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분석> 구멍난 헌금봉투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7.29 11:5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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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사람 눈치보고 헌금 낸다

[일요시사=사회1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헌금을 낸다. 매주 내는 주정헌금, 수입의 10%를 내는 십일조, 감사헌금 등 다양한 종류로 ‘정성’을 표한다. 헌금의 액수는 자유지만, 요즘 헌금봉투는 뭔가 불편하다.



과거 일부 대형교회가 헌금 봉투에 구멍을 뚫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교회 관계자들은 구멍논란을 두고 헌금 개수 작업을 용이하게 하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멍을 뚫었다고 했다. 교인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헌금봉투 타공 때문에 안에 넣은 돈의 색, 즉 액수를 한 눈에 구별할 수 있어 타인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

당시 헌금봉투 타공 논란은 뜨거웠지만 ‘반짝’하고 그쳤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지금, 구멍은 여전했다. 이제는 대형교회뿐만이 아니라 동네교회 헌금봉투에도 구멍이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교회 내부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 논란을 기피하지만 일부 교인들은 헌금봉투 구멍에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인천 A교회의 교인 박모씨는 “처음에는 구멍이 뚫려있어 당황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다. 반면 교인 최모씨는 “주일(일요일)에 헌금할 때마다 머뭇거리며 주위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헌금함 옆에 비치된 30여종의 헌금봉투들이 모두 가운데에 직경 5mm나 되는 구멍이 뚫려있어 안에 넣은 돈의 액수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며 “돈이 없어 1000원짜리만 헌금하려 해도, 구멍이 뚫려있어 혹시나 남들이 볼까봐 억지로 1만원짜리를 넣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교인들이 직접 구멍을 뚫었던 과거와 달리 이미 타공 된 헌금봉투가 따로 제작된다는 사실이다. 많은 교인들이 자주 애용하는 한 기독교 백화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미 오래전부터 구멍을 뚫어 판매했다.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법. 보통 헌금봉투는 교회 측에서 기독교백화점을 통해 묶음으로 구매한다. 헌금봉투 구매시 타공 여부를 유심히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울 H교회 초등부의 한 교사는 “구입할 때 구멍 여부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구멍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무감각한 걸까 아니면 무관심한 걸까. 어제 오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헌금봉투 타공 문제는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


대형교회서 시행하다 소형교회까지 번져
많이 내도록 유도책…교인들 액수에 부담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교인수가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른다. 한 해 재정운용액이 100억원이 넘는 교회도 있다. 이 재정운용액은 교인들의 헌금과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교인들의 헌금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일부 대형교회가 헌금봉투에 구멍을 내면서 몇몇 교인들은 교회가 상업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며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의도야 어찌됐든 속이 훤히 보이는 헌금봉투에 신자들이 부담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문제는 작금의 현상이 대형교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는 구멍 뚫린 헌금봉투가 소형교회까지 자연스럽게 퍼져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러한 행위가 교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구멍난 헌금봉투가 더 많은 헌금을 내도록 암묵적인 강요를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멍 뚫은 헌금 봉투를 비치하면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은 교회들이나, 돈을 내는 데 있어 주변의 의식을 두려워하고 헌금 액수에 부담을 느끼는 그 교인들이나 헌금에 대한 성경적 진리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래전 예루살렘 성전 안에는 헌금함이 13개나 있었다고 한다. 헌금함과 헌금에 쓰이는 동전은 모두 쇠로 만들어졌고, 동전은 단위에 따라 굵기와 크기가 달랐다.

부자가 단위가 높은 동전 뭉텅이를 헌금함에 넣을 때 울려 퍼지는 묵직하고 요란한 소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깨를 움츠리게 하고 부자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과부의 전 재산인 두 렙돈은 한 끼 식량을 겨우 살 수 있는 액수였다. 그걸 헌금함에 넣을 때 청정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는 과부의 얼굴을 벌겋게 만들었을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 눈에 과부는 돌보고 챙겨 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착취대상에 불과했다. 성경의 마가복음 본문을 보면 예수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서기관을 비난한다.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겼다. 지금은 그런 종교 지도자들을 비난한 예수님의 말씀을 피 빨린 가난한 사람을 칭찬한 말씀으로 둔갑시킨다. 그러니 구멍 뚫린 헌금 봉투를 보면서 쇠로 만든 헌금함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오늘날 한국의 많은 대형교회들처럼 수많은 종류의 헌금 봉투들을 비치하고 직분에 맞게 액수를 정해주며 암묵적으로 헌금 경쟁을 부추기는 행위들은 모두 비성경적인 작태다. 헌금을 낼 때 적은 돈으로 인해 주변을 의식하며 두려워하는 교인들도 결국 이 같은 진리에 무지하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진정한 교인이라면 헌금 액수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 한국의 문화도 이러한 괴현상에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구멍 뚫린 헌금봉투’가 진정 더 많은 헌금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는 대형교회의 세속화, 기업화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봉투논란을 차치하고도 대형교회들은 지나치게 물량·성장주의에 빠져 있으며 정치·경제권력 뺨치도록 세속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과도한 외형적 성장의 추구가 이런 논란을 탄생시킨 것이다.

헌금봉투 타공에 대한 교회 측의 입장은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서 흔히 그렇듯 봉투에 돈이 남아 있는 경우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또 신자들 개개인의 신심과 재산, 또는 가치관에 따라 그에 대한 견해도 다를 것이다.

궁색한 변명만

하지만 사안을 표피적으로 봉투 구멍여부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문제는 일부 교회의 처신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교회가 거두는 헌금 가운데 사회구제비는 미미하다. 반면 외형적 성장에는 많은 투자를 한다. 또 일부 교인에 국한된 것인지 모르지만 헌금 지폐의 종류가 노출되는 데 부담을 갖게 만드는 ‘교회문화’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어야 할 시대, 한국은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며 희망보다는 도리어 씁쓸한 미소와 불안감이 느껴진다.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되길 희망할 뿐이다.


이광호 기자<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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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