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민화작가 엄미금

"민족색으로 전통 그립니다"

[일요시사=사회팀] 책장 벽면에는 형형색색의 그림이 가득했다. 엄미금 작가는 민화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회화의 '오브제(Objet)'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엄 작가는 "민화와 근대미술을 접목한 화풍은 찾기 힘들 것"이라며 작업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엄미금 민화작가는 장르의 변형으로 자신만의 고유 영역을 구축한 예술가다. 누구나 말은 쉽게 하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민화의 세계화'도 그의 작품 안에선 현실이 된다.

서울 신영동 한 작업실에서 만난 엄 작가는 빼곡한 스케치를 뒤로 한 채 "이렇게 혼자서 잘 놀고 있다'며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그림을 그릴 수 있어 행복하다"는 엄 작가는 몇몇 사람들이 그림을 사러왔던 일화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민화도 이제 한류

"어떻게 알았는지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가 방한했을 때 제 그림을 두 점이나 가져갔어요. 외국의 한 영부인도 왔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한옥에도 제 그림이 들어갔어요. 얼마 전에는 한 대기업 사장도 제 그림을 사러 왔었죠. 하지만 일부러 가격을 좀 크게 불렀어요. 나 개인이 아니라 '우리 민화가 이 정도는 받아야 된다'라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그 가격에 안 샀는데 아쉬움은 없어요. 처음부터 돈이 목적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 '자랑타임'하고 있는 거 맞죠?(웃음)"

엄 작가는 지난 2010년 <네가 세상에 처음 왔을 때>란 책을 준비하면서 수십 권의 책을 탐독했다. 철저한 고증을 위해서였다. 책 안의 아주 사소한 선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엄 작가는 고민을 거듭했다. 그 흔적은 책 곳곳에 묻어 있다. 비록 아동들이 읽는 도서지만 완벽함을 고집하는 그의 태도에서 엄 작가의 작업 스타일을 엿볼 수 있었다.


"보통 우리 아이들이 읽는 책은 외국 도서를 번역한 책들이 많아요. 머리도 노란색이고. 서양인의 시각이 담겨 있죠. 그런데 정작 우리 책은 없잖아요. 그래서 누군가 우리 전통을 제대로 고증해서 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사실 '완벽해야지'란 생각보다는 '의도를 잘 살려야지'라는 마음으로 붓을 드는 편이에요. 최근 들어 민화 전시가 활발해졌고, 배우는 사람도 늘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해외에서의 반응도 좋고요. 민화작가로서 우리 것을 알리는 일에 충실할 생각입니다."

엄 작가는 '어떤 그림이든 우리 전통과 따로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민화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회화 작업을 계승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민화에 화투를 접목시켰어요. 민화는 서민적인 그림이기 때문에 서민이 좋아하는(?) 화투를 그림 안에 끌어들였죠. 그랬더니 젊은 친구들의 호응이 제일 좋더라고요. 어떤 분은 '화투하면 조영남이었는데 이젠 엄미금도 있냐'면서 좋은 반응을 보였고…. 그래서 다음에 시도한 게 서양 문학과 우리 미술의 만남. 어린왕자를 모티브로 삼은 거죠. 이것도 반응이 좋았고…. 처음에는 어린왕자를 있는 그대로 그렸는데 요즘은 피부색을 달리해서 그려요. 꼭 어린왕자가 서양인일 필요는 없잖아요. 그림 안에서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는 거죠."

현대 감각 입힌 민화의 '세계화' 앞장
"해외서 반응 굿…K팝처럼 무한 가능성"

엄 작가는 '어린왕자'라는 소재를 통해 국내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민화에 서양심벌을 차용한 아이디어도 재밌지만 그림 안에 자연스레 녹아 있는 '왕자'들을 보면 절로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민화는 굉장히 세밀한 그림이라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요. 유화처럼 덧칠도 불가능하고, 색에 민감하기 때문에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몇 백년 전부터 내려온 '고정된 틀'이 있는 그림이기 때문에 창의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해요. 더구나 우리가 옛것을 소중히 여기는 그런 문화는 아니잖아요? 이런 면에서 민화가 평가 절하된 부분이 있죠. 하지만 우리 노래처럼 민화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 작가는 인터뷰 내내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날로 퇴색되는 전통적인 방식의 작업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엄 작가에 따르면 현재 민화작가들이 색을 낼 때 사용하는 '분채'가 한국에선 맥이 끊긴 상태다. 엄 작가는 분채 대신 천연물감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 또한 한국 제품은 자취를 감춘 상황. 한국 물감이 사라진 자리는 일본 수입품이 대신하고 있다.

"맥이 끊겼다는 건 이제 우리 색이 없다는 거예요. '왜색'을 써야 한다는 거고…. 저는 왜색을 줄이려고 혼합해서 쓰고 있는데요. 아주 미세한 부분이지만 이런 색의 차이는 시간이 지나면 확연히 '그림의 질'에서 차이가 나요. 어떤 종이를 쓰냐에 따라 그림의 깊이가 달라지고요. 전 화가가 그린 그림이 오래 갔으면 좋겠어요. 물감과 붓, 종이와 같은 일종의 인프라에도 좀 더 투자가 있었으면 좋겠고요."

역사 계승자 자부

엄 작가는 민화의 역사를 채색화의 역사. 즉 삼국시대 이전으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유구한 역사로 이해하고 있다. 역사의 계승자란 점에서 엄 작가는 "항상 자부심을 느끼며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엄 작가는 전통을 그리지만 절대로 "전통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엄 작가의 시공을 넘나드는 작품 활동이 앞으로도 기대된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엄미금 작가는?]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석사
▲국민대 사회교육원 민화 강사
▲재단법인 한국민화협회 회장
▲03년 쿤스트튜크 갤러리 특별기획 초대전(함부르크)
▲04년 에꼴 드 가나전(인사아트센터)
▲08년 중국민화국립박물관 초대전(무강) 등 그룹전
▲11년 현대민화 서울옥션 부산점 등 개인전 7회
▲ 저서 <네가 세상에 처음 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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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