이씨의 유족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씨의 여동생은 “정씨의 범행은 계획적인 것”이라며 “경찰 수사에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 많다”고 덧붙였다. 임신 여부에 대해서는 “언니로부터 정씨에게 빨간 줄이 그어진 임신 테스트기를 보여줬더니 정씨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숨진 이씨의 임신을 확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은 피해자는 돈을 목적으로 정씨를 만난 것이 아니며 임신 역시 사실이라는 입장이다. 또 우발적으로 그녀를 살해했다는 정씨 진술에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임신여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상태다.


이번 사건으로 전북지방경찰청은 군산경찰서장을 직위 해제한다고 밝혔다. 지난 3일 오후 전북지방경찰청은 브리핑을 갖고, “이 사건이 비록 경찰관 개인의 도덕성 결여에서 비롯된 범행이지만 경찰관 신분으로 중대 범죄를 저지른 점에 대해 국민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그 책임을 물어 군산경찰서장을 직위해제키로 했다”고 전했다.

향후 정확한 사인규명을 위해 부검, 도주 행적 등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우발적 살해?…
주도면밀한 범행

군산 실종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시끄럽다. 특히 꽃뱀 비하로 번진 임신 논란이 그렇다. 피의자 정씨의 진술을 종합해 보면 이번 사건의 발단은 불륜, 전개는 임신, 절정은 낙태와 합의금을 둘러싼 다툼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임신 여부가 확인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이씨가 임신을 하지 않았음에도 정씨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했고, 정씨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돈 문제로 다투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했다는 이야기가 성립됐다.

그러나 경찰관이 시민을 살해한 사건이라는 본질은 뒤로 간 채 살해당한 이씨를 ‘꽃뱀’으로 몰아가는 듯한 사건 구조에 유족들은 크게 반발했다. 실제로 몇몇 누리꾼들은 오히려 피의자인 정씨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정씨는 열흘 동안 경찰의 수사망을 피했고 체포 당시에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대다수의 언론은 ‘범행 전체 자백’으로 기사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정씨의 자백이 진짜인지는 보장할 수 없다. 정씨의 자백이 공개되면서 이씨는 돈밝히는 ‘꽃뱀’으로 몰리게 됐다.

경찰이 정씨를 그냥 풀어준 것도 문제다. 이씨의 동생은 지닌달 25일 오후 2시30분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신고당시 “정씨를 만나러 간 뒤 안들어 온다”고 전했다. 실종 용의자로 정씨를 지목한 것이다. 경찰은 실종신고 당일 오후 7시 정씨를 임의동행해 조사했다. 정씨의 얼굴에는 할퀸 상처가 나 있었다. 수사관이 상처에 대해 묻자 “낚시할 자리를 고르다 나뭇가지에 긁혀 생긴 상처”라고 답했다. 경찰은 낚시터 인근 CCTV에서 정씨 차량이 7시18분쯤 찍힌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정씨의 휴대폰과 손상된 차량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확보한 후 귀가조치했다. 신고가족들이 용의자를 지목했고, 얼굴에 상처가 있으며, 블랙박스가 훼손돼 증거인멸이 우려된 상황에서 정씨는 풀려났다. 경찰은 긴급체포를 할 수 있는 법리적 요건들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인데다 정씨 본인도 불법구금이라고 반발해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결과적으로 용의자를 놓아준 셈이 됐다.

‘꽃뱀’ 몰아가기
사건 본질 흐린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의 맹점은 경찰의 수사발표가 증거에 기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찰수사는 증거주의를 채택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유족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에 경찰은 경찰관인 살해용의자의 진술에 더 의존해서 발표를 서둘렀다. 진실은 죽은자와 죽인자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경찰은 유족들이 겪을 고통을 고민하지 않았다. 즉 경찰은 애초부터 ‘꽃뱀과 모범경찰관’이라는 프레임으로 이 사건에 접근한 것이다. 최소한 ‘팔이 안으로 굽는 게 아닐까’는 오해는 나오지 않았어야 한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피의자·피해자 자녀는?

씻을 수 없는 상처

어른들의 불륜과 살인사건은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자녀는 모두 두 명이다. 피의자 정씨의 자녀는 정씨 검거 전에 ‘아버지의 얼굴이 실린 수배 전단’을 보고 “엄마, 아빠가 무슨 잘못했어?”라고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이씨의 자녀들은 나이가 더 많아 직접적인 상처가 더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씨의 자녀들은 현재 전 남편과 함께 있다. 전 남편에 따르면 두 자녀는 아무 말도 없이 스마트폰으로 하루 종일 ‘엄마의 기사’와 ‘거친 댓글’을 읽고 있다.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살인자 아버지’를 둔 자녀와 ‘인터넷 상의 숨진 꽃뱀’을 어머니로 둔 아이들의 아픔은 누구도 씻어 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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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