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국정원·NLL 정국 돌파카드 대예측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3.08.07 10:3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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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름다운 무승부?

[일요시사=정치팀] 여야가 꽉 막힌 국정원·NLL 정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벌써 몇 개월째 국정원·NLL 진흙탕 싸움이 계속되면서 국민들의 피로도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여야의 지지도는 동반하락하고 있고 반면, 무당층의 비율은 크게 늘었다. 더 이상 정쟁을 지속한다면 여야 모두 공멸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야의 국정원·NLL 정국 돌파카드는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국정원·NLL 정국이 벌써 몇 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국정원 국정조사가 시작되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자료 일체 공개에 여야가 합의하면서 일시적으로 여야 지지층이 결집하는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이후 알맹이 없는 정치 공방만 지속되면서 양당의 지지도는 연일 하락세다.

반면 무당층의 비율은 급격히 늘어났다. 특히 실체도 없는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은 어느새 새누리당의 턱 밑까지 쫓아왔고 민주당의 지지율은 안철수 신당 지지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10월 재보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여야 모두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최근 국정원·NLL 정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돌파카드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복잡하다.

여야는 지난 1일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사건 국정조사 파행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강 대 강으로 대치하면서 오히려 정국은 더욱 꼬였다. 민주당은 이날 "원세훈, 김용판 두 사람에 대한 증인출석 확약이 없다면 빈껍데기 국정조사에 불과하다"며 국정원 국정조사특위를 사실상 포기하고 서울광장에서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새누리당은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민주당을 성토했다. 새누리당은 "두 사람은 민간인이다. 나올 수 있게끔 설득을 하고, 나오게 되면 국조를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출석을 강요할 수는 없다"며 "이를 빌미로 국회를 박차고 나간 것은 민주당 스스로 국정조사를 망치자는 격"이라며 응수했다.


강 대 강 대치
여야 모두 위기

현재 국정원·NLL 정국의 돌파카드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는 쪽은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은 국정원·NLL 정국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이미 얻을 것은 다 얻었다는 입장이다. 국정원·NLL 정국 초반만 하더라도 대화록 발췌본 열람과 국정원의 독단적인 대화록 전문 공개, 국정원 국정조사 수용, 국회 차원의 대화록 원본 공개 결정 등으로 양당의 주도권 싸움은 치열했다.

그러나 대화록 실종 사태와 이어진 민주당의 귀태 발언, 그리고 민주당 내부의 계파싸움이 치열해지면서 새누리당은 국정원·NLL 정국에서 민주당에 사실상 완승을 거뒀다는 평가다. 하지만 국민들의 피로도를 감안하면 새누리당은 더 이상 국정원·NLL 이슈를 끌고 가기보다는 국정원·NLL 정국에서 벗어날 적극적인 돌파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정쟁은 무의미" 공감대
여야 '논란 종식 공동선언' 관측도

특히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추석은 새누리당을 압박하고 있다. 추석이 지나고 나면 10월 재보선이 코앞이다. 이대로 가다간 10월 재보선에서 안철수 신당 좋은 일만 시키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당 안팎에서 팽배하다. 한 여론조사기관에서는 명절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국민들의 일방적인 정보가 한자리에 모인 일가친척들 사이에서 상호작용을 일으켜 여론의 큰 흐름을 조성해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추석 전에는 반드시 국정원·NLL 이슈에서 벗어날 돌파카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정부여당이다. 추석을 앞두고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하다. 따라서 새누리당이 선택한 첫 번째 국정원·NLL 정국 돌파카드는 바로 '민생'이다. 새누리당은 잇단 민생탐방과 함께 청와대·정부와 연계한 회의를 열며 정책행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번 민생탐방에서 얻은 결과를 9월 정기국회에서 입법화한다는 계획이다.

어부리지
신난 안철수


최경환 원내대표는 지난달 23일과 26일 각각 NHN과 광명전기를 찾아 대형포털 독과점 규제 및 중소기업 경제민주화 법안을 중간점검 했다. 아울러 새누리당은 최근 각 분야별 정책을 쏟아내며 민생을 더욱 부르짖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새누리당이 국정원·NLL 정국을 물타기 하기 위해 설익은 정책들을 앞다퉈 내놓는 바람에 국민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일례로 새누리당이 최근 발표한 고교 무상교육 정책은 대선공약의 재탕이고, 안정적 재원마련대책이 미흡하다는 주장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새누리당의 안대로 고교 무상교육이 시행되면 고교 무상교육 재원 3조4000억원 가운데 지방이 50%를 부담하게 돼 지방재정이 파탄에 이를 것"이라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민주당은 국정원·NLL 정국에서의 퇴로가 보이지 않아 더욱 고심하고 있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국정원·NLL 정국에서 민주당이 새누리당에게 10:0으로 완벽하게 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바닥을 맴돌고 있는 지지율을 반등시킬 카드도 찾지 못한 채 무작정 국정원·NLL 정국을 빠져나간다며 그나마 민주당을 떠받치던 강성 지지층조차 등을 돌릴 우려가 있다.

민주당 우상호 의원도 "우리당이 무기력하게 새누리당에 끌려가는 건 아니냐는 불만이 많았다"며 "이렇게 무시당하면서 국조도 지지부진한데 순둥이처럼 대응하냐는 울분이 지지자들 사이에 넘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목표는 국정원 개혁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국정원 개혁이야 이미 국정원에서 연말까지 자체 개혁안을 내놓기로 했고 박 대통령도 이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명분이 부족하다. 또 박 대통령과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황상 추측에 불과하다. 이를 명분으로 대선불복론까지 거론되는 현 상황은 민주당에게는 분명히 불리한 상황이다. 언제든지 역풍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 강경파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을지언정 현재 민주당의 낮은 지지율이 말해주듯 일반 대중들에게서는 더욱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최근 장외투쟁까지 불사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해 "현재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지켜보면 정말 싸우겠다는 의지보다는 누군가 말려주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국정원 규탄 촛불시위의 규모는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다. 그렇다고 앞으로 크게 늘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 장외투쟁으로는 아무것도 얻어 낼 수 없다. 이는 민주당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장외투쟁은 사실 새누리당이 민주당에게 퇴로를 열어줄 명분을 가지게 하기 위한 행보라는 주장이다.

퇴로 찾기 고심
새누리도 동의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여전히 강경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새누리당 지도부에서도 이쯤에서 무승부 형태로 민주당에 퇴로를 열어주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24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정몽준 의원은 "이제 경제와 민생을 챙기는 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고, 정병국 의원은 "더 이상의 공방이 무슨 국가적 실익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지난달 27일 민주당 김한길 대표에게 제안한 여야 대표회담은 사실상 양당의 국정원·NLL 정국 돌파카드 모색을 위한 만남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와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가 지난달 26일 각각 'NLL에 관련된 일체의 정쟁 중단'과 'NLL 논란 영구종식 선언'을 제안한 것처럼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도 양당이 어느 선에서 합의를 보는 형식으로 국정원 개혁방안에 초점을 맞춘다면 얼마든지 타협점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타협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새누리당이 큰 틀에서 민주당에게 당근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예를 들어 박 대통령이 사과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 정부여당의 대선후보로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 일정부분 도의적으로 책임을 통감한다는 유감성명을 발표하는 방안도 고려된다.


흐지부지 마무리 후 민생행보 주력?
박근혜 유감성명 발표 가능성도 주목

양당이 국정원·NLL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새 이슈 띄우기에 주력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국정원·NLL 정국은 이미 어느 한쪽의 완벽한 승리는 기대 할 수 없는 싸움이다. NLL 대화록 논란은 국정원이 공개한 전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라는 직접적 언급이 발견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여야의 무의미한 해석 싸움으로 접어들었고, 대화록이 실종 된 것으로 밝혀진 이상 논란을 명확하게 종식 시킬 방법도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역시 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이 직접 연루되어 있다는 증거를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 하다. 때문에 국정원·NLL 정국을 돌파하는 가장 효과적인 카드는 '시간'이라는 분석이다. 우선 국정원·NLL 정국을 잊게 할 새로운 이슈를 띄우고 국정원·NLL 사건이 묻힐 만큼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사건이 흐지부지 잊혀질 것이라는 계산이다.

정치권에서는 최근 국내 사정기관들이 친MB기업들을 무자비하게 터는 것을 두고 국정원·NLL 사건을 묻히게 할 새로운 이슈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이와 비슷한 주장으로 양당이 일종의 희생양을 내세워 꼬리 자르기 전략을 펼칠 것이라고 내다보는 사람들도 있다.

희생양은 누구?
꼬인 정국 실타래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벌써 두 달 가까이 정치공방을 펼치고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건을 덮으면 양당 모두 비난여론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며 "때문에 이번 사건과 관련해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고 양당 모두 현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양당 모두 적절한 돌파전략을 고심하고 있는 만큼 여야가 어떤 식으로든 국정원·NLL 정국을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마무리 지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일각에선 여야가 국정원·NLL을 함께 묶어 논란종식 공동선언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과연 여야는 국정원·NLL 정국에서 꼬일 대로 꼬여버린 복잡한 실타래를 풀고 아름다운 무승부를 이뤄낼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된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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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