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미술평론가 변종필 교수

"그림은 어렵다? 관심이 먼저죠!"

[일요시사=사회팀] 바야흐로 기호의 시대. 혹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재림과 함께 예술 영역의 비평은 종언을 맞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비평의 홍수는 도리어 ‘진짜 평론가’의 부재를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미술평론가 변종필 경희대 교수는 부침을 겪고 있는 국내 미술 평단에 대한 진단과 함께 제대로 된 비평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풀어냈다.




'
미술 평론은 죽었다' 이 도발적인 질문에 미술평론가 변종필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변 교수는 "현재 평론가들이 느끼는 문제의식과 어느 정도 일치하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된 평론이 없다'는 말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말을 이었다.

평론이 필요해

"국내 평론가협회 역사가 60년 정도 됐습니다. 현재 협회에 소속된 평론가는 60여명, 비공식으로 활동하는 평론가까지 더하면 모두 100여명 정도 되고요. 과거부터 미술계에 어떤 담론을 형성하던 우리 평론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건 아닙니다. 다만 과거에 비해 평론가의 역할이 약화되긴 했죠. 그건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커요.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과거에는 쉽게 얻을 수 없었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창구가 많아진 것도 있고. 본질적으로 보면 전문화된 비평은 지금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잘 읽지 않죠."

"영화를 예로 들까요? 영화에 관한 전문적인 글보다는 한 개인이 영화를 보고 느낀 소감을 적는 게 (대중의 입장에선) 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그렇다고 영화평론가의 존재감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사실 미술 평단의 흐름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얘기보다는 개별 작가들에게 포커스를 맞춘 심층 연구가 더 활발해요. 저는 긍정적으로 봅니다."

변 교수가 말하는 평론가의 역할은 크게 4가지. 첫째는 작품 해석을 통한 텍스트의 미적 가치를 재발견 하는 일, 둘째는 작가의 작업에 대한 창조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 셋째는 예술 교육자로서의 전수, 넷째는 문명 진단자로서의 역할이다.


"어떤 작가들은 그래요. 내 그림도 잘 모르면서 평론한다. 일반 독자들도 그래요. 평론과 그림이 따로 논다. 그런데 이건 작가가 그림을 그리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해석과 감상을 갖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오히려 여기서 평론가의 역할은 작가에게 창조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에 있어요. 또 평론가의 글은 모든 대중을 아우르는 보편적 공감을 향하기 보다는 작가와의 교감에 더 힘을 싣는 경우가 더 많아요."

변 교수는 최근 두드러진 문화블로거의 약진에 대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블로거들이 평론가 고유 영역을 침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도 “우리의 전반적인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진 것"이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올바로 보기 위해선 평론가 필요
"문화블로거 약진 바람직한 현상"

"과거에는 지금의 블로거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평론가가 사라진다? 오히려 지금의 평론가들이 차별화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하고, 비전문가가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해석하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죠. 중요한 건 비평을 할 때 3가지를 잊지 않아야 하는데 첫 번째는 기술이고, 두 번째는 해석, 마지막이 평가입니다. 이중 제일 중요한 게 뭘까요? 바로 해석입니다 왜냐하면 해석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잖아요."

"요즘 문제가 된 NLL도 결국은 해석의 차이죠(웃음). 이렇듯 미학적인 측면에서 해석할 거냐, 미술사적 측면에서 해석할 거냐, 문화사적 측면에서 해석할 거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기술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해석에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어쨌든 블로거들이 어떤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로 인해 담론도 형성되고 해석도 풍부해진다는 점에서 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변 교수는 평론가 데뷔 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2년 정도 시민강좌를 진행했다. 대학 강단에 섰을 때와 가장 달랐던 점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눈높이. 변 교수는 "많은 사람들은 작품을 볼 때 느낌에 앞서 학습된 틀에 갇힌다"며 "작품에 대한 관심이 선행됐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배움의 질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보통 사람들이 그림이 어렵다고 하는 건 다른 예술 작품과 달리 기승전결이 없기 때문이에요. 서사적 구조가 없으니까 읽어내기 어렵고요. 특히 추상화처럼 개인의 주관을 표현한 작품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대중은 그림과 거리감을 느끼는데요. 이 거리감은 그림을 많이 보고 작가를 공부할수록 좁혀져요. 고흐의 그림만 해도 당시에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림이었어요."


"이건 그림 같지 않다는 얘기까지 있었죠. 그런데 어떻습니까? 그의 작품과 노트, 생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대중도 친숙해지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됐잖아요. 그림을 올바로 보기 위해서는 이처럼 작가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작가를 잘 이해하고 있는 평론가의 글도 그래서 필요한 거고요."

공부 또 공부

변 교수는 평론가 데뷔 전 작가로 활동했다. 그가 평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자신의 작업이었다. 변 교수는 "내가 화가였기 때문에 그림을 볼 때 화가의 입장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변 교수는 "평론가로서 조금 더 객관화된 시각을 위해 화가가 아닌 평론가의 입장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고뇌에서 그림을 향한 순수한 애정이 묻어났다.

"제가 강의를 하면 그림에도 좋은 그림과 나쁜 그림이 있냐는 질문을 던져요. 당연히 있죠. 저는 사람들이 좋은 그림을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그럼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이냐' 물으실 건데 평론가의 추천이 됐든 유명 갤러리의 전시회가 됐든 찾아가서 보시면 좋겠어요. 관심을 가져야 그림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변종필 교수는?]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 당선
▲한국미술평론가협회편집위원
▲ANCI연구소 부소장
▲경희대 국제캠퍼스 평생교육원 객원교수
▲삼육대 뮤지엄&조형컨텐츠 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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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