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총수들 방중 후일담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7.10 18: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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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 따라…‘MB맨’들과 밥도 먹기 싫다?

[일요시사=경제1팀] 두 기업 회장이 ‘동병상련’의 길을 걷고 있다. 서울대 동문이지만 삶의 궤적은 다르다. 한 사람은 30년 넘게 철강 기업에 몸담고 있고, 또 다른 이는 장관직을 거쳐 거대 통신 기업을 이끈다. 그런 두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 경제사절단으로 발탁 돼 중국을 방문한 후 외풍에 휘말렸다.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살얼음판 행보가 묘하게 겹친다.



날벼락은 이미 두 사람을 강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첫날 열린 국빈만찬에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이석채 KT 회장이 빠진 것으로 확인돼 재계에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는 것이다. 호사가들은 불참의 진의보다 배경에 주목했다. 새 정부 들어 교체설에 곤혹을 치러온 이들이라 더 그렇다. 

 
같은 배 탄
두 회장님

지난 1일 재계 등 업계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방중 일정 첫 날인 지난달 27일 저녁 베이징 인민대회당 금색대청에서 열린 시진핑 국가주석 초청 국빈만찬에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한 경제계 인사 중 정 회장과 이 회장이 불참했다. 또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김윤 삼양그룹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역시 만찬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들을 제외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강호문 삼성전자 부회장, 김창근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홍기준 한화케미칼 부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 등의 참석자들은 청와대가 결정한 뒤 대한상공회의소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재계 일각에선 국빈만찬 참석자 명단 작성에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상의 측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입장이다.


대한상의 한 관계자는 “해외 국빈 방문을 수행하는 모든 기업인들이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역대 최대 경제사절단이 꾸려진 만큼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경영자들을 고루 배분해 선별한 것”이라고 말했다.

만찬에 제외된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포스코 관계자는 “27일 국빈만찬은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행사가 아니었다. 경제사절단 전원이 참석해야 하는 28일 조찬과 오찬은 모두 참석했다”고 말했고, KT나 효성그룹 관계자 역시 “만찬 참석자 선정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면 애초에 사절단에 왜 포함을 시켰겠냐”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박 대통령 만찬자리에 일부 대기업 회장 제외
불참 이유·배경 두고 미묘한 파장…뒷말 무성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다른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는 뒷말이 무성하다. 특히 포스코나 KT의 경우, 국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중국 내 사업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정치적·경제적인 의도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코는 1991년 중국에 진출한 이후 지난해 기준 49개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정 회장은 또 4대 직할시 중 한 곳인 충칭에서 중국 철강사와 합작으로 제철소 건설을 추진 중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아무리 고르게 배분했다고 하지만 포스코와 KT의 수장들이 초대받지 못한 것에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며 “공교롭게도 해당 두 기업 수장들은 지난해 말부터 끊임없이 교체설, 퇴진설 등에 시달렸던 터라 이 같은 사안들이 이번 만찬 제외에 조금은 영향을 미친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소문난 잔치
‘뒷말 무성’

포스코와 KT는 ‘공민기업(공기업에서 민영화한 기업)’이다. 포스코는 2000년, KT는 2002년 공기업의 탈을 벗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준공기업으로 분류된다.

실제 두 회장은 출발점부터 순탄치 않았다. 이 회장은 2008년 11월 남중수 전 사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인 2009년 초에 KT를 맡았다. 이명박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 회장 역시 취임 당시부터 정치적 외풍에 부닥쳤다. ‘이명박 정부’ 때 임기가 남아있던 이구택 전 회장이 물러나고 수장 자리에 올랐다. 몇몇 외부 인사가 회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내부 인사가 회장이 돼야 한다는 포스코 안팎의 여론에 무게가 실린 것이다. 그러나 당시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박영준 전 차관 등 이명박 정권 실세들이 정 회장의 인선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또 하나의 MB맨으로 분류됐다.

취임 후 두 회장은 적극적인 조직개편과 M&A 등으로 시장에서는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정 회장은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베트남 냉연공장 준공, 인도네시아 제철소 착공 등 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 회장은 공무원(전 정보통신부 장관) 출신답지 않은 추진력으로 KT의 미래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회장은 취임 5일만에 KT와 KTF의 합병을 마무리 지었고, 국내에 아이폰을 처음으로 도입해 스마트 혁명의 불씨를 지핀 ‘혁신 전도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반면 내부 안팎에서는 ‘MB 낙하산’, ‘측근 심기’, ‘문어발 경영’, ‘밀어붙이기’, ‘독불장군’ 등 이라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MB맨’으로 불리는 두 회장이 임기를 제대로 끝마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도는 것도 이 같은 배경과 무관치 않다.

이런 와중에 지난 3월 한 매체는 인수위 시절 친박계 몇몇 인사들이 박 대통령에게 정 회장의 교체를 건의했다고 보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MB표 기업
멀리하기?

이 매체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한 핵심 측근은 “새누리당에서 먼저 얘기가 나왔다. 3∼4명의 친박 의원들이 의견을 모아 박 대통령 참모진에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논의에 참여했던 친박 의원은 익명을 요구하며 “(박 대통령)에게 인사 청탁을 하기는 어렵지만 바꿀 필요가 있다는 수준의 보고는 하고 있다. 정 회장 교체에 박 대통령이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고 귀띔했다고 해당 매체는 전했다.

이 회장도 지난해부터 끊임없는 교체설과 퇴진 압박에 시달리는 중이다. 정재계 안팎에서는 “올 여름을 전후해 두 회장의 거취가 불투명해 질 것”이라는 루머까지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두 회장이 국빈 만찬 자리에 제외되면서 “박 대통령에게 제대로 미운털이 박혔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두 회장과 함께 만찬에서 제외된 기업의 수장들도 전전긍긍하기는 마찬가지다. 공교롭게도 이들 역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연관이 돼 있는 경우가 많다. 박 대통령은 이들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는 등 MB를 향한 압박 수위를 점차 높여가고 있다.

‘MB 특혜기업’도 빠져
살얼음판 행보 오버랩

이 전 대통령의 사돈 집안인 효성그룹은 현재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그룹 측은 ‘정기 세무조사’라고 주장하나, 일반적으로 정기 세무조사가 5년 만에 행해지는 만큼 지난 2010년에 이어 3년 만에 벌어진 이번 조사는 특별조사라는 게 재계 안팎의 시각이다.

특히 최근 <뉴스타파>가 조 회장의 막내 동생인 조욱래 DSDL(옛 동성개발) 회장과 장남 조현강씨가 조세피난처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을 폭로한 직후여서, 역외탈세 혐의에 대한 수사가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코오롱그룹은 새 정부 출범 후 4대강 사업 비리 의혹이 수면 위로 오르면서 계열사 관련 의혹이 불거졌다.

박근혜의
‘MB색 빼기’

민주통합당 우원식 의원이 지난 4월 공개한 내부 문건에 따르면, 코오롱그룹 계열사인 코오롱워터텍㈜은 4대강 사업 추진 시기인 2009년부터 3년간 4대강 수질 개선 사업인 ‘총인 처리 시설 설치 사업’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10억 원대의 현금 로비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총인 처리 시설은 하천 오염의 주요 원인인 총인이 강으로 유입되는 것을 줄여주는 설비다. 문건에서는 코오롱워터텍이 총인 처리 사업 심의위원들과 지자체 관계자 등에게 휴가비, 명절 사례비, 준공 대가 등의 명목으로 현금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 공정거래위원회, 환경부, 7개 지방조달청 등에도 현금이 전달된 것으로 나와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자본금 10억 원대의 회사가 10억 원의 현금 로비를 벌인 점이나 이 회장이 코오롱워터텍 지분 80%가량을 보유하고 있는 점을 들어 불똥이 오너에게 튈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에 한 재계 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효성과 코오롱까지 만찬에서 빠진 것은 박 대통령이 MB 정부 뒷수습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방증 아니겠냐”며 “MB 정부의 각종 비리 의혹 사건들이 사정기관과 정치권의 도마에 오르고 있어 어디서 무엇이 터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형국에서 박 대통령이 선긋기에 나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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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