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사설 극기체험 실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7.29 11: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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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문화 상업화가 비극 불렀다

[일요시사=사회1팀] '해병대'는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무적해병’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해병대 정신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증가해 자연스레 사설 해병대캠프가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하지만 이번 사망사고로 인해 ‘사설 극기캠프’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 18일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이 충남 태안 안면도 백사장 해수욕장에 위치한 사설 해병대 캠프 참여 도중 실종됐다. 해경은 이날 오전 5시20분부터 수색 작업을 재개해 오전 6시5분 이준형(18), 진우석(18), 김동환(18), 장태인(18)군의 시신을 인양했다. 오후 7시15분 사고 해역에서 1㎞가량 떨어진 곰섬 인근에서 이병학(18)군의 시신을 마지막으로 발견해 이로써 사설 해병대 캠프 실종자는 하루 만에 5명 전원 숨진 채 발견됐다.

우후죽순 병영체험
예견된 인재사고

지난 18일 공주사대부고 학생 197명은 90여 명씩 두개조로 나눠 고무보트 훈련을 받았다. 오후 5시, 고무보트 8대에 10명씩 탑승하여 바다로 나갔던 첫 번째 조가 모래사장으로 돌아왔다. 잠시후, 학생들은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은 상태로 다시 바다에 들어갔다. 교관의 지시에 따라 10명씩 줄을 맞춰 바다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바다를 방향으로 앞줄에서 뒷걸음 치던 23명이 물이 올라온 바닷물살을 헤치며 10m쯤 뒤로 걷다 갑자기 갯벌의 깊은 웅덩이 ‘갯골’에 빠졌다. 학생들이 물에 빠져 도움을 요청할 때 인명구조 등 전문자격증이 없는 교관들은 당황한 채 호루라기만 불뿐 구하는 행동은 하지않았다. 교관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일부 학생들이 나서서 친구들을 구했지만 결국 18명만 스스로 빠져나오거나 구조되고 5명은 찾질 못했다.

학교 측은 실종된 학생들의 가족들에게 학생들이 ‘무단이탈’하여 생겨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실종된 지점에서 약 1km 미터 떨어진 갯골 부근에 실종된 5명이 사망한채 발견됐다. 한편 경찰 측은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관계자 이모(30)씨 등 3명을 입건해 조사를 벌여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또한 학생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교사 김모(49)씨를 20일 불구속 입건했다. 눈물의 합동영결식으로 일단락된 이번 사고는 예견된 인재사고였다.


해병대캠프 사망사고로 사설캠프 도마
전국에 우후죽순 “이대로는 안 된다”

병영체험을 진행하고 있는 학교 수가 점점 증가하며 동시에 해병대캠프도 늘어났다. 2006년 약 20여 개에 불과했던 해병대캠프는 2013년 7월 현재 6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정통 ‘해병대캠프’는 해병대 포항 1사단 한 곳뿐이다. 아르바이트생이 있는 사설캠프와 비교하기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번 사고가 ‘인재’였다는 것이 속속히 밝혀지면서 많은 대중들은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는 동시에 안전불감증으로 발생한 이번 사고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사설 해병대캠프는 안전점검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적용하는 처벌 규정이 없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실정이 이번 사고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또한 사고 과정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던 일부 교관은 해병 출신이 아닌 아르바이트생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은 더했다.

태안경찰서는 지난 19일 “교관 총 32명 중 인명구조사 자격증 소시자가 5명, 1급 수상레저자격면허 소지자 5명, 2급 수상레저 자격면허 소지자가 3명이었다”며 “그런데 일부 교관은 정규직이 아닌 아르바이트였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와 관련해 해병대사령부 측은 “사고를 당한 고교생과 가족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며 “해병대 용어에 대한 상표등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오히려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무늬만 해병캠프
근본적인 대책은?

이세중 전교조 충남지부장은 “해병대캠프를 포함한 병영 체험 프로그램은 MB정부 들어 안보를 강화하는 각 종 행사가 추진되며 동시에 우후죽순 생겨났다”며 “교육청이 이런 프로그램을 추진하면 학교별로 평가 항목으로 들어간다. 학교장들도 학교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진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즉 해당 정부의 교육정책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지부장은 “일례로 충남교육청의 경우 2010년 각 학교에 ‘바른 품성 5운동의 일환으로 안보의식 제고를 위한 교육사업’으로 ‘나라사랑 교육특강’을 진행하라고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군부대와 해병대캠프 등이 교육청과 MOU를 체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바뀌면서 안보를 강조하는 사회 흐름 속에 교육도 안보의식 제고 교육이 강조된다”며 “각종 병영 체험 프로그램이 증가하는 것 마찬가지이다”고 주장했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병영체험은 학생들의 정신교육을 강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남자들은 알다시피, 군대 문화는 힘에 의해 남을 누르는 폭력적인 문화이다”며 “이런 프로그램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하 대변인은 “해병대캠프 조교들의 강압적인 방식에 복종해야 하는 각종 병영체험 프로그램은 교육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정말로 ‘사설’ 해병대캠프와 ‘무면허’교관들의 문제인가? 사설 아닌 캠프, 자격증 갖춘 교관이면 문제가 안 된다는 뜻인가? 대체 아이들이 왜 그딴 폭력적인 병영체험을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군대식 극기훈련이 아닌, 자신과 남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인격의 훈련이다. 이 훈련은 해병대캠프를 통해선 결코 할 수 없는 일상의 훈련이다. 부모의 슬픔에 공감하고 애통한다” 등의 의견을 냈다.

또한 “해병대캠프 광풍은 좀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되지 않았냐” “아이들 극기훈련이니 해병대캠프니 보내지 맙시다” “극기훈련 캠프는 뭔가 구시대적이고 병영국가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 “통제시키려는 전근대적인 교육” 등의 반응을 보였다.

자격증·면허도 없는 교관들
“이래라 저래라…누굴 교육?”

한편 최근의 사태와 관련 한 교육 관계자는 “교육 당국은 체험이나·수련 활동에 대한 일회성 처방만 내 놓을 것이 아니라 이번 사고를 거울 삼아 좀 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사설 해병대캠프뿐만이 아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극기 프로그램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 대표적으로 박카스 국토대장정을 꼽을 수 있다. 2008년 무더위 속에 한 여대생이 국토대장정 행진 중 열사병으로 쓰러져 숨졌다. 당시 누리꾼들은 “주최측이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도 무리하게 행사를 진행한 탓이 아니냐”며 주최측을 비난했다.

경찰에 따르면 동아제약이 주최한 박카스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서모(22)씨는 경북 경주시 산내면 신원리 도로에서 행진을 하다 쓰러져 경주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두 시간 만에 숨졌다.



당시 경주지? 낮 최고기온은 36.4도로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서씨 유족 측은 “날씨가 더운데다 기온이 많이 올라가서 다리를 많이 절었던 것 같다. 발 안의 살이 터져 나와 있었다. 걸을 수 없는 정도였다. 행진을 강행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밝혔다.

자신을 병원 간호사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서씨와 함께 탈수 증세에 시달렸던 여대생 5명도 함께 응급실로 실려왔다”며 안타까워했다.


무엇이 교육인가
극기훈련 뭐기에

동아제약 관계자는 사건 후 국토대장정 행사를 중단했다. 국토대장정 행사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첫 사고였다.

참고로 기자는 동아제약 박카스 국토대장정을 완주한 경험이 있다.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합격할 수 있는 국토대장정은 많은 대학생들의 로망 중 하나다. 그러나 당시 여대생 사망 사건을 생각하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 국토대장정을 끝까지 완주한 박씨는 “여자들은 정말 힘들어요. 가방도 무겁고 무엇보다도 생리현상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결국 완주 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말했다.

기자도 국토를 횡단할 때 무척 힘들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배울점도 많았지만 ‘극기’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지금의 현실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청소년들에게 군사문화를 집단적으로 경험토록 하는 풍조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번 충남 태안의 사설 해병대캠프는 이러한 풍조의 일부였다. 군사문화를 상업화해 이런 비극을 낳은 것이다. 웃고 떠들어야 할 청소년들에게 왜 하필이면 군사문화를 체험하도록 하는 것일까.


봉사활동, 농활 등 노동의 가치를 직접 느껴보거나 자연을 체험하며 생명의 신비로움을 몸소 느낄 수 있는 체험들도 있다. 하지만 해병대캠프 등 다양한 극기 프로그램의 문제는 통제된 질서를 요구해 ‘병영국가’를 체화시킨다는 데 있다. 군인이라면 이해하겠지만 비용과 시간을 들여가며, 비록 단기간이지만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해병대 문화를 맛보게 하는 건 문제가 있어 보인다. 참고로 기자는 해병대 출신이다. 해병대전우회 활동을 했을 정도로 모군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그러나 작금의 ‘군사문화’는 분명 정상적이지 못하다.

사실 청소년들은 일상 자체가 ‘극기’다. 과중한 입시제도는 청소년들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이런 학생들에게 해병대 훈련을 맛보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울의 한 중등교사는 “병영문화 체험 경력은, 대학에 따라서는 입시에 반영되어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교육계의 망령이 해병대캠프와 결합해 이번 참사를 맞은 셈이다.

해병대캠프를 수료한 한 학생에 따르면 “우리는 귀신 잡는 해병” “하면 된다”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 등의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과연 이것이 우리 10대에게 어울리는 구호일까.

체험이란 이름으로
뿌리깊은 군사주의

매스컴도 한몫 하고 있다. 리얼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자를 정글로, 농촌으로, 신혼집으로, 급기야 ‘군대’로까지 데리고 갔다. 대표적으로 MBC <진짜사나이>를 예로 들 수 있다.

<진짜사나이>가 여타 병영 관련 예능과 다른 지점은 ‘리얼’이라는 명목하에 6명의 진행자들을 군대에 그대로 투여한다는 점이다. 일사불란한 상명하복과 군사적 규율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한 진행자들의 모습은 안방에 생생하게 전달된다. 군필자들은 자신의 군시절을 회상하기도 한다.

얼떨결에 군대로 호출된 이들을 바라보며 시청자들은 그들이 느끼는 고통, 그들에게 가해지는 가학 등을 간접 체험한다. ‘병영’이라는 틀 속에서 참여자들을 가두는 <진짜사나이>를 단순히 ‘예능’으로 웃고 넘길 수 있을까.

한 문화평론가는 “군대에서의 일상적인 비합리성을 비웃는 푸른거탑과 다르게 진짜 사나이는 군대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대중에 합리화시키면서 예능을 진행한다”며 “진짜 사나이의 6명은 군대가 요구하는 미션을 원활하게 끝내야만 하는 억압 기제 속에서 우리에게 불편함을 가져다준다”고 밝혔다.

이어 “군대에서 발생하는 폭력 또는 억압 등은 사소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선임이 기분이 나쁘면 후임들이 괜히 얻어맞는 일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곳이 군대”라며 “그러나 진짜 사나이는 국방부에서 협조를 해주고 국방부의 홍보를 담당해야 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폭력과 억압이 카메라 앞에서 은폐되곤 한다.군생활에서 흔히 겪는 ‘치사함’과 ‘더러움’ 등은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군대에서 작동하는 위계질서가 일상에서도 당연시 여겨지는 한국 문화에서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군사주의 문화에 기생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를 확대재생산하게 한다”며 “공영방송이 예비역 남성들의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미화하고 자극하면서 추억팔이하는 건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군사문화의 소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이광호 기자<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청소년 체험캠프 보험가입률
10개 중 7개 ‘안전 사각지대’

전국 2000여개 난립

최근 사설 해병대캠프에서 청소년 5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각종 체험캠프가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25일 한국청소년캠프협회 9개 회원업체의 29개 캠프 프로그램을 조사한 결과, 안전사고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한 프로그램은 10개(34.5%)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19개 캠프 프로그램은 보험가입 여부를 홈페이지에 게재하지 않아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최근 3년간(2011년∼2013년 6월) 소비자원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각종 캠프 관련 상담사례 447건을 분석해 보면 시설안전으로 인한 피해가 12건으로 매년 끊이질 않고 있다. 하지만 체험캠프 업체의 경우 보험 가입이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청소년 체험캠프에 참여하던 중 발생하는 안전사고에 대해 업체로부터 보상을 받기 어려웠다. 소비자원은 청소년체험캠프에 참여하기에 앞서 참가 프로그램이 상해보험 등 각종 보험에 가입돼 있는 지 여부와 보험이 보장하는 범위를 확인할 것을 당부했다.

한편 한국청소년캠프협회에 따르면 청소년캠프 업체는 전국에 2000여개가 난립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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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