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막후실세 7인회 재부상 막전막후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8.13 13: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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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뛰는 노땅들 "노병은 죽지 않았다! 다만 자중(?)할 뿐"

[일요시사=정치팀] 저도에서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일 깜짝 인사를 발표했다. 취임 5개월 만에 비서실장을 포함해 수석비서관 절반을 갈아 치운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역시 김기춘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그는 박근혜정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수차례 지목받아온 '7인회'의 핵심멤버다. 과연 7인회의 실체는 무엇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일 여름휴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하자마자 대통령비서실 인사를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예상 밖 깜짝 인사였다. 휴가를 갔던 한 수석비서관은 언론을 통해 인선 발표 소식을 듣고 그때서야 급거 청와대로 복귀했을 정도였다. 청와대 고위직들에게 조차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던 인사였던 것이다.

7인회 재조명
밀봉인사 어디까지?

박 대통령은 이날 신임 비서실장에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정무수석비서관에 박준우 전 주벨기에·유럽연합(EU) 대사, 민정수석에 홍경식 전 서울고검장, 미래전략수석에 윤창번 전 하나로텔레콤 회장, 고용복지수석에 최원영 전 보건복지부 차관을 임명했다. 불과 취임 5개월여 만에 이뤄진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였다.

이 중 가장 주목받는 인사는 단연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인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이다. 김 신임 비서실장은 지난 대선기간 논란이 되었던 '7인회'의 핵심멤버다. 김 실장은 이번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인사에서 야당이 가장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인물이다. 김 실장은 1972년 유신헌법 초안작성에 가담했으며 지난 1992년 발생한 '초원복집 사건'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유명한 유행어를 낳은 초원복집 사건은 제14대 대통령선거를 일주일 앞둔 1992년 12월11일,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김영환 부산시장,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부산지부장, 김대균 부산기무부대장, 우명수 부산직할시 교육감,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장 등이 부산 초원복집 식당에 모여 김영삼 민자당 대선후보의 승리를 위해 불법선거운동을 모의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선거승리를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공무원을 동원하여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점에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과 비슷하다.

김기춘 비서실장 발탁으로 7인회 급부상
7인회 중 벌써 3명 정치전면 나서 주목

새누리당의 김용태 의원조차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유신검사이자 초원복집 파문의 주역인 김 전 법무장관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한 것을 두고 "야당이 펄펄 뛰는 심정이 이해가 간다"고 말을 했을 정도다.

이 같은 논란을 충분히 예상하고도 박 대통령은 김 실장의 임명을 강행했다. 때문에 대선이 끝난 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7인회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7인회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2012년 5월이다. 당시 민주통합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경남도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대회 모두발언에서 7인회를 언급했다.

박 위원장은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에게 7인회가 있다고 하는데 그 면면을 보면 수구꼴통이어서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당의 몇몇 원로 되시는 분들이 자발적 친목모임을 갖고 가끔 점심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분들이 초청을 해 한두 번 오찬에 가 뵌 적은 있지만 7인회라는 말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7인회의 존재를 적극 부인했다.

7인회는 새누리당 김용환(81) 상임고문을 좌장으로 하는 7명의 원로모임이다. 김용환, 최병렬(75) 새누리당 상임고문과 조선일보 부사장을 지낸 안병훈(75) 기파랑 대표, 김용갑(77), 현경대(74) 전 의원, 강창희(67) 국회의장, 김기춘(75) 비서실장 등이 그 멤버다.

대통령 불러놓고
단순 친목모임?


7인회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미 이명박정부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원로모임 그룹인 6인회가 많은 말썽을 일으켰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전 대통령의 6인회 멤버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상득 전 의원, 이재오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김덕룡 전 의원으로 이명박정권의 개국공신들이다. 하지만 이들 6인회 중 절반이 권력형 비리에 연루되면서 이 전 대통령은 수모를 겪어야 했다.

7인회 구성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7인회 좌장격인 김용환 상임고문은 박정희정권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김용갑 전 의원은 육사 17기 출신으로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 시절 안기부 총무국장 기조실장을, 5ㆍ6공에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총무처 장관 등을 지냈다.

최병렬 상임고문은 유신 시절 조선일보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거쳐 5공 출범 직후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최 고문은 2004년 한나라당 대표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해 '탄핵 5적'으로 불린다.

안병훈 기파랑 대표는 유신시절 조선일보 청와대 출입기자로 활동하며 박 대통령과 알고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현경대 전 의원은 박 대통령의 외곽조직인 '한강포럼'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 5월엔 민주평통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됐다. 민주평통은 대통령 자문 헌법기관으로 대통령이 의장이고 부의장은 대통령이 지명한다.

7인회의 막내격인 강창희 국회의장은 육사 25기 하나회 출신 5공화국 인사다. 강 의장은 1980년 육군중령으로 예편한 이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해 1983년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신임 김 실장은 박 대통령은 물론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누구보다 깊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가 주는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마쳤으며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들의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맡은 바 있다.

1972년 당시 검사 시절에는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했고 박정희정권 말기에는 청와대 비서관을 역임했다. 무엇보다 7인회 멤버들의 공통점은 박 전 대통령 시절뿐만 아니라 1979년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에도 살아있는 권력들의 눈치를 살펴가면서까지 박 대통령을 꾸준히 보살펴온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지난 2007년 대선경선과 지난해 대선에서도 각자 큰 역할을 해냈다. 때문에 7인회 멤버들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임은 누구보다 각별할 수밖에 없다.

물론 박 대통령을 비롯해 7인회의 멤버로 지목된 당사자들은 현재까지도 7인회의 존재를 적극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최대 거물 정치인 중 한 사람인 박 대통령을 불러다가 식사를 함께 할 정도인 모임을 단순한 친목 모임으로 볼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실제로 7인회가 박근혜정부 첫 인사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은 정치권의 정설이다.

7인회 전성시대
막강한 영향력

우선 정홍원 국무총리를 박 대통령에 추천한 사람은 김 실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 실장과 정 총리 두 사람은 경남중 동문이다. 1987년 김 실장이 법무연수원장으로 있을 때 정 총리는 법무연수원 기획과장으로 손발을 맞췄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도 김 실장의 도움이 컸다는 것이 정치권의 평가다.

강창희 국회의장과 육사 동기(25기)인 남재준 전 육군 참모총장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가정보원장에 임명됐다. 앞서 남 원장은 2007년 박근혜 캠프에서 국방·외교·안보 정책자문위원, 지난 대선 때는 국방·안보특보를 맡은 바 있긴 하지만 국정원장에 임명될 수 있었던 것은 강 의장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

박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안병훈 기파랑 대표는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서울고 선후배 사이다.


각종 비리 연루 MB 6인회 전철 밟을까?
7인회-친박계 간 권력암투 조짐 엿보여

7인회의 좌장으로 불리는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은 지난 대선에서 동교동계인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가 박근혜 캠프에 합류하도록 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 전 대표는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이처럼 7인회가 박근혜정부의 실세로 부각되면서 정치권의 우려는 날로 커지고 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박 대통령이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도 밀봉인사를 했던 것은 이른바 인사 줄대기를 막아보자는 의도였는데 명실상부 7인회가 박근혜정부의 실세로 떠오르면서 인사 줄대기가 다시 극성을 부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김용갑 전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실장은) 인품이 훌륭하니까 발탁됐다. 7인회는 없고, (이번 인사와) 아무 관계도 없다"며 "우리는 정치하는 사람도 아니고, 벌써 물러난 사람이다. 그런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이 보이니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나머지 멤버
향후 활동은?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나머지 7인회 멤버들도 곧 정치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7인회 멤버들이 고령이라는 점을 들어 박근혜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막후실세로만 활동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이후 7인회 멤버 중 벌써 세 명이 정치전면에 나서자 나머지 멤버들도 향후 어떤 식으로든 정치활동에 참여하지 않겠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청와대 참모진 개편인사를 두고 당청 간의 소통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향후 7인회와 친박계 간의 권력암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정치권에서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이번 청와대 참모진 인사과정에서 친박계가 추천한 인사들은 모두 배제되고 7인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친박계가 7인회를 본격적으로 견제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에서 떠도는 소문의 골자다.

실제로 이번 청와대 참모진 인사를 두고 새누리당은 공식적으로는 안정과 경험을 중시한 인선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당내 일각에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친박계 내부에서 들려오는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가 사실상 이번 청와대 참모진 인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7인회에 대한 견제구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 정치전문가는 "박 대통령이 원로들에게 국정에 관한 조언을 받는 것은 도움이 되겠지만 지나치게 강경한 보수이미지를 가진 원로들을 국정 전면에 내세울 경우 새 정부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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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